일과 성취
고상섭 목사(그 사랑교회, 본보 논설위원)
참된 일과 성취는 하나님과 공동체 안에서 누리는 관계성 속에 있다
오늘날 젊은이들의 문화내러티브 중의 하나는 직업의 성취를 통해서 인생의 목적을 추구하려는 것이다. 자아실현과 자아성취를 일과 연관시켜서 꾸준히 가르침을 받아온 영향이 큰 것 같다. 하나님이 태초에 일을 디자인하셨고, 하나님의 일에 인간을 동참시키셔서 문화명령을 수행하도록 하셨다. 일은 인간을 자유하게 하는 도구이며 세상을 섬기는 기쁨을 누리는 것이지만, 일 자체가 우리를 구원해주는 것은 아니다.
창세기 5장부터 시작되는 아담의 톨레도트는 죄악된 인간상을 잘 보여준다. 그 절정은 11장의 바벨이라는 나라를 만드는 것이다. 바벨의 도시와 바벨 탑은 인간의 나라를 보여주는 전형이다. 그 인간의 나라의 특징은 자신들의 신기술을 가지고 인간의 노력을 통해 우리의 이름을 드러내는 것이다.
하나님 없는 삶의 구원을 일과 성과를 통해 자신들의 이름을 높임으로 나타내고 싶은 것이다. 창세기 12장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아브라함 한 사람을 통해 시작되는데, 그 나라의 특징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이름을 높여 주는 데 있다. 인간 스스로 자신의 이름을 높이는가? 하나님이 우리의 이름을 높여 주는가가 가장 큰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일과 성취, 직업과 비전이 구원의 단계로까지 격상된 시대를 살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참된 만족은 관계로부터 오는 행복이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행복하신 분으로 서로가 서로를 내어 주는 사랑 안에서 완전한 기쁨과 만족을 누리셨다. 그 삼위일체의 사랑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이유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행복을 사람들에게 나눠주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인간의 최고의 행복은 삼위일체 하나님과의 교제이다. 관계 안에서 흐르는 사랑이 우리를 만족시키고 행복하게 하는 것이다. 사도바울은 다른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했지만 그것을 하게 한 것은 자신이 아니요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했다. 일을 통해 무엇을 성취하면서 얻으려고 하는 그 만족은 사실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통해 누려야 하는 것이다.
그 관계에서 오는 만족을 누릴 때 비로소 일도 제대로 열정을 가지고 할 수 있다. 도로시 세이어즈는 ‘유사열정’ 이라는 ‘해태’에 대해 경고했다. 해태는 게으름과는 다르게 아주 열심을 품고 바쁘게 사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열정의 방향이 자기중심적이라고 말한다. 자기를 위해 열심을 품을 때 그 열심은 결국 스스로를 탈진에 이르게 한다. 참된 열정은 일과 성취를 통해 무엇을 얻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통해 이미 얻은 것을 바탕으로 방향을 설정하고 달려가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만족을 통해 우리의 일은 나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세상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되어야 한다.
인간은 자기 자신보다 더 큰 대의에 헌신할 때만 삶의 의미를 느끼는 존재이다. 자기 자신을 위해 열정을 바칠 때 삶은 무의미해지고 쾌락 중심으로 스스로 무너질 수밖에 없다. 또 삼위일체 하나님의 연합은 혼자 하나님과의 관계만을 추구한다고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담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못한 이유는 삼위일체의 연합 안에서 오는 사랑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공동체가 필요하다. 참된 구원과 만족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에서 오는 것이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잘라낸 개인의 성취는 결국 스스로를 감옥에 가둘 뿐이다.
한병철 교수는 <피로사회>에서 자본주의 시스템 속에서 긍정성의 과잉은 결국 스스로를 갉아먹게 되고 그런 문화내러티브를 벗어나지 못하면 자신이 가해자이며 피해자가 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고 말한다. 일을 통해 궁극적으로 추구하려고 했던 그 만족은 결국 그리스도와의 관계로부터 오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참된 일과 성취는 하나님과 공동체 안에서 누리는 관계성 속에 있고 그것이 채워지면서 우리의 일은 더욱 하나님 나라에 동참하고 이웃을 섬기는 행위로 나아갈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헛된 영광을 위해서 스스로를 갉아먹는 유사열정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우리의 구원은 일과 성취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관계로부터 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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