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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으로 살아나라! (에스겔 37:1~14)

경건

by 김경호 진실 2022. 3. 29. 12:08

본문

생명의 하나님 말씀으로 죽어가는 영혼들을 살려냅시다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 생기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죽음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아나게 하라 하셨다 하라 이에 내가 그 명령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나서 일어나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 (겔 37:9~10)


김종원 목사(경산중앙교회)
하나님의 말씀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불 같아서 냉랭한 심령을 녹여버리기도 하고 방망이 같아서 굳은 심령을 격파해 우리를 회개하게 합니다.(렘 23:29)
또 하나님의 말씀에는 구원의 능력이 있습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롬 1:16)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것을 살리는 생명의 능력 또한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히브리서 4장 12절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은 찔러 쪼개기에 앞서서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히4:12)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것을 살립니다.

그런데 우리의 상황은 어떠합니까? 우리의 영혼도, 가치관도, 가정도 죽어가고 있습니다. 넷플릭스에서 세계 1위를 차지하는 한국 드라마들만 봐도 그렇습니다. ‘오징어 게임’이나 ‘지옥’은 미쳐 돌아가는 세상을 다룹니다. ‘지금 우리 학교는’은 학교에 고립된 학생들이 어떤 외부의 도움을 전혀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좀비들에 맞서 살아남기 위해 사투를 벌인다는 내용입니다. 모두 살아 있지만 이미 죽은 것 같은 디스토피아를 다룹니다.

오늘 본문도 비슷합니다. 1절을 봅시다. “여호와께서 권능으로 내게 임재하시고 그의 영으로 나를 데리고 가서 골짜기 가운데 두셨는데 거기 뼈가 가득하더라”(겔37:1) 분명히 전능하신 하나님의 백성으로, 생명력 있게 살아 숨 쉬어야 하는데, 에스겔의 눈에 들어온 것은 무엇일까요? 거기 뼈가 가득하더라!

1절에 분명히 뼈로 가득했습니다. 그러나 10절에 보니까 바뀝니다. “이에 내가 그 명령대로 대언했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나서 일어나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겔 37:10) 군대도 군대이지만, ‘그들이 곧 살아나서 일어나 서는데’입니다. 죽은 뼈도 살려내고 하나님의 군대로 만드는 살리는 역사, 생명의 역사가 나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에 어떤 생명력이 있는지 살펴봅시다. 어떻게 해야 죽은 뼈와 같이 겨우 숨만 붙어서 돌아다니는 우리의 신앙, 우리의 삶이 다시 사람답게, 다시 성도답게, 다시 하나님의 종답게 살아나는지 살펴봅시다.

살아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말씀이 들려져야 합니다. 말씀은 변함없는 진리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살아 있는 것과는 전혀 상관없는 ‘생명력’하고는 전혀 무관한 뼈들이 가득한 골짜기가 나왔습니다. 하나님이 에스겔을 환상 가운데 데려다 세운 골짜기입니다. 환상 속에 보인 이 뼈들은 11절에 보니까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이처럼 생명력을 다 잃어 뼈다귀가 되었을까요? 이스라엘은 느부갓네살 왕이 이끄는 바벨론의 군대에 의해 패망했습니다. 예루살렘은 함락되었고 전쟁 가운데 살아남은 사람들도 다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어떤 소망도 희망도 기대할 수 없는 절망입니다. 그 절망이 어느 정도인지 2절에 보면, “나를 그 뼈 사방으로 지나가게 하시기로 본즉 그 골짜기 지면에 뼈가 심히 많고 아주 말랐더라” (겔 37:2)고 기록합니다. 어떤 작은 생명의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뼈들이 살아납니다. 다시 생명을 얻습니다. 힘을 얻고, 일어납니다. 다시 살아나게 됩니다. 그렇다면 언제 살아날까요? 정확한 시점을 확인합시다. 바로 7절입니다. “이에 내가 명령을 따라 대언하니 대언할 때에 소리가 나고 움직이며 이 뼈, 저 뼈가 들어 맞아 뼈들이 서로 연결되더라”(겔 37:7)

할렐루야! 언제라고 말합니까? 명령을 따라 대언하니 대언할 때에…. 하나님은 앞서 4~6절에서 에스겔에게 마른 뼈들에게 여호와의 말씀을 들려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래서 에스겔은 그 받은바 명령에 따라 뼈들을 향해 말씀을 대언했습니다. 대언하니 뼈들이 무슨 자석처럼 서로 달라붙고, 연결될 뿐만 아니라 8절에 보니 ‘그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그 위에 가죽이 덮였다’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게 한번이 아닙니다. 10절도 보세요. “이에 내가 그 명령대로 대언했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나서 일어나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겔 37:10)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살려내야죠! 말씀으로!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사 55:3) 말씀을 들으면 영혼이 삽니다. 우리 자녀들이 삽니다. 그들이 세상의 음란한 그림자에 더 물들기 전에, 좀비 영성에 더 물들기 전에, 지옥 같은 부정적이고 암울한 기운이 아이들의 영혼을 더 갉아먹기 전에 말씀으로 살려내기를 바랍니다. 코로나19보다 더 무서운 것은 아이들의 영혼이 마른 뼈가 되어간다는 것입니다. 더 늦기 전에 말씀으로 살려내야 합니다. 풍성한 말씀의 자리에 앉혀 놓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말씀이 왜 마른 뼈를 살려낼까요?

바로 말씀에는 치유의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8절에 보면 뼈들이 그냥 살아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또 보니 그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그 위에 가죽이 덮이나…”(겔 37:8)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가죽이 덮였다고 합니다. 치유의 단계를 보여줍니다. 출애굽기 15장은 치료의 하나님에 대해 말씀합니다.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출 15:26) 여호와 라파입니다. 말씀이 질병을 치유하기도 합니다. 또 어떤 경우에는 육신의 질병보다 더 깊은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과 육을 동시에 치유하는 능력을 발휘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은 마른 뼈를 살려냅니다. 아무쪼록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함으로 영육의 치유를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마른 뼈가 하나님의 군대가 되기 위해서는 성령님이 역사하셔야 합니다. 이제 뼈들이 연결되고 힘줄과 살이 올랐습니다. 그런데 특이한 점이 있습니다. “살이 오르며 그 위에 가죽이 덮이나 그 속에 생기는 없더라”(겔 37:8)고 합니다. 뭐가 없다고 합니까? 생기는 없더라! 다시 말하면 마른 뼈들이 골격은 다 갖췄는데 아직 산 사람은 아니라는 겁니다. 그런데 9절에 보니까, 또 다시 대언하라고 합니다. 그렇게 하니까 어떻게 되었다고요? 10절에 “이에 내가 그 명령대로 대언했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나서 일어나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겔 37:10) 할렐루야! 대언하니 그들에게 생기가 들어갔습니다.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군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놀라운 변화의 중심에 생기가 있었다는 것을 놓치지 마세요!

그러면 이 ‘생기’가 뭘까요? 단순히 발랄하고 활기찬 삶의 에너지 같은 걸까요? 아닙니다. 14절을 보면, “내가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가 살아나게 하고”(겔 37:14)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마른 뼈가 하나님의 군대로 일어나도록 한 ‘생기’는 다름 아닌 ‘하나님의 영’이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 ‘성령’이었던 것입니다. 할렐루야!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영(靈)’이라는 말 대신에 ‘기(氣)’라는 말을 많이 사용해 왔습니다. 화가 난 경우는 노기(怒氣), 따뜻한 기운은 온기(溫氣), 타고난 기운은 원기(元氣) 등 많은 부분에 ‘기’를 사용해 왔습니다. 그래서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했을 때는 “기가 막힌다”고 하죠! 반면 무언가에 정통하거나 좋을 때는 ‘기통(氣通)하다’라는 말을 써왔습니다. ‘기통하다’라는 말이 어떻게 변천되었을까요? ‘기통한’에서 ‘기똥찬’으로…. 자고로 기는 통해야 합니다. 막히면 안 됩니다. 아무쪼록 하나님과 기가 통하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영이 통하는 대한민국의 교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점점 죽어가는 우리 자녀들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신앙도 죽고, 생기도 죽고, 삶의 의욕도 죽어가는 우리 자녀들, 우리 가정들을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여러분의 가정,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누군가는 중보해야 합니다. 감히 생기를 향해 대언하는, 다시 말해 중보하는 여러분의 기도로 자녀들의 가슴에 생기를 불어넣을 수 있습니다. 이 땅 조국 대민한국의 국민입니까? 점점 생명력을 잃어가는 조국을 위해 중보함으로 성령의 바람을 불어넣을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살립니다. 말씀 앞에 세워 영혼들을 살려낼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 기독신문(http://www.kid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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