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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믿음을 회복하라(롬 1:16~32)

믿음

by 김경호 진실 2022. 7. 18.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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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교소 목사(함께하는교회)

예수 그리스도 의지하며 성실히 믿음의 길 걸어갑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 1:17)


진교소 목사(함께하는교회)
현대사회는 정보통신의 발달로 매스미디어의 전성시대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사람간의 교류가 문자를 지나 미디어로 가상공간에서 소통하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너무나 빠르게 지나가고 있어 기성세대는 쉽게 접근이 어려워져 소통이 부재합니다.

거기에 기독교는 지난 3년 동안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로 빈자리가 너무나 많아졌습니다. 신앙이 없이도 세상을 살아가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고 생각하며 즐기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입니다.

그 전에 믿음이 좋고 신앙심이 깊었던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지난 몇 년 동안 교회를 등한시하다 보니 믿음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는 길 잃은 양이 되어버렸습니다. 이런 현상 속에서 참된 믿음의 길을 바르게 갈 수 있을까요?

오늘 말씀을 통해 진정한 기독교의 모습을 어떻게 찾아야 하고, 세상에 무엇으로 기독교의 모습을 증명해야 할 것인지를 바울이 선포한 말씀을 통해서 참된 믿음이 회복되길 소망합니다.

1. 의인의 믿음이란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에 대해 성경 여러 곳에서 분명하게 밝혀주고 있습니다. 로마서 1장 17절에서는 하나님의 의는 믿음에서 믿음으로 이르게 하는 성장하는 믿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믿음에 대해서 성경은 진실·성실·신실·정직·충성·공정한 모습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의로운 믿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하게 우리에게 주문하시고 계신 것은 참된 믿음은 성화되어 가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이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의 모습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습니까? 전혀 믿음의 사람, 믿음의 기독교가 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나의 믿음은 진정 하나님이 바라시고 원하시는 믿음으로 성화되어 성장하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습니까? 질문해 보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 로마서에서 바울사도는 구약의 하박국 말씀을 인용해서 믿음으로 구원받은 성도를 의인이라고 부릅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합 2:4)라고 선포했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믿음’이라는 단어를 바울사도가 헬라어로 번역하면서 구약에서 ‘에무나’로, 신약에서 ‘피스티스’로 번역을 했고 우리가 가진 성경에는 ‘믿음’으로 번역이 됐습니다.

하박국 선지자 당시, 바벨론으로부터 포위를 당하고 두려움 가운데 있던 예루살렘 백성들에게 바벨론은 결코 오래가지 못하고 결국 악한 자들이기 때문에 멸망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예루살렘성에 있는 사람 중에 의인은 반드시 ‘에무나’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바벨론이 정직하지 못하고 교만하여 멸망당하는 것이라면, 멸망당하지 않는 사람은 교만하지 않고 정직하고 겸손하며 의인의 길을 가는 사람들이라고 선포한 것입니다. 이 말씀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 것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믿음의 의인이란 착하고 충성되고 진실하고 성실하면서 정직하고 겸손한 사람입니다. 이런 의인이라면 결코 죽임을 당하지 않고 살아남을 것입니다. 참으로 분명하고 정확하게 참된 의인이란 무엇인지를 제시해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바울사도는 로마서 1장 17절과 갈라디아서 3장 11절, 히브리서 10장 38절에서도 의인의 믿음에 대해서 말합니다. 믿음으로 번역된 이 ‘에무나’는 착하고 충성되며 진실하고 성실하고 정직한 삶을 살아가는, 참된 믿음의 길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 참된 믿음의 회복만이 살 길이다

현대 기독교는 세상에서 비난을 받는 종교가 되어버린 지 오랜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 이유로 어쩌면 세상보다 못한 기독교가 된 건 아닌지 우리는 뒤돌아봐야 합니다.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시고 자기 목숨을 내어놓으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사하신 이유는 우리가 구원받는 것으로 끝이 아니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죄를 위해서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의 소원이 바로 진정한 믿음의 회복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주여 주여 하는 자가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다만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라야 천국에 갈수 있다’고 말하신 것은 바로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아니고서는 믿음으로 살지 못한다는 결론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믿음에 대한 오해를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따라 사는 진정한 의인은 충성됨으로 살아야 합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진실하고 정직함으로 살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은 성실하고 신실하고 선량하고 공정하고 흔들리지 않는 결심으로 살아야 한다고 가르쳤다면 많은 것이 달라졌을 것입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이렇게 달라졌다면 오늘날 타락하고 험악한 세상에서 영광스러운 그리스도인의 모습으로 우뚝 서지 않겠습니까? 이런 그리스도인으로 온 세상이 아름답게 천사 같은 모습이 되었을 것입니다.

이제는 참된 믿음의 회복의 길을 가야 합니다. 세상이 결코 보여줄 수 없는 그런 모습으로 우리 성도들의 삶이 변화돼야 합니다. 그동안의 그리스도인의 삶 속에서 진실과 성실과 정직과 충성의 모습을 얼마나 찾을 수 있었습니까? 코로나로 교회에 나가지 않는 것이 얼마나 편안했으면 코로나가 해제되는 이 시점에서 교회의 회복이 이토록 힘들단 말입니까.

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서 이제는 다시 돌아오는 것이 어려워지고 교회는 더욱더 텅비어가는 모습에 우리 주님께서 얼마나 마음 아파하실 지를 생각해 보았습니까? 오늘의 말씀 속에서 의미하는 믿음의 길을 찾기를 원하신다면 십자가 앞에 나아와 참된 회개를 통해 믿음이 회복되어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와 같은 복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3. 충성됨으로 변화되는 믿음

오늘 본문에 세상은 자기가 마음대로 행동하고 말하며,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세상입니다.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된 것으로 바꾸어 버리고, 피조물을 하나님보다 더 경배하는 맘몬주의 세상이 되어버렸습니다. 악하고 게으르고 음란하고 공정과 상식이 없습니다. 무엇보다 그 마음에 하나님을 두기를 싫어하는 시대입니다. 그 속에서 믿음의 사람들이 세상의 모습에 박수를 보내며 함께 걸어가는 시대가 되어버려 이제는 세상에 속한 자인지, 믿음의 사람인지 분별이 어려운 시대가 되어버렸습니다.

이러한 세상에서 우리는 누구를 의지하며 우리 믿음의 변화를 가져와야 할까요? 오직 우리의 구원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 밖에는 우리의 구원자가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예수 안에 참된 생명이 있음을 인지해 충성하는 온전한 믿음의 삶으로 변화돼야 합니다.

그 변화된 삶이란 유일하신 하나님을 믿고 신실하게 충성하며 성실되게 흔들리지 말고 확실한 믿음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이라면 이제는 그의 성품이 착하고 성실하며 진실하고 충성되게 변화된 그런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중심을 보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사람의 중심이 어떤 것입니까? 어떤 중심을 가지고 믿음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까? 많은 지식을 쌓았다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게 아니고 직분을 소유했다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얼마나 충성되냐, 얼마나 진실하냐, 얼마나 성실하냐, 얼마나 선한 삶을 살아가고 있느냐, 얼마나 믿음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노력하느냐를 보아야 합니다.

세상을 본받지 않는 진정한 믿음의 사람으로 그 성품이 변화돼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는 게으르고, 불성실하고, 충성되지 못하고, 신실하지 못하고, 교활하고 탐욕스럽고, 악의가 가득한 자이면서, 분쟁을 일으키고 교만한 자라면 하나님 앞에 반드시 심판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주님께서 최후의 심판에서 그 사람의 믿음을 평가하실 때 충성됨(마 25:21)으로 기준 삼으셨듯이, 하나님 앞에 인정받는 참된 믿음의 성도는 한결같이 착하고 충성된 성품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에 충성됨으로 칭찬받는 참된 믿음의 사람들이 되길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출처 : 기독신문(http://www.kid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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