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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이 받은 100배의 축복(창 26:12~13, 23~25)

믿음

by 김경호 진실 2022. 8. 8.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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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용한 목사(옥수중앙교회)

내게 주어진 평범한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 승리 체험합시다

“이삭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거기 장막을 쳤더니 이삭의 종들이 거기서도 우물을 팠더라” (창 26:25)


호용한 목사(옥수중앙교회)
오늘 본문 창세기 26장에 등장하는 족장 이삭의 삶은 두드러진 업적이 없습니다. 특별히 뭘 했다는 기록도 에피소드도 없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이삭의 사적 가운데 그가 열심히 한 것은 딱 하나! 그가 가는 곳마다 우물을 판 것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를 믿음의 조상의 반열 속에 포함시키고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특별한 사람들과만 함께하시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적인 삶 가운데도 하나님의 특별하신 임재가 함께할 수 있다는 교훈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평범했지만 성실했던 믿음의 사람’ 그의 일상적인 삶을 통해서 우리는 이삭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가 어떤 축복을 받았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이삭은 믿음으로 인내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우물파기의 성실함으로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을 경험했습니다. 물질적인 축복이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이런 축복만이 계속된 것은 아닙니다. 축복을 누리게 되자 즉각적으로 이웃의 시기 대상이 되기 시작합니다. 그가 거하고 있었던 블레셋 사람들의 시기를 받게 됩니다. 그것이 본문 26장 15절의 말씀입니다. “그 아버지 아브라함 때에 그 아버지의 종들이 판 모든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웠더라” 어느 날 갑자기 불레셋 사람들이 와서 우물들을 막기 시작했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14절 말씀을 보십시오.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종이 심히 많으므로 블레셋사람이 그를 시기하여” 불레셋 사람들의 시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삭은 일상의 삶의 여정에서 시기를 경험했고, 다툼을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절대 싸우지 아니하고 다투지 아니하고 다른 곳으로 옮겨 다시 우물을 팠습니다. 그는 옮겨가는 곳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물이 터지는 축복을 허락하십니다. 마침내 22절 “이삭이 거기서 옮겨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다투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르호봇이라 하여 이르되,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하였더라” 시비를 걸면 도망가고, 또 시비를 걸면 또 다시 이사 갑니다. 또 새 우물을 팝니다.

드디어 르호봇까지 왔습니다. 옮겨 가다가 비교적 넓은 곳에 도착한 것입니다. 그곳의 이름은 르호봇, 그 뜻은 “넓혀진 곳”이라는 뜻입니다. 그러한 시비를 피해서 온 곳이 보다 넓은 땅에 와서 우물을 다시 파게 된 것입니다. 성경은 르호봇에서 새로운 우물을 파면서 이삭이 이렇게 고백했다고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우리의 장소를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할 것이다”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다툼과 시기와 대적의 대상이 되는 가운데 끊임없이 장소를 옮겨 다니면서도 이삭은 새로운 비전을 잃지 않았다는 일입니다. 보다 나은 미래에 대한 꿈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이삭은 언제나 ‘낙관주의자’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행하신다’ 한 신학자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누가 그리스도인인가? “그리스도인들은 치료가 불가능한 낙관주의자다”라고 말했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 삶 속에서 함께 하시고 인도하신다면 우리가 어떻게 비관주의자가 될 수 있겠느냐?’고 그는 묻습니다. 저 역시 정상적인 그리스도인들이라면 낙관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시비와 다툼과 시기를 경험하면서도 계속해서 새로운 꿈을 갖고 새로운 장소를 찾으며 하나님의 인도와 축복을 기다리고 기도했던 이삭은 마침내 축복을 누리는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오래 전 뽀빠이 이상용 씨가 진행하던 ‘늘푸른 인생’이라는 프로그램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뽀빠이 이상용 씨가 전남 곡성에서 107세 된 할아버지를 만나 인터뷰를 한 적이 있습니다. “할아버지! 이렇게 오래 사신 비결이 뭐에요?” 그랬더니 “비결은 무슨 비결! 안 죽으니까 오래 살았지.” 이상용 씨가 웃으면서 계속 질문을 했습니다. “형님 그동안 살면서 미운 사람도 많고, 스트레스 주는 사람도 많았을텐데, 어떻게 그런 걸 다 참고 사셨어요?” 그랬더니 할아버지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미운 놈들도 참 많았지. 하지만 그냥 내버려뒀어. 그랬더니 지들이 알아서 70, 80, 90살이 되니까 다 죽던데 뭘? 그러니까 절대 화내지 마! 화내지 말고 화날 때는 웃어버려!”

얼마나 재미있는 이야기입니까? 우리도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혹시 나를 시기하고 질투하고 욕하는 사람이 있더라도 웃어 버립시다. 그러면 그들이 저절로 다 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이렇게 이삭이 참고 인내할 수 있었던 비결은 믿음 때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기어이 축복하실 것을 믿는 믿음’ ‘이번에도 샘물이 터질 줄 믿는 믿음’ 불평하고 원망하기보다 하나님의 인도를 구하며 그 행보를 옮겨가며 기도할 수 있었던 이삭 그는 마침내 믿음으로 축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믿음의 인내가 가져다 준 축복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 그는 어느 때나 궁극적인 평화를 구하는 피스메이커였습니다.

그는 끊임없이 시기와 다툼의 대상이 되어 왔습니다. 자기의 종들이 그랄 지역의 종들과 다투는 광경을 목격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이 문제를 이삭은 어떻게 해결했습니까? 양보로 해결했습니다. 그는 자기 종들의 편을 들면서 “싸우라”고 명령하지 않았습니다. 창세기 26장 20~21절을 보면 자기 종들이 그랄의 목자들과 싸울 때 다른 우물을 팠다고 했습니다. 그곳을 포기하고 다른 곳에 가서 또 우물을 팠다는 말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싸우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그는 되도록 다투지 않기를 소원했습니다. 그는 할 수 있는 한 평화를 구하는 피스메이커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당연한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습 아니겠습니까? 로마서 12장 18절에서 바울도 이렇게 가르칩니다.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주님도 ‘화평케 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가르치셨습니다. 할 수 있거든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목하시기 바랍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모든 면에서 양보하는 것만이 능사라는 말은 아닙니다. 때로는 진리를 위해서 맞서야 할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진리의 문제가 아니라면 양보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진리의 문제는 우리 일생에서 그렇게 자주 부딪히는 문제가 아닙니다. 대부분 사소한 것들입니다. 사소한 것들에 목숨 걸지 마세요. 아무것도 아닌 것 때문에 우리가 그리스도인의 간증을 스스로 포기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괜히 화를 내다 그리스도인의 간증과 덕을 상실하는 순간들이 얼마나 자주 있습니까? 일도 중요하고 목표도 중요하지만 저는 그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이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관계는 하나님이 일하시는 통로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관계를 통해서 전도하고, 관계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인간관계처럼 소중한 것이 없습니다. 그 관계를 해치지 마십시오. 할 수 있는 한 그 관계를 하나님의 평안으로 보존하십시오. 이삭에게는 일을 성취하는 것 이상으로 관계의 보존이 더 중요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평화를 만드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신앙 선조인 이삭의 발자취를 따라 저와 여러분도 한평생 하나님께 평화를 구하고, 그 평화를 드러내는 평화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로, 그는 제단 중심 예배 중심의 삶을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창세기 26장 25절 말씀을 보십시오. “이삭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거기 장막을 쳤더니 이삭의 종들이 거기서도 우물을 팠더라” 이 말씀을 보면 평소 이삭의 삶이 어떠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는 가는 곳마다 제단부터 쌓았습니다. 그 다음에 장막을 쳤습니다. 그리고 우물을 팠습니다.

이 순서가 굉장히 중요한 말씀 아닙니까? 제단은 오늘날로 말하면 예배 생활, 교회 생활을 말합니다. 그는 내 집보다 중요한 것이 교회였습니다. 또한 사업이 확장하고 사업에 온 정신을 쏟는 것보다 먼저 예배 생활에 투자하고 주님을 위해 헌신하는 것에 우선순위를 두었습니다. 예배와 하나님의 복음에 투자하는 것을 최우선 순위로 삼았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어찌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복을 주시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창세기 26장 12절은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었더라”

옥수중앙교회의 자랑인 배달의 민족 김봉진 집사님을 아시지요? 그는 사업을 시작할 때마다 항상 개업 예배를 드렸습니다. 7번의 개업 예배를 드렸음에도 불구하고 실패했지만 그 실패 속에서도 또 하나님을 의지하며 예배를 드렸는데, 11년 전 오늘의 ‘배달의 민족’ 개업 때에도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 때 제가 설교한 본문이 바로 오늘의 본문입니다.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었더라”

여러분! 그가 연속되는 실패 속에서도 다시 예배를 드리고 또 다시 드렸다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그는 하나님의 능력을 하나님의 축복을 믿는 믿음의 사람, 예배 중심의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우물파기와 같은 평범한 일을 하다가 짜증이 나기도 하고, 이웃들의 시기를 받기도 하고, 어려움을 당하기도 하지만 결코 낙심하거나 지치지 마십시오. 평범한 우물파기 속에서 하나님의 인도의 손길을 보고, 믿음으로 인내하고, 평화를 구하면서 예배할 줄 알았던 이삭, 그는 마침내 주님 앞에 아름다운 석양의 축복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평범한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승리를 체험하는 우리 모든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을 축복합니다.

출처 : 기독신문(http://www.kid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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