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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 속에 드리는 기도(고후 12:5~10)

고난

by 김경호 진실 2022. 8. 29.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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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약함 깨닫고 하나님 은혜 구하는 기도의 삶 삽시다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후 12:9)


호용한 목사(옥수중앙교회)
기독교 역사상 가장 존귀하고 가장 위대하게 쓰임 받은 예수의 제자가 있다면 사도 바울일 것입니다. 이런 사도 바울에게도 원인을 알 수 없는 ‘육체의 가시’가 있었습니다. 고린도후서 12장 7절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성경학자들은 이 가시의 정체를 둘러싸고 여러 가지 의견을 제시하지만, 대체로 사도 바울을 괴롭히던 어떤 육체적 질병을 뜻하는 것으로 추정합니다. 사도 바울에게 말라리아 열병이 있었다는 견해부터 간질이 있었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가장 보편적인 견해는 안질입니다. 아마도 다메섹 도상에서의 강력하고도 초자연적인 빛의 내리쪼임으로 평생 안질을 앓게 되었다는 견해입니다. 갈라디아서 6장 11절 말씀이 이 주장의 근거가 됩니다. “내 손으로 너희에게 이렇게 큰 글자로 쓴 것을 보라”라고 했는데, 이는 바울이 자신의 시력에 대한 장애를 고백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육체의 시험, 질병의 고통과 싸워야 할 때 우리가 할 일은 무엇입니까? 예상치 못한 이런 고난과 질병 속에서 어떤 기도를 드려야 할까요?

첫째,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순간에도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일입니다.

사도 바울이 우선적으로 한 일은 그 가시가 떠나가도록 기도했던 일입니다. 고린도후서 12장 8절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왜 하필이면 바울은 세 번 간구했을까요? 유대 민족에게도 우리처럼 삼세번의 문화가 있었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예수님의 모범을 따른 것일까요? 예수님도 십자가의 고난을 앞두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몇 번 기도하신 줄 아십니까?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 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3번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 말씀이 단순히 기도를 세 번 드렸다는 숫자적 의미를 지녔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세 번”이란 바울이 작정하고 전심으로 기도한 횟수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사실 바울은 회심 직후부터 기도의 능력을 체험했습니다.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난 후 그는 거의 실명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준비된 종 아나니아를 사울에게 보내 그를 위해 안수하게 하십니다. 사도행전 9장 18~19절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니라”

이것은 그가 처음으로 경험한 치유의 기적이었습니다. 안디옥 교회에서 선교사로 파송된 사도 바울은 이제 그 자신의 기적의 도구가 되어 수많은 사람들을 치유하는 일에 쓰임 받았습니다. 우리는 사도행전에서 이런 장면들을 목격하게 됩니다. 사도행전 14장의 루스드라의 기적을 비롯하여 사도행전 28장에서는 멜리데 섬에서 독사를 다스리는 기적을 행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또한 그 섬에서 가장 높은 보블리오의 부친이 열병과 이질에 걸려 누워 있는 것을 보고 안수하여 치유합니다. 그는 여러 경우에서 정녕 기도는 기적의 방편이요 도구였습니다. 병든 자를 위해 기도하는 것은 예수님이 친히 보여주신 모범이었습니다.

야고보 장로도 야고보서 5장 14~15절에서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육체의 병이 낫기 위해 기도하는 것, 육체의 가시가 떠나도록 기도하는 것,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물러가도록 기도하는 것은 성경적입니다. 그러니 지체하지 말고 치유하시는 하나님의 도움을 입기 위해 여호와 라파, 하나님의 은혜를 덧입기 위해 기도하십시오.

둘째로, 육체의 가시를 그대로 두시는 이유가 무엇인가를 기도하십시오.

믿음의 사람들은 믿음의 기도가 치유를 가져온다는 것을 믿습니다. 그런데 열심히 기도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원하는 치유가 일어나지 않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도 바울은 세 번에 걸친 간절한 기도에도 불구하고 그가 원했던 대로 육체의 가시가 떠나지 않자, “하나님! 저의 기도에도 불구하고 이 육체의 가시를 그대로 두시는 데는 어떤 이유가 있나요?”라고 물었던 것입니다. 마침내 육체의 가시를 허용하신 이유를 기도 중에 알게 된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고린도후서 12장 7절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사도 바울은 육체의 가시, 그 찌르는 고통 자체를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이해하지는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시고 우리를 찌르는 분이 아니십니다. 예레미아애가 3장 33절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게 하시며 근심하게 하심은 본심이 아니시로다” 그것은 모두 원수 마귀 사탄이 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이를 두고 ‘사탄의 사자’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탄 마귀가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도록 하나님이 허용하신 것은 사실입니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바울은 이에 대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이 된 후 하나님의 놀라운 은사를 체험한 사도 바울에게 육체의 가시가 없었다면 그는 쉽게 자만할 수 있었습니다. 만일 건강까지도 주어졌더라면 자기가 신이 된 듯 착각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자기 자신을 겸손하게 하시려고 육체의 가시를 허용하셨음을 깨달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사도 바울이 교만해질 위험을 사전에 막는 길은 육체의 가시를 거두지 아니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교만은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시는 악입니다. 그는 교만한 자를 대적하신다고 했습니다. 유명한 ‘신곡’을 쓴 ‘단테’가 자기에게 가장 악한 죄 일곱 가지를 선정했습니다. 그 가운데 첫 번째가 교만이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교만은 자기 사랑의 다른 형태요, 자기 숭배의 다른 모습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분명히 교만은 하나님께 돌릴 영광을 자기가 탈취하는 자기 숭배의 일종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미워하시고 대적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가 건강하지 못한 육체의 가시를 지닌 채 겸손히 하나님을 의지하며 사는 것이, 많은 은사와 건강을 받음으로 하나님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존재로 자신을 우상화하는 것보다 낫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하나님이 사도 바울에게 육체의 가시를 허용하신 이유는 그를 겸손한 주의 사도로 만들고자 하는 그분의 깊은 섭리였습니다. 기도해도 떠나지 않는 가시가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면 이제 그 가시를 허용하신 주의 뜻을 알게 해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인생의 가시들은 우리를 겸손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축복의 도구인 것입니다.

셋째로, 떠나지 않는 가시를 허용하신 주의 뜻을 헤아리게 된 후 무엇을 놓고 기도해야 할까요?

나를 괴롭히는 가시를 압도하는 주의 축복이 임하도록, 그래서 그 가시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사명을 능히 감당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가시를 압도하는 은혜의 능력이 임하도록 기도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렇게 했습니다. 고린도후서 12장 9절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사도 바울은 자신에게 주어진 가시, 그 약함 때문에 오히려 주의 능력을 더욱 의지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때마다 오히려 그를 강하게 하시는 주의 은혜를 역설적으로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마침내 그는 고린도후서 12장 10절에서 이렇게 선포하기에 이릅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를 찌르는 가시의 고통이 아플수록 엎드려 더욱 그 분의 은혜를 간구하십시오. 가시를 압도하는 은혜의 능력이 부어지도록 기도하십시오. 기도는 정말 귀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자를 사랑하십니다. 사랑하는 자의 기도이기 때문에 더 귀히 보십니다. 시편 기자의 고백을 들어 보세요. 시편 66편 19~20절 “하나님이 내 기도 소리에 귀를 기울이셨도다.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가 내 기도를 물리치지 아니하셨도다”

출처 : 기독신문(http://www.kid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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