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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편 1-6절/복 있는 사람은

박석중목사(대전)

by 김경호 진실 2023. 1. 3. 10:00

본문

시편 1장은 시편 전체의 서론이며 성경의 중심 사상을 알려주는 중요한 말씀입니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길은 오직 둘밖에 없다는 큰 사상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의인의 길 악인의 길, 복 있는 자와 복 없는 자, 말씀을 따라 사는 길과 꾀를 따라 사는 길, 하나님께 인정받는 길과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길이 그것입니다. 우리는 이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본문은 복의 내용을 설명한 것이 아니고 복의 사람에 대해서 설명한 것입니다. 무엇을 가져야 한다든지, 무엇이 되어야 한다는 그런 내용은 없습니다. 오늘 성경이 말하는 복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살피면서 은혜받고자 합니다.

1. 복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첫째. 죄를 피하는 사람. 1절에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복 있는 사람과 복 없는 사람의 차이는 죄를 어떻게 대하는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소극적인 차원에서 복 있는 사람은 죄를 멀리하고 피합니다. 그러나 복 없는 사람은 죄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죄를 짓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죄를 단호하게 거절하며 “아니오” 하는 사람이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아니하며, 아니하며, 아니하고” 3번이나 강조합니다.
죄를 피하는 것은 연약한 자가 아니고 강한 자입니다. 죄를 피하는 것은 비겁한 자가 아니고 용기 있는 자입니다. 죄를 피하는 사람은 믿음 없는 자가 아니고 믿음 있는 자입니다. 죄를 피하는 사람을 두려워하는 자가 아니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입니다. 반면 악인은 죄를 물리치지 못합니다. 인정에 끌리고 욕심에 끌려 차마 죄를 물리치지 못합니다. 하와가 마귀의 유혹과 꾀에 넘어가 선악과를 따 먹고 죄를 지었습니다. 가룟 유다는 마귀가 주는 악한 생각을 물리치지 못하고 예수님을 팔고 배반했습니다. 그러나 창세기에 나오는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가 유혹할 때 ‘아니오’ 하며 거절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요셉과 함께하셨고 요셉은 형통한 자가 되었습니다. 죄를 이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a) 악인들의 꾀를 쫓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시편 10:4에 보면 악인은 한마디로 하나님이 없다는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습니다. 죄를 짓고 악하게 살아도 하나님이 알지도 못하고 벌하지도 않는다는 것입니다. 꾀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짜트’는 술수를 부리고, 잔머리 굴리고, 모략을 꾸미는 것입니다. 악인은 자기 생각과 기분대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복 있는 사람은 그 길을 가지 않습니다. 악인들이 우리를 유혹하고 꾈 때 단호하게 거절하면서 물리치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2)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악인의 꾀를 따라 가면서 함께 죄를 짓는 것이 죄인의 길에 서는 것입니다. 죄짓는 일에 함께 동참하고 참여하는 사람은 복 없는 사람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그런 죄인의 길에 서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난 것은 다 죄입니다. 하나님을 부인하고 악인의 꾀에 빠지면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는 길로 가면서 죄를 짓습니다. 말씀을 떠나서 가는 길은 화살이 목표를 떠나서 빗나가는 것처럼 축복의 길에서 빗나가는 삶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난 길이 죄인의 길입니다. 성도가 가야 할 길은 오직 하나 의로운 길 뿐입니다.
3)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오만한 자들의 자리”는 하나님을 대적하며 말씀을 무시하는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단합하고 연합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을 부인하는 악한 자들이 모여서 악한 계획을 세우고, 그들이 어울려 다니면서 행하는 일들은 죄짓는 것뿐입니다. 이들은 악이 습관화되고, 죄악의 깊은 환경에 푹 빠져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으며 마음은 아주 교만해진 상태입니다. 이 세 가지가 다 말씀을 버리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묻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찾지 않고 그냥 자기 꾀로 살고 악인을 따라다니며 죄를 짓습니다.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버리는 것만큼 어려운 것은 없습니다. 죄를 좋아하고 있다면 죄를 버리라고 말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죄가 싫어져야 합니다. 그래야 죄를 물리칠 수 있습니다.

둘째. 율법을 즐거워하는 사람. 2절에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적극적인 차원에서 복 있는 사람을 설명한 것입니다. 여기 복 있는 사람과 복 없는 사람을 가르는 기준이 무엇입니까? 의인의 길과 악인의 길의 갈림길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말씀에 대한 태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인간의 생각이나 꾀로 살아가는 사람은 악인이고 복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면서 그 말씀에 푹 젖어서 살아가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요한계시록 1:3에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면 누구라도 악인이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면 사람들은 제멋대로 살아갑니다. 아무리 성공하고, 돈을 많이 벌고, 권세를 얻어도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나면 복이 없습니다.
시편 19:7-8에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 a)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살리고 우리의 연약한 영혼과 연약한 심령을 소성시킵니다. b) 하나님의 말씀은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한다고 했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것이 지혜입니다. 지혜 있는 사람은 성공합니다. c) 하나님의 말씀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한다고 했습니다. 마음이 기쁜 것이 행복이며 축복입니다. 온 세상의 것을 다 가지고 살아도 마음에 기쁨이 없으면 불행한 사람이고 마음이 기쁘면 그 어디나 천국입니다.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합니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봅니다.
1)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예수님 믿는 사람에게는 중생한 영이 있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말씀을 사모합니다.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한다는 것은 지식적으로 아는 것과는 다릅니다. 지식적으로 성경을 많이 알면서도 전혀 좋아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 말씀을 사랑하고 즐거워합니다. 즐거워한다는 것은 감정적인 것입니다. 말씀을 사랑하고 좋아하는 것입니다. 시편 119:92에 “주의 법이 나의 즐거움이 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내 고난 중에 멸망하였으리이다” 시편 119:162에 “사람이 많은 탈취물을 얻은 것처럼 나는 주의 말씀을 즐거워하나이다” 시편 119:103에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 음식에 맛이 있듯이 말씀에도 맛이 있습니다. 성경을 모르면 재미가 없습니다. 말씀을 배우고 깨닫게 되면 은혜를 받고 재미가 있습니다.
2)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성경을 읽습니까? 날마다 읽습니까? ‘묵상’한다는 말은 말씀을 반복해서 읍조리고, 되뇌이고, 소리내어 말하는 것입니다. 되새김질하는 것입니다. 한 번 듣고 스쳐 지나가는 말씀이 아니라 말씀을 먹고 말씀이 내 살이 되고 피가 되는 은혜를 누려야 합니다. 소는 위가 4개입니다. 음식을 먹으면 첫째 위에 저장했다가 그것을 다시 끄집어내서 또 먹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 묵상하다 보면 새롭게 깨달아지고 마음이 뜨거워지는 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공급받습니다. 이런 사람은 죄의 유혹과 시험을 능히 이깁니다. 말씀 묵상은 우리의 생각과 언어와 행동과 습관에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말씀 묵상은 우리에게 분별력과 판단력이 생기게 합니다. 문제에 부딪힐 때 말씀으로 해결합니다.
 
2. 복 있는 사람은 어떤 은혜를 누리는가?
3-4절에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복 있는 사람의 모습을 비유적으로 ‘시냇가에 심은 나무’라고 했고, 반면 악한 자들을 가리켜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라고 했습니다. 이 두 비유를 잘 대조해 보시기 바랍니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는 그 뿌리를 마르지 않는 시냇물에 뻗치고 있어서 물을 풍성하게 공급받습니다. 그러므로 이 나무는 항상 만족하고 생명력이 넘칩니다.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않고 철을 따라 열매를 맺습니다. 더위나 가뭄이 와도 걱정이 없습니다. 환경을 초월한 만족과 기쁨이 있습니다(예레미야 17:8).
반대로 악인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습니다. “겨”는 겉으로 볼 때는 알곡과 비슷한데 속에 알맹이가 없이 쭉정이만 있는 것을 겨라고 합니다. 언뜻 보면 알맹이가 있는 벼인지 알맹이가 없는 겨인지 분간이 어렵습니다. 그러나 타작마당에서 까불어 보면 날아가 버립니다. 바람에 날아가는 것이 겨입니다. “겨”는 속이 텅 비어 있습니다. 알맹이가 없는 것이며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무익한 것입니다. 겨와 같은 인생은 심령이 공허하고 쓸쓸하고 삭막합니다. 만족이나 기쁨이 없습니다. 조금만 환난이 와도 날아가 버립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죄악을 길을 가는 악인들의 삶은 이 겨와 같습니다. 여러분의 삶이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와 같이 생명력이 넘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뿌리를 박고 말씀 속에서 은혜와 능력을 공급받으며 사시기 바랍니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는 언제 더욱 빛을 발하는지 아십니까? 가물 때입니다. 비가 많이 올 때는 보통 땅에 심은 나무나 시냇가에 심은 나무나 별로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가물 때는 다른 곳에 있는 나무는 다 시들고 말라 죽습니다. 그러나 시냇가에 심은 나무는 그때도 여전히 잎이 청청하고 열매를 맺습니다. 시냇가에 심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평안할 때는 잘 모릅니다. 누가 말씀을 의지하고 사는 사람인지 그렇지 않은 사람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환난과 시험을 당할 때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바람이 불고, 환난 시험이 오면 겨와 같은 인생은 다 날아가 버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뿌리는 내리고 사는 인생은 아무리 바람이 불고 환난이 닥쳐도 말씀의 반석 위에 견고하게 서 있습니다.

3. 복 있는 사람은 결국 어떻게 되는가?
5-6절에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악인의 길로 끝까지 가면 결국 망합니다. 악인이 일시적으로 형통할 수 있으나 심판 때가 오면 견디지 못하고 다 망하고 사라집니다. 죄인들은 절대로 의인들의 모임에 들어올 수 없습니다. 악인의 길은 망합니다. 아무리 선지자 노릇하며, 귀신을 쫓아내고, 많은 권능을 행하였을지라도 주님께서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면 끝입니다.
그러나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십니다. 하나님이 나를 인정해주시고 내가 한 모든 일을 인정해주시는 것이 가장 큰 복입니다. 믿음 지키는 성도는 하나님께서 알아주시고 보호해 주시고 영생과 상급으로 갚아 주십니다. 마태복음 25:23에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누가 복 있는 사람입니까? 죄를 거부하고 피해야 합니다.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해야 합니다. 그러면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은 복된 인생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람이 되고 천국에서 영원히 복을 누리는 인생이 될 것입니다.

 

대전 탄방교회 박석중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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