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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 수상을 둘러싼 역사의식, ‘한국교회, 일본 군국주의의 망령에서 벗어나기’

교회사

by 김경호 진실 2025. 1. 7.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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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한국 소설가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이 전해졌다. 그리고 그 이튿날 스웨덴 한림원은 일본의 반핵 평화단체 니혼 히단쿄(日本被団協)를 올해의 노벨 평화상 수상단체로 선정했다. 지난주 내내 국내 언론은 한강 작가의 수상과 관련된 기사와 평론을 쏟아내느라 바빴던 반면 니혼 히단쿄의 평화상 수상 소식은 그저 단신으로 취급할 뿐이었다. 일본 단체의 노벨 평화상 수상 소식에 대한 국내의 이런 무관심한 반응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일단 일본이 이미 다수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는 점을 하나의 이유로 지목할 수 있다.

 

일본은 1949년 유카와 히데키(노벨 물리학상) 이래 총 29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이미 일본에서 많은 수의 노벨상 수상자가 나왔던 터라 올해 일본 단체가 노벨상을 하나 더 추가한 사실이 별다른 관심을 불러일으키지 못한 것이다. 다음으로 우리 한국인들의 민족적 자존심을 다른 하나의 이유로 들 수 있다. 일제에 의해 굴욕적인 식민지배를 받았던 뼈아픈 기억 때문에 올해 일본 단체의 노벨상 수상 소식, 그것도 핵무기 반대운동에 주력하는 단체의 평화상 수상 소식에 심드렁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같은 노벨상이라도 한강 작가가 받은 노벨상에 비해 그 가치가 형편없다는 생각이 우리 사회 전반에 널리 퍼져 있는 듯하다.

노벨상 수상자 발표를 둘러싼 국내의 들뜬 분위기와는 달리 올해 노벨상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은 주로 노벨 물리학상과 노벨 화학상에 몰려있는 모양새다. 기초과학이 아닌 응용과학 분야, 그것도 인공지능 분야 연구자들이 대거 노벨상을 수상한 사실이 큰 화제가 되고 있다. 향후 인공지능 기술이 인류에게 미칠 막대한 영향력을 생각하면 올해 제프리 힌턴이나 데미스 허사비스 등의 노벨상 수상 소식이 국제적 스케일의 문화사적 안목을 가진 이들의 관심을 독차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에 비해 한국 소설가의 문학상 수상 소식은 상대적으로 비중없는 사안으로 취급되고 있다. 오히려 인류사의 큰 비극 가운데 하나였던 핵무기 사용과 직접 연관된 단체 니혼 히단쿄의 수상 소식이 해외에서는 더 큰 관심을 끄는 중이다. 국내 언론의 심각한 갈라파고스화가 확인되는 대목이다.

개인적으로는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그리고 니혼 히단쿄의 노벨 평화상 수상을 하나의 역사적 흐름 안에 엮어서 바라보고 싶다. 양측 모두 인류사의 커다란 악이자 비극이었던 일본 군국주의의 폐해를 지탄하는 활동을 해왔다. 니혼 히단쿄는 원자폭탄 피폭이라는 형벌을 자초한 과거 일본 군국주의의 광기에 대한 반작용으로 나온 단체다. 그리고 한강 작가는 ‘작별하지 않는다’와 ‘소년이 온다’를 통해 일본 군국주의 통치의 연쇄작용으로 발발한 제주 4·3 사건과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비통함을 되새긴다. 물론 니혼 히단쿄가 핵무기 피폭 이유에 대해 다소 애매한 입장을 취하는 것은 사실이다. 일제 군국주의자들을 탓하려면 원폭 피폭자들을 포함한 당시 대다수 일본 국민들이 그 군국주의 지도자들을 열렬히 지지했던 사실에 대한 역사적 반성을 단행해야 한다. 그렇다고 핵무기를 개발하고 투하한 미국을 탓하자니 명분도 실리도 없다. 양측 노선 중 어떤 것도 택하기 어려웠던 니혼 히단쿄는 ‘핵무기의 존재 자체’를 절대악으로 지목하고 반핵활동에 전념하는 범인류적 평화단체로 그 정체성을 확립했다. 이렇게 직접적인 역사적 반성을 회피하는 모습이 한국 국민들에게 좋게 보일 리가 만무하고 그로 인해 해당 단체의 노벨 평화상 수상 소식이 우리 사회에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 한일 양국의 노벨상 수상 소식은 동아시아 지역의 역사적 맥락과 현 국제안보 정황을 고려할 때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볼 수 있다. 19세기 말을 기점으로 동아시아 지역에서 일어난 대다수의 굵직한 역사적 비극은 일제에 의해, 일본 군국주의자들에 의해, 혹은 그들이 저지른 범죄의 연쇄반응으로 일어났다. 이는 18~20세기 전 세계 약소국들이 겪었던 역사적 비극의 대부분이 영국 제국주의자들에 의해 초래됐던 것과 비슷한 이치다. 일본 군국주의 정권은 태평양 전쟁의 궤멸적 패망과 함께 1945년 미군에 의해 공식적으로 소멸되었다. 하지만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 당시 군국주의 지배질서를 받들던 정치인과 관료들 가운데 상당수는 맥아더의 연합군 최고사령부 치하에서 능수능란하게 민주주의자로 탈바꿈했다. 이들은 과거 일본제국 팽창기의 향수를 내심 그리워하면서도 실리를 위해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질서에 순응하는 현 일본 정가의 지배적 정서를 형성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한국에 군사독재 정권을 수립하는 데 앞장섰던 두 지도자, 박정희 전 대통령과 김종필 전 총리는 정권을 잡은 뒤 일본의 군국주의 국가발전 모델을 한국에 이식하는 데 많은 공을 들였다. 전두환 전 대통령 역시 이런 정치적 토양 위에서 성장한 인물이다.

이들의 개발독재 전략은 경제적으로 큰 성과를 냈지만 정권에 순응하지 않는 이들에게 잔혹한 정치적 폭력을 가하는 후진성을 벗어날 수 없었다. 5·18과 86년 6월 항쟁을 비롯한 여러 반독재 민주화 운동은 궁극적으로 일본식 군국주의 지배질서의 망령과 싸우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현재도 국내 진보정치 진영에서 일제 식민지배 시기를 한국 현대사의 가장 어두운 암흑기로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친일 반민족 세력과 군부독재 세력이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의 군국주의 사상에 깊게 물들어 한국 현대사의 여러 비극을 초래했고 지금까지도 우리 사회 전반에 불의, 불평등, 그리고 매국적 기회주의가 만연하는 데 일조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일제강점기의 역사는 한국인들에게 물리적으로도 그렇지만 특히 정신적으로 더 큰 상흔을 남겼다. 그러니 한강 작가의 문학세계와 니혼 히단쿄의 반핵활동 모두 궁극적으로는 일제 군국주의가 초래한 비극에 대한 반응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다.

따지고 보면 한국 기독교계 역시 태평양 전쟁을 전후해서 폭주하던 일본 군국주의자들에 의해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 1930년대 한국 내 거의 모든 기독교 교파와 교단들이 조선총독부의 신사참배 강요에 굴복했다(천주교와 감리교 1936년, 성결교 1937년, 장로교와 구세군 1938년). 단, 침례교는 교단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신사참배를 거부하다가 교단이 폐쇄되고 교회 전체가 몰수당하는 사태를 맞이했다. 그리고 각 교단마다 일부 신실한 교역자들과 신자들이 옥고와 고문을 감내하면서 신사참배 강요에 저항했고, 이 가운데 생존한 출옥 성도들은 해방 후 교회 회복과 신앙갱신 운동에 힘썼다. 장로교 출신 출옥 성도들은 해방 후 예장고신 교단을 따로 설립하였고 감리교 출신자들 또한 재건파로 결집해서 감리교회의 친일행적 회개와 신앙갱신을 요구했다. 하지만 각 교단 지도부에 속한 인사들은 일부 신실한 교역자들과 신자들의 저항과 비판에 아랑곳하지 않고 조선총독부의 위협과 회유에 굴복했다. 우상숭배를 통해 교단 내 기득권으로 자리잡은 교역자들은 해방 후 이승만 전 대통령의 반공정책에 적극 편승하는 것으로 그들의 오점을 은폐, 희석했다. 당시 영락교회 청년부원들이 주축이 돼 설립된 서북청년단이 제주 4·3 학살(1947-1954)과 보도연맹 학살(1950)에 적극 가담했던 데는 신사참배 이력이 있던 당시 한국교회 주요 지도자들의 정치적 계산과 묵인이 관여돼 있었다.

올해 스웨덴 한림원이 한강 작가와 니혼 히단쿄에 노벨상을 수여하기로 결정한 데는 동아시아 현대사 속 각종 정치적 비극의 뿌리가 되는 일본 군국주의에 대한 역사적 반성을 통해 인권과 정의의 가치를 되새기려는 인문학적 의도가 반영돼 있다고 볼 수 있다. 한국 기독교계도 단지 한국인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나와서 덩달아 기뻐하거나, 아니면 한강 작가의 정치적 노선이 현 기독교계의 지배적 정치성향과 달라서 맹목적으로 수상의 가치를 폄훼하는 초보적인 반응을 보이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올해 노벨상의 가치가 기독교적으로 어떤 의의를 갖는지 고민해 한국교회의 어두운 과거를 돌이켜보고 반성하는 계기로 삼았으면 한다. 한국교회의 역사의식 수준은 글로벌 스탠더드는 말할 것도 없고 국내 진보정치 진영의 수준에도 한참 못미치는 듯하다. 진보정치 진영의 유물론적 역사관이 한국교회 역사이해의 모범이 될 수는 없겠지만, 역사 속의 사실과 거짓, 공로와 과오, 원인과 결과를 면밀하게 살펴보려는 태도, 비극의 희생자 개개인의 미시적 내러티브까지 놓치지 않으려는 태도가 세인(世人)들의 공감을 얻는 데 크게 공헌하고 있다는 사실은 깊게 유념할 필요가 있다.

구한말 개화기에 한국에 처음 파송된 서구 개신교 선교사들은 사회 상층부를 점유하고 있던 왕실과 양반보다 하층부를 구성하고 있던 농민, 노비, 여성들에게 더 큰 온정과 관심을 갖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전도의 길을 찾았다. 그러나 작금의 한국교회에 이런 애민(愛民)의 정신이 여전하게 살아있는지 자문할 때 주저함 없이 그렇다고 답하기가 어렵다. 한국 개신교계가 일제 군국주의 압제의 일환이었던 신사참배의 망령을 청산하지 않고서 선교의 초심을 되찾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박욱주 교수는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수학했고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좁은문은혜교회 목사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한국기독교문화연구소 연구교수와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박욱주 교수의 기독교 문화비평] ⑧ 노벨상 수상을 둘러싼 역사의식, ‘한국교회, 일본 군국주의의 망령에서 벗어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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