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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과 탄핵 정국 속 기독교회, 정교분리 원리에 입각한 교회의 대응 태도

교회사

by 김경호 진실 2025. 1. 8.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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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일 오후 11시경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후 3주 가까이 국내 정계는 혼란의 도가니 속에 빠져든 상태다. 계엄령 자체는 지난달 4일 밤 1시경 국회 본회의에서 비상계엄 해제요구 결의안이 가결되면서 2시간 만에 해제됐다. 그러나 그 정치적 후폭풍은 그칠 줄 모르고 있다. 계엄령은 우리 국민에게 커다란 심리적 트라우마로 남아 있는 법적 조치다. 한국전쟁 정전 이후 선포된 8번의 계엄령은 모두 외적 침입과 무관하게 국내 집권세력의 부정, 실정(失政), 권력투쟁, 또는 독재 야욕에 의해 선포된 것이었다. 그리고 이 8번의 계엄령은 대부분 특정 집단이나 시위대에 대한 정치보복, 폭력, 그리고 유혈사태를 동반했다.

 

우리 사회에서 계엄령이란 즉각적으로 ‘권력투쟁’과 ‘희생자’를 연상시키는 조치로 받아들여져 왔다. 이런 정치적, 역사적 정황 속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대한민국 헌정사상 17번째 계엄령을 선포하자 사회 각계각층에서 격렬한 반발이 일어났다. 이러한 반발은 진보정치 진영에서 주도하고 있고 비교적 넓은 범위의 국민적 호응을 얻고 있다. 계엄령이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갖는 의미를 감안할 때 정치권, 시민사회, 그리고 일반 대중의 이런 감정적 반응은 어느 정도 예상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이런 와중에 한국교회와 기독교인들의 대응은 어떤가. 일단 계엄령이 선포된 바로 다음 날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통합(예장통합),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 한국장로교총연합회(한장총),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등 각 교단 혹은 연합회 지도부는 모두 이번 계엄령의 부당함을 질타하는 논조로 성명을 발표했다. 이 가운데서 평소 진보정치 진영 이념에 가장 우호적인 성향을 보였던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는 지난달 14일 계엄령에 대한 단순 질타를 넘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에 가해진 폭력”에 대한 심판으로 “내란을 일으킨 자와 그 부역자들”에 대해 “신속하게 탄핵의 과정을 밟아가기를 바란다”고 공표했다. 한국교회의 주요 교단이나 연합회 지도부가 이렇게 정치적 사안에 대해 적극적인 견해를 제시하는 상황에서 개교회라고 가만히 있을 리 없다. 상당수 개교회 교역자들이 각자의 정치적 소신에 따라 이번 계엄령과 대통령 탄핵소추안에 대한 의견을 적극적으로 개진하고 있으며 개중에는 설교단에서 직접 윤석열 대통령에 대해, 아니면 대통령 탄핵소추를 추진하는 진보정치 진영에 대해 극렬하게 비판하는 교역자들도 목격된다.

이렇게 나라의 혼란한 정치 상황에 반응해서 내부적으로 요동치는 한국교회의 현실이 과연 성서적으로나 신학적으로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을까. 이에 대한 올바른 판단을 위해 개신교회와 정치 권력 사이의 관계에 대한 신학적 사유의 역사를 잠시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종교개혁의 기수 루터는 초지일관 교회와 국가권력의 분리에 대한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그는 교회와 국가권력의 분리를 성(聖)과 속(俗)의 구별이라는 구도 안에서 이해했다. 교회의 거룩함을 지키기 위해서는 교회가 정치 권력의 영역에 관여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루터 정치 신학의 골자였다. 루터가 이렇게 교회와 정치 권력의 분리에 촉각을 곤두세웠던 이유는 신앙도 없고 신학에도 무지한 권력자들이 가톨릭교회의 그릇된 전통을 강요하거나 신자들의 신앙의 자유를 부당하게 침해하고 억압하는 일이 근절되기를 바라기 때문이었다. 교역자들이 이런 신앙 없는 권력자들에게 협력하면 교회에 여러 정치적, 세속적 혜택이 돌아올 수는 있겠지만 대신 신앙의 순수성과 교회의 거룩함을 지킬 수 없게 된다는 사실을 루터는 절감하고 있었다.

 

이와 달리 개혁교회 전통의 창시자 칼뱅은 교회와 국가권력의 분리에는 상대적으로 큰 관심이 없었다. 대신 그는 교회와 국가권력이 하나님의 공의를 이루기 위한 동반자로서 서로 조화로운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칼뱅은 교회에 우호적인 정치 권력은 세속의 영역에 속한 것이 아니라 교회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절대주권 아래 있는 거룩함의 영역에 들어와 있다고 보았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견해가 성과 속의 경계선을 무너뜨릴 위험성이 있다는 점 또한 인지하고 있었다. 칼뱅은 자신의 정치 신학에 자리 잡고 있는 이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예정론을 내세운다. 개혁교회에 우호적인 권력자나 정치집단은 하나님의 예비하심에 따라 권력을 쥐게 된 것이므로 그런 정치 권력과 교회가 협력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칼뱅이 이처럼 교회와 정치 권력 사이의 우호적 관계 구축에 힘을 들였던 현실적 이유로는 크게 두 가지를 지목할 수 있다. 첫째는 칼뱅이 1555년 이전까지 제네바 시의회에서 여러 차례 정치적 갈등에 휘말렸고 그로 인해 목회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다. 둘째는 칼뱅이 마침내 제네바에서 공고한 영적 영향력을 확보한 1555년이 한창 트리엔트 공의회(The Council of Trent, 1545-1563)가 진행 중이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이 공의회는 가톨릭교회의 반종교개혁 원칙과 방침을 결정한 회의였다. 트리엔트 공의회를 기점으로 가톨릭교회는 내부개혁과 정치적 영향력 강화를 통해 종교개혁 공동체를 강하게 압박했고, 종교개혁 공동체들은 더 이전의 공세적이고 확장적인 태도를 유지할 수 없었다. 칼뱅의 개혁주의 공동체 역시 수세적 입장에 몰려 정치 권력의 비호가 절실하게 필요한 상황이었다. 칼뱅은 제네바 개혁교회를 존속시켜야 하는 책임감 때문에 교회와 세속권력의 분립 원칙을 무조건 고집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한국교회는 개신교 선교 초기부터 칼뱅의 개혁주의 신학 전통에 깊게 영향을 받았다. 언더우드를 비롯한 장로교 선교사들은 미국의 외교적 영향력을 이용하려던 조선 왕실의 비호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이는 한국의 초기 개신교 선교에 큰 힘을 보태주었지만, 신앙과 정치 권력의 영역을 엄밀하게 구별하는 믿음의 정착에는 도움을 주지 못했다. 이러한 약점 때문인지 이후 한국 기독교계는 한국교회사의 중요한 장면마다 정치 권력과 쉽게 결탁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 시기에는 여러 교단의 주요 인사들이 정치 권력의 압제에 굴복해서 배교를 불사하며 정치 권력에 아부하고 친일부역자가 됐다. 남북한 분단이 한창 진행 중이던 해방 직후의 정국에서는 특정 교단 청년회가 이승만 전 대통령의 반공 정책에 편승해서 공산주의에 우호적이었던 인사들과 민간인들에게 백색테러를 가하는 데 가담하기도 했다. 한국전쟁 이후 다수의 개교회는 소위 보수 반공 신앙의 기치를 올렸고, 그 반대 진영에 우호적이었던 교역자들은 남미 해방신학의 영향을 받은 민중 신학을 내세우며 민주화 투쟁의 일익을 담당했다. 오늘날까지도 이런 기조는 한국교회 내부에 오래된 전통으로 남아있다. 이번 계엄령 및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 주요 교단과 연합회, 그리고 다수의 교역자가 단행한 적극적인 정치적 입장표명은 예전부터 거룩한 신앙의 영역과 세속 정치의 영역을 적절히 구분할 줄 모르는 한국교회의 오랜 병폐를 다시 한번 드러낸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정교분리의 신앙원리를 바로 세우기 어려운 신학적 정황 속에 놓여 있다. 이는 전 세계 교회가 함께 겪고 있는 난관이다. 20세기 초중반 독일에서 시작된 자유주의 성향 정치 신학의 정교한 이론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68혁명에 편승해서 전 세계 교회에 적극적인 정치참여와 혁명가담을 촉구하는 신학적 분위기를 조성했다.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의 반나치 투쟁, 위르겐 몰트만(Jürgen Moltmann)의 변증법적 신국론(神國論), 칼 라너(Karl Rahner)의 포괄주의 구원론 등이 교회의 적극적 정치변혁 참여를 촉구하는 이론적 기반을 마련해 주었다. 오늘날 서구 신학계에서 교회와 정치 권력, 교회와 세속의 분리를 고수하는 견해는 ‘낡은 이론’ 취급을 받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지난 2천 년의 기독교회 역사에서 정치 권력을 탐하거나 정치 권력에 아부하던 성직자, 교역자, 교회들이 결국에는 권력욕에 붙들려 신앙의 순수성을 저버리게 되는 경우를 수도 없이 목격해 왔다. 9세기부터 16세기까지 카롤루스 왕조, 신성로마제국과 결탁했던 가톨릭교회 교황들의 세속군주화, 16세기 영국 국왕과 손잡은 잉글랜드 국교회의 국왕 사조직화, 같은 시기 국교로 지정된 프로이센, 덴마크, 스웨덴 루터교회의 영적 침체, 1930-40년대 독일 복음주의 교회의 나치 정당화와 히틀러 신격화 사태는 모두 교회가 정치 권력의 비호와 혜택을 탐하면서 발생한 교회의 세속화 사례들이다.

영국국교회 소속 성직자이자 런던 세인트폴 대성당의 수석사제(Dean)를 역임했던 윌리엄 랄프 잉게(William Ralph Inge)는 교회와 정치 권력 혹은 세속 풍조의 결탁에 대한 깊은 우려를 표명하며 다음의 유명한 격언을 남겼다. “한 시대의 시대정신(the spirit of the age)과 결혼한 교회는 다음 시대에는 과부가 된다.” 이 말은 세속 풍조에 깊게 몰입하는 교회는 그 세속 풍조가 변하고 사라진 후 무가치한 교회가 된다는 뜻이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반드시 귀담아들어야 할 말이라 생각된다. 세속의 불의를 손가락질한다는 명분으로 정치 권력의 주변부에 기웃거리는 교역자들과 신자들은 실상 권력욕이라는 괴물의 심연을 들여다보려는 유혹에 넘어간 이들이다.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는 그의 저서 ‘선악의 저편’ 제4장에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자신이 이 과정에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만일 네가 오랫동안 심연을 들여다보고 있으며, 심연도 네 안으로 들어가 너를 들여다본다.”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가 실제 내란 의도를 갖고 단행됐는지에 대한 판단은 궁극적으로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심판을 통해 이루어질 일이다. 여기에는 교회가 나서서 목소리를 낼 어떠한 여지나 명분도 존재하지 않는다. 시위대의 목소리 또한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에는 관여할 명분이 없다. 시위대의 요구는 민의를 직접 들어야 하는 국회의원들의 탄핵소추안 가결로 이미 수용됐다. 헌법재판소는 국민의 목소리를 듣는 곳이 아니라 헌법의 법리와 기존 판결을 판단의 준거로 삼아 판결을 내리는 곳이다. 그러니 탄핵심판의 결과는 민의대로가 아니라 헌법재판소의 판단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합당하다. 이는 오늘날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이 신봉하는 삼권분립 원칙에 따른 처사다.

그러나 한국의 민주화운동 세대는 자유민주주의의 이 기본원리를 구조적으로 망각하도록 젊은 세대를 교육해 왔다. 길바닥 시위의 가치가 적법한 권한 행사보다 더 빠르고, 강력하고, 쉬운 권력획득의 길이라고 가르쳐 왔다. 여기서 더욱 애석한 일은 우리가 시위나 집회, 시국선언 등을 통해 민주시민의 정당한 권한을 행사한다는 착각이 한국교회 내부에도 널리 퍼져 복음적 정치관을 헤집어놓고 있다는 점이다. 기독교인들은 정치적 권한 행사의 적법성을 존중하면서 정교분리라는 신앙의 원칙까지 지켜야 할 이중의 책무를 짊어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와 그에 뒤따른 탄핵 정국에 대한 교역자나 신자 개개인이 사적인 차원에서 판단하고 견해를 밝힐 수는 있다. 또한, 위정자와 재판관들이 하나님의 공의에 들어맞는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기도하고 간구하는 것 역시 얼마든지 허용된다. 그러나 개인의 정치적 견해를 설교단에, 언론에, 사회 전체에 공적으로 표명하는 것이 기독교인의 적절한 처신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기독교인으로서는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고 ‘모든 경건과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는 데’(딤전 2:2) 지장이 없다면 어떤 정치세력이 집권하든 큰 상관이 없다. 지금 우리 기독교인들이 더 큰 관심을 쏟아야 할 사안은 신앙의 순전함을 지켜나가는 것, 그리고 여러 도덕적 논쟁거리들로 복음화의 힘을 잃어가는 한국교회의 신앙 갱신이다. 신앙의 뿌리가 흔들리는 와중에 정치 논쟁거리에 몰입해서 대통령 탄핵을 막는 것이 마치 하나님의 뜻인 양, 아니면 탄핵에 동조하는 것이 신앙의 양심을 지키는 것인 양 정치적 견해 공표를 남발하는 여러 교역자와 기독교계 인사들의 행태는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참으로 혼란스러운 시국에 한국교회가 정교분리의 신앙원리를 재차 되새기고 현재 우리 한국교회가 가장 시급하게 집중해서 대처해야 할 사안이 무엇인지 면밀하게 되짚어보는 신앙의 지혜를 찾을 수 있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박욱주 교수는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수학했고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좁은문은혜교회 목사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한국기독교문화연구소 연구교수와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박욱주 교수의 기독교 문화비평] ⑪계엄과 탄핵 정국 속 기독교회, 정교분리 원리에 입각한 교회의 대응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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