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3일 밤 비상계엄 선포 이후 온 나라가 혼란에 빠졌다. 불과 몇 시간 만에 비정상이 일상이 됐다. 경제는 즉각적인 타격을 받았고 국제사회에서의 신뢰도 흔들리고 있다. 몇몇 나라들은 발빠르게 한국을 여행제한 국가로 지정하기도 했다.
미국 정치권은 윤석열 대통령의 오판을 지적하며 한국에 불안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 신인도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국민의 불안감은 점점 커지고 있다. 초등학생들조차 “나라가 망하는 거냐”고 묻는 현실은 위기의 농도를 더욱 짙게 만든다.
혼란 속에서 구약성경 요나서를 펼쳐본다. 요나서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지 않은 요나가 큰 물고기 뱃속에 갇힌 이야기로 유명하지만 더 큰 교훈은 ‘박넝쿨 비유’에 있다. 큰 물고기에서 구출된 요나는 니느웨로 가서 회개하라는 내용의 메시지를 전했다. 요나는 니느웨 사람들이 죄를 깨닫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들은 즉각 회개했다. 그런데도 요나는 니느웨의 멸망을 기다리며 성읍 동쪽에 자리를 잡았다. 뜨거운 햇살을 피할 곳은 마땅치 않았다. 이런 요나를 위해 하나님은 박넝쿨을 자라게 해 그늘을 제공하셨다. 요나는 크게 기뻐했으나 다음 날 하나님이 벌레를 보내 박넝쿨을 시들게 하자 분노하며 “죽고 싶다”고까지 말했다. 하나님은 요나의 원망에 이렇게 응답하신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넝쿨을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12만여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욘 4:10~11)
박넝쿨 비유는 요나의 이기심을 통해 인간이 일시적 안락에 집착하면서 정작 중요한 윤리적 과제를 망각하는 한계를 보여준다. 현재 우리가 경험하는 일상도 마찬가지다. 지도자의 윤리적이지 못한 선택으로 국민과 국가가 큰 상처를 받고 있다.
역사는 반복된다. 인간의 죄와 책임 회피를 논할 때 언급되는 이름은 아돌프 아이히만이다. 그는 2차 세계대전 중 유대인 홀로코스트를 주도한 인물로 재판에서 “나는 명령을 따랐을 뿐이다”라는 변명으로 일관했다. 이 재판을 취재한 한나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을 주제로 인간이 명령에 맹종하고 책임을 회피할 때 얼마나 큰 악을 빚어낼 수 있는지 경고했다.
비상계엄 이후 내란죄 수사가 진행 중이다. 일부 군 장성은 양심을 지켰지만 책임 회피로 일관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비상계엄의 경위는 조만간 드러나겠지만 남은 건 우리의 선택이다. 체제 압력 속에서 윤리적 책임을 외면하거나 침묵하는 태도는 악의 구조를 강화한다. 요나가 자신의 안락을 상징하는 박넝쿨에 집착했던 것처럼 우리는 체제 안정을 핑계로 윤리적 책임을 회피하고 있지 않은지 돌아봐야 한다.
교회도 흔들리고 있다. 대통령을 지지하는 이들과 비상계엄의 책임을 대통령에게 묻는 이들 사이에 갈등이 깊다. 교인들 사이에서 논쟁이 이어지고 목회자들은 말을 아끼고 있다. 기도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오지만 거리로 나가지 않는 교회 어른들을 바라보는 청년들의 실망도 크다. 이러한 갈등은 단순한 이념 대립이 아니라 위기 속 신앙 실천의 방식과 방향을 두고 벌어지는 고민의 결과다. 교회와 신앙 공동체는 지금 필요한 행동을 고민해야 한다. 단순한 기도와 성찰을 넘어 교회가 사회적 정의를 위한 구체적 행동 방안을 제시하고 세대 간 대화를 통해 갈등을 해소해야 한다. 선교 140주년을 앞두고 있는 교회가 비상계엄으로 인해 분열되는 상황을 방관해서는 안 된다.
지금은 ‘하나님의 관점’으로 돌아가야 할 때다. 위기의 한복판에서 신앙적 책임을 재확인하고 윤리적 무관심과 책임 회피라는 함정을 넘어설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는 단순히 교회 내 문제를 해결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되고 국민적 회복과 공동체의 화합을 이루는 데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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