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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극우와 민주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방법

사회

by 김경호 진실 2025. 11. 12.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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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비상계엄 이후 한국 사회는 심각한 분열의 시간을 지나왔다. 탄핵 찬반을 둘러싸고 각기 다른 주장을 내세운 대규모 시위가 전국 곳곳에서 이어졌다. 대립과 갈등이 격화되면서 집회 현장 곳곳에서 물리적 충돌이 발생했고, 급기야 서울 서부지방법원에서는 폭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서부지법 난입과 폭력은 소수의 극단적 집단이 얼마나 민주주의의 위험을 고조시킬 수 있는지 보여주었다. 그 충격은 한국사회가 본격적으로 '극우'에 대해 논의하는 계기가 되었다.
 

극우에 대한 우려는 '한국형 극우는 누구인가'하는 질문으로 이어졌다. 언론과 학계는 앞다투어 한국에 극우가 몇 퍼센트인지, 어떤 사람들인지 분석을 내놓았다. 조사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젠더·지역·학력·소득 등 집단적 특성을 중심으로 누가 극우이고 왜 극우가 되었는지 진단했다. 극우가 누구인지 진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극우가 누구인지 명확히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이들과 함께 민주주의 사회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답답한 마음이 앞섰다.

 

본 글은 극우가 누구인지 진단하는 것을 넘어서서, 극우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질문하고 그 방향을 함께 짚어보길 제안한다. 나아가 시민사회가 앞으로 해야 할 민주주의의 회복과 극우화 대응을 위한 실천적 대안을 함께 고민할 것을 제안하고자 한다.

 

극우를 분류하고, 단계별 대응을 고민하자

 

극우는 일종의 '극단성'을 내포하는 개념이지만, 극단성의 정도에 따라 여러 층위로 구분하여 생각해볼 수 있다. <광장 이후>에서 사회학자 신진욱은 극우를 그 극단성 정도에 따라 ①극우적 사고를 하거나 그 주장에 동조하는 단계 ②극우적 주장과 이데올로기를 공공 앞에서 주창하는 단계 ③집단적·조직적인 극우 활동을 하는 단계 ④물리적 폭력을 행하는 단계 ⑤민주적 헌정체제를 공격하는 단계 등으로 구분했다.

 

이처럼 극우는 단숨에 폭력으로 치닫지 않는다. 일상 속에서 극우적 사고가 형성되고, 언어로 표출되며, 조직적으로 확산되고, 끝내 폭력을 동원해 제도 자체를 뒤흔든다. 그렇다면 우리는 각 단계에서 어떤 대응을 해야 할까. 신진욱이 제시한 5단계의 극우화 정도에 따라 어떤 실천적 대응과 법제도적 규제가 필요할지 짚어보았다.

 

첫 번째로 극우적 사고를 하거나 그 주장에 동조하는 단계는 극우적 사고를 점차 내면화하는 시기로 볼 수 있다. 주로 온라인 커뮤니티나 SNS를 통해 극우적 사상을 접하고 이를 전달하거나 전달받는다. SNS를 통해 다양한 시민들의 의견이 표출되는 것은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이고 오히려 민주주의가 성숙했다는 증거이기도 하지만, 이와 같은 의견의 대립이 미디어 조작이나 정보 왜곡에서 비롯되어 갈등과 진영화가 심화된다면 적절한 개입이 필요하다. 이런 단계에서는 극우화의 조짐을 초기에 감지하고 개입하는 것이 필요하다. 시민들이 비판적 사고를 기르고, 정보의 진위를 가릴 수 있도록 민주시민교육이나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등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또한 극우적 사고를 내면화하는 것은 사회적 불만이나 불안의 원인을 권력자나 사회구조가 아닌 특정 집단이나 약자에게서 찾는다는 점에서 위험성을 갖는다. 가령, "이주민 때문에 일자리가 없다"는 인식은 경제적 불안정과 일자리 부족의 원인을 이주민에게서 찾고, 이들이 사라져야 문제가 해결된다고 믿으며, 이주민에게 차별적이거나 배타적인 방식의 언어와 문화를 확산시킨다. 특히 온라인 커뮤니티의 적대심은 경제적 박탈감과 정치적 무력감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고, 혐오는 빠르게 확산되기 때문에 적재적소의 대응이 시급하다.

 

한편, 대안적 미디어에 대한 고민도 해볼 수 있다. 민주주의에 대한 강의를 다니다보면 많은 시민들이 유튜브 등 소셜미디어에서 정치·경제 정보 제공 채널 대부분이 보수 성향이며, 2030세대를 대상으로 사회이슈를 다루는 매체나 콘텐츠가 마땅치 않다는 아쉬움을 자주 토로한다. 허위정보를 바로잡고 건강한 정보와 컨텐츠를 재치있는 방식으로 다뤄줄 미디어가 절실하다.

 

몇 년 전 동유럽 시민사회 사례조사를 하다 알게 된 체코의 '프라하 시민사회센터(Prague Civil Society Centre)'는 동유럽과 중앙아시아 지역의 활동가나 언론인을 대상으로 온라인상에서 민주주의 위기에 대응하는 인플루언서를 양성하는 미디어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한다. 온라인에서 극우세력 조직화와 여론전이 심각한 문제로 부상하는 만큼, 이에 대응할 수 있는 디지털 민주주의 실천가들을 양성하는 것 역시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근본적으로는 불평등과 박탈감이라는 구조적 요인을 해소할 수 있는 사회정책적 해법을 고민해야 한다. 법제도적으로는 혐오표현과 허위정보에 대한 공적 감시체계를 마련하고, 온라인 플랫폼의 책임을 강화하는 정책을 고민해볼 수 있다. 캐나다는 이미 연방 형법과 인권법을 통해 혐오선동과 차별행위를 규제하고 있으며, 대법원은 표현의 자유와 사회적 평등의 균형을 고려한 판례를 축적해왔다(염지애, 2024). 한국 역시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 아래 방치된 온라인 혐오 확산에 대응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고민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 단계는 극우적 주장이 공적 영역으로 진입하는 시기다. 최근 한국에도 정치인, 종교인, 연예인, 유튜버 등 영향력 있는 발화자들이 혐오와 배제를 '애국'으로 포장하여 대중 앞에서 주장하는 사례가 여럿 등장했다. 이때 필요한 것은 혐오와 차별에 대한 명확한 사회적 경계를 설정하는 것이다. 시민사회와 언론은 공적 인사들의 혐오발언을 모니터링해야 한다. 무엇이 혐오와 차별인지 규정하고 사실관계 확인과 비판적 의견 제시를 통해 시민들의 토론을 유도하고 공론장을 구성해야 한다.

 

특히 공적 인물의 발언은 더 높은 사회적 책임이 요구된다. 일부 정치인은 여성이나 장애인에 대한 혐오를 조장해 분열을 초래하기도 하고, 극우사회단체들과 결합하여 공적 선동을 이어가기도 한다. 나치 선동이나 반유대주의 트라우마가 있는 독일은 '대중선동죄'을 통해 차별과 폭력을 부추기는 발언을 명확히 금지하고 있으며, SNS 사업자에게 막대한 과징금을 부과하기도 한다. 영국의 경우에도 '공공질서법'을 통해 공적 발언에 대한 엄격한 사회적 기준을 만들어가고 있다(언론중재위원회, 2019). 공적 공간에서의 혐오 선동에 대한 규제 장치를 한국 역시 고민해 나갈 필요가 있다.

 

세 번째 단계는 극우가 집단적 형태를 갖추는 시기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넘어 제도권 정치나 종교, 지역 조직 속으로 뿌리 내린다. 한국에서는 반공·반북 기치를 든 보수 종교단체나 퇴역 군인회, 뉴라이트 조직이 결합하며 세력을 키워왔고, 안티페미니즘과 반동성애를 전면에 내세운 신남성연대, 반동성애기독시민연대 같은 단체들이 활동하고 있다.

 

이 단계에서는 조직의 확산 경로와 자금 흐름에 대한 감시와 견제가 필요하다. 최근 자유마을(전광훈 목사가 주도하는 극우 성향의 개신교 기반 풀뿌리 공동체 조직으로 전국 3500여 개 읍·면·동에 설치돼 있다)처럼 '풀뿌리' 극우사회단체들이 조직되고 있는 만큼, 지역 곳곳에 '좋은 시민사회'와 대안적 공동체를 만드는 일 역시 중요하다. 극우가 소외된 사람들의 공허함과 고립감을 파고드는 이유는 그만큼 한국사회에 건강한 공동체가 부족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특히 보수 기독교와 정치의 결탁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한국은 헌법에서 정교분리를 명시하고 있지만, 종교가 정치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특정 법제도 제·개정 과정에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정치 선동과 집단적 동원을 시도하는 문제가 꾸준히 있어왔다. 이제는 정치와 종교의 역할과 책임에 대해 사회적 논의를 해야 할 때다.

 

극우세력의 조직화는 비단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다양한 유럽국가들에서 극우성향 정당이 조직되거나 정부 연정에 참여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독일은 민주주의 질서를 위협하는 단체를 해산할 법적 권한을 헌법재판소에 부여하고 있는데, 최근 독일에선 극우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을 해산하는 것이 적절한지를 둘러싸고 사회적 논의가 한창이다(고정희, 2025). 실제 해산 가능성은 낮다고 예측되지만, 결과가 어떻게 나오는지에 따라 국제적으로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네 번째 단계는 폭력이 현실로 나타나는 시점이다. 서부지법 사태는 극우가 실질적 폭력을 행사하는 그룹으로 등장한 대표적 사례다. 최근 서울 명동이나 대림 등 외국인 관광객이나 중국동포, 이주민이 밀집한 지역에서 벌어진 '혐중 시위' 역시 이 단계에 가깝다. 시위 중 지나가는 시민들의 국적을 추궁하고, 물리적 위협과 위해를 가하고, 욕설을 퍼붓는 행태는 정당한 의사표현이라고 보기 어렵다. 또한 중국인에 대한 각종 괴담과 가짜뉴스를 확산하기도 한다. 이로 인해 이주민 밀집 지역 상인들과 주민들은 불안을 호소하고 있으며, 외교적 갈등으로까지 확대될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이 단계에서는 단호한 법집행과 피해자 보호, 지역사회 안전망 강화가 필요하다. 폭력과 테러에 대해서는 불관용의 원칙을 보여주는 것이 사회적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이다. 동시에 이런 폭력적 행태가 반복되지 않고, 소수자들이 지역사회에서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지방정부와 시민단체의 긴밀한 협력도 필요하다. 최근 한국에서도 혐중시위 등 소수자에 대한 혐오·폭력 집회를 규제할 법률 제정 운동이 진행되고 있다(한겨레, 2025).

 

마지막 단계는 민주적 헌정질서 자체가 공격받는 단계다. 윤석열의 비상계엄 사태 역시 특정 정치세력과 군, 정부 관료 등이 결탁하여 헌법을 유린한 명백한 내란시도였다. 이 단계에서는 시민들의 저항과 법치의 단호함이 필요하다. 한국사회는 시민들의 강렬한 저항으로 빠른 시간 내 비상계엄을 해제했다. 이제는 내란을 도모한 책임자에 대한 분명한 처벌을 통해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새출발을 해야 한다.

 

민주주의 회복과 극우화 대응을 위해 시민사회는 무엇을 할 것인가

 

'윤석열 퇴진을 위해 행동하는 청년들'은 지난 3월, 윤석열 퇴진 광장에 참여한 청년들을 대상으로 FGI(Fodus Group Interview)를 진행하며, '반대편 광장'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인터뷰 참여자들은 극우적 폭력에는 단호히 반대하면서도 그들이 극우로 향하게 된 구조적 원인을 짚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광장 청년들은 구조적 원인으로 사회적 고립과 사회복지의 부재를 지적했다. 특히 노년층의 복지 사각지대, 지역 공동체의 해체, 경제적·사회적 박탈감이 해결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 사회의 공동체 유대감은 약해졌고, 사회적 신뢰도 감소했다. 그 공백을 종교단체들이 대체하면서 신앙과 정치가 결합된 극우적 동원이 가능해졌다는 비판이 오랜기간 제기되어왔다. 광장 이후 우리는 민주주의 회복과 극우화 대응을 위해 한국 사회에 무엇이 부족했고, 어떻게 나아갈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요즘 학교나 일터, 일상의 공간에서 예기치 못하게 극우적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종종 만난다. 온라인 세상에선 더욱 노골적인 선동을 마주하기도 한다. 아직 한국에서 극우화 논의는 시기상조라는 사람들도 있지만, 극우세력이 점점 커지는 상황에서 무시와 외면이 능사는 아닐 것이다.


유럽에서는 극우정당이나 극우화 확대에 반대하는 시민연대나 대규모 시위가 조직되고 있다. 태국에서는 2021년 반정부 시위 이후 청년 활동가들이 중심이 되어 '민주주의 회복 그룹(Democracy Restoration Group, DGR)'을 결성하기도 했다. 이제 한국 시민사회도 더 나은 민주주의를 위한 새로운 운동의 전략과 대응을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참여연대에서 발간한 〈참여사회〉 2025년 11-12월호에 실렸습니다. 글쓴이는 이재정 광장을 잇는 윤퇴청 대표, 불평등 물어가는 범청년행동 공동대표입니다. 참여연대 회원가입 02-723-4251

 

 

 

한국형 극우와 민주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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