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3일은 대한민국 역사에 있어 잊을 수 없는 중요한 날로 기록될 것이다. 이날이 하나님의 섭리와 역사하심으로 기억되기를 소망한다.”
3일 저녁 서울 지하철 서초역 7번 출구 근처 공연장에서 극우 개신교 목사 등이 주최하는 ‘자유와 주권회복을 위한 123 구국기도회’가 열린다. 내란 특검팀이 있는 서울고검 근처 서초역 7번 출구는 ‘윤 어게인’을 주장하는 극우 단체들의 단골 집회 장소다. 극우 유튜버 전한길씨는 ‘123 구국기도회’를 홍보하며 “윤석열 대통령을 위해 함께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윤 어게인’ 집회를 열어온 신자유연대는 이날 오후 서울 여의도에서 ‘이재명 대통령 퇴진 촉구’ 집회를 신고했다.
내란 사태 1년, 극우 세력이 한국 사회 전면으로 쏟아져 나왔다. 거리는 음모와 혐오의 목소리로 뒤덮이는 일이 더 잦아졌다. 반공·반동성애·반페미니즘을 앞세운 개신교계 대형 교회 중심의 한국 극우는, 12·3 내란 사태 이후 ‘계엄 찬성’ ‘탄핵 반대’ ‘서울서부지법 폭동 옹호’ ‘윤 어게인’ ‘부정선거’ ‘혐중’을 고리로 빈약한 이념과 정체성을 채우며 세력 확대와 정치적 결속을 시도하고 있다. 성조기를 든 이들은 비상계엄을 통해 한국 극우를 부활시킨 윤석열 전 대통령을 ‘메시아’ ‘순교자’로 포장한다. 과거 일본 극우가 아돌프 히틀러 탄생을 기념하며 나치 깃발을 들고 ‘혐한’을 외쳤던 것과 흡사하다.
망상에 빠진 최고권력자가 내란·외환을 획책한 ‘2024년 12월3일’은 이처럼 한국 극우가 재탄생한 기념일이 됐다. 현직 대통령이 극우 유튜버 등의 허황한 음모론에 공적·정치적 지위를 부여하고, 공당인 국민의힘 의원 상당수가 이런 대통령을 결사 옹위하면서, 음지에 흩어져 있던 극우 세력이 당당히 거리로 나서는 ‘정치적 시민권’을 획득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내란 사태 이후 한국형 극우를 판별하는 지표, 한국 사회 극우화 진행 정도, 세대별·성별 규모, 현실 정치에 대한 영향력 등을 두고 다양한 연구와 분석, 진단과 처방이 나온다. 한겨레와 한국정당학회는 내년까지 유권자 장기 패널조사를 진행하고 있는데, 지난 9월 기준 전체 유권자의 14.3%가 ‘극우’로 분류됐다.
현재 한국 극우 생태계는 △복음주의 극우 개신교계(전광훈·손현보·심하보 목사 등) △극우 청년그룹(자유대학·트루스포럼 등) △한미 극우 네트워크(KCPAC, 빌드업코리아 등) △극우 유튜버(전한길·고성국·그라운드씨 등) 등 크게 네 범주로 나뉜다.
특히 온라인에서 거리로 나온 극우 청년집단의 존재와 규모는 ‘노인 태극기부대’에 익숙한 한국 사회에 충격을 줬다. 대통령 체포를 막겠다며 군사독재 시절 국가폭력 상징인 ‘백골단’을 자처하고, ‘과잠’을 입은 대학생이 탄핵당한 대통령을 끌어안으며 눈물을 흘리고, 서울서부지법 폭동 사태를 일으킨 대부분이 20대 남성이며, 외국인이 많은 서울 명동·대림동, 경주 아펙(APEC) 현장에서 ‘차이나 아웃’을 외치는 청년의 존재는 한국 사회 미래에 대한 논쟁적 질문을 던진다.
대표적 극우 청년단체인 ‘자유대학’은 3일 오후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사과하면 죽음뿐이다’ 집회를 연다. 계엄은 정당했기 때문에, 사과를 주장하는 일부 국민의힘 의원을 규탄하겠다는 것이다. ‘빌드업코리아’ 행사는 미국 극우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논리를 한국 개신교계 청소년·청년에게 이식해 ‘검은 머리 영 마가(Young MAGA)’를 키우는 게 목적이다.
이해관계와 세대, 서식 공간 등이 각기 다른 극우 세력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교집합 범위도 커지고 있다. ‘123 구국기도회’ 쪽 목사는 자유대학 집회와 빌드업코리아 행사에도 참석한다. 자유대학은 미국 청년 극우 운동의 대표적 인물이었던 찰리 커크가 지난 9월 피살되자, 서울에서 성조기를 들고 추모식을 열어 “우리가 찰리 커크다”라고 외쳤다. 한국보수주의연합(KCPAC)은 2020년 이후 총선과 대선에서 ‘중국이 개입한 부정선거 가능성’을 주장하며 이에 대한 ‘검증’을 요구하는 단체다. 최근 ‘중국이 한국 부정선거에 개입했다’고 주장하는 극우 인사인 모스 탄 미 리버티대 교수를 공동의장에, 민경욱 전 자유한국당 의원을 공동대표에 앉혔다. 케이시팩은 청년 극우단체인 트루스포럼 활동과도 연계돼 있다. 트루스포럼이 9월 미국에서 개최한 행사에는 모스 탄, 전한길 등이 참여했다.
한국의 극우 네트워크를 연구해온 신진욱 중앙대 교수는 내란 사태 1년을 맞아 지난달 21일 열린 ‘내란 이후 저항과 연대의 문화정치’ 토론회 발제문에서 “한국의 민주적 회복력은 세계에 하나의 모범을 제시했다”면서도 “폭력적 극우와 반민주 파워엘리트 집단 등 광범위한 극우 생태계가 개혁되지 않은 상태에서 향후 극우 세력이 정치권력을 획득한다면 민주주의와 인권이 다시 빠르게 붕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천정환 성균관대 교수도 발제문을 통해 “여전히 우리를 긴장하게 하는 것은 한국 민주주의의 놀라운 회복력보다 민주주의-헌정 위기의 상흔과 내란의 잔존이다. 내란은 극우화를 통해 지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계엄 찬성’에서 ‘윤 어게인’으로…극우가 거리를 뒤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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