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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에 생각하는 메시아의 길, 이념인가 십자가인가

사회

by 김경호 진실 2026. 4. 27.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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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신학을 공부하기 전에 사회과학을 전공했다. 사회과학도의 시각에서 예수님의 공생애를 볼 때 가장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 하나 있었다. 바로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종교를 개혁하고 갱신하는 길 대신에 십자가의 길을 택하신 것이었다. 이스라엘에 자유와 독립을 가져다주는 정치적 메시아가 되라는 것이 아니다. 왕이 되어 정치를 장악하고 제도를 일신하여 기독교적 제도를 정착시키고, 이스라엘 국가 자체를 기독교 국가로 만들면 이 자체가 하나님 나라에 훨씬 가까워지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어차피 하나님 나라는 내면의 혁신과 사회문화의 기독교화라는 두 갈래 길을 통과해야 하니까 말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쉽고 효율적인 길을 외면하시고 가장 힘들고 작다 못해 초라해 보이기까지 한 십자가의 길을 메시아의 길로 택하셨다.

 

나는 그 이유를 한참 지나 알게 되었다. 진정한 신앙은 내면의 자발성에서 우러나는 것이요, 외부에서 강제된 신앙은 신앙이 아니기 때문이다. 신앙은 항상 내면에서 외면으로, 개인에서 공동체로 향해야 한다. 이유가 있다. 인간의 근본 문제는 외부의 정치 권력 혹은 제도 변화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인간 내면 깊이 자리 잡은 죄의 힘이요, 이 힘은 외부의 강제력이 아니라 십자가 사랑이 가져오는 내면의 자발성에 기초한 능동적 변화에 의해서만 극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바로 인간의 이 근본문제를 다루고자 하셨다.

기독교 역사는 이 진실을 냉정하게 증언한다. 오늘날 신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으로는 2000년 기독교 역사상 가장 복음이 빛을 발했던 때가 초대교회였다. 이때 교회는 로마의 혹독한 핍박 속에서도 놀라운 생명력을 발휘했다. 그런데 313년 기독교가 공인되고 380년 제국의 국교가 되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 교회는 종교 권력과 정치 권력을 동시에 장악했다. 황제가 되기 위해 교황의 승인을 받아야 했고, 황제는 교황의 발밑에 무릎을 꿇었다. 표면적으로는 예를 들어 500만명 인구 중에 그리스도인 아닌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기독교 국가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때부터 교회는 서서히 죽어갔다. 사랑과 화해와 평화의 영성 대신 혐오와 정죄와 공포의 영성이 교회를 지배했고, 마침내 십자가는 폭력으로 기독교 왕국을 확장하는 십자군전쟁의 깃발이 되었다. 개인의 회심 없이 권력으로 하나님 나라를 세우려 했던 시도는 처참히 실패했고, 마르틴 루터와 장 칼뱅의 종교개혁이 그 어둠을 끊어내야 했다. 기독교 국가가 된다고 하나님 나라가 오는 것이 아님을 중세교회의 실패가 방증한 것이다. 특정 정치이념이 보편화한다고 하나님 나라가 오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 실례이다.

오늘 한국교회는 어떠한가. 한국교회는 정치이념과 하나님 나라를 동일시하는 풍토가 오래전부터 만연해 있다. 장로가 대통령이 되면 나라가 기독교화되는 줄 알고 열광하고, 특정 정당과 이념을 복음과 동일시하는 일이 반복됐다.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저질러온 실수다. 그 결과 적지 않은 교회는 복음의 능력을 잃고, 성령 대신 이념의 영이 교회를 움직이게 되었다. 교회에서 흘러나오는 영성이 사랑과 화해와 용서인지, 혐오와 배제와 분노인지를 냉정히 물어야 할 때다.

 

기독교에서 정통(Orthodox)의 뜻은 ‘바르게(ortho)’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doxology)’이다. 그것은 이념이나 특정 교리로 영광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 사랑으로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이것이 정통이다. 화려한 대전차를 타고 세상을 제압하는 것이 아니라 어린 나귀를 타고 십자가를 향해 나아가 사랑과 자비와 용서의 영성을 세상에 흩뿌리는 것. 이것이 생명의 메시아가 걸으신 길이요, 그분의 뒤를 따르는 자들이 가야 할 길이 아닐까. 사순절에 새삼 되짚어본다.

(새문안교회)

이상학 목사의 우보천리

[이상학 목사의 우보천리] 사순절에 생각하는 메시아의 길, 이념인가 십자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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