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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당을 성전이라 칭하지 마라

황부일목사(서울)

by 김경호 진실 2010. 1. 23.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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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 땅 예루살렘도 아닌 이 땅에는 웬 성전이 그렇게도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길을 가다보면 큰 건물 벽에 지역 호명을 딴 성전간판들을 곳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성전 가공식이니 성전입당예배니 성전봉헌식이니 하는 초청장을 종종 받는 것을 보면서 얼마나 많은 성전이 건축되고 있는 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특히 대단한 일로서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이 성전 건축 입당을 각 교계신문에 광고까지 합니다. 더욱이 교계를 이끌어 간다는 이름난 지도층의 목회자들도 성전건축입당이라는 말을 잘 쓰면서 "새 성전입당", "대성전학장"했음을 교계에 서로 부각이라도 시키려는 듯 크게 널리 알리기도 합니다. 심지어 신도시 같은데 지점(?) 성전까지 지었음을 광고합니다.

이렇게 우리 나라는 이스라엘에도 없는 성전도 많고 또한 계속 성전은 지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우리는 교회예배당 건물을 성전이라 칭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교회당을 짓고서는 성전 지었다고 한다거나 예배하러 예배당에 나와서는 기도하기를 이 성전에, 이 제단에 나왔다고 합니다. 이렇다 보니까 많은 교인들이 교회시대에서 예배하는 예배당을 구약에서 제사하던 성전으로 알거나 무엇이 다른 줄을 구분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왜 이렇게 예배당을 성전이라고 합니까? 성전회복에 대한 갈망이 유대민족보다 더 강열해서 입니까? 현 예루살렘 형편상 불가능한 성전 재건을 열정적인 신앙의 불길을 가진 우리가 세워보자는 의도에서입니까? 아니면 이스라엘에게도 있었던 성전을 신전화 시키던 잘못된 신앙의식이 우리에게도 있어서 예배하는 건물에 불과한 예배당을 신전화 하여 신자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하는 특별한 관심과 헌신을 집중시키려는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닙니까? 아니면 솔로몬에게 명하신 성전건축명령이나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유대민족에게 떨어진 성전재건 명령을 지금도 그대로 받아 드리는 무지함에서 오는 것은 아닙니까? 그래서인지 학개서 1장에 나오는 당시 포로에서 귀환한 유대인들이 성전재건을 하다가 멈추고 자기들 생활에만 치우치자 하나님께서 학개 선지자를 통해 명하신 성전재건 명령을 오늘날 교회 예배당 짓는 데에 그대로 인용하여 교인들로 하여금 예배당이 아닌 성전건축으로 그것이 필연적인 하나님의 명으로 알게 하는 경우도 꽤 있는가 봅니다. 그리고 그것을 하나님의 성전이라 명하며 하나님의 성전을 지었다는 공로와 표증으로 영광과 축복의 메달을 삼게도 합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이스라엘 백성만큼이나 성전회복을 바라는 자들이 어디 있습니까? 그래도 그들은 곳곳에 그들이 모이는 종교적인 회합장소를 짓기를 원하여 지어놓고 우리처럼 성전이라 하지 않고 그저 회당이라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이들은 성전에 대한 지식이 그런 면에서는 교회당 건물을 성전이라 칭하는 우리보다 더 나은 것입니다. 교회시대에 건물 된 하나님의 성전이 있습니까? 제단에 제물을 드리며 제사장이 제사하던 성전은 실제로 주후 70년경에 무너져 버렸고 또한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의 성취로 성전은 더 이상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에게 허락된 성전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중에 계심을 실현시켜 주신 곳이며 또한 하나님께서 은혜와 경배로 택한 백성들과 교통하시고자 세우신 중재적인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그곳에다만 모셔두고 신전시하려 했습니다. 그들은 그런 성전이 있는 것이 좋았고 자랑스러웠으며 성전을 통한 자기 기대에 차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백성으로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통해 거룩해지는 것보다 자기들에게 성전이 있다는 것으로 특별해지려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성전 문만 밟고 그냥 돌아가는 자기당착에 빠지고 만 것입니다.

사도행전 7:47-49절에 보면 "솔로몬이 그를 위해 집을 지었느니라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시나니 주께서 가라사대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짓겠으며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뇨"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들은 성전을 그들의 세력의 영광으로 삼았고 그들의 눈의 기쁨으로 삼았으며 또한 그들의 마음의 아낌이 되었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더럽히며 무너뜨린다고 하셨습니다(겔24:21). 일찍이 하나님은 성전을 지은 솔로몬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나 너희 자손들이 내 계명을 지키지 않고 나를 떠나고 다른 신을 섬기면 내가 거룩히 구별한 이 성전이라도 던져버릴 것을 예고 하셨습니다(왕상9:6-9). 실제로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성전은 그렇게 무너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오늘날 이 땅에 교회들은 은근히 성전이 아닌 성전 위주의 모습으로 가고 있습니다. 성전이 될 수 없는 교회당 건물을 성전이라 하여 교인들로부터 크고 좋게 짓게 하는 당위성을 갖게 하고 그래서 주도한 지도자나 교인들이 함께 영광으로 삼고 자신들의 자랑과 기쁨으로 삼고 또한 그곳을 통한 기대와 간절함을 갖게 하여 성전보다 더 큰이가 되시는 그리스도가 성전을 무너뜨리고 자신의 몸으로 세우신 거룩한 교회 됨을 이루어 가는 그리스도안에 있는 온전한 삶에 대한 추구와 애착은 매우 찾아보기 어렵게된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그의 생명으로 교회 된 거룩성이 성전이라는 명분아래 교회당 건물을 경쟁적으로 높이 크게 웅장하게 세우는 것으로 구별시켜 가려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에 들어가셨을 때 우물에서 만난 사마리아 여인이 말하기를 "우리 조상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하더이다"하자 예수님께서는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4:20-21). 그것이 바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구약에 성전 같은 의미의 거룩한 예배장소가 특별히 필요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예배처소로 모이는 예배당은 교회 된 자들이 공적으로 약속된 시간에 모여 함께 예배하기 위해 잠시적으로 쓰는 회당 같은 곳이지 거기에 하나님을 모셔두고 반드시 거기서만 예배하고 거기서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특별한 하나님의 성전은 아닌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그리스도 안에 어디서나 예배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두 세 사람이 자신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 함께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장소를 말함이 아니라 교회 된 성도들 중심을 말합니다. 그래서 이제는 성령이 계신 성도의 몸이 거룩한 선전이라고 한 것입니다(고전3:16).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는 바로 그리스도 안에 하나님의 자녀들로 구별된 성도들인 것입니다. 때문에 교회 된 우리들에게 있어 참으로 중요한 것은 우리가 크게 구별시키려는 성전이라 하는 보이는 예배당 건물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로 부르심에 합당한 하나님 나라의 모습과 삶으로 이루어 가야 함에 있는 것입니다. 즉 그리스도의 생명을 누리며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서 감에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바로 그리스도의 교회 된 거룩함과 참된 모습이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 된 자들이 맞다면 예배당을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이라 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제 성전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자꾸만 성전이라 한다면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님의 나라된 교회의 모습을 보이는 건물로 거룩케 하려는 무지의 소치를 들어내는 것이 되며 그리스도께서 완성시키신 구속의 역사를 우리가 성전아닌 성전을 특별하게 부각시킴으로 말미암아 그림자와 실제를 구분하지 못하게 하는 일이요 또한 많은 교인들을 그리스도보다 그리고 그의 몸 된 교회를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세움보다 성전 아닌 성전을 크게세워 그것을 더 위하며 아끼는 중심으로 기울게 하는 잘못된 경우가 되는 것입니다. 즉 교회 건물인 보이는 예배당을 더 거룩케 하며 존귀케 하는 외형중심의 신앙으로 가게 하는 문제를 조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전을 무너뜨리우시고 자신의 몸으로 영원히 세우신 하나님나라된 교회를 우리가 보이는 건물중심으로 가려하는 매우 위험하고 어리석은 모습이 우리가 예배당을 성전이라 하는 것에 있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

*황부일 목사, 고은교회

 

http://cafe.daum.net/ReformedChurch/4mbA/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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