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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맨이 되려는 목회자들 - 고은교회(황부일 목사)|

황부일목사(서울)

by 김경호 진실 2016. 2. 29.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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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맨이 되려는 목회자들

고은 교회 황부일 목사

요즘에 보면 뭐든지 재미있고 웃기는 것이 제일로 인기입니다. 대중문화의 흐름이 그렇게 주도하는 것인지 아니면 복잡하고 바쁘고 스트레스 많이 받는 이 시대 사람들의 흥미 적 요구 심리를 잘 파악해서 상업적으로 사람들이 이용하는 것인지 모르나 온통 그런 분위기입니다. 대중문화를 주도하는 TV를 볼 것 같으면 사람들이 좋아하는 드라마도 반은 코믹위주이거나 시트콤 같고 그 외 대부분의 프로그램이 시청자들의 흥미 위주로 꾸며지고 있음을 누구도 부인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웃기고 개그적인 연기자가 인기가 많고 여러 프로그램에 인기인으로 자주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일시적 재미위주의 대중적 문화의 흐름이 거룩한 교회까지 들어와 분위기를 주도하며 판을 치려한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목회자가 이것을 이용 주도해 간다는 것입니다. 뭐든지 재미있고 즐겁게 하는 것이 많은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효과 있는 교회 성장 수단으로 되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요즘 보면 목회자들의 설교도 재미있게 하려 힘쓰고 아예 설교의 반 이상이 웃기려는 의도의 개그로 되어 있습니다. TV 개그콘서트에 나오는 전문 개그맨보다 더 웃기는 목사들도 여러 명 있는 줄 압니다. 요즘 그들의 인기는 교계 내에서 인기 순위가 정해질 정도며 일반 사회인들도 재미있고 웃기는 목사로 알고 있을 정도입니다.

요즘 기독교 신문을 보면 웃음 세미나를 한다고 광고가 크게 자주 나오는데 그 광고들의 내용들을 찾아 인용해 볼 것 같으면 “웃음 속에 복음 실어 신바람 교회 만들자”, “국제 웃음 유머 치료 전문 강사 양성 세미나”, “목회 화술 개발 리더십”, “한국 교회 신바람 나는 웃음 바람 분다”, “웃음은 행복의 열쇠다” 등 이런 것들이 웃기는 것을 가르치고 배우는 세미나의 주제들이고 강조하는 내용들을 보면 “웃음은 신비한 힘이다, 치료의 능력이 있다. 건강을 주고 행복을 준다. 웃음이 있는 삶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이다. 때문에 교회와 크리스천 가정에 웃음을 찾도록 해주어야 한다. 그동안 한국 교회는 활기를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웃음을 통해 삶의 참된 활기를 찾고 신바람 나는 행복이 있는 공동체를 구현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목회자가 먼저 건강한 웃음을 웃을 때 교회 전체를 웃게 만드는 환경이 전이 된다. 교회에 웃음이 있기 위해서는 교회마다 웃음 전문 사역자들이 근본적으로 있어야 한다. 그래서 한바탕 신나게 웃다보면 살맛이 절로 나고 사람들이 교회 오는 것을 즐거워하게 된다.” 이런 내용들이 웃음 세미나를 하는 이유나 목적으로 강조되고 있음을 봅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강사들을 보면 실제 개그맨도 여러 명 있고 요즘 잘나가는 목사도 있고 신바람 용어를 일으킨 고인이된 유명한 박사도 있습니다.

요즘 교계가 이지경입니다. 재미있고 웃기는 것이 은혜인 줄 아는 무리들이 많아졌고 웃음이 치료나 회복의 능력이 있는 것으로 아는 지도자들도 많은 것입니다. 어떻게 교회가 이런 인위적인 웃음까지 조성하며 그것이 효력 있는 활력소요 행복을 주는 은혜의 요소로 여기고 목회자가 개그맨이 될 정도로까지 세속적으로 떨어져 버렸는지 황당할 지경입니다.
설교시간 내내 원맨쇼하는 목사도 있습니다.
물론 세상 일반적인 면에서 웃는 것이 엔돌핀이 생기고 건강에 좋다고는 하지만 그것이 분명 교회 구원의 유익을 주는 은혜는 아닙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교회 된 공동체로 구현된다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이것은 교회구원과 교회기쁨이 진정 무엇인지 모르는 자들의 어리석은 발상에 불과합니다.

예수님 말씀에 “화있을찐저 너희 이제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는 말씀이 있습니다(눅 6:25). 이것이 인위적인 웃음과 세상적인 즐거움의 한계요 끝인 것입니다. 사람이 지금 아무리 기쁘고 즐거워도 웃고 좋았어도 본질적으로 “일평생을 어두운데서 먹으며 번뇌와 병과 분노가 저에게 있느니라”(전 5:17)는 인생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무엇이 인생의 즐거움인지 기쁨인지 알까 하여 여러 가지를 다 갖추고 해보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결론적으로 고백하기를 “즐겁게 하고 낙을 누리리라 하였으나 이것도 헛되도다” 했고, “내가 웃음을 논하여 이르기를 미친 것이라 하였고 희락을 논하여 저가 무엇을 하는 가 하였노라”고 증거 했습니다(전 2:1-2). 또한 잠언서에서는 “웃을 때에도 마음에 슬픔이 있고 즐거움의 끝에도 근심이 있느니라”고 했습니다(잠 14:13).

인간의 기쁨이란 그래서 일시적이요 웃을 때뿐이라는 것입니다. 때문에 호세아 선지자는 “이스라엘아 너는 이방사람처럼 기뻐 뛰놀지 말라”고 선포했습니다(호 9:1). 세상 사람들의 일시적인 인간적 즐거움이나 기쁨을 따르지 말라는 것입니다. 일시적인 즐거움을 좋아하는 자는 살았으나 죽었다고 말씀했습니다(딤전 5:6). 그런데도 일부러 웃기려하고 그렇게 해서 웃고 재미있는 것이 참된 활기라고 교회서 하고 있으니 진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교회는 엔돌핀을 만들어 주는 데가 아닙니다. 일시적으로 웃겨서 재미를 주고 즐거움을 주는 데는 세상 방송국 홀이나 콘서트장이지 예배당은 아닌 것입니다. 교회서 교인들에게 참으로 주어야 하는 기쁨과 즐거움은 주 안에서의 참 기쁨입니다. 이것은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것으로도 감히 근접 할 수 없는 거룩한 구원의 기쁨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요 15:11). 이 기쁨은 세상에서는 감히 흉내 낼 수도 찾아볼 수도 없는 인간의 방법으로 조성이 안되는 하나님 나라의 기쁨으로서 예수님께서 오신 것은 바로 이 천국의 기쁨을 구원과 구원의 삶을 통해 누리도록 하시기 위해 참 기쁨의 좋은 소식으로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복음을 통해 우리는 천국의 기쁨을 점진적으로 충만히 가질 수 있습니다.

인간적이고 세상적인 즐거움은 상대적인 형편이나 기분에 따라 없어지고 마는 것이나 주 안에서의 기쁨은 빼앗을 자가 없다고 했습니다(요 16:22). 하박국 선지자는 전쟁의 소식과 환난의 형편으로 몸은 괴로워지고 열매는 소출이 없고 우리에 양이 없고 외양간에 소가 없을 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고 했고(합 3:16-18) 바울은 감옥에서도 기뻐하며 오히려 밖에있는 교회들을 향해 주안에서 기뻐하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세상 그 어떤 형편과 어려운 처지에서도 없어지지 않는 주 안에서의 기쁨이요 천국을 누리는 즐거움인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기뻐하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살전5:16)

주의 몸 된 교회는 바로 이런 구원의 기쁨이 있고 그 구원을 살아가는 하나님 나라 된 영적 즐거움이 있는 것입니다. 진정한 교회는 복음을 통해 바로 이 기쁨을 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 구원을 하나님 나라로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뜻이요 성령의 역사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는 먹고 마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의와 화평과 희락이라 한 것입니다(롬 17:14). 성령의 열매 가운데 희락이 있는데(갈 5:22) 이 희락이 바로 예수님께서 그의 교회된 자들에게 말씀을 깨달음으로 주시고자 하시는 주님의 기쁨인 것입니다. “호호하하” 거리며 웃지 않아도 재미있는 순서나 즐거운 이벤트가 없어도 심령에 참 기쁘고 좋은 것입니다. 이것을 모르는 우맹한자들이 역시 우맹한 사람들을 모아놓고 일시적인 개그로 웃기려 하고 인간적인 즐거움을 주려하는 것입니다. 이들이 교회라 칭하고 모여들지만 이들이 하는 꼴을 보면 교회당 건물은 콘서트홀에 불과하고 목회자는 무대 위에 인기 끌려는 연기자요 모인 교인들이라는 자들은 관객처럼 되어 있습니다. 결국 거룩한 이름을 빌린 세속의 모습일 뿐입니다.

연기를 잘하려고 애쓰는 목회자들, 그것을 보며 재미있다고 웃어대며 좋아하는 교인들, 그런데 감히 주의 몸 된 교회 앞에서 목회자가 개그맨이 되려 하니 주앞에서 이런 우롱과 모독이 어디 있습니까? 온갖 세속적인 용어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말과 요즘 유행하는 속어나 잡스러운 말까지 쓰며 때로는 욕까지 하며 세상 노래도 곁들이며 황당하고 기가 막힌 내용까지 써가며 웃기려하다니…. 이들이 교회라고 칭하면서 그러고 있다면 그들은 감히 주님을 웃기려 하는격(?)이 되는 것입니다. 교인들은 자신들이 주의 몸 된 거룩한 교회됨을 모르고 무대 밑에 관객처럼 신나서 재미있어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지금 거룩한 주의 몸임을 망각하고 거룩한 주의 영광 된 교회로서 모독을 받고 있는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교회에 관객이 웬 말이고 그 앞에 인기 끌려는 연기자는 웬 말입니까? 그렇다면 타락한 교회던가 아니면 교회 이름을 빌린 세상친목단체에 불과한 것입니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여기에는 교회의 거룩한 모습과 경건됨이 없다는 점입니다. 스스로 그들은 거룩한 교회 모습이 될 수 없음을 그런 세상의 개그적인 모습으로 증명하여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도 오늘날 수많은 신학생들이나 목회자들이 이런 연기같은 테크닉을 배우려 하고 교회에서나 방송매체를 통해 다수로부터 인기 끌려는 연기자들이 되려 하니 씁쓸하고 답답한 노릇입니다. 교회는 사람들을 재미있게 하려고 요란을 떨며 모이는 곳이 아니라 건전하고 경건된 예배를 통해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중심으로 모이게 되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백하기를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고 했습니다(갈 1:10). 지금 많은 교회들은 사람을 웃겨 기쁘게 하고 감정적인 분위기나 흥미적인 순서로 재미있게 하려는 잘못된 목회자들로 인해 교회 이름으로 모인 자들을 관객들로 전락시키며 함께 세속적으로 빠져가는 심각한 시대가 된 것입니다.

교회의 참된모습은 거룩성에 있습니다. 죄와 사망으로부터, 그 권세아래있는 세상으로부터,유혹의 욕심을따라 썩어져가는 순간의 것들을 추구하는 모든 인본주의로부터의 구별인 것입니다. 교회의 참된성장은 이 모든 것으로부터 새롭게된 모습으로 점점 거룩해져감에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교회라면 그리고 진정한 주의 종이라면 하나님 나라로 거룩해지는 교회구원을 위해 지금은 오히려 아픔의 선한싸움을 성도들에게 주려는데만 전념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어떤 세상 형편에서도 구원을 누리는 참 기쁨이 실현될 것입니다.


교회는 진리의 기둥과 터라고 말씀했습니다. 오직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것이 진실한 신앙임을 아는 지도자는 그 외의 인간위주의 것들을 따르거나 받아 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참구원의 기쁨을 누리는 것이
구원을 살게 하는 교회임을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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