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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경기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고재수선교사

by 김경호 진실 2010. 2. 12.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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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경기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고재수  

 

이 글은 고재수 교수가  1988년의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월간 고신」에 기고한 글이며, 오는 9월에 성약출판사에서 나올 그의 『그리스도와 교회와 문화』(개혁 신앙 강좌 제1권의 개정 증보판)에 포함된 글이기도 합니다. 마침 이번 달에 중국 베이징에서 제29회 올림픽이 열리므로 올림픽 경기를 바라보는 개혁 신앙의 관점이 잘 드러나 있는 이 글을 출간에 앞서 소식지에 먼저 소개합니다. - 편집자 주 


한국과 마찬가지로 네덜란드 신문에도 스포츠가 흥미 있는 뉴스 가운데 하나로 취급되고 있습니다. 특히 어떤 종목이든지 괄목상대할 만한 실력으로 플레이하는 프로 선수들의 모습은 신문의 여러 면에 걸쳐 대서특필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네덜란드에는 이런 유의 기사를 전혀 취급하지 않는 신문도 있습니다. 바로 개혁교회에서 발간하는 신문이 그렇습니다. 프로 스포츠에 관한 기사를 그 신문에서는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실 처음에는 이 네덜란드 개혁교회의 신문에 스포츠 면조차 없었습니다. 하지만 요새는 (매일은 아니지만) 매주 두 번씩 스포츠 뉴스를 싣습니다. 그 보도 대상은 주로 아마추어 스포츠에 관한 것입니다. 또한 스포츠 세계의 여러 가지 경기와 사건을 다루고 평가하는 것도 주목할 만한 일입니다.


그런 기사들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역할을 합니다. 우리 사회에 스포츠가 있는 이상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포츠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인이라 해서 스포츠를 평가할 능력이 누구에게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기독교의 입장에서 어떻게 평가해야 할 것인가를 모르는 것입니다. 그때 이 신문은 독자들이 개혁 신앙의 입장에서 스포츠에 접근하도록 큰 도움을 줍니다.


그렇다면 올림픽 경기는 어떻습니까? 물론 신문에 서울올림픽의 국제적 의미와 정치적 의미에 대한 글도 많이 나왔지만 필자의 이 글은 서울올림픽에 대한 것이 아니라 올림픽 그 자체에 대한 것입니다. 1988년은 올림픽이 열리는 해인데 네덜란드 개혁교회 교인들은 이 올림픽에 대해 무슨 정보를 받고 있겠습니까? 결국 이 문제는 우리 신자들에게 실제적인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기독교인으로서 현대의 올림픽 경기에 참여할 수 있거나 아들이나 딸이 거기에 참가하도록 허락할 수 있을까요? 네덜란드 개혁교회는 이러한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살펴보겠습니다.


그리스 시대의 올림픽


확실히는 모르지만 올림픽은 기원전 776년경에 처음 실행되었다고 합니다. 그 대회는 그리스의 올림피아 지방에서 4년에 한 번씩 개최되었습니다. 처음에는 한 종목만 있었지만 나중에는 다른 여러 종목이 추가되었습니다. 그것은 달리기, 레슬링, 복싱, 5종 승마 등이었습니다.


올림픽의 한 종목에서 우승한 사람은 상으로 야자나무 가지와 올리브나무의 면류관(월계관)을 받았습니다. 또 그의 훌륭한 승리에 대해 시인들은 시를 지어서 낭송하였고 조각가는 그의 석상을 조각하였습니다. 본래는 다른 것보다 영광 그 자체가 가장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다가 후에는 우승한 사람은 고향에서 많은 선물과 돈을 받았고 어떤 직위까지도 얻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올림픽에서 우승한 사람은 유명해지는 것은 물론이고 부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올림픽 경기는 온 그리스에서 아주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온 나라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올림피아로 모여들었습니다. 그리스의 도시들은 서로 번번이 싸웠지만 올림픽 경기 때만은 전쟁을 중단하였습니다. 도시와 부족들이 휴전하여서 사람들이 모두 올림픽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또 올림픽 경기는 상업적인 면에서도 아주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선수들 외에 구경꾼들도 많이 모였으므로 상인들의 가세는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올림픽에서는 상거래도 매우 활발하게 이루어졌습니다.


이 그리스의 올림픽의 성격은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두 가지로 요약해서 말할 수 있는데, 신에게 영광을 돌리는 것과 또 하나는 인간을 찬미하는 것이었습니다. 올림픽은 올림피아 산에 살고 있다는 제우스 신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습니다. 제사장들은 제우스에게 제물을 바쳤습니다. 그 제단에는 행렬 성가가 울려 퍼지기도 하였습니다. 또 승리자를 찬미하는 시는 우선적으로 제우스에게 감사의 뜻으로 바쳐졌습니다. 그리스 올림픽은 궁극적으로 종교적 절기였던 것입니다.


그 대회의 두 번째 성격은 인간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시인은 인간의 훌륭함, 인간의 용기, 그의 능력, 그의 지도력을 찬미하였습니다. 조각가는 인간의 아름다운 몸을 영구한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또 승리자들이 고향으로 돌아올 때에 사람들은 그를 우상처럼 떠받들었습니다.


올림픽 경기는 시작 이후 천 년 이상 계속되어 오다가 기독교인이 된 오도시우스(Theodosius) 황제에 의해 금지되었습니다(주후 394년). 그것을 금지한 주된 이유는 이 경기의 종교적 성격, 즉 제우스가 숭배의 대상이 된다는 점에 있었습니다.


또 다른 이유는 스포츠 투기장에서 구경꾼의 즐거움을 위해 기독교인이 죽임을 당했던 점입니다. 또 부도덕, 즉 나체로 연습하는 것과 동성애도 중요한 금지 이유가 되었습니다.


올림픽 부활의 목표


그 후 1,500년 동안 올림픽 경기가 열리지 않다가 1896년에 처음으로 근대 올림픽이 개최되었습니다. 이 올림픽 경기의 부활에는 프랑스의 쿠베르탱(Pierre de Coubertin) 남작의 공헌이 컸습니다. 쿠베르탱은 수년 동안 줄기찬 반대를 무릅쓰고 그의 꿈을 이룩하기 위해 많은 애를 썼습니다. 그 결과로 1894년 파리에서 올림픽 회의가 열렸습니다. 거기서 1896년에 그리스 아테네에서 올림픽 경기를 개최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그래서 1896년에 13개국에서 온 약 3백 명의 참가자들이 아테네에 모였습니다.


그러면 쿠베르탱이 올림픽을 부활시키고자 한 동기는 무엇이었겠습니까? 앞에서 지적한 대로, 그리스 올림픽은 제우스 신에게 영광을 돌리는 것과 인간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그 목표였습니다. 그런데 쿠베르탱은 그 첫째의 종교적 동기가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 결과로 근대 올림픽은 종교적 성격을 갖지 않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올림픽 경기는 참되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도 아닙니다.


두 번째의 성격, 즉 인간을 영화롭게 하는 것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쿠베르탱은 교육학적인 면에서 올림픽 경기를 부활시키려고 하였습니다. 그의 눈에는 프랑스 청소년들이 비활동적이고 게으른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는 그들이 확실한 목표를 가짐으로 게으름을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프랑스의 청소년들 세상에서 앞설 수 있기를 그는 원하였습니다.


교육자로서 쿠베르탱은 청소년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정신과 절도 있고 오래 참는 버릇을 가짐으로 게으름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바로 이 점에서 스포츠가 훌륭한 수단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쿠베르탱은 청소년들에게 그들의 최소한의 목표로서 국제적인 스포츠, 곧 올림픽을 제창하기에 이르렀던 것이었습니다.


쿠베르탱의 이 꿈은 인본주의에서 발생된 것이 분명합니다. 그는 인간이 근본적으로 선하다고 믿었습니다. 어른들은 청소년들의 속에 있는 좋은 성격이 나타나도록 애써야 하는데 인간의 선함을 나타내기 위한 수단으로 스포츠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은 자기의 노력과 자기의 훈련을 통해 스스로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올림픽 경기에서도 선해진 인간의 모습을 보기는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많이 훈련을 받은 선수도 부패한 존재일 수밖에 없으며, 스포츠는 고스란히 그 모습을 보여 줍니다. 스포츠 그 자체는 인간을 개량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올림픽에 대해 읽고 듣는 사람은 누구나 그것을 부인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오늘날의 올림픽 경기


올림픽이 처음 개최된 후부터 그 경기의 성격은 크게 변질되어 왔습니다. 오늘날 뚜렷이 정착된 특징 가운데 하나는 운동선수들의 프로화입니다. 처음에 쿠베르탱은 선수들이 아마추어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즉 그들은 주업으로서가 아니라 취미로 스포츠를 하는 사람들이어야 하였습니다. 사실 그 당시에 스포츠는 일상생활을 위해 일할 필요가 없는 부자만이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제는 모 사람들이 스포츠를 여가 선용으로 즐기는 만큼 일류 선수들은 대부분 프로로 전향해 버렸습니다. 또 올림픽 경기의 참가자들은 특별한 훈련원에 오래 있으면서 특별 훈련을 받습니다. 정부는 그들의 훈련을 위해 예산을 짜고 막대한 재정을 투자합니다. 그들이 국제 스포츠 행사에서 승리한다면 큰 상을 받고 연금도 받게 됩니다. 참된 아마추어가 거의 없어졌기 때문에 서울 올림픽에서는 처음으로 프로 테니스 선수가 참가하게 됩니다.


두 번째는 국수주의의 표면화를 들 수 있습니다. 쿠베르탱의 계획은 프랑스 청소년들이 다른 나라 선수들과 경기를 함으로써 자극을 받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국가는 이 기회를 이용하여서 자기 자신을 영화롭게 하려고 합니다. 어떤 나라의 한 선수가 이기면 온 나라가 기뻐합니다. 물론 그것이 잘못되었거나 탓할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사실 국가는 올림픽에서 승리함으로써 자신의 우월성을 증명하고자 합니다. 한 나라의 승리자가 다른 나라보다 많다면 그 나라가 더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이처럼 소련과 동독은 올림픽을 통해 공산주의가 다른 정치 체제보다 더 나은 것임을 입증하려고 애를 씁니다. 반대로 미국은 자기 나라의 정치적 경제적 체제가 가장 좋은 것임을 많은 승리자를 통해 증하려고 합니다. 또 보다 작은 나라들 가능한 한 많은 승리자를 배출함으로써 국위를 선양하고 싶어 합니다.


이처럼 올림픽 경기는 인간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나라를 영화롭게 하는 것으로 인식되었습니다.


올림픽의 문제점


올림픽 경기는 또 다른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이 문제들은 대부분 인류의 스포츠가 공유하는 것들입니다. 그 가운데 하나는 선수의 건강을 손상시키는 일입니다. 선수들 가운데 호르몬을 사용하는 일은 흔한 일이 되어 버렸습니다.


예를 들어 체조 선수들 중에는 성장을 막기 위해 약을 먹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의 근육은 어렸을 때에는 유연하지만 어른이 되면 점차 굳어집니다. 그 결과로 그들이 어렸을 때에 할 수 있는 운동을 나중에는 더 이상 할 수 없습니다. 특히 여자 체조 선수들에게서 그런 현상 잘 나타납니다. 올림픽 챔피언은 체조의 경우 15살의 아이들이 보통입니다. 4년 후 다시 참여하면 그때는 문제가 달라집니다. 잘할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또 역도에서 남자들은 근육을 크게 하는 호르몬을 사용합니다. 어떤 종목 여자 선수들은 보다 더 강력한 근육을 갖기 위해 남성 호르몬을 복용한다고 합니다. 이처럼 스포츠 때문에 몸은 만신창이가 되는 것입니다.


또 어떤 종목에서는 이유가 좀 다른데, 경기 자체에서 건강에 위협을 받습니다. 그런 스포츠는 그 목표가 상대방에게 상처를 입히는 것입니다. 특히 복싱이 그렇습니다. 복싱의 목표는 상대 선수가 더 이상 싸울 수 없도록 그에게 상처를 입히는 것입니다. 심할 경우에는 잘못 맞아 죽기도 합니다. 매년 복싱 경기에서 이런 사고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또 많은 복싱 선수들이 후에 후유증으로 고생하곤 합니다.


올림픽 경기의 세 번째 문제점은 주일 성수(聖守)입니다. 다른 대부분의 스포츠처럼 올림픽도 일요일에 계속됩니다. 이 문제로 올림픽에 항의한 지는 오래되었습니다. 1900년의 파리 올림픽에서 미국 선수들은 주일날에 경기하지 않게 해 줄 것을 부탁했지만 진행자들은 듣지 않았습니다. 그때 미국 선수 가운데 몇 사람은 주일날 경기에 참여하지 않았고, 그 가운데 한 사람은 거의 확실한 금메달을 놓쳤습니다. 오늘날에는 주일날에 계속 경기하느냐 하는 문제가 더 이상 거론되지도 않고 있습니다. 텔레비전 때문에 올림픽은 주일을 가장 중요한 날로 삼습니다.


결론


사람들이 누구나 운동하는 것은 즐거운 일입니다. 또 여러 선수들이 그들의 실력을 꾸준히 향상시키는 것을 보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하지만 올림픽 경기의 이론과 실제는 기독교인의 참여 문제를 놓고 볼 때에 대단히 곤혹스런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네덜란드 개혁교회의 성도들은 그들의 자녀들에게 올림픽 참가를 허락하지 않을 것입니다.


고재수(N. H. Gootjes) 교수는 1976년에 네덜란드 개혁교회(해방)의 목사로 임직되어 목회를 하다가 한국에 선교사로 파송되어 1980-89년까지 고려신학대학원에서 가르쳤습니다. 1990년부터는 하밀톤에 있는 캐나다 개혁교회의 신학대학에서 교의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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