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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것을 바라보라! (행 7:1-22)

by 김경호 진실 2010. 5. 30.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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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목 목사
더 나은 것을 바라보라! (행 7:1-22)

칼라 TV를 보면 더 이상 흑백 TV를 보기 힘듭니다. MP3를 사용하는 사람은 예전의 ‘마이마이’를 사용하지 않을 것입니다. 엘리베이터를 타본 사람은 고층으로 올라갈 때 계단을 이용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을 맛본 사람은 다른 신학과 신앙을 맛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처럼 더 좋은 것을 누려 본 사람은 더 못한 것을 더 이상 추구하지 않습니다. 신앙 생활에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신앙의 진수를 맛본 사람은 예수님 믿기 이전의 죄악 된 생활로 돌아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거꾸로 예수님 안에서 누릴 천국의 기업의 풍성한 영광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신앙 생활에 활력이 없고, 세상으로 발걸음을 돌이킵니다. 왜 신앙 생활을 하다가도 신앙을 포기합니까? 무엇보다도 신앙의 진수를 맛보는데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 문을 열어주셔서 신앙의 진수를 맛볼 수 있도록, 그리고 그 가운데서 즐거워하며 기뻐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요지: “나는 천국의 더 나은 것을 맛보고 옛 생활로 돌아가지 말아야 한다.”

첫째로, 천국의 영토를 맛보고 썩고 쇠하는 땅으로 돌아가지 말아야 합니다.

유대인들에게 전도하다가 예루살렘교회의 7집사 중 한 사람인 스데반이 산헤드린 공회 앞에 잡혀 옵니다. 스데반은 피고이지만 담대히 복음을 변증하는 설교를 합니다. 행 7장의 스데반의 설교는 사도행전에서 가장 긴 설교인 동시에 비사도가 행한 첫 번째 설교입니다. 그리고 스데반 집사는 사도행전에서 첫 번째 순교자로 등장합니다. 이 때는 사도 중심의 예루살렘 사역이 비사도 중심의 사역으로 전환되고 있는 시점입니다. 스데반의 설교는 구약 이스라엘의 구원 역사를 개괄하는 형식입니다. 스데반 당시의 대중적인 유대인들의 경건을 받치고 있던 3개의 큰 기둥은 ‘땅과 율법과 성전’입니다. 즉 유대인들은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성전을 중심으로 율법을 지키며 사는 선민이라는 의식으로 가득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속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3가지 모두를 성취하신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가 독자들이 다시 유대교로 돌아가는 것을 경고하면서 설명했던 방식과 유사하게, 여기서 스데반은 이 3요소를 예수님이 성취하신 관점에서 설명합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 된 땅, 모세에게 주어진 율법, 그리고 솔로몬이 지은 성전은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된 실체로서의 가나안 땅, 율법, 그리고 성전을 맛보고 그림자를 더 이상 붙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먼저 땅을 살펴봅시다. 본문 3절에서 갈대아 우르에 있던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가나안으로 가라고 명하십니다. 아브라함은 고향과 친척을 떠나되, 믿음으로 떠납니다. 히 11:8절은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알지 못하던 땅으로 순종하면서 떠났다고 합니다. 결국 하나님은 애굽에서 가나안으로 올라오도록 하여 아브라함의 자손에게 줍니다.

이 가나안 땅은 예수님 안에서 성취되어 하나님 나라의 영토가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왕이신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살고 활동하는 곳은 하나님의 나라 영토가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뭄이나 기근 그리고 심판으로 신음하는 그런 가나안 땅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영역을 주십니다. 그곳은 쉴만한 물가이며, 푸른 초장입니다. 그곳은 목자의 음성이 늘 들리는 곳입니다. 그러나 그 영역은 우리의 땀과 눈물로만 가꾸어 지고 확장되어 갑니다. 하루 하루 살면서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라고 부르짖으며 영역을 넓혀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웃과 열방에 전하는 제사장 나라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미 받은 천국의 부요함을 깨달아 알도록 간구합시다.

둘째로, 생명과 자유의 율법을 맛보고 율법주의로 돌아가지 말아야 합니다.

본문 20절 이하에서 스데반은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 역사를 추적해 봅니다. 모세가 80세 죄었을 때, 시내산 가시나무 떨기 불꽃 가운데서 하나님을 만납니다 (30절). 하나님은 애굽에서 이스라엘이 괴로움을 받는 것을 보시고 탄식 소리를 들으시고 구원하시러 강림하셔서 이제 모세를 보내십니다 (34절). 하나님은 모세를 관원과 속량하는 자로 보내십니다 (35절). “이스라엘에게 나와 같은 선지자를 세우리라”고 말한 사람이 모세이다 (37절; 참고. 신 18:15). 모세는 광야교회와 함께 있었고 생명의 도 (생명을 주시는 말씀)를 받아 이스라엘에게 전해준 사람입니다 (38절). 모세는 본향인 천성을 향하여 순례하는 신약의 나그네와 행인 된 광야 교회에게 생명의 도를 전해 주신 예수님의 그림자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자손은 모세에게 복종치 않고 오히려 애굽으로 향하고자 했습니다 (39절). 이런 구약 이스라엘의 불순종과 거역하는 모습은 다름이 아니라 스데반을 죽이려고 모인 산헤드린 공회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도를 전해주신 분입니다. 은혜와 자유의 복음을 주신 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생명의 성령의 법을 받아서 죄와 사망의 법을 물리치고 있습니다. 말씀은 생명과 성령 충만을 줍니다. 우리 주님은 율법주의를 가르치시지 않고, 성취된 율법을 주신 분입니다. 주일 성수와 헌금 같은 민감한 사항 역시 예수님 안에서 성취된 관점에서 이해하고 지켜야 합니다. 진리 안에서 자유하면서 즐거이 안식하며, 즐거이 바치며, 누리도록 하십니다.  그러나 동시에 교회 안에 덕을 끼치도록 때로는 우리의 자유를 조절하고 제한해야 합니다. 더러운 귀신 문화 혹은 우리를 얽어매는 인본주의적인 전통에 속박되지 맙시다. 우리가 말씀을 멀리하고 들은 말씀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다른 율법주의와 이성주의에 빠지고 맙니다. 율법과 계명은 하나님의 거룩하시고 의로우시고 선하신 성품을 반영합니다. 율법의 완성인 사랑의 실천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킵니다. 계명을 지키되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서 지킵니다.  

마지막으로, 성령의 전으로 살고, 하나님의 영광이 사라진 성전으로 돌아가지 말아야 합니다.

본문 44절 이하에서 스데반은 모세 시대의 회막과 솔로몬이 지은 성전에 대해서 말합니다. 광야의 증거의 장막은 하나님이 모세에게 보여주신 식양 (typos, 모형)대로 만든 것입니다 (44절; 참고. 출 25:9). 증거의 장막은 다윗 때까지 있었습니다 (45절). 다윗이 하나님 앞에 은혜를 받아서 ‘야곱의 집을 위하여’ (하나님의) 처소를 준비하려고 했지만 (46절; 참고. 시 132:5) 솔로몬이 건축합니다 (47절). 여기에 성막에서 돌 성전으로의 계시사적 전진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스데반은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이 머무실 집이 아니라, 야곱의 집 (자손들)이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한 장소를 의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에 예루살렘 돌 성전에서 성령의 전인 교회로의 전환도 의도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은 사람이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않는데 (48절),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짓겠으며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뇨, 이 모든 것이 다 내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냐”함과 같습니다 (49-50절). 여기서 사 66:1-2절을 간본문으로 본다면, 이 구절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형식적이고 가식적인 거짓 예배를 드리는 이스라엘에게는 하나님의 임재가 없음을 심판적으로 언급합니다. 그러므로 스데반은  당시의 사두개인들과 같이 우상화된 성전을 중심으로 거짓된 예배를 드리던 사람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스데반은 성전에 대해서 탄핵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스데반은 구약 이사야 선지자의 대를 잇는 선지자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스데반이 볼 때, 자기 당대의 공회원들은 구약 이스라엘의 죄악상을 그대로 본받고 있는 사람들로서 범죄와 심판의 사이클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성령의 전이 되어서, 성령의 충만을 맛본 사람은 형식적인 예배를 드리지 않고, 가식적으로 하나님을 만나지 않습니다. 성령의 인도하심과 능력을 맛본 사람은 성령 충만을 더 사모합니다. 죽고 화석처럼 생기가 없고 퍼석퍼석한 신앙 생활을 참으로 경계합니다. 성령의 넘치도록 부으시는 기름부음과 동행하심을 더 열렬히 사모합시다. 이 설교를 하고 죽어가는 스데반의 얼굴은 천사와 같았고, 하나님의 영광이 머물러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가득한 우리 삶이 되어야 합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땅과 말씀 그리고 성전의 참 맛을 보기 원하십니까? 마음의 눈을 떠서 예수님 안에서 성취된 의미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썩을 땅, 율법주의, 형식적인 성전을 찾지 않을 것입니다. 더 나은 것을 바라봅시다. 그리고 이전에 즐기던 옛 것들을 물리쳐 버립시다. 예수님 안에서 천국을 침노하는 맛을 봅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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