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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들에게 고한다 -윌리엄 거널

윌리암 거널

by 김경호 진실 2010. 10. 4.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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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들에게 고한다 -윌리엄 거널-

당신의 교인 가운데 영적 무지 상태에 있는 사람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갖도록 하라. 사망의 길을 걷고 있으면서도 전혀 자신의 위치를 알지 못하는 그들을 안타깝게 바라보라. 무지라는 질병은 불치의 암과도 같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조금씩 우리의 영혼을 갉아 먹는다. 따라서 한시라도 빨리 손을 쓰지 않는다면 생명을 건질 수가 없다.

죄인을 구원에 이르도록 하는 과정에서 갈들이 존재하는 것과 같이 영적 무지를 깨우치는 데는 고통이 수반된다. 육신의 병을 고치는 것이 의사라면 목회자들은 영적 질병을 치유하는 사람이다. “영적 무지”라는 질병은 무감각하다는 면에서 육신의 문둥병과 증세가 비슷하다. 이러한 환자들을 치료해야 할 사람은 바로 목회자이다.

무지한 사람들이 목회자인 당신을 찾아 올 것이라고 생각지 말라 앞서 말했듯이 그들은 영적으로 장님이나 다름없기에 스스로 당신에게 다가올 수는 없다. 혹시 그들이 자신의 상태가 심각하다고 느끼고 있더라도 그것만으로는 문제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것은 마치 환자들이 자기가 병에 걸렸음을 알고도 치료받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과 같다. 따라서 병을 고치겠다는 마음보다는 그 병을 숨기는데 정력을 소모한다. 영적으로 무지한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당신이 맡고 있는 교회의 교인 수가 많을 경우, 일일이 개개인의 영적 상태를 점검하기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최선을 다 할 필요는 있다. 예를 들어 큰 저택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그 저택에 손질할 곳이 너무 많다고 하자. 그러나 그 사람의 한 달 수입으로는 도저히 그 수리비를 감당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수리는 해야겠고, 돈은 충분하지가 않고, 방법은 하나이다. 한꺼번에 수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조끔씩 형편이 닿는 대로 계속해서 수리를 해나가는 것이다.

당신의 역할은 욥이 말한 바와 같다. “나는 소경의 눈도 되고 절뚝발이의 발도 되고” (욥 29:15) 하나님께서 당신과 같은 목회자를 부르신 것은, “내가 또 내 마음에 합하는 목자를 너희에게 주리니 그들이 지식과 명철로 너희를 양육하리라”(렘 3:15)는 이유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목자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한다면 당신의 존재는 영적 무지 상태에 있는 사람들에게 있어 한낱 장신구만도 못하게 된다. 그렇다면 어떤 방식으로 당신의 양들을 양육해야 할 지 몇 가지 의견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먼저 당신의 영적 상태를 파악해야 한다. 당신 자신이 하나님에 대해 무지하다면 다음과 같은 말씀에 아무런 찔림이 없을 것이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호 4:6)

하나님의 율법에 무지한 목회자가 어떠한 징계를 받게 될 것인지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당신이 겸손하고 인내심이 풍부하고, 죄를 범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설파하는 능력을 소유하고 있지 못한다면 목회자로서의 자격이 없다.

모든 물건은 제 나름대로의 용도가 있기 마련이고, 그에 따르는 능력도 소지해야 한다. 예를 들어 손잡이에 다이아몬드가 박혀있는 칼이 하나 있다고 하자. 그런데 그 칼이 칼로서의 역할 즉, 베는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아무런 쓸모가 없다. 황금으로 덧입혀진 종이 있다고 해도 그것이 아무런 소리를 내지 못한다면 이 역시 종으로서는 아무런 쓸모가 없지 않을까?

이처럼 사역자에게도 나름대로의 역할이 주어졌는데 그것은 바로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는 일이다. 따라서 이러한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는 사역자는 본분을 잃게 된다.

사역자들은 또한 빛으로서 부름을 받았다. 어둠을 밝혀야 할 빛이 그 역할을 담당하지 않는다면 무엇으로 어둠을 퇴치하겠는가? 또한 많은 수의 탑승객을 실어 날라야 하는 비행기 조종사가 방향판을 무시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만일 사역자들이 말씀 연구에 게으른 탓으로 교인들이 영적 조난을 당한다면 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둘째 사역자가 나태하게 되면 교인들의 무지는 깊어진다. 어린아이를 양육하는 어머니가 게을러서 아이를 돌보지 않는다면 그것은 마치 아이에게 줄 젖이나 우유를 가지고 있지 않은 경우보다 더 심각하다.

목회자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지식을 성도들의 양육에 사용하지 않는다면 당신이 아무리 오랜 훈련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말짱 헛일이 되고 만다. 이렇듯 쓸모없는 목자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화 있을진저 양떼를 버린 못된 목자여 칼이 그 팔에, 우편 눈에 임하리니 그 팔이 아주 마르고 그 우편 눈이 아주 어두우리라” (슥 11:17)

영적 양식이 코앞에 주어졌는데도 먹지 않는다면 그것은 사람들의 죄로 돌리겠으나 영적 양식을 공급해야 할 사람이 그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한다면 누구의 잘못일까?

셋째 횡설수설하는 설교는 교인들을 영적무지에 빠지게 한다. 목회자가 두서없는 설교를 하게 되면 교인들은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하게 되고 결국은 영적으로 도태된다. 더구나 말씀이 잘못 전달될 때의 심각성이란 차라리 교인들이 무지 상태로 있는 것만 못하다. 다시 말해서 교인들을 무지상태로 내버려두는 것이 그들의 영적 눈을 거짓 말씀의 물감으로 더덕더덕 칠하는 것보다도 낫다는 것이다.

교인들의 영적 허기를 알맹이 없는 말만 번드르르한 설교로 채워주는 것은 탕자의 배를 채우던 쥐엄 열매만도 못하다.

또한 복잡하게 신학적 논리만 전개하는 설교는 평범한 교인들에겐 마치 외국어를 듣는 듯 할 것이다. 이러한 실수는 공부를 많이 한 목회자일수록 잘 저지르게 된다. 물론 극소수의 사람들에겐 마음에 드는 설교가 되겠지만 당신의 설교를 듣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평범한 사람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교회 내의 다수가 영적 양식의 부족으로 굶주려 있는데 몇몇 사람만 풍족함을 누린다면 어떻게 될까? 어린아이에겐 고기 덩어리보다는 우유가 필요하다는 것을 기억하고 영적으로 어린교인들에게 알맞은 설교를 하도록 하라.

엉터리 건축가는 기초 공사를 제대로 할 생각도 안하고 건물의 골격만 높게 세운다. 높은 건물을 지으려면 튼튼한 토대 위에 골격이 세워져야 한다. 교인들 중 영적으로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들을 잘 양육하는 것이 바로 기초 공사를 잘하는 것이다. 또한 영적으로 성숙한 몇몇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양육되는 과정을 지켜보아줄 필요가 있다. 이런 성숙한 자들은 마치 건물의 골격과 같지만 본인들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기 위해서는 기초 공사가 다 될 때까지 인내하며 기다리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온전한 건물이 설 수 있는 지름길이다.

끝으로 목회자들의 삶이 거룩하지 못하면 교인들은 영적 기갈을 면치 못하게 된다. 목회자들의 생활이 바로 서 있지 않은 것은 마치 요리사가 더러운 앞치마를 두른 채 음식을 내놓는 것과 같다. 그렇게 하면 식사를 하는 사람들은 행여 음식에 더러운 것이 들어있지 않을까 해서 선뜻 먹기가 꺼려진다.

반면에 목회자가 너무 의로운 면만을 보이려 “자기 의”에 빠져 자신만만하게 교인들을 대한다면 교인들은 기가 질려 선뜻 자신의 문제점을 꺼내 놓고 의논을 하지 못한다. 즉 목회자의 생활이 불경건한 것도 탈이지만 너무 거룩하게 보이는 것도 평범한 교인에겐 거리감을 준다.

바람직한 목회자란 마치 능숙한 낚시꾼처럼 조심스레 물고기를 유혹한 뒤 결정적인 순간에 낚아채어서 바구니에 넣는 것과 같다. 이처럼 유능한 목회자는 교인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잘 파악하여 그들을 가깝게 다가오게 한 뒤 하나님의 은혜의 그물에 사로잡히게끔 한다.                    

 

         -그리스도인의 전신갑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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