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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날 다시 만날 목사들과 교인들 1 (조나단 에드워드)

조나단 에드워즈

by 김경호 진실 2011. 9. 8. 09:29

본문

심판날 다시 만날 목사들과 교인들 1 (조나단 에드워드) 

1.목회자와 교인들이 심판 날 어떤 방식으로 서로 만나게 될 것인가?

“너희가 대강 우리를 아는 것같이 우리 주 예수의 날에 너희가 우리의 자랑이 되고 우리가 너희의 자랑이 되리라” (고후 1:14)

바울 사도는 고린도후서 1장의 앞부분에서 자신이 사역하는 동안 겪은 큰 어려움이 무엇인지를 말합니다. 본문과 바로 앞의 두 절에서는 어려움 가운데서 받은 위로와 격려가 무엇인지를 말합니다. 특히 여기에는 4가지 사실이 담겨 있습니다.

첫째, 바울 자신의 양심이 이를 증거 합니다. 12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특별히 너희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써 하되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함은 우리 양심의 증거 하는 바니 이것이 우리의 자랑이라.”
둘째, 바울 사도는 자기 양심이 자기에게 증거가 되는 것처럼 지금 자신이 편지를 쓰고 있는 고린도 교인들의 양심이 자기의 위로라고 말합니다. 고린도 교인들의 양심이 심판 날에 바울에 대해 증거 할 것입니다.
셋째, 바울 사도가 자신의 사역의 수고와 고통을 통해 얻기를 원하는 복된 열매는 마지막 큰 심판의 날에 있을 고린도 교인들의 행복과 영광입니다.
넷째, 바울은 자신이 고린도 교회에서 사역한 것에 대해, 자신의 재판장이 그 날에 자기의 신실함을 인정해 주시고, 보상해 주실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이 마지막 항목의 세 가지는 본문과 바로 앞의 두 절에 분명히 나타나 있습니다. 그리고 사실 네 가지 모두가 본문에 다음과 같이 함축되어 있습니다. 즉 본문에는 고린도 교인들이 바울을 영적 아버지로, 자신들 가운데서 신실하게 사역한 사람으로, 심판 날에 자기들이 받을 기쁨과 영광의 수단으로, 심판 날 기쁨으로 함께 만날 사람으로 인정하고 있음이 함축되어 있습니다.
본문에는 사도 바울이 그 날에 재판장 앞에서 고린도 교인을 기쁨으로 만나 자신의 사역의 열매로 그들이 받은 영광을 보고 기뻐할 것이며, 그래서 고린도 교인들은 사도 바울의 기쁨이 될 것이라는 사실이 함축되어 있습니다. 또한 사도 바울이 기대하는 것은 자신과 고린도 교인들이 재판장 앞에서 틀림없이 만나게 될 것인데, 그 때 가장 위대한 재판장께서 자신을 인정해 주실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 때 재판장은 자신의 신실함을 인정해 주시며, 이것이 바울의 영광이 될 것입니다. 말하자면 재판장께서 바울에게 고린도 교인들을 바울의 기쁨의 면류관으로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사도 바울이 자기 양심에 이런 확증이 없었다면 이런 소망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의 말은 바울이 자기 양심의 증거를 가지고 있음을 아주 강력한 방식으로 함축해 주고 있습니다.

이 네 가지 항목 속에 모두 내포되어 있으며, 본문의 모든 부분 속에 담겨 있는 다음과 같은 주제를 가지고 오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교리) 목회자와 교인들은 심판 날 그리스도의 재판석 앞에서 반드시 서로 만나야만 한다.

목회자와 교인들은 아무리 긴밀하게 연합되어 있더라도 이 세상에서는 헤어져야만 합니다. 만일 생전에 헤어지지 않았다면 죽음이 반드시 헤어지게 만듭니다. 또한 살아 있는 동안 헤어질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변화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세상에는 확실하거나 안정적인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세상에서는 조금만 세월이 지나도, 태양의 위치가 조금만 바뀌어도, 어떤 사람이나 가족, 마을이나 교회, 나라에 이상한 일이 생기거나 놀라운 변화가 생깁니다. 가장 단합이 잘 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가장 분열되고, 가장 거리감이 생기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서로 가장 존중하고 긴밀하게 연합되어 있는 목회자와 교인들이 생각이 달라지거나 감정이 식어질 뿐 아니라 한쪽이 다른 쪽에 해를 입히거나 양자 사이의 모든 관계가 해소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목사가 먼 곳으로 떠나서 이 세상에서는 더 이상 서로 보지 못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그렇게 되더라도 목회자와 교인들이 반드시 한 번 더 만나야 할 때가 있습니다. 이 때는 마지막 큰 심판 날입니다.

나는 앞으로 세 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목회자와 교인들이 어떤 방식으로 심판 날 어떤 목적으로 서로 만나게 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둘째, 목회자와 교인들이 심판 날 어떤 목적으로 서로 만나게 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은 어떤 이유로 목회자와 교인들이 그런 방법, 그런 목적으로 서로 만나게 하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1.목회자와 교인들이 심판 날 어떤 방식으로 서로 만나게 될 것인지를 보여 드리겠습니다.
이 문제에는 일반적으로 두 가지 사실이 관련되어 있습니다. 첫째, 목회자와 성도들은 심판 날 모든 인류가 서로 만나는 방식으로 만나지는 않을 것입니다. 목회자와 성도들의 만남에는 어떤 특별한 것이 있을 것입니다. 둘째, 목회자와 교인들이 심판 날 서로 만나는 것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집에서 서로 만나는 것과는 아주 다를 것입니다.

첫째, 목회자와 교인들은 심판 날 온 세상이 서로 만나는 방식으로 만나지는 않을 것입니다. 두 가지 차이점이 있습니다.
온 세상이 그 때 함께 있게 될 것이고, 모든 세대의 모든 인류가 선택받은 천사나 타락한 천사를 막론하고 모든 천사와 함께 하나의 거대한 회중으로 모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이 모인 모든 회중 각 개인에 대한 구별되는 특별한 지식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가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비록 사람들의 능력은 이 세상에서보다 훨씬 더 많아지겠지만 무한하게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비록 사람들의 이해력과 인지력은 크게 확장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람이 신격화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유한한 지성의 본질상 어떤 사람은 그 날 다른 사람보다 특정한 사람에 대한 지식이 더 많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다른 사람보다 특정 사람에 대해 더 큰 관심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서로 특별한 관계를 형성했던 사람들에 대해 더 큰 관심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왕과 신하들, 지상의 재판관과 재판받은 사람들, 서로 대화를 나누었던 이웃들, 거래하고 논쟁한 사람들, 한 집안 식구들이 그 때 만나게 될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특별히 목회자와 교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본문은 분명히 그 날에는 목회자와 교인들이 서로 각자의 관점이 있을 것이며, 분명하게 서로를 알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을 보여 줍니다.

비록 그 때에 그들은 온 세상을 만나게 될 것이지만 모든 사람에 대해 어떤 직접적이고 특별한 관심을 갖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때 함께 모이게 될 대다수 사람들은 지상에서 서로 관계가 없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심판받는 것에 대해서는 서로 관심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목회자들과 목회자들에게 목양을 받았던 교인들은 서로에 대해 아주 직접적인 관심을 가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목회자와 교인들은 반드시 특별히 만나게 될 것이고, 함께 재판장에게 인도될 것이며, 모든 것을 심판받아야 할 위대한 날에 있을 모든 일에 대해 서로에게 깊은 관심을 갖게 될 것입니다.

둘째, 그러므로 목회자와 교인들의 만남은 만남의 방식에 있어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만나는 방식과는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목회자와 교인들의 만남은 이 세상에서 서로 만나던 것과는 크게 다를 것입니다.
목회자와 교인들은 관계가 계속되는 동안 이 세상에서 자주 함께 만납니다. 목회자와 교인들은 공적인 예배와 교회의 행정적인 일들을 처리하기 위해 주일마다 만나고, 그 밖의 시간에도 만납니다.
이 외에도 그들은 자주 만나 교회에 필요한 여러 안건을 의논하고 결정하며, 교회의 권징을 처리하고, 공적으로 순결과 선에 관련된 일들을 처리합니다. 그러나 목회자와 교인들이 심판 날 만나는 것은 만남의 방식과 환경에 있어 이 세상에서 서로 만나던 것과는 아주 다를 것입니다. 이러한 몇 가지 특징을 말씀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지금 이 회중 속에 있는 죄인들은 목사의 사역과 수고를 통한 하나님의 복을 받아,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죄와 저주의 진노의 상태에서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상태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특권을 누릴 수 있는 상태로, 영원한 기업을 받기 합당한 상태로 변화될 가능성, 즉 구원받을 가능성이 있는 상태에서 목회자를 만납니다. 또한 성도들은 지금 부패가 많이 남아 있는 상태, 때로 큰 영적인 어려움과 고통을 가진 상태로 목회자를 만납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아직 자신들의 상태를 행복하게 변화시킬 수 있는 수단을 사용할 수 있으며, 더 큰 자유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예배에 참석하면서 소망을 가질 이유가 있고 또한 하나님은 일반적으로 목회자를 교인들에게 은혜 주시는 도구로 삼기를 기뻐하십니다. 목회자와 교인들은 지금 이러한 행복한 변화를 만들기 위해 만납니다. 목회자와 교인들은 이 세상에서 이러한 진지한 만남을 통해 큰 유익을 추구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심판 날에 서로 만나게 될 때는 상황이 전혀 달라질 것입니다. 그 때는 이런 변화를 초래하는 수단을 사용하기 위해 만나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두 불변의 상태에서 만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죄인들은 불변의 상태에 있게 될 것입니다. 죄인들은 그 때 죄책과 죄의 권세 아래 있을 것이며,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을 것이고, 변화에 대한 어떤 가능성도 없을 것이며, 구제나 치료 혹은 수단을 사용해서 더 좋아질 아무런 희망 없이 자신의 목회자들을 만날 것입니다. 또한 성도들은 이미 이전에 남아 있던 온갖 부패, 유혹, 재난에서 완전히 해방될 것입니다 그래서 목회자들의 사역을 통해 은혜의 수단을 사용하여 또 다른 해방이나 행복을 이룰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 때는 이렇게 선언될 것입니다.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하게 하라”(계 22:11).

목회자들은 교인들의 길잡이와 선생이며, 교회에서 빛과 같습니다. 목회자들은 현재의 상태에서 때때로 교인들을 만나 가르치며, 빛을 비추어 주며, 잘못을 바로잡아 주며, 교인들이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치우지려고 하면 “이 길이 정로니 너희는 이 길로 행하라”(사 30:21)고 외칩니다.
또한 합당한 증거를 가지고 진리를 확증해 주며, 오류와 잘못된 견해를 논박하며, 잘못된 것은 바로잡아 주고, 의문은 풀어 줍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와서 심판하실 때, 모든 오류와 잘못된 견해가 드러나게 될 것이며, 모든 거짓과 속임수가 그 날의 빛 앞에서 제거될 것입니다. 이는 밤의 어두움이 떠오르는 태양 앞에서 사라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의 모든 교리는 온전히 드러나게 될 것이며, 모든 사람은 확실하게 될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진리에 대해 큰 확신을 가질 것이며, 잘못을 바로잡는 데 어떠한 실수도 없을 것입니다.

지금 목회자와 교인들은 신앙에 대한 어떤 문제에 대해 견해가 다를 수 있으며, 때로 만나 서로 다른 견해에 대해 논의하며, 서로의 입장을 들을 수 있지만 서로 자신이 주장하는 진리를 확신시키는 데는 실패할 수 있습니다.
또한 목회자와 교인들이 만나 의견이 서로 나누어져 이전보다 더 이상 의견 일치를 보지 못하며, 잘못된 견해를 계속 견지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목회자와 교인들의 만남이 의견 분열로 인해 불쾌한 토론과 논쟁이 벌어지고, 심한 선입견 때문에 공정한 판단을 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빛과 확신이 아니라 어둠이 증가하고, 진리에 대한 반발심이 생겨나며 서로 감정이 상하는 일들이 생깁니다.
그러나 목회자와 교인들이 최후의 심판 날 가장 위대한 심판자의 재판석 앞에서 함께 만나게 될 때, 그리스도의 생각과 뜻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더 이상의 논쟁이나 의견 차이가 없게 될 것이며, 진리의 증거가 분명히 드러나서 모든 논쟁이 끝나며 어느 주장이 옳은지가 영원히 결정될 것입니다.

지금 목회자와 교인들이 만나는 것은 죄인들의 양심에 빛을 비추어 각성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죄의 심각성과 위험성, 율법의 엄격함, 죄인들의 생각과 행동의 악함, 죄인들이 받아야 할 큰 형벌, 죄인들에게 드리워져 있는 진노, 죄인들의 선을 행할 수 없는 무능함, 눈멀고 가난함, 무기력함 등을 죄인들에게 밝혀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노력이 종종 실패합니다.
목사들의 모든 권면에도 불구하고 죄인들은 여전히 어리석고, 각성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최후의 심판 때 목회자와 교인들의 마지막 만남 때는 그렇지 않습니다. 죄인들이 위대한 심판자 앞에서 자신의 목회자였던 자들을 만나게 될 때, 각성되지 않은 양심을 가진 채 만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 때 죄인들은 이전에 목회자에게서 들었던 하나님의 위대함과 위엄, 하나님의 거룩과 죄를 미워하심, 죄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무서운 공의, 하나님의 율법의 엄중함, 하나님의 심판의 무서움, 죄인들의 말할 수 없는 죄책과 비참 등의 진리에 대해 충분한 확신이 생길 것입니다. 죄인들은 이 모든 진리에 대해 더 이상 무감각하지 못할 것입니다. 양심의 눈이 완전히 밝아져서 다시는 눈먼 상태에 있지 못할 것입니다. 양심의 입이 열려서 다시는 닫히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목회자들이 공적인 자리나 사적인 자리에서 교인들을 만나는 것은 교인들의 영혼의 상태를 보여 주기 위한 것입니다. 목회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열어 적용해 주며, 교인들이 자신의 마음을 비추어 보며, 자신이 처해 있는 상태를 볼 수 있도록 해 줍니다. 그러나 지금 목회자들은 자기 교인들의 영혼의 상태를 분별하는 데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목회자들이 최선의 방법을 사용한다 해도 실수가 생길 수 있으며 종종 실수하기도 합니다. 교인들도 자기 목사의 상태나 서로의 상태를 분명하게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큰 위선자가 탁월한 성도로 평가될 수도 있습니다. 또는 반대로 비난받고 사랑이 없다고 여겨지던 사람이 실제로 하나님의 보석인 수도 있습니다. 또한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의 상태에 대해서도 잘못된 판단을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하나님의 진노의 자녀로 있는 사람이 자신을 높이 평가하며 자신을 하나님의 귀중한 성도요 존귀한 자녀라고 생각하는 수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종종 자신은 행복하고 안전한 상태에 있다고 확신하며, 자신은 참된 성도일 뿐만 아니라 탁월한 성도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진노의 자식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가장 신실하게 선포되는 회중 가운데서도 이런 일이 종종 일어날 수 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목회자들이 가장 분명하게 진리를 전달하고, 하나님 말씀의 교리와 법칙들을 청중의 영혼에 가장 분명하게 적용함에도 불구하고 이런 일이 생깁니다.

그러나 심판 날에는 상황이 전혀 다릅니다. 그 때는 모든 마음의 비밀이 드러나며, 모든 사람의 상태가 완전하게 알려지게 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4장 5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것도 판단치 말라 그가 어두움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드러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심판 날에는 어느 누구도 자신의 상태에 대해 속지 않을 것이며, 자신의 상태를 분명하게 알게 될 것입니다. 자기기만과 자기기만을 기초로 한 위선자들의 헛된 소망은 영원히 끝장 날 것입니다.

심판 날에는 모든 사람이 서로의 영혼의 상태를 알게 될 것입니다. 교인들은 자기 목회자가 신실하고 충성스러운 사람이었는지 아닌지를 알게 될 것이고, 목회자들은 모든 교인의 상태를 알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과 규례가 누구에게는 생명의 향기가 되었는지, 또 누구에게는 죽음의 향기가 되었는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현재 상태에서는 목회자와 교인들이 서로 만나 교회 문제를 토론하며, 운영해 나갈 때, 특히 논쟁이 벌어지는 상태에서는 서로 상대방의 입장과 견해를 비난하는 일이 종종 발생합니다. 목회자와 교인들은 서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원리와 목적에 영향을 받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의 판단과 상대방에 대한 비난이 크게 잘못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최후의 심판 날 목회자와 교인들이 만날 때는 참되고 완전한 빛 아래서 모든 사람들이 행동했던 원리와 목적이 분명하게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잘못과 모든 부당한 비난이 끝장나게 될 것입니다.

목회자들은 지금은 종종 교인들을 만나 영원하며, 불변하여, 보이지 않는 왕에 대해 설교하고, 하나님이 계심을 확신시키며,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선포합니다. 또한 하나님이 세상을 통치하시고 심판하심을 확신시키며, 미래에 있을 상급과 형벌에 대해 가르칩니다. 또한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하나님의 하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 그리스도에 대해 설교합니다. 그리스도는 심판 날 자기 백성에게 가장 위대한 하나님이며 구주요 재판관으로서 가장 분명하게 나타나실 것이며, 큰 영광 가운데, 거룩한 천사들을 대동하고 가장 분명하고 공개적인 방식으로 나타나실 것입니다. 심판 날 교인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주님에 대해, 미래의 재판관이신 그리스도에 대해 들으려고 모이지는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그들이 지상에서 함께 모였을 때 들었던바 재판관이며, 위대한 왕이시며, 큰 영광과 위엄을 가지신 분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목회자와 교인들이 서로 만날 때는 서로 부주의하고 조심성이 없는 수가 많습니다. 많은 사람이 공적 예배에서 하나님께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거나 자신의 생각이나 기분에도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또한 자신들이 해야 할 임무를 다하지도 않으며, 자신들이 모이는 목적에 대해서도 모르는 수가 많습니다.
그러나 심판 날의 만남은 전혀 다를 것입니다. 부주의한 마음이 있거나 졸거나 자신들이 모인 목적을 몰라 방황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모든 교인은 그리스도께 듣게 될 것들에 대해, 또는 그들이 이전에 그리스도께 듣거나, 목회자에게서 그리스도에 대해 들었던 것에 대해 주의를 집중할 것입니다. 또한 교인들은 목회자가 재판관 앞에서 자기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에 주의를 기울일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심판 날 그리스도의 재판석 앞에서 현재 서로 자기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목회자와 교인들이 미래에 만나게 될 방식과 상황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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