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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고난을 주시는 이유(토마스 보스톤)

토마스 보스톤

by 김경호 진실 2011. 9. 9.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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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고난을 주시는 이유(토마스 보스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인생 여정에 고난을 만들어 주시는 것일까요?”
우리는 인생 여정에 고난을 주시는 하나님의 계획을 규명함으로써 이 질문에 대한 선명한 답을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인생 여정 가운데 만나는 고난을 그리스도인답게 활용하기 위해서 모든 사람이 알아야 하고 조심스럽게 살펴보아야 할 문제입니다.
인생 여정에 고난을 주시는 하나님의 목적은 크게 일곱 가지로 말할 수 있습니다.

첫째 우리의 영적 상태를 시험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은혜의 상태에 있는지 아닌지를 시험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신실한 그리스도인인지 아니면 위선자인지를 시험하기 위해서입니다. 물론 모든 고난은 우리에게 괴로움을 줍니다. 그러나 제가 이해하기로 사람이 자신의 영적 상태에 관련하여 하나님의 중대한 시험을 받게 되는 때는 바로 고난을 당할 때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고난이라는 것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지속적으로 겪어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고난을 겪는 사람은 그 속에서 자기 자신의 참된 모습을 되풀이하여 드러내고 보여 주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욥의 상태를 시험하신 것도 바로 이와 같은 이유에서였습니다. 욥을 시험하는 데 있어서 쟁점이 되었던 것은 하나님 자신의 증거대로 과연 욥이 정직하고 신실한 성도인가, 아니면 사단의 주장대로 과연 욥이 단지 돈을 보고 하나님을 섬기는 위선자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문제를 확인해 보는 일은 욥의 인생에 고난을 일으킴으로써 이루어졌습니다(욥 1:8-12, 2:3-6). 이와 같이 오늘날에도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천국에 들이시기 전에 과연 그들이 천국에 합당한 사람들인지를 시험하십니다.

둘째 우리에게 경건한 의무의 이행을 촉구하고 이 세상에 대한 애착으로부터 우리를 건져내며 내세의 행복을 추구하도록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사람들은 고난을 겪으면서 이 땅에는 안식이 없다는 사실을 절실하게 깨닫게 됩니다. 그들은 안식을 얻고자 피조물에게 머리를 기댈 때마다 거기에는 항상 불안이라는 찌르는 가시가 있다는 사실과 피조물에 기댔던 자신들의 머리를 다시 들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고서는 이 세상에는 그 어떤 소망도 전혀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고, 다른 방식으로 안식을 찾기 시작합니다.
누가복음에 기록된 탕자가 바로 이런 상태에서 제 정신을 차렸고 아버지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품게 되었습니다(눅 15:17).
이렇듯 고난은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찾도록 만듭니다. 고난을 겪기 이전에는 하나님을 찾지 않았지만 고난을 겪게 되면서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그들의 인생이 그들의 소원대로 척척 전개될 때에는 내세의 위로가 그들에게 아무런 맛도 없었지만, 이제 그들은 자신들이 내세의 위로를 필요로 함을 느끼는 고로 하나님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 우리가 범한 죄를 깨닫게 해주기 위함입니다.

어떤 사람이 조심하지 않고 함부로 걸음을 걷다가 갑자기 발목을 삐어서 절뚝거리며 걷게 되면, 그 사람은 남은 거리를 절뚝절뚝 걸어가면서 자신이 이전에 발을 잘못 내딛어서 그렇게 되었음을 확실히 깨닫게 됩니다. 그 사람은 걸음을 새롭게 내딛을 때마다 매번 고통을 느끼게 되고 그 때마다 자신이 이전에 발을 잘못 내딛었던 일을 새로이 기억하게 됩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도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이전 과오나 악행을 깨닫게 하시려고 우리의 인생 여정에 고난을 주십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고난을 주시지 않는다면, 죄인들은 자신들의 이전 과오나 악행을 간과해 버리고 망각해 버리며 가볍게 취급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인생 여정에 일어나는 고난은 그들로 하여금 그것을 상기하게 만들고, 그것을 악하고 쓰라린 것으로 보게 하며, 그것을 지속적으로 기억하게 함으로써 그들의 마음은 그것을 인하여 자주 애통할 수 있게 됩니다.
요셉의 형들을 기억해 보십시오. 그들은 애굽에서 곤경을 당하자 자신들의 과거 악행을 부끄러워하며 그것을 다음과 같이 실감나게 표현했습니다.
“우리가 아우의 일로 인하여 범죄하였도다. 그가 우리에게 애걸할 때에 그 마음의 괴로움을 보고도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괴로움이 우리에게 임하도다”(창 42:21). “하나님이 종들의 죄악을 적발하셨으니…”(창 44:16).  

넷째 우리를 교정하거나 죄를 징계하시기 위함입니다.

 “네 악이 너를 징계하겠고 네 패역이 너를 책할 것이라”(렘 2:19)라는 말씀이 가장 분명하게 입증되는 것은 고난을 통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의 죄를 한동안 눈감아 주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나중에 그 사람의 인생 여정에 고난을 주심으로써 자신의 진노를 표시하십니다.
비록 사람의 죄가 잠시 있다 사라지는 행동이거나 오래 지속되지 않는 행동일지라도 고난을 통해 죄인에게 찍혀지는 바 그것에 대한 하나님의 불쾌감의 표시는 오랫동안 그리고 심각하게 고통을 줄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그 죄인은 반복되는 경험을 통해서 죄가 얼마나 악하고 비통한 것인지 알 수 있게 됩니다.
다윗이 암몬 사람들의 칼로 우리야를 죽인 일은 금방 끝났습니다. 그러나 그 죄로 인하여 다윗의 집에는 칼이 결코 떠나지 않았습니다(삼하 12:10).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는 거짓말과 속임수로 나아만 장군으로부터 은 두 달란트와 옷 두 벌을 챙겼습니다. 이것은 아주 짧은 시간에 이루어진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불경스런 속임수에 대한 신적 진노의 영구한 표시로 게하시는 문둥병에 걸려 평생 문둥병자로 살았고 그가 죽은 후에는 그의 후손들이 문둥병에 걸렸습니다(왕하 5:27).

이런 일은 하나님의 영원한 진노를 받아야 하는 죄책을 사함 받지 못한 사람뿐만 아니라 그것을 사함 받은 사람에게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진실하게 회개했다면, 그 죄는 그 사람을 지옥으로 끌고 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죄는 그 사람으로 하여금 죽을 때까지 절뚝거리며 걷도록 만들 것입니다.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여, 주께서는 저희에게 응답하셨고 저희 행한 대로 갚기는 하셨으나 저희를 사하신 하나님이시니이다”(시 99:8).

다섯째 죄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가시로 그 길을 막으며 담을 쌓아 저로 그 길을 찾지 못하게 하리니”(호 2:6). 인생의 여정에 일어나는 고난을 가만히 살펴보면, 그것은 사람의 마음에 자리잡고 있는 악한 성향, 특별히 그 사람을 지배하고 있는 악한 성향에 반하는 것임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고난은 그 악한 성향이 그 사람으로 하여금 치우쳐 걷도록 만드는 길을 가로막는 가시울타리나 담과 같습니다.
이 세상에서 사람의 마음을 더럽게 하는 것들은 사람에게 있는 특별한 기질과 부합하기 때문에 사람들의 마음을 특별하게 사로잡고 매혹적인 것으로 보이게 됩니다. 그러나 고난을 통하여 그것들의 겉치장과 허식은 벗겨지게 되고, 그 결과 그것들은 이전의 매혹적인 외관을 잃게 됩니다.
이리하여 부패한 정서의 예리함은 무디어지고 유혹은 기세가 꺾이며 많은 죄가 미연에 방지됩니다. 그리고 죄인은 자신의 길을 바꾸어 부지런히 돌아다니다 수치를 당하며 돌아오게 됩니다(렘 2:36,37).
그러므로 주님께서 어떤 사람의 인생에 고난을 주심은 그 사람으로 그 꾀를 버리게 하려 하심이며 사람에게 교만을 막으려 하심입니다(욥 33:17). 주님께서는 그렇게 하심으로써 사람의 혼으로 구덩이에 빠지지 않게 하시며 그 생명으로 칼에 멸망치 않게 하십니다(욥 33:18). 아무런 고난도 없이 순탄하게 삶을 살았더라면 그들은 헛된 마음과 부패한 정서 때문에 분명 여러 가지 극단으로 치달았을 터인데, 고난 때문에 그렇게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섯째 성도들 안에 숨어 있는 것이든 아니면 죄인들 안에 숨어 있는 것이든 부패함을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모든 사람의 마음 속에는 이를테면 표면에 아주 가까이 위치하고 있어서 조그마한 변화만 있어도 금방 불쑥 솟아 나올 것만 같은 부패함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 편에서는 마음 속 너무나 깊은 곳에 위치하고 있어서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 부패함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고난은 사람의 마음 속 깊고 깊은 곳에 숨어 있는 부패함들을 끄집어 올려 밖으로 드러냅니다.
고난이 없었더라면, 그 사람은 자기 자신 안에 그런 부패함들이 있을 것이라고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지만, 고난이 그것들을 끄집어 올려 밖으로 드러냅니다.
므리바 물가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크게 분노한 모세를 생각해 보십시오.
온유한 모세의 마음 속에 그토록 강렬한 격정이 숨어 있으리라고 누가 짐작이나 했겠습니까? 모세는 그 일 때문에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죽음을 맞아야 했습니다(시 106:32,33, 민 20:13). 사람들의 마음 속에 숨겨져 있는 부패함들을 드러내는 것 자체는 죄인들에게 마땅히 있어야 하는 겸비함에 꼭 필요하며 모든 영광의 교만을 욕되게 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 자신의 실체를 보게 하는 데 필요합니다.

일곱째 하나님의 자녀들로 하여금 받은 바 은혜를 사용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신자들 안에는 잔존하는 부패함이 내재하고 있고, 그 때문에 신자들은 때때로 영적 태만함과 무기력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들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혜는 한동안 사용되지 않게 됩니다.
더욱이 그 자체적인 특성상 특별한 경우에만 이따금씩 사용되는 은혜들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인내와 오래 참음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고난은 그리스도인을 각성케 하여 부패함에 짓눌려 있던 여러 가지 은혜들을 사용하도록 만드는 역할을 합니다.
동시에 고난은 특별한 경우에만 이따금씩 사용되는 여러 가지 은혜들에 부합하는 상황을 제공해 줌으로써 그 은혜들이 행동을 하도록 촉구하는 역할도 합니다.
사실 고난은 사람들이 진면목을 드러내게 만드는 신적 섭리의 위대한 수단입니다. 물론 고난은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크게 곤란을 느끼게 만들어 그로 하여금 잠시 주춤거리게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 고난은 그리스도인 안에 있는 은혜의 실재와 능력을 함께 입증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벧전 1:6,7). 이번에는 모세를 생각해 보십시오. 성경은 모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증거합니다.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민 12:3). 모세는 온유함이라는 은혜에 있어서 탁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인생을 어떻게 다루셨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도록 하셨는데, 그들은 매우 완악하고 다루기 힘든 백성이었습니다. 이것은 모세에게 있는 온유함이 활용되도록 하려는 의도로 이루어진 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어떤 은사에 있어서 탁월하게 만드신 후에 반드시 이런 저런 기회를 통하여 그 은사를 전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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