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사신들(로버트 맥체인)
“이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로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구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후5:20-21)
이 말씀을 통해 다음 세 가지 사항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라는 말씀 속에 신실한 사역자들의 특성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우리 사역자들은 자신의 이름으로 여러분에게 나아가지 않습니다.
(2) "하나님과 화목하라"는 말씀 속에 우리 메시지의 본질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분노의 메시지가 아니라 은총의 메시지를 전해야 합니다.
(3)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이라는 말씀 속에는 우리의 사신됨의 근거가 내포되어 잇습니다. 만일 우리에게 그런 근거가 없다면, 하나님과 화목하라고 권면하는 우리가 도리어 조롱당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분명한 근거가 있습니다.
이 세 가지 사항들을 두루 고찰하되, 마지막 것을 맨 먼저 보기로 합시다.
1. 하나님이 사역자들을 보내심에 있어 그들을 사신으로 삼으시는 근거는 무엇일까요?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은 21절에서 제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 말씀 속에는 다음 세 가지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1) "그리스도는 전혀 죄를 알지 못합니다."
(2) "하나님이 그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셨습니다."
(3) 이를 통해 이루신 목적은 -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입니다.
(1) 그리스도에 관한 묘사에 주목해 보십시오.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 나는 그리스도에 관해 묘사하는 하나님의 말씀 중 가장 두드러지는 내용이 바로 이 구절이라고 믿습니다. 그분은 탄생 때부터 거룩하셨던 것으로 언급됩니다. 천사가 마리아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눅1:35). 그분의 삶 또한 거룩했습니다.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히7:26). 또한 그분의 죽음까지도 온전히 거룩했습니다.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히9:14). 더욱이 형제들이여, 고린도후서 본문에서는 좀더 색다른 방식 -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 말하자면 그분은 자기 마음속에 죄악을 품는 것이 무엇인지조차 모르셨다는 것입니다 - 으로 설명합니다.
형제들이여, 우리는 이를 통해 그리스도께서 얼마나 순전한 분인지를 배워야 할 것입니다. 아가서 5:16은 "그 전체가 사랑스럽구나"하고 전합니다. 승리한 성도들이 황홀한 심정으로 "주여 누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오리이까 오직 주만 거룩하시니이다"(계15:4)라고 노래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그분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다"는 것은 - 마치 샤론의 수선화가 아름답게 핀 모습과도 같습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께서 죄를 알지도 못하시기 때문에 그분을 사랑하십니까? 여러분 중에 그리스도의 이름을 혐오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단지 그분이 죄를 알지도 못하시기 때문입니다.
이를 통해, 그리스도께서 구주로서 얼마나 적합한 분이신지를 배우시기 바랍니다. - "그렇듯 높으신 대제사장께서 우리처럼 되셨습니다." 그가 구주로서 적합하신 이유는 사람이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사실은 - "그가 죄를 알지도 못했다"는 점입니다! "그가 죄를 알지도 못했다"는 것은 - 구주로서 무한히 적합하셨음을 의미합니다. 그분은 죄를 알지도 못하는 대제사장이셨습니다.
(2)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어떻게 대하셨는지에 주목해 보십시오.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 성경에서는 이 사실을 다양한 방식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53장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6절).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은즉"(10절). 베드로도 이와 동일한 언급을 한 바 있습니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벧전2:24).
하지만 고린도후서 본문에서는 이 점을 한층 더 무시무시한 방식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그분의 아들에게 전가하심으로써, 그에게서 죄 이외에는 아무 것도 볼 수 없도록 만드셨습니다. 따라서 그분에게 아름다우신 모습은 전혀 남아 있지 않고 오직 죄만 보입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마치 온통 죄투성이를 다루듯이 대하셨습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회심하지 않은 사람들은 죄투성이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에게 선한 요소들이 많이 있다고 말합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때로는 변덕을 부리고 이따금 술을 마시기도 합니다. 하지만 뭐라고 해도 나는 좋은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죄덩어리인 것을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마음, 여러분의 분별력, 여러분의 감정, 그리고 여러분의 양심이 모두 그러합니다. 형제들이여, 우리를 대신하여 기꺼이 죄를 떠맡으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생각해 보십시오 - 이것이 바로 그분의 사랑입니다.
(3) 이를 통해 이루신 목적이 무엇인지 주목해 보십시오.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는 주목할 만한 말씀입니다. 형제들이여,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죄사함과 칭의가 성경에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언급되고 있습니다. 로마서 3:24에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고 말합니다. 또한 로마서 5:19에서는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고린도후서 본문이 그 점을 보다 온전히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나는 그것이 다음과 같은 뜻을 나타낸다고 생각합니다. 주 예수께 나아가는 자는, 그분의 의가 그를 덮음으로써, 온통 의로 가득해진다는 것입니다.
형제들이여, 여기서 죄인들을 위해 - 혹은 죄인의 괴수를 위해 - 어떤 은총을 제시하고 있는지 주목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얼마나 큰 죄인인지 혹은 얼마나 작은 죄인인지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그리스도께 나아오기만 하면, 그분의 의가 여러분을 덮을 것이며, 그리하여 여러분의 죄는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교우들이여, 이것이야말로 전파할 만한 가치가 있는 복음이 아니겠습니까? 여러분도 루터처럼, "주께서 내 죄가 되셨고, 나는 주의 의가 되었나이다"라고 고백할 수 있기를 바라 마지않습니다.
2. 우리가 사신으로 보내심을 받았다는 사실에 주목하십시오.
"이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로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구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임하셨을 때, 그분은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사신이셨습니다. 그분은 자기 자신의 뜻을 행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보내신 분의 뜻을 행하기 위해 오신 위대한 사신이십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사신으로서 인생들에게 오셨으며, 하늘로 올라가실 때 제자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16:15)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들도 그리스도를 위한 사신들이 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가 어떻게 전파하고 또 어떻게 들어야 하는지를 배우도록 합시다. 우리는 자신의 이름으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나아갑니다. 우리는 제자들이 그리스도께로부터 떡을 받을 때 행했던 것처럼 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분께로부터 메시지를 받아서 여러분에게 전해주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진리를 받아들이느냐의 여부는,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에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권위 있게 전파해야 합니다. 많은 이들은 우리가 하는 말을 기뻐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이르기를 우리가 덜 엄격하게 말할 수도 있었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우리말에 대해 논쟁을 벌입니다. 하지만 만일 여러분이 자신의 마음속을 들여다본다면, 여러분이 논쟁을 벌이는 대상은 우리가 아니라, 바로 그리스도시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더 나아가,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신들이므로 온유하게 말해야 한다는 점에 유의하십시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도 사랑이십니다. 나는 이 점과 관련하여 자칫 실수를 범하여 질그릇 같은 인생의 연약성을 보이게 될까봐 두렵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실 때 가지고 오신 것은 사랑의 메시지였습니다. 다음 말씀 속에는 어떤 사랑이 담겨 있습니까? "다만 그들이 항상 이같은 마음을 품어 나를 경외하며 나의 모든 명령을 지켜서 그들과 그 자손이 영원히 복 받기를 원하노라"(신5:29). 이 말씀은 어떻습니까? "슬프다 네가 나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였도다 만일 들었더면 네 평강이 강과 같았겠고 네 의가 바다 물결 같았을 것이며"(사48:18). 그러면 우리의 메시지는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졌습니까?
3.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는 메시지 자체를 고찰해 봅시다.
여러분이 어떤 자리로 초청받았는지에 주목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하나님과 연합하도록 초청받았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형제들이여, 오늘 여러분을 화목에로 초청합니다. 여러분은 오랫동안 죄 가운데서 지냈습니다. 이제 하나님과 화목할 때가 되지 않았습니까? 죄인들이여, 화목하십시오. 연로한 죄인들이여, 속히 나아오십시오! 젊은 죄인들이여, 어서 나아오십시오! 여러분은 화목의 자리로 나아오도록 촉구받고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제가 간청하오니, 형제들이여, 속히 나아오십시오.
율법이 전해질 당시에 만일 여러분이 시내산에 있었다면 귀를 기울이지 않았겠습니까? 형제들이여, 지금 여러분을 촉구하시는 분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간청하고 계십니다. 죄인인 여러분에게 간청하고 계시는 분은 바로 그리스도십니다. 에워싼 무리들에게 베푸신 그분의 은혜로우신 말씀을 기억하십니까? 혹은 최후의 만찬 때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십니까? 형제들이여, 귀를 기울이지 않으렵니까? 그분은 지금도 여러분을 촉구하고 계십니다.
죄인들이여! 만일 여러분이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간청하시는 하나님을 장차 어떻게 마주 대하시렵니까?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간청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에게 간청하십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여러분에게 간청하십니다. 형제들이여, 여러분은 그분을 조만간 뵙게 될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지금 그분의 음성에 귀기울이지 않는다면,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내가 부를찌라도 너희가 듣기 싫어하였고 내가 손을 펼찌라도 돌아보는 자가 없었고 도리어 나의 모든 교훈을 멸시하며 나의 책망을 받지 아니하였은즉 너희가 재앙을 만날 때에 내가 웃을 것이며 너희에게 두려움이 임할 때에 내가 비웃으리라"(잠1:24-26).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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