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찬송가 공회에서는 한국 교회에서 1983년부터 23년동안 꾸준히 사용하여 왔던 찬송가를 「21세기 찬송가」라는 이름으로 출판하여 지난해 11월 13일(월) 오전 11시에 한국교회 100주년 기념관 소강당에서 출판감사예배를 드렸었다. 이 새 찬송가는 기존에 사용하여 왔던 558장으로 이루어진 찬송가 중에서 76곡을 삭제하고, 164곡을 추가하여 총 645곡으로 구성되었다. 또한 한국인 창작곡이 128곡이나 포함되어 있다.
필자가 우려되는 바는 이러한 한국인 창작곡 중에는 음율이 한국적인 가락이 다분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가사의 내용에 있어서도 한국적이며, 동양적인 내용이 삽입되었다는 점은 피할수 없는 사실인 것이다.
새 찬송가 584장은 ‘우리나라 지켜주신’ 이라는 제목으로 시작되는 곡인데 1절 가사에 ‘억눌렸던 겨레울음 가슴터져 쏟아졌네 만세소리 울린 그 날 태양빛도 눈부셨네‘ 라는 가사가 기록되어져 있고, 2절에 ’말과 글을 찾았으니 주의 은혜 고마워라‘ 는 가사가 기록되어져 있다. 이는 8.15 광복절을 토대로 해서 쓰여진 지극히 한국적인 가사이며,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다.
복음성가 중에서도 ‘예수님이 좋은걸 어떡합니까’ 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노래나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자는 좋은 일이 있으리라‘ 는 가사로 시작하는 노래는 부흥회나 집회때에 애창(?) 하는 노래이다. 이러한 노래 역시 교회의 음악과는 코드(Code)가 전혀 맞지 않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동안 한국교회에서는 한국인의 정서에 맞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끊임없이 불러왔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이 노래는 교회에서 불러서는 안된다.
교회가 세상과 철저히 구별되어야만이 거룩성을 유지하는 것인데 그렇지 못하여 교회의 거룩성을 훼손하는 것이 지금의 교회의 현 주소인 것이다.
특히 다른 부분에서도 그러한 점이 발견되어지지만 특히 음악에서 만큼은 아주 많이 발견되어지는 것이다. 비단 찬송가 뿐만이 아니라 청소년들이 즐겨부르는 성가가 C.C.M.에서는 그러한 요소들이 다분히 발견되어지는 것이다.
앞서 지적했던 두 곡의 복음성가와 C.C.M.에서 발견되어지는 문제점들을 제시하고 대책과 방안을 구해야 할 것이며 현저히 구별해야 할 필요성이 요구되어지는 시대적인 상황속에서 오히려 21세기 찬송가는 그동안 한국교회에서 찬송가 이외에 많이 불려졌던 복음성가도 찬송가에 포함시키게 되었다.
이를 통해 복음성가와 찬송가의 구분점이 사라지게 되었다. 이전에 복음성가로 불려졌던 곡중에서 21세기 찬송가에 수록되어진 곡들을 살펴보면 158장의 ‘서쪽하늘 붉은 노을’, 308장의 ‘내 평생 살아온 길’, 316장의 ‘주여 나의 생명’, 614장의 ‘얼마나 아프셨나’ , 620장의 ‘여기에 모인 우리’, 621장의 ‘찬양하라 내 영혼아’이다.
그리고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점은 기존의 찬송가의 장수가 확연히 바뀌어서 혼란을 가중케 했다는 것이며, 더 나아가서는 기존의 찬송가의 제목과 가사가 그대로 수록되지 않고 바뀌어서 수록되었다는 점이다. 비록 기존의 찬송가의 가사중에서도 바뀌어야 할 부분이 없지는 않지만 꼭 바뀌지 않아도 될 부분들을 바꾸었다는 것이다. 특히 가사는 바꿀지언정 제목은 그대로 보존할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또한 가사도 내용면에서 바뀐 것이 아니라 철자의 한 획이 바뀌어서 그 동안에 불렀던 찬송이 입에 배어 바꿔 부르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닌 듯 싶다.
그 곡들을 살펴보면,
163장의 ‘언제 주님 다시 오실는지’ 가 새 찬송가에서는 176장에 수록되면서 제목이 ‘주 어느 때 다시 오실는지’ 로 바뀌어졌다.
후렴 마지막 부분에 ‘맞아라’를 ‘맞으라’ 로 바꾸었으며, 4절에 ‘한 밤이나 낮이나’를 ‘한 밤에나 낮에나’ 로 바뀌었다.
166장의 ‘주 예수 믿는 자여’ 가 새 찬송가에서는 178장에 수록되면서 제목을 동일하지만 곡이 바뀌었고, 가사도 1절에 ‘저 신랑 영접하러’ 가 ‘신랑을 영접하러’ 로, ‘주 오실 때가 되고 밤 깊어 가는데’ 가 ‘주님 오실 때가 되고 밤은 깊어 가는데’ 로, ‘주 속히 오신다’ 가 ‘주님 속히 오신다’ 로, 2절에 ‘큰 소리 외칠 때’ 가 ‘큰 소리로 외칠 때’ 로, ‘곧 나와 맞아라’ 가 ‘주님 나와 맞으라’ 로, 3절에 ‘빛 비쳐 주소서’ 가 ‘참빛을 주소서’ 로 ‘나의 손을 높이 들어 우리 주께 비오니’ 가 ‘내 손을 높이 들어 주 앞에 비오니’ 로, ‘곧 강림 하소서’ 가 ‘지금 강림 하소서’로 바뀌었다.
172장의 ‘빈 들에 마른 풀 같이’ 가 새 찬송가에서는 183에 수록되면서 제목은 동일하지만 1절에 ‘주님의 허락한 성령’ 이 ‘’주님이 약속한 성령‘ 으로, 바뀌었다.
173장의 ‘불길같은 성신여’ 가 새 찬송가에서는 184장에 수록되면서 ‘불길같은 주 성령’이라는 제목으로 바뀌었고, 후렴부분에 ‘내 영혼의’ 가 ‘우리 영의’ 로 바뀌었고, 3절에 ‘비고 비인 마음에 주의 이름 위하여 성신 충만합소서 ’ 가 ‘비고 빈 내 마음에 성령 충만 하도록 주여 채워 주소서’ 로 바뀌었고, 4절에 ‘허락하신 성신을’ 이 ‘약속하신 성령을’ 로 바뀌었다. 특히 이 찬송가에서 ‘성신’이라는 구약적인 용어를 ‘성령’이라는 신약적인 용어로 바꾼점을 높이 평가할만하다.
215장의 ‘이 죄인을 완전케 하옵시고’ 가 새 찬송가에서는 426장에 수록되면서 제목은 동일하지만 1절에 ‘내 만속에 거하심 원합니다’ 가 ‘내 맘 속에 영원히 거하소서’ 로, 2절에 ‘몸 드리는 일 까지 도우소서’ 가 ‘이 몸 주께 드리니 받으소서’ 로 ‘내 온 몸과’ 가 ‘내 마음과’ 로, 3절에 ‘하심을 비옵니다’가 ‘’하시기 원합니다‘ 로 바뀌었다.
216장의 ‘아버지여 나의 맘을’ 이 새 찬송가에서는 424장에 수록되면서 제목은 동일하지만 2절에 ‘부드럽고’ 가 ‘온유하고’ 로, 4절에 ‘죄를 씻어 버리고’ 가 ‘죄를 씻어 주시고’ 로, ‘성령으로 하늘 길에’ 가 ‘성령이여 하늘 길로’ 로 바뀌었다.
217장의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가 새 찬송가에서는 425장에 수록되면서 제목은 동일하지만 3절에 ‘새롭게하여 주옵소서’ 가 ‘강건케 하여 주옵소서’ 로, 4절에 ‘동거함을’ 이 ‘동행함을’ 로 바뀌었다.
221장의 ‘나 가난 복지 귀한 성에’ 가 새 찬송가에서는 246장에 수록되면서 ‘나 가나안 땅 귀한 성에’ 라는 제목으로 바뀌었고, 1절에 ‘내 중한 짐을’ 이 ‘내 무거운 짐’ 으로 바뀌었다. 특히 이 찬송가에서 이전의 제목에서는 ‘가나안’을 ‘가난’으로 줄여서 표현하여 마치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이 가난한 땅인 듯한 인상을 주었었는데 가나안으로 확실하게 표현한 것은 높이 평가할 하다.
222장의 ‘보아라 즐거운 우리집’ 이 새 찬송가에서는 235장에 수록되면서 제목은 동일하지만 2절에 ‘밤낮을 즐기네’ 가 ‘영원히 즐기네’ 로 바뀌었다.
223장의 ‘세상 모든 수고 끝나’ 가 새 찬송가에서는 236장에 수록되면서 ‘우리 모든 수고 끝나’로 제목이 바뀌었고, 1절에 ‘우리 장막 벗고서’ 가 ‘세상 장막 벗고서’ 로, ‘사라진 뒤에’ 가 ‘사라진 후에’ 로, 2절에 ‘가는 길이 외로워도 주님 나를 붙드니’ 가 ‘가는 길이 외로와도 주 날 붙드시리니’ 로, ‘주의 뜻을’ 이 ‘그의 뜻을’ 로, 3절에 ‘눈물 흔적 거둔 뒤’ 가 ‘모든 눈물 거둔 후’ 로, ‘주의 찬란하신 영광’ 이 ‘주의 영광 찬란하게’ 로 바뀌었다.
352의 ‘내 임금 예수 내 주여’ 가 새 찬송가에서는 313장에 수록되면서 제목은 동일하지만 2절에 ‘맘을 보사’ 가 ‘마음 보사’ 로, 4절에 ‘몸이오니’ 가 ‘것이오니’ 로 바뀌었다.
444장의 ‘예수가 거느리시니’ 가 새 찬송가에서는 390장에 수록되면서 제목은 동일하지만 2절에 ‘풍파 중에 거느리고 평안할 때 거느리네’ 가 ‘풍파 중에 지키시고 평안히 인도하시네’ 로, 4절에 ‘지옥의 권세’ 가 ‘마귀의 권세’ 로, ‘천국에 있을 때에도’ 가 ‘천국에 가는 그 길도’ 로 바뀌었다.
446장의 ‘오 놀라운 구세주’ 가 새 찬송가에서는 391장에 수록되면서 제목은 동일하지만 1절에 ‘샘 솟는’ 이 ‘안전한’ 으로, 3절에 ‘내 생활을’ 이 ‘내 믿음을’ 로 바뀌었다.
450장의 ‘자비하신 예수여’ 가 새 찬송가에서는 395장에 수록되면서 제목은 동일하지만 1절에 ‘맘이 어두웠으니’ 가 ‘마음 심히 어두니’ 로, ‘저를’ 이 ‘나를’ 로, 2절에 ‘저의’ 가 ‘나의’ 로 바뀌었다.
471장의 ‘십자가 그늘 밑에’ 가 새 찬송가에서는 415장에 수록되면서 제목이 ‘십자가 그늘 아래’로 바뀌었고, 1절에 ‘쬐이고’ 가 ‘뜨겁고’ 로, 2절에 ‘나’ 가 ‘날’ 로, 3절에 ‘나 관계 없도다’ 가 ‘나 두려움 없네’ 로 바뀌었다.
475장의 ‘이 세상은 요란하나’ 가 새 찬송가에서는 414장에 수록되면서 제목은 동일하지만 후렴에 ‘ 참 기쁜 복 내 것일세’ 가 참 기쁨이 내 것일세‘ 로 바뀌었다.
449장의 ‘이 세상의 친구들’ 이 새 찬송가에서는 394장에 수록되면서 제목은 동일하지만 3절에 ‘영원한 주 능력이 붙드시겠네’ 가 ‘영원하신 주 능력 나를 붙으드네’ 로 바뀌었다.
478장의 ‘주 날개 밑 내가 편안히 쉬네’ 가 새 찬송가에서는 419장에 수록되면서 제목은 동일하지만 1절에 ‘날 지키시리니’ 가 ‘날 지켜 주시니’ 로, 2절에 ‘못 위로해 주나’ 가 ‘위로치 못하나’ 로, 후렴에 ‘즐거워라’ 가 ‘평안하다’ 로 바뀌었다.
488장의 ‘내 영혼에 햇빛 비치니’ 가 새 찬송가에서는 428장에 수록되면서 제목은 동일하지만 후렴에 ‘그 빛’ 이 광채‘ 로 바뀌었다.
510장의 ‘겟세마네 동산의’ 가 새 찬송가에서는 457장에 수록되면서 제목은 동일하지만 1절에 ‘사양할 수’ 가 ‘외면할 수’ 로, 3절에 ‘짐으로’ 가 ‘지고서’ 로, 끝 부분에 ‘따라가겠네’ 가 ‘따라가리라’ 로 바뀌었다.
513장의 ‘너희 마음에 슬픔이 가득차도’ 가 새 찬송가에서는 458장에 수록되면서 제목이 ‘너희 마음에 슬픔이 가득할 때’ 로 바뀌었고, 1절에 ‘즐겁게 하시리라’ 가 ‘위로해 주시리라’ 로, 후렴에 ‘즐거운’ 이 ‘참 기쁜’ 으로 바뀌었다.
516장의 ‘맘 가난한 사람’ 이 새 찬송가에서는 427장에 수록되면서 제목은 동일하지만 1절에 ‘저들의 천국이요’ 가 ‘그들의 것임이요’ 로, ‘애통을 하는 이’ 가 ‘늘 애통하는 이’ 로, ‘저희가’ 가 ‘그들이’ 로, 4절에 ‘저들의’ 가 ‘그들의’ 로 바뀌었다.
517장의 ‘생명 진리 은혜되신’ 이 새 찬송가에서는 462에 수록되면서 제목은 동일하지만 2절에 ‘거저 받은 주의 은혜 거저 주게 하소서’ 가 ‘이웃 사랑 나누면서 살아가게 하소서’ 로, 3절에 ‘물리치고’ 가 ‘다 그치고’ 로, ‘우리 앞에 빛나리’ 가 ‘이뤄지게 하소서’ 로, 4절에 ‘없도다’ 가 ‘없으니’ 로, ‘모시고’ 가 ‘모시네’ 로 바뀌었다.
519장의 ‘십자가를 질 수 있나’ 가 새 찬송가에서는 461장에 수록되면서 제목은 동일하지만 1절에 ‘저들’ 이 ‘성도’ 로, 3절에 ‘주께 내 혼 맡기겠나 최후 승리 믿으며 걱정 근심 어둔 그늘 너를 둘러 덮을 때’ 가 ‘걱정 근심 어둔 그늘 너를 둘러 덮을 때 주 께 내영 맡기겠나 최후 승리 믿으며’ 로 순서가 바뀌었고, ‘네 혼’ 이 ‘네 영’ 으로, 4절에 ‘옛 날’ 이 ‘바울’ 로, 후렴에 ‘당신의’ 가 주님의‘ 로 바뀌었다.
또한 가사적인 부분에서 지적하면 576장에 수록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의 가사는 비록 1절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태어난 생명’ 이라는 가사가 있지만 전반적인 내용면에 있어서는 육신의 어머니의 사랑에만 치중되어져 있다. 그러기에 이는 찬송가라고 할 수 없으므로 포함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578장에 수록된 ‘언제나 바라봐도’ 도 비록 3절에 ‘죄인을 구하시려 독생자 보내신’ 이라는 가사가 있지만 그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하려고 어머니를 주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찬송의 전반적인 가사의 내용도 하나님의 사랑이 아닌 어머니의 사랑에 치중되어 있다는 난점을 피할수 없는 것이다
끝으로, 261장의 ‘어둔밤 마음에 잠겨’ 가 새 찬송가에서 582에 수록되었는데 이 찬송을 지은 김재준은 자유주의 계열에 속한 자로서 창세기 1장에서 3장까지의 내용을 가설이라고 주장한 자이다. 또한 이 찬송가의 가사의 내용도 하나님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이며, 지극히 민족주의 적이며, 사회 혁명적인 요소가 다분하여 찬송가라고 볼 수 없다.
필자가 주장하는 것 중에 하나는 찬송가의 가사는 성경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찬송을 만드는 자들은 자신의 성향을 가사화해서는 안되며, 성경을 토대로 해서 성경에 입각한 가사를 사용해야 한다. 또한 그 가사에 붙이는 곡도 세속적이거나 대중적인 것들을 회피하고 종교적인 곡을 선택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부를 수 있게 한다는 얄퍅한 생각으로 찬송을 세상의 소리에 담아서는 안되는 것이다.
234장의 ‘나의 사랑하는 책’ 2절에 ‘병거’를 성경적으로 ‘바람’ 이라고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열왕기하 2장 1절과 11절에 보면 엘리야는 회리 바람을 타고 승천한 것이다. 이에 새 찬송가에서는 199장에 ‘바람’으로 바꾸었는데 이는 높이 평가할만하다.
또한 123장의 ‘저 들밖에 한 밤중에’는 새 찬송가에서도 역시 123장에 수록되었는데 이전의 찬송가와 같이 1절에 ‘양틈에 자던 목자들’ 이라고 가사가 기록되어져 있다. 하지만 이 가사는 ‘양 떼를 치던’ 이라고 바꾸어야 한다. 왜냐하면 목자들이 성탄의 소식을 들은 이유는 그들이 밤에 잠을 자지 않고 양 떼를 지켰기 때문이다. 구약시대에서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계시를 전해 주실때에 선지자들에게 주시고 그들의 입술을 통해서 백성들에게 증거하도록 하셨고, 하나님의 계시를 받을 수 있는 자격은 선지자들에게 주어졌었는데 신약에 와서는 그러한 자격의 기준과는 상관없이 그 때에 깨어있는 자들이 하나님의 계시를 듣게 되는 것이다. 사실 목자들은 하나님의 계시를 들을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예수님의 탄생소식을 들은 이유는 누가복음 2장 8절의 말씀처럼 ‘그 지경에 목자들이 밖에서 밤에 자기 양떼를 지키더니’ 이다. 목자들이 낮에도 한 눈을 팔다가는 이리나 늑대가 양을 삼키워 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밤에는 더더욱 목자들이 경계를 늦추어서는 안되면 잠을 잘 수가 없는 것이다. 찬송의 가장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만을 찬송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영광을 찬송함으로써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누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21세기 찬송가에는 그러한 점이 미비하다. 비록 그 중에서도 하나님을 찬송하는 곡들이 많이 있기만 전체적으로 보면 아쉬움이 남게 된다.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찌어다. 할렐루야” (시 150:6)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해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나라."(사 4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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