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탄은 음악을 악용하여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주신 순수한 지, 정, 의를 실추시키고, 정상적인 삶의 궤도에서 벗어나게 하며, 인륜을 저버리게 하여 급기야는 참된 구원에서 멀어지게 한다.
사람들은 음악을 듣고 살인을 하며, 음악을 듣고 도적질을 하며, 음악을 듣고 여러 가지 나쁜 관행들을 서슴없이 범하게 된다. 그 이유는 음악 속에 사탄의 성향이 감추어져 있고, 그러한 악한 성향들이 음악을 통해 사람들의 잠재의식 곧 무의식에 각인 되어 의식으로 행동화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 영과 육으로 창조하셨다. 여기에서 영을 무의식이라 지칭할 수 있으며, 육을 의식이라 지칭할 수 있다. 그러므로 사람은 본래 영의 존재이기 때문에 의식보다는 무의식에 더 많은 영향을 받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점을 사탄이 악용하여 사람들의 무의식에 자신의 메시지를 여러 가지 문화의 방편으로 각인 시키고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계를 온통 무법천지로 만드는 것이다. 그러기에 쉴새 없이 음악이 흘러나오는 나이트 클럽이야말로 사탄의 전유물이며 온상인 것이다. 또한 차를 마시며 대화하는 카페조차도 사탄이 악용할 수 있다는 것을 염두해 두어야 한다.
자신이 원해서 음악을 듣고 악행을 범할 수도 있지만 길거리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듣고 얼마든지 악행을 범할 수가 있다는 것이 실로 충격이며, 사탄의 놀라운 발상인 것이다. 정말로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살아야 할 시대가 이미 우리 앞에 펼쳐져 있는 것이다. 이 시대가 바로 뉴 에이지, 곧 새로운 시대이다.
사탄의 궁극적인 목적은 음악을 통해 사람들을 멸망시키고, 가정을 무너뜨리며 교회를 파괴하는 것이다. 또한 부활로써 사탄의 머리를 깨뜨리시고 교회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케 하며 저주케 하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목적이 음악 속에 역력히 나타나 있으며, 가장 뚜렷한 증거로써 사탄은 음악의 장르 중에 하나를 가르쳐 반석이신 예수님을 뜻하는 ROCK 이라고 한 것이다. 그리고 이 ROCK을 음악의 대표적인 장르로 내세워 사람들을 미혹시키는 것이다. 이것은 너무나도 간교한 사탄의 술책이다.
그러기에 ROCK 음악은 사탄이 사람들로 하여금 범죄를 일삼게 하며, 사람들을 멸망시키며, 가정을 파괴시키며, 궁극적으로는 교회를 무너뜨리며 그 교회의 머리가 되시며 모든 사람에게 참된 구원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저주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음악인 것이다.
성경에서는 수도 없이 많은 부분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 ROCK 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실례로 고린도 전서 10장 4절 후반부에서 사도 바울은 반석(rock)은 곧 그리스도시라.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이 ROCK은 여호와 하나님을 뜻하기도 하는데 다윗은 시편 18편 2절에서 여호와는 나의 반석(rock)이시요.라고 고백하고 있다.
그런데 이 ROCK을 사탄이 도용해서 음악이라는 이름으로 가장하여ROCK의 진정한 의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짓밟아 버린 것이다.
이 ROCK 음악은 앞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사탄이 예수 그리스도를 적대시하고, 저주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음악이므로 많은 ROCK 음악의 가사를 보면 그러한 내용들이 담겨져 있다.
지면 관계상 한 앨범 속에 수록된 음악 중에 두 가지의 노래를 살펴보고자 한다. 외국에서 활동하는 그룹 중에 우리 나라 말로 번역하면 “발작”이라는 뜻을 가진 그룹이 있다. 이 그룹이 만든 앨범 가운데 “예수야 엿 먹어라”는 제목의 앨범이 있는데 이 앨범은 제목에서부터 예수님을 저주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앨범에 수록된 곡 중에는 첫째로, 예수님을 낳은 동정녀 마리아에 관해서 말하는 내용의 가사가 실린 노래가 있는데, 그 내용은 마리아가 사람이 아닌 병신 수탉과 수간, 즉 동물과의 성 관계를 하는 자라는 것이다. 이 수간은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엄히 경고하고 금기시하고 있으며, 심지어는 죽이라고 까지 말씀하시고 있는 것이다.
출애굽기 22장 19절의 말씀을 보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져 있다.
"짐승과 행음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이 노래의 가사를 보면 “마리아는 처녀가 아니지. 온전하지 못한 병신 수탉 한 마리가 그녀의 행위 상대라네. 그녀는 치마를 들어올리고 자신의 XX를 남에게 보여주는 것을 즐기고 있지...” 이다.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잉태하여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 원죄의 영향을 입지 않으시고 탄생하셨기에 구세주가 되시는 것인데, 이 노래는 이러한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을 부인하기에 충분한 것이며, 더 나아가서는 참된 구원관을 말살시키기에 충분한 효력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둘째로, 예수님의 죽음에 관해서 말하는 내용의 가사가 실린 노래가 있는데, 그 내용은 “예수는 오븐 속에서 나오려고 하고 당신은 지금 강제로 집어넣고 있지. 손잡이를 돌려서 불을 켜자. 유리를 통해 오븐 속에서 소리를 지르는 그의 절규를 들으면서 즐기자. 그가 울부짖는 소리를 듣는 것보다 더 재미있는 것을 원하는가? 그렇다면 몸이 타는 그 향수와 같은 냄새를 흠뻑 들이마셔라. 그 속에서 살려고 발버둥치지만 희망이 있을 리 없지. 그를 태워 죽이는 것으로 모든 죄가 씻음 받는다네” 이다.
이 노래는 거룩한 분노를 유발시키기에 충분한 것이며, 그러기에 ROCK 음악을 거부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ROCK 음악을 거부해야 할 더 이상의 이유가 필요 없을 정도로 충분한 이유가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더 이상의 ROCK 음악(音樂)을 거부해야 할 이유를 묻는 자가 있다면 필자는 그에게 오히려 ROCK 음악을 들으라고 할 것이다.
이 ROCK 음악을 다른 말로 “Rock'n Roll(로큰롤)” 이라고도 하는데 이 로큰롤은 “Rock and Roll”의 약자로써 반석의 뜻을 가지고 있는 “ROCK”과 “좌우 (左右)로 흔들리다.”의 뜻을 가지고 있는 “ROLL”의 합성어로써 그 의미는 “반석을 좌우로 흔들다.” 라는 것이며, 더 나아가서는 반석은 교회를 상징하므로 “교회를 흔들어 타락시킨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은어 적인 의미로써 “ROCK”은 남자의 성기를 뜻하며, “ROLL”은 “굴러가다”를 뜻한다고 하여 ‘차안에서 행하는 난잡하고, 불륜 적인 성 관계’ 를 의미하기도 한다.
실제로, ROCK 음악의 가사나 음률이 부정적인 성 관계를 촉구하고 있다. 이러한 “Rock'n Roll”의 의미들을 역순으로 해석하면 불륜적인 성 관계를 통해 교회의 기초석인 가정을 파괴하고 그 결과로 인해 교회를 무너뜨린다는 것이다.
ROCK 음악의 대부분의 가사가 입에 담기도 역겨울 정도로 힘든 무분별한 Sex를 권장하고 있다.
많은 가수들의 노래를 다 열거할 수가 없으므로 두 명의 가수가 부른 노래의 가사를 살펴보면, 첫째로, 몰몬교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엘리스 쿠퍼가 부른 “요술 주머니(Trick Bag)” 의 가사 일부를 보면 “허리띠를 내려요. 나의 벨벳 장갑을 애무해 주세요. 나는 나의 가죽 부츠를 집어넣은 기분이에요.”이다.
여기에서 “벨벳 장갑”은 여자의 생식기를 상징하며, “가죽 부츠”는 남자의 생식기를 상징하는 것이다.
둘째로, 무대에서 자신이 자칭 재림 예수라고 말하는 마이클 잭슨의 여동생인 재닛 잭슨은 “공공 장소에서 사랑을 나누는 것은 침대에서 섹스를 하는 것보다 훨씬 스릴이 있어 좋다. 섹스는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다.”라고 말하였는데 이러한 그녀의 사고 방식은 그녀의 노래인 “Any Time, Any Place(언제나 어디서든)” 에 잘 나타나 있다.
그러므로 ROCK 음악은 사탄의 전유물이며, 사람들이 접하기에는 너무나도 위험한 음악인 것이다.
그러나 사탄은 대중문화라는 매개체를 악용하여 사람들을 ROCK 음악에 중독 시켜 ROCK 음악과 너무나도 친숙하게 만들어 버렸으며, 이제는 ROCK 음악을 한시라도 듣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만들어 버렸다. 그러기에ROCK 음악에 노출된 청소년들이 ROCK 음악과 혼합된 C.C.M.을 듣기를 좋아하고 그 C.C.M.을 듣기 위해 교회로 몰려드는 것이다.
또한 마약의 중독성보다 이 ROCK 음악의 중독성이 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한다. 왜냐하면 마약에 의해 중독된 자는 여러 가지의 의학적인 방법으로 치료가 가능하겠지만 이 ROCK 음악에 중독된 자는 치료가 불가능할 정도로 심각한 것이다.
이 로큰롤은 1950년대에 캐나다에서 처음으로 사용되었는데 이 로큰롤이라는 용어는 캐나다에서 DJ로 활동하던 앨런 프리드(Allen Pred)가 “혼전성교(결혼 전의 성관계)”라는 흑인 빈민가의 은어에서 차용하여 처음 사용하였다고 한다. 이 혼전성교는 가정을 파괴시키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 혼전성교는 하나님께서 십계명 중에 제 7 계명을 통해 “간음하지 말지니라”고 엄히 경고하고, 금기시 하고 있는 말씀이기도 한 것이다. 우리 나라의 대중가요 중에도 이러한 혼전성교를 부축이며 정당화시키는 저질적인 노래들이 긍정적으로 불려지고 있다.
언어를 통해 혼전성교의 정당성을 말한다면 부인하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대의 배경과 가수들의 화려한 옷차림과 감미로운 음악을 통해 혼전성교가 노랫말로 불려진다면 그 음악에 심취하여 정말로 혼전성교가 정당하게 느껴지며, 하고 싶은 충동도 일어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음악의 위력이다.
이러한 일이 가능한 것은 바로 우리의 잠재의식에 그 메시지가 교묘하게 주입되기 때문이며, 그 주입된 메시지대로 의식이 행하기 때문이다.
혼전성교를 부추기는 노래가 많이 있지만 실례로 두 가지만 들어보면 첫째로,〔끌레오〕라는 그룹이 부른 노래 중에 “Good Time” 이라는 곡의 가사를 살펴보면 “너와 함께 지내고 싶은 밤 부모님의 허락이 필요하지만 내가 너와 보내려 하는 이 밤이 나에겐 소중한 걸 나를 책임질 수 없다 해도 지금 너무 좋은 거야.” 이다.
둘째로, 기독교인으로 알려져 있으며 청소년들에게 청순한 이미지로 알려진 핑클의 노래 중에 “내 남자 친구에게”라는 곡의 가사를 살펴보면 “내 모든 걸 너에게 줄께 기다려 왔던 나의 사랑은 너를 위한 거야 내 모든 걸 원한다면 너에게 줄께 지금 이대로 너의 품속에 나를 데려가 줘 난 니꺼야.” 이다. 이 두 곡에서 말하고 있는 것은 “혼전성교”는 결코 범죄가 아니라 아름답고 순수한 것이다는 말이다. 이러한 음악들 때문에 순수한 청소년들의 영혼이 타락해져 가고 그들의 육신도 망가져 가는 것이다. 이러한 결과는 바로 사탄이 바라는 것이다.
성은 감추어져 있을 때 진정한 아름다움을 발하는 것이지 드러나 버리면 추해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사탄은 대중문화라는 매개체를 통하여 성의 베일을 벗겨 버리고 성의 순수성을 말살시켜 버린 것이다.
사탄은 이처럼 ROCK 음악을 통해 그 ROCK이 의미하고 있는 예수 그리스를 조롱하며, 사람들의 마음에서 떠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궁극적인 목적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파괴하는 것이기에 이제 이 대단한 파괴력을 가진 가공할 만한 무기인 ROCK을 통해 교회의 진리의 문을 무너뜨리고 들어오고자 하는 것이다. ROCK 가수들의 뮤직 비디오를 보면 교회가 장소로 많이 묘사되는데 그 이유는 바로 ROCK 음악의 궁극적인 목적을 실현하기 위함인 것이다.
그러므로 사탄은 ROCK 음악을 교묘하게 포장하여 교회로 들어오게 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C.C.M.인 것이다. 이 C.C.M.은 교회의 음악과 지금까지 살펴 본 강한 파괴력을 지닌 사탄의 무기인 ROCK 음악을 교묘하게 혼합한 것이다. 바로 이러한 혼합은 사탄의 교묘한 술수이고, 이 혼합을 통해 참된 것이 거짓된 것과 희석되어 무마되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뉴 에이지의 주된 목적인 것이다.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로써 C.C.M.을 통해 이 ROCK 음악이 교회로 들어오는 것을 순교의 각오로 막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교회는 환영을 해 버렸고 그 어수룩한 환영의 이유는 ROCK 음악과 혼합된 C.C.M.을 통해 많은 청소년들이 교회로 몰려온다는 것이다.
그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교회로 몰려온 것이라면 하나님께 큰 영광이 될 것이지만 사탄의 술수인 ROCK 음악과 혼합된 C.C.M.을 통해 교회로 몰려든다면 이것은 정말로 너무나도 어처구니가 없는 일인 것이며, 교회의 거룩성을 무너뜨리게 되는 것이다.
이 C.C.M.은 “Contemporary Christian Music”의 이니셜 표기로써 그 의미는 “현대의 교회 음악” 이다. 이 C.C.M.의 의미 자체가 이미 C.C.M. 이 교회 음악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인즉 교회는 부패한 시대를 앞서가는 것이지 결코 그 부패한 시대를 답습하여 뒤따라가는 것이 아니다.
이 시대를 뒤따라가다 가는 종국에는 멸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의 이 시대는 사탄이 주도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진리가 선포되는 교회에서는 당연히 사탄의 전유물인 ROCK 음악이 C.C.M.이라는 교묘한 술수로 들어오는 것을 막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많은 교회들이 이 C.C.M.을 받아들였고 이 C.C.M.을 통한 거짓 부흥에 흥겨워하고 있다.
교회의 진정한 목적은 많은 사람들을 구원으로 인도하는 것에도 있겠지만 소수라고 할지라도 바른 진리로 인도하는 것이다. 사람들을 구원으로 인도하는 가장 최우선의 방편은 다른 어떤 것도 아닌 하나님께서 계시해 주신 말씀이다. 그 말씀만이 영혼을 살찌우게 하며 바른 진리의 길로 인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행해지는 모든 행사들도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게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ROCK 음악과 혼합된 C.C.M.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며 사람들의 마음 밭을 옥토 밭이 아닌 메마른 돌짝밭으로 만들어 그 말씀을 듣는다 할지라고 금방 망각하게 하는 것이다.
또한 ROCK 음악과 혼합된 C.C.M.은 사람들의 감정에 강한 자극을 불러 일으켜 흥분을 일삼게 한다. 그 흥분은 하나님의 은혜와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흥분 상태에 심취하여 그 흥분 상태를 다시 맛보기 위해 음악을 듣게 되는 것이다.
C.C.M.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기 위해 다시 듣는 것이 아니라 그 음악에 심취하여 반복적으로 계속 듣게 되는 것이다. 물론 C.C.M.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맛볼 수도 있지만 그것은 약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 (막10:25)과 흡사할 정도로 아주 미비한 것이다. 그러한 가망성이 없을 정도로 작은 은혜를 맛보기 위해 C.C.M.을 듣다가 은혜를 받기도 전에 육신의 감정에 먼저 치우쳐 버릴 것이다.
C.C.M.은 ROCK 음악과 혼합된 것이므로 여러 가지 다양한 전자 악기들을 사용할 수 밖에 없다.
또한 ROCK 음악에서 사용하는 무섭고도 현란한 악기들을 사용할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이러한 악기들을 사용하지 않고는 결코 C.C.M.을 연주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바로 이 점이 피할 수 없는 C.C.M.의 문제이다.
특별히 전자 악기는 볼륨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다는 것에 큰 문제가 있다. 또한 그 음악에 심취하다 보면 아무리 크게 볼륨을 올린다고 할 지라도 그리 크게 들리지 않는 것이다.
소리의 음량의 수치를 데시벨(decibel)이라고 하며, 표기할 때 약자로써 db라고 한다. 보통 통상적인 대화는 50db이며, 비명 소리는 100db의 수치가 넘는다. 그러므로 100db의 수치가 넘는 소리는 청각 기능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다. 바로 ROCK 음악이 100db을 훨씬 넘는 굉음으로 연주되는 것이기에 신경계에 심각한 악 영향을 초래하는 것이다.
비행기가 이륙할 때에 내는 굉음은 100db 훨씬 넘어 120 db까지 육박하는데, 이 소리는 우리의 신경계통을 자극하여 우리로 하여금 몸서리치게 하며 심한 스트레스와 심지어는 우울증을 유발하게 한다. 그 우울증이 심해지면 범죄로까지 이어지기도 하는데 이보다 더 큰 볼륨으로 연주하는 음악이 바로 C.C.M.인 것이다.
그러나 더 무서운 것은 그 흥분의 도가니에 심취하면 그 큰 소리도 감지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전자 악기가 위험한 것이며「ROCK」음악에서 이러한 전자 악기를 사용하는 것은 사람들의 청각을 마비시켜 마음대로 음률에 따라 조종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음악의 연주 형태는 이미 사람들의 마음과 심성을 앗아가 버리고 마음대로 좌지우지해 버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얼마든지 눈물도 흘리게 하며 통곡도 하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눈물과 통곡은 거짓된 것이며,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는커녕 하나님의 은혜에서 더욱 더 멀어지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사탄의 대단한 술수인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가사가 성경적이라고 할지라도 ROCK 음악과 혼합된 C.C.M.의 음악으로 연주된다면 듣는 사람들이 가사의 의미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기 전에 사탄은 그 음악을 통해 먼저 사람들의 마음을 빼앗아 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ROCK 음악과 혼합된 C.C.M.은 결코 가사를 통해 하나님께 온전한 영광을 돌릴 수가 없으며, 혹 그럴싸하게 성경적인 가사라 할 지라도 그것은 교묘한 술수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C.C.M.은 하나님을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으로 부르기를 꺼려하며, 예수님을 가르켜 “당신”, “그대”, “친구”라고 표현한다. 이것은 거룩성이 결여된 표현인데 이렇게 부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C.C.M.의 음악이 거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때로는 C.C.M.에서도 하나님을 가리켜 “거룩하신 하나님” 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이미 가사의 의미와는 별개로 ROCK 음악과 혼합된 음색으로 연주되므고 결코 가사처럼 하나님을 거룩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러한 음악의 색채에 맞추기 위해서 예수님을 예수님이나 구주라고 하기보다는 비속어 적인 표현인 당신, 그대, 친구라는 표현으로 부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여기에서 한 가지 알 수 있는 중요한 것은 노래는 가사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가사를 담고 있는 음악이 문제라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가사를 보고 그 노래가 기독교적인가? 아니면 비 기독교적인가? 를 판단하는데 그것은 사탄의 간교한 지혜를 너무나도 무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사를 통해 그 노래가 교회에 합당한 것인가? 아니면 교회에 합당치 않은 것인가? 를 판단한다면 십중팔구(十中八九) 잘못된 판단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가사를 통해 역력히 세속성을 드러내는 C.C.M. 이 있는가 하면 음악을 통해 세속성을 드러내는 C.C.M.이 있다. 이 둘 중에 거의 다반사가 음악을 통해 세속성을 드러내는 C.C.M.이 즐비하다.
그러므로 C.C.M.은 음악의 색채를 통해 하나님의 위엄을 격하시키는 내용을 가사화하고 예수님의 인성을 너무나도 강조하여 예수님을 단순한 사람으로 하락시키는 내용을 가사화하고 있다.
실례로, 소개할 노래는「많은 물소리」라는 Y2K 버전의 복음성가 519장에 실린 노래인데 그 노래의 제목은 “서른 해를 지내며” 이다.
노래는 제목이 모든 것을 말해 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제목이 중요한 것이다. 이 제목에서 풍겨 나는 예수님에 대한 인상은 예수님이 구원주라는 것이기보다도 친근감 있는 단순한 사람이라는 강한 인상이 풍겨 난다. 이 제목에서 느끼는 인상처럼 역시나 가사에서도 예수님이 단순한 사람의 이미지로 소개되고 있으며, 심지어는 예수님이 사회 운동의 주동자이거나 혁명가로 표현되고 있다.
실례로, 뉴 에이지의 대표 주자라고 할 수 있는 오쇼 라즈니쉬는 「혁명」이라는 책에서 예수님을 “십자가로 실패한 혁명가”라고 주장했다.
“서른 해를 지내며”의 가사를 살펴보면
서른 해를 지내며 내가 본 것들은 무너진 집 낡은 식탁 그리고 녹슨 못들 나는 목수의 아들이었으니까 지는 해를 바라보며 늘 생각한 것은 하얀 양떼 포도송이 그리고 웃는 아이들 난 그 때를 위해 왔으니까 기쁨의 해를 누리며 그 자유의 노래를 들으련 갇힌 새들아 묶인 손들아 그리고 우는 여인아 너희가 바로 그 노래니까 뜨는 해를 반기며 이 아침의 햇살을 느끼련 맨발로 빈손으로 그리고 펼친 나래로 너희도 이젠 햇살이니까 이제 나는 저 잃어버린 무리를 찾아서 그 상한 살을 헤집고 입을 맞춘다. 부서지고 타오르면서 버려지고 피 흘리면서 깨어진 너를 위해 나를 던진다. 이다.
이 노래에서는 예수님의 인성이 너무나도 강조된 나머지 신성이 결여되어 있다. 그리고 깨어진 너를 위해 나를 던진다.라는 표현은 마치 사회 운동의 정당성을 알리기 위해 몸에 석유를 붓고 온 몸을 불태운 사람을 묘사하고 있는 듯 하다.
끝으로 ROCK 음악과 혼합된 C.C.M.은 공연 시에 무대조명을 어둡게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ROCK 음악이 연주되는 무대와도 같이 어두컴컴한 조명과 사람들의 눈을 혼잡케 하는 형형색색 (形形色色)의 전구들의 불빛들로 무대를 장식할 수밖에 없으며, 금방 귀신이라도 나올 듯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는 우리의 참빛이신(요 1:9)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가 선포되어야 할 강단을 온통 어두움으로 먹칠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여러 가지의 내용들이 사탄의 전유물인 ROCK 음악을 교회로 잠입해 들어오기 위해 C.C.M.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했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더 이상 교회가 C.C.M.을 낭만적으로 바라보아서는 안될 것이다. 그리고 적극적인 대처 방안을 모색하여 하나님께 온전한 영광을 드릴 수 있는 찬양만을 불러야 할 것이다.
교회가 세상에 대해서 취할 자세는 배타적인 의미에서 문을 닫는 것이 아니라 진리 수호 적인 면에서 문을 닫아야 할 것이다. 순교적인 각오로 문을 닫아야 할 것이다. 그것만이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보호하며 하나님께로 온전히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사탄이 배후에 자리잡고 있는 세상의 문화에 대해서 매력을 느껴서는 안될 것이며, 그 매력에 빠져 영적인 간음을 행해서도 안될 것이다.
또한 그러한 자들에게 복음을 증거하여 그들에게 바른 길을 제시해 주어야 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이 말세 지말에 하나님께서 모든 믿는 자들에게 주신 사명일 것이다. 그리고 오직 복음만이 사탄의 음악에 심취해 있는 자들을 바른 구원의 길로 인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탄의 전략을 깨달아 알고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할 것이다(엡 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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