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이란 한자어로 표기할 때 다를 이(異) 와 끝 단(端) 자를 쓰는데 이를 직역하면 『끝이 다르다.』는 의미이다. 이 말은 처음은 같지만 끝이 다르다는 의미로써 이는 이단의 사상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인내심을 가지고 끝까지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처음이 같다는 이유로 그 무서운 이단의 사상을 쉽게 받아들이는 것이 지금의 한국 교회의 현실이며, 또한 처음부터 잘못된 부분이 역력히 드러남에도 불구하고 교주(?)라고 자칭하는 자들의 거짓된 신령함(?)에 빠져 갈피를 못 잡고 헤 메이는 것이 지금 한국 교회의 현 주소인 것이다. 사탄도 얼마든지 하나님 못지 않게(?) 많은 능력과 기사를 행 할 수 있다는 것을 염두해 두고 자신의 병이 치료함을 받았다거나, 자신의 재물이 부해졌다거나 하는 기복적인 요소에 미혹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또한 자신의 병이 치유함을 받았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그 목사(?)를 신격화하거나 그의 말에 맹종하는 어리석은 죄악을 범해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가 오직 순종해야 할 것은 어떤 목사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인 것이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예배하며 그 분께 영광을 드리는 것은 우리의 개인적인 요소를 충족시키는 데에 국한되어서는 안되며, 하나님의 은혜에 빚진 자로써 아낌없이 드리는 것이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아니하고 우리의 그 무엇인가를 채우는 데에만 급급하면 이단에 빠질 위험성이 다분한 것이다. 이단을 영어로 표기할 때는 Heresy (헤러시) 로써 이는 바른 정통적인 진리에서 벗어난 것임을 의미한다. 헬라어로 죄를 표기할 때αμαρτια(하마르티아)라고 하는데 이 의미는 『화살이 과녁을 맞추지 못하고 벗어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지칭하는 과녁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벗어나는 것이 죄이며, 이단이므로 죄와 이단은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담의 죄를 단순히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은 것이라고 한다면 이것으로써는 정당한 기준 점이 없으므로 죄라고 하기에는 부족한 표현이며, 정확히 표현하자면 그 나무의 실과를 따먹지 말라고 한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것이기에 죄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단을 판단하는 기준은 어떤 큰 교단의 사상이나, 어떤 큰 교회 목사의 사상이나, 어떤 신학교 교수의 사상이 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며, 오직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신분을 막론하고 성경을 바로 알고 신봉하는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든지 이단을 분별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을 선지자들과 사도들로 하여금 기록하게 하시고 우리에게 주신 이유는 그 말씀을 통해 구원함을 받게 하는 것에도 있지만 이단을 분별하여 미혹되지 않게 하시고, 또 그 이단을 널리 공포하여 많은 사람들을 헛되고 거짓된 진리에 빠지지 않게 함에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의무는 복음을 전하는 것에도 있지만 바른 복음을 가지고 거짓된 복음과 대항하여 승리하는 것에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한국 교회는 부흥을 시키기에만 급급하여 거짓된 진리를 분별하지 않고, 진정한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들이 전하는 복음조차도 성경에 입각한 바른 복음이라고 할 수 없으며 그저 사람들을 끌어 모으기 식의 기복 적인 헛된 복음을 증거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이렇듯 교회가 교회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못한 결과로 인해 이단들이 득세하여 성도들 뿐만이 아니라 교회를 목회하는 자들도 이단의 사상에 매료되어 가고만 있다. 그리고 바른 성경관을 가지고 있지 못한 자들은 성경에서 금하고 있는 행실들을 서슴없이 범하고 있으며, 그러한 죄를 범하고도 회개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그 죄를 감추려고 온갖 술수를 꾀하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이러한 자들을 가르켜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할수 없으며, 또한 그들이 거느리는(?) 교인들이 많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들의 죄를 묵과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한국에서 이름난(?) 대형교회를 하는 목회자들치고 하나같이 성경에 입각한 바른 행실을 하는 자들이 없으며, 그들의 행동이 너무나도 심해 도무지 말을 할수 없을 정도이다. 또한 그들이 하는 행실이 세상에 암적인 존재들이 한다고 할지라도 심할 만큼 심각한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우리는 흔히 교리적인 이단만을 이단이라고 지칭하는데 그렇지가 않은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입으로만 인정하지 않는 것이 이단이 아니라 행실로도 인정하지 않는 것도 이단이다. 예를 들어 십계명 중에 제 칠 계명이 “간음하지 말지니라.” 인데 그 말씀을 어겨 간음한 자도 이단인 것이다. 비록 죄성을 가지고 있는 인간이 실수를 할수도 있지만 그 행위가 정도를 넘어서고 또 회개하지 않는다면 이는 실로 심각한 것이며 그들이야 말로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볼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죄를 범하고 회개해야 하는 것이고, 회개하지 않고 그 죄를 끝까지 묵인 한다면 그는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며, 그 입에 나오는 아무리 유창한 설교도 결코 은혜를 줄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이단을 판단하는 기준을 교리적인 부분에 국한시키지 말고 더 포괄적으로 보아야 하며 그들의 행동여부를 살펴보며 잘 분별해야 할 것이다.
사도바울은 이단을 가리켜 갈라디아서 1장 8절에 말하기를 “다른 복음” 이라고 하 며, 또 그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 곧 이단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강하게 피력하고 있다. 그리고 그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가 설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고 할지라도 저주를 받는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는 이 말씀을 가볍게 보아서는 안되는 것이다. 지금 이 세상에 저주받을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많이 있다는 것이 가슴 아픈 현실이다. 이 말씀의 배경을 살펴보면 사도 바울이 성령에 의해서 기록한 로마서와 갈라디아서는 이신득의, 곧 믿음으로써만이 구원을 얻는다. 라는 같은 주제로 기록이 되었는데 그 배경은 다르다. 로마서는 전혀 복음을 듣지 못한 이방 사람들인 로마인들에게 기록한 복음으로서 순수하고 깊이 있게 기록된 반면에 갈라디아서는 이미 사도 바울을 통해서 복음을 듣고 성령에 의해서 말씀대로 살다가 바울이 여러 곳을 선교하는 동안에 그 갈라디아 성도들에서 유대 교도들이 율법을 전하여 복음에 율법을 더하도록 하고 구원의 표로 육신의 할례를 받게 한 것이다. 이에 사도 바울은 거룩한 분노를 내며 갈라디아 성도들을 어리석다고 책망하여 (갈3:1)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갈3:3) 라고 힘 주어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이단은 성령으로 시작한 자들을 미혹하여 육체로 마치게 하는 것이다. 성경이 말하는 것만을 말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인데 너무나도 지나치고 쉽게 자신의 생각을 말해 버리는 것이 지금의 한국 교회 강단의 현실이다. 예수 님께서 마태복음 17장 17절에 하신 말씀인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 라는 말씀을 가슴 깊이 묵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끝으로 사도 요한은 요한 이서 10절로 11절에서 이단자들에 단호하게 대처할 것을 말하며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말라 그에게 인사하는 자는 그 악한 일에 참여하는 자임이니라.” 고 기록하고 있다. 요한은 사랑의 사도로 알려질 만큼 사랑을 실천하며 강하게 주장한 자인데 이단들에게만큼은 단호하게 사랑을 거절하는 것이다. 사도 요한의 일화를 보면 “사도 요한이 한 번은 목욕하려고 목욕탕에 들어갔다가 그 안에 케린투스가 있는 것을 알고서 그 곳을 뛰쳐 나와 도망쳤다고 한다. 그는 그와 같은 지붕 아래 있는 것조차 참지 못했으며, 자기와 함께 있는 사람들에게도 자기처럼 행하기를 권면하며 ‘자 도망칩시다. 진리의 원수인 케린투스가 목욕탕 안에 있는 한 그 목욕탕은 무너질 것입니다.’ 라고 말했다.” 케린투스는 유대주의 계에 속하는 영지주의 이단자였다. 이 케린투스는 예수 그리스도가 동정녀에게서 나신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요셉에게서 나온 아들이지만 정의와 지혜에 있어서 모든 사람보다 월등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실 때 그리스도가 그에게 강림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되셨지만 말년에 그리스도가 달아나셔서 그에게 인간 예수만 남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영지주의는 예수님이 하나님 되심을 인정하지 않고 단순히 인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인간이 아니시라 사람이시다. 인간과 사람의 차이점은 인간이란 남자와 여자의 관계를 통해서 태어난 자이고, 사람은 남자의 영향이 없이 성령으로 잉태하여 동정녀에게서 탄생했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요셉은 예수님과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는 것이다. 성경에서 부모 (父母) 라는 표현은 잘못된 오역이다. 왜냐하면 부(父) 가 요셉을 가리키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부모’ 의 바른
표현은 ‘요셉과 주의 모친’ 이다.
사도 요한은 이단자들을 철저하게 배격하였다. 그러나 지금의 한국 교회의 현실은 너무나도 이단자들에게 관대하며 그들과 쉽게 손을 잡아버리고 때로는 정통 교단에 속한 교회에서 이단자를 불러다가 집회를 열고 있다. 이것은 교회가 망할 징조이고, 교회가 타락하고 부패하면 그 결과로 인해 세상도 망해지는 것이다.
세상이 살기 어려워지고 힘든 근본적인 이유는 정치를 하는 자들에게 있지 않고, 세상에서 소금과 빛이 되어야 할 자들이 행실을 바로하지 못한데 원인이 있는 것이며, 또한 그러한 자들을 향해서 교회가 바른 소리를 내지 못하는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단방지는 교회 뿐만이 아니라 나라를 살리는 것이며, 더 나아가서는 세계를 살리는 것이다. 이미 이단의 사상이 팽배하여 만신창이와도 같이 부패했지만 그런 세상을 향해 지금이라도 기도하며 바른 복음을 외치면 하나님께서 그러한 자들을 기뻐하시고 회복시켜 주실 것을 믿는 바이다.
[스크랩] 칼빈은 과연 세르베투스를 죽인 살인자인가? (0) | 2011.11.07 |
---|---|
[스크랩] 예수전도단 10집(거룩한 성전)에 대한 분석 (0) | 2011.11.07 |
[스크랩] C.C.M.과 ROCK MUSIC에 대한 분석 (0) | 2011.11.04 |
[스크랩] 하나님문화/사탄문화 (0) | 2011.11.03 |
[스크랩] 천국으로의 여행 (0) | 2011.11.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