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이 시간 졸업하는 신학도들과 이 자리를 빛내기 위해서 참석하신 모든 분들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졸업하는 신학도들을 주안에서 축하하고 격려합니다. 졸업은 끝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시작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졸업은 시작을 위한 끝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이 말에서 끝이라 함은 소정의 학과 과정을 다 마쳤다는 의미에서 끝이라고 하는 것이며, 시작이라 함은 그 배운 과정의 지혜를 가지고 목회일선에서 복음의 진리를 바로 증거하며, 수호한다는 의미에서 시작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다소 안타깝게도 신학교에서 바른 진리를 배운 자들이 목회일선에 나가게 되면 많은 어려움과 핍박과 유혹에 넘어지고 흔들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럴 때에 처음 가졌던 초심으로 신학교에서 배웠던 것들을 다시금 상기하여 자신을 무장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느껴질 때에 그냥 체념하지 말고 자신을 가르쳤던 교수를 찾아가 다시금 신앙을 진리가운데 확고히 세워야 할 것입니다.
흔히 졸업을 하게 되면 학교와 교수를 찾아오거나 만나는 것을 등한시 하는 경향이 있는데 비록 배움의 과정을 다 마쳤다고 할지라고 계속적인 교제와 만남을 통해서 새로운 것들을 배워 나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만이 바른 진리 가운데 설수 있는 것입니다.
신학과 목회의 관계는 서로 뗄레야 뗄수 없는 밀접한 관계이자 불가분리의 관계입니다. 하지만 배운대로 바르게 하면 교회성장이 더디다는 이유로 신학을 내팽개친 채로 목회를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성장이 아무리 급속도로 된다고 할지라고 언젠가는 무너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마태복음 7장 26절의 말씀처럼 모래위에 집을 세우는 것과도 같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은 자신의 믿음의 아들이자 제자이며, 동역자인 에베소에서 목회하고 있는 디모데에게 두통의 서신을 보내게 되는데 그 서신은 디모데전서와 후서입니다. 바울은 A.D. 63년경에 로마의 감옥에서 석방되어 자유의 몸이 되었지만 A.D. 66-67년경에 네로 황제의 기독교 박해로 인해 로마 감옥에 다시 2차로 감금이 됩니다. 그리고 그 감옥 속에서 마지막으로 디모데에게 서신을 보내는데 그것이 디모데후서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디모데에게 보낸 서신은 바울의 유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죽을 날이 임박해 오고 있음을 직감하고 디모데후서를 마감하는 4장에서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6절에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웠도다.' 라고 합니다.
여기에서의 관제란 제물을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기 전에 그 제물위에 포도주를 붓는 의식을 뜻하는 것으로서 그 이유는 그 제물이 불로 태워질때에 포도주의 향기를 발하여 향기로운 제물로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께 바쳐지는 관제로써 마치 자신의 몸에 포도주가 부어진 것처럼 자신의 죽음이 임박해 오고 있음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4장 직전인 디모데후서 3장 14절에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고 기록합니다. 이 말씀에서 '배우고' 란 신학교의 과정을 통해서 배우는 것과 대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는 이제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회현장에서 바른 진리 가운데 거하는 것과 대비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두 가지의 말씀을 합하여 정의해 보면 신학교에서 배운 것을 마음 깊이 간직하고 목회현장에서 확고하게 바른 진리 가운데 든든히 서서 바르게 가르치라는 의미입니다.
이에 대한 헬라어 원문은 "쉬 메네 엔 호이스 에마데스 카이 에피스토데스' 입니다. 이는 바울이 디모데에게 한 명령으로서 여기에서 '거하라' 에 해당하는 헬라어 '메네' 는 '머무르다' 라는 뜻을 지닌 '메노' 의 현재 명령형으로서 '계속해서 끝까지 머물러 있어야 함' 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 머물러 있어야 할 곳은 '배우고 확신한 일' 을 의미하는데 이것은 디모데가 배웠던 진리가 새로운 이론으로 다시 바뀌는 일이 없다는 것을 함축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거짓 교사들이나 미혹케 하는 자들이나 이단자들의 유혹이 있다고 하더라도 결코 요지부동(搖之不動)하여 흔들리지 말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배우고 확신한 지식안에 계속 거함으로써 복음의 진리를 지킬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여기에서 '배우고' 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마데스' 는 '배우다', '학습하다' 라는 뜻을 지닌 '만다노'의 부정과거형으로서 이 의미는 이러한 배움과 학습이 이미 디모데가 어렸을때부터 시작되었음을 의미하며, '확신한' 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피스토데스' 는 본래 '확실하게 하다' 라는 뜻을 지닌 '피스스토오의 부정과거 수동태로서 신앙의 습득이 단순히 학습하고 배우는 과정을 통해서만 완성되어지는 것이 아님을 의미합니다. 즉 배우는 것은 결국에는 성령의 역사하심을 통해서 전인격을 통솔하는 마음을 감동하여 확신으로 변화할때 비로소 완성되어진다는 것입니다.
디모데는 복음의 진리를 외조모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와 그리고 영적 아버지인 바울에게서 배우게 되었습니다.
오늘 졸업을 하는 신학도들이여! 저는 바울이 디모데에게 권하였던 말씀처럼 여러분들이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바랍니다. 그리하여 어떠한 유혹의 풍랑이 몰아칠지라도 진리 가운데 바로 서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야만이 여러분을 통해서 죽어가는 영혼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조선소에서 배를 만들어 완성한 다음에 선착장에 그 배를 매어 둡니다. 배를 만드는 기간은 오래 걸렸다고 할지라고 그 매어둔 시간은 결코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제 그 완성된 배는 바다로 나아가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그 배가 선착장에 매어 있을때에는 안전하겠지만 이제 바다로 나아가게 되면 예측불허(豫測不許)의 상황에 접하게 됩니다. 언제 폭퐁우가 몰아칠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긴장을 늦추어서는 결코 안 되는 것입니다. 만약에 그러다가는 폭퐁속에 휘말릴 수가 있습니다.
오늘 졸업을 하는 신학도 여러분들이 바로 신학교를 통해서 조금이나마 완성되어진 자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오늘 졸업을 하게 되면 거친 바다와도 같은 세상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 세상에는 잘못된 신학 사조와 이단이라는 폭풍우가 여러분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폭풍우를 헤쳐 나갈 수 있는 것은 바른 신학과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인 성경입니다.
오늘 졸업하는 주안에서 사랑하는 신학도들이여! 이 점을 명심하시고 늘 기도와 말씀으로 깨어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와 말씀은 항상 균형감 있게 병행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말씀만 묵상하고 기도하지 아니하면 그 믿음은 메말라 버릴 것이며, 기도만 하고 말씀을 묵상하지 아니하면 그 믿음은 폭팔해 버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묵상하는 일과 기도하는 일을 균형있게 행하여 여러분들의 믿음이 일취월장(日就月將)하여 어떠한 유혹 앞에서도 흔들리지 말고. 바른 진리의 말씀으로 많은 영혼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하고 바라며 축사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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