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와 복음주의
임경근 (다우리교회 목사) SFC [간사저널] 2008년 봄 호 16-24쪽
이전 글에서 ‘한국 교회의 특징’을 살펴보았다. 세계 교회 가운데 한국교회는 수적인 급성장과 전도와 선교, 열정적인 기도 생활로 특징지을 수 있다. 이러한 경향은 한국에 파송된 외국 선교사들의 복음주의적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개신교 각 교파들은 자신들의 신앙고백보다 ‘복음주의 연맹’(Evangelical Alliance)에서 발표한 아홉 가지 기본 원칙만 강조하였고 구체적인 교리들에는 무관심하였다. 이 영향으로 한국 장로교회가 자신들의 신앙고백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과 대ㆍ소교리 문답을 찬밥 취급하고 있는데서 잘 드러난다. 전천년설적 종말론에 익숙한 한국 교회는 세상에 대해서는 염세적이지만 복음전도에는 혼신의 힘을 다한다. 미국에서 19세기와 20세기 초에 일어난 부흥의 영향이 한국교회에 1907년 평양 대 부흥운동으로 나타나고 이러한 분위기는 한국 교회의 전형적인 특징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러한 한국교회의 특징은 소위 복음주의적 분위기와 일치하는 점이 많다. 한국의 장로교회, 침례교회, 감리교회, 순복음교회가 공통분모로 가지고 있는 것들을 복음주의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가 소속한 장로교의 상황을 보더라도 장로교 본래의 특징보다는 복음주의로 이름 하는 것을 좋아하는 분위기가 있다. 자신의 교단적 특징을 드러내려고 하지 않는다. 교회 이름 앞에 굳이 교단의 이름을 붙이지 않으려 한다. 이런 경향은 한국 교회의 일반적인 분위기가 되어가고 있다. 가까이 있는 ‘지구촌 교회’(Global Mission Church)만 해도 침례교라는 인상을 전혀 찾을 수 없다. ‘분당우리교회’(Bundang Woori Church)도 장로교 냄새가 나지 않는다.
많은 한국 교회는 복음주의적이면서도 복음주의가 무엇인지 물어보면 그 역사도 모르고 그 정체성도 정확하게 서술하지 못한다. 이는 역사인식이 부족한 탓이다. 실제로 최근 국민일보 보도에 의하면 주일학교 공과에서 교회의 역사를 가르치는 교단은 몇 되지 않았다. 장로교 통합과 고신 교단 주일학교 공과만 교회 역사를 다루고 있음을 볼 때에도 교회역사와 자신이 속한 교회의 정체성에 대한 관심이 없음을 단적으로 알 수 있다. 역사를 바르게 알지 못하면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 하게 된다. 엘리스 맥그레스(A. E. McGrath)의 말에 따르면, 역사를 공부하면 과거의 잘못을 피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장점을 극대화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본 글에서는 복음주의가 무엇이고 그 역사적 배경은 무엇이며 오늘 한국 교회에 어떤 영향을 어떻게 끼치고 있는지 살펴본다.
1. 복음주의의 역사적 배경
용어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복음주의’(Evangelism)라는 말은 성경에 등장하는 ‘복음’이라는 말에서 유래했다. 복음은 헬라어로 ‘Euangelion’, ‘좋은 소식’이라는 뜻인데, 한문으로 ‘福音’, ‘복된 소리’라고 번역되어 본래의 의미가 약간 왜곡된 감이 있다. 바울이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롬 1:16)라는 말에서 복음은 사람을 행복하게 하거나 사람의 마음에 기쁨을 주는 말이나 소리 혹은 소식을 말한다. 이 단어는 헬라인들에게는 ‘승리의 소식’을 지칭하는 전문용어이기도 했다.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황제에게 전하는 기쁜 소식에 해당되고 월계수와 축제의 분위기를 머리에 떠 올릴 수 있는 개념이다.
중세 말기와 종교개혁 시대의 복음주의
‘복음’이라는 단어는 중세 말기 이탈리아의 베네딕투스 수도사들에 의해 자주 사용되었다. 그리고 구원의 개인적 접근과 스스로 성경 읽기를 강조한 로마 천주교 작가들을 일컬어 ‘복음적’ 혹은 ‘복음주의자’라는 뜻의 ‘Evangelical’로 부르기 시작했다. 이러한 움직임을 ‘복음주의’(Evangelism, Evangelicalism)라고 부르기에 이르렀다. 어쨌든 개 성도들이 영적인 관심과 확신을 추구하게 되었다는 점이 종교 개혁적 복음주의 운동에 영향을 미쳤음에는 틀림이 없다. 이탈리아에서만 본다면 로마 천주교 안에서도 몇몇 추기경들이 이러한 복음주의적 접근에 대해 상당히 긍정적이었고, 교회에 문제를 일으킨다고 여기지 않았다. 그러나 북유럽에서 시작된 루터를 중심으로 한 복음주의적 움직임은 정치적 변화와 맞물려 로마 천주교회에게 위협이 되었다. 영국의 옥스포드 대학의 맥그레스에 의하면 1520년대 초기 종교개혁 시대의 글에 ‘Evangelical’이라는 단어가 종종 발견되었다고 한다. 로마 천주교도들은 개신교도들을 ‘Evangelici’(복음주의자들)이라고 비아냥거렸다. 종교개혁가들이 주창한 복음의 핵심인 ‘오직 믿음’(Sola fide), ‘오직 성경’(Sola scriptura),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Soli deo gloria)를 지지하는 자들이라고 붙인 이름이다. 그에 비해 개신교도들은 로마 천주교도들을 ‘Pontifici’(교황주의자들)라고 비난했다. 1530년대는 ‘Evangelical’이라는 단어보다 ‘Protestant’라는 말이 주로 사용되었고, 반(anti) 로마 천주교를 일컫는 이 단어는 17세기 중엽까지 사용되었다. 이런 명칭은 종교개혁자들이 스스로 사용한 것이 아니라 로마 천주교인들이 붙인 것이다.
대륙의 복음주의
독일에서는 ‘Evangelisch’라는 단어가 ‘Protestant’라는 단어의 동의어로 사용되었다. 지금도 독일에서는 독일교회를 공식적으로 ‘Evangelische Kirchen’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영어 ‘Evangelical’에서 유래해 만들어진 독일 신조어인 ‘Evangelikal’이라는 단어는 개신교라는 단어와는 구별되며 본래의 개인적 복음의 적용, 곧 복음주의와 깊은 관련이 있다. 프랑스에서는 ‘Evangelique’가 개신교라는 의미로 사용되지만 ‘Evangelisme’라는 단어는 개인적 복음의 적용과 관련하여 사용되고 있다. 워드(W. R. Ward) 교수는 독일, 네덜란드, 프랑스의 경건주의 운동과 지금의 복음주의 사이를 연결한다. 이들 경건주의자들(18세기)은 현재 복음주의자들이 가지고 있는 특징들을 이미 주장하고 앞서간 사람들이다. 그들은 기성 교회의 교조적인 신앙생활을 떠나 기성 교회를 떠나 창고 같은데서 예배를 드리고 모임에서 평신도 지도자들이 개인적 회심을 강조하는 연설을 하기도 했다. 주제별로 특별 강의가 많이 열렸고 특별히 젊은이들을 겨냥한 설교들이 유행했다. 일반 성도들이 교회에서 부르는 것 외에도 일상생활에서 부를 수 있는 찬송가가 작사되었고 소그룹이 장려되고 개인적인 신앙생활이 강조되었다. 17세기에 라인 강을 따라 네덜란드와 독일 스위스까지 펴졌던 경건주의 운동도 개인적인 복음의 적용에 강조점을 둔 복음주의에 영향을 미쳤다. 또 1700년대 영국의 웨슬리 형제는 독일지역의 모라비안 형제단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특히 진젠도르프의 구원에 대한 확신과 회심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다. 이들은 미국 대각성운동과 복음주의 확산에 기여했다. 선교에 대한 열정도 사실은 모라비안들에 의해 불 붙여졌다. 영국의 윌리엄 케리는 1790년에 선교를 시작했지만, 모라비안들은 1730년대 초에 이미 그린란드와 서인도 제도와 미국 원주민들에게 성공적으로 선교했다.
영국의 복음주의
영어권에서는 개신교를 일컫는 단어와 개인적 복음의 적용을 말하는 개념사이에 혼돈이 일어나지 않았다. 영국에서는 처음부터 ‘Evangelical’이라는 단어가 ‘복음에 기초한’이라는 의미로 청교도와 영국 국교회에서 같이 사용되었다. 18세기 요한 웨슬리가 일으킨 부흥운동을 ‘Evangelical’이라고 불렀는데 당시 ‘감리교적’인 것이 곧 ‘복음주의적’인 것으로 인식되었다. 로마 천주교의 많은 의식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영국 국교회에 반대한 감리교도들이 종교개혁 때와 같이 복음을 강조하였기 때문이다. 감리교는 1784년 독자적으로 평신도를 목사로 안수하면서 영국 국교회를 떠나지만 후에 국교회를 떠나지 않고 남아 있던 자들 중에도 ‘Evangelical’이라고 불리는 자들이 있었다. 이들은 영국의 영적 부흥을 추구했고 선교와 주일학교 운동과 사회정화 운동에 앞장섰다. 최근 ‘어메이징 그레이스’(Amazing Grace)라는 영화로 한국에 잘 알려진 윌리엄 윌버포스(William Wilberforce)는 가난한 자들의 삶을 향상시키고 노예제도를 폐지하는데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영국 국교회에서는 1846년 ‘복음주의 연맹’(Evangelical Alliance)를 결성함으로 복음주의의 확산을 도모했다. 교회 역사가 필립 샤프(Philip Schaff, 1819-1893)는 이 연맹의 대표적인 사람이다. 존 스토트(John Stott)나 짐 패커(Jim Packer) 등은 성공회 안에 있으면서 ‘복음주의자’에 속한 이들이다.
미국의 복음주의
미국에서는 18세기 조나단 에드워드(Jonathan Edward)와 조지 휫필드(George Whitefield)를 통한 제 1차 대 각성운동(1720-30년 대) 때 ‘Evangelical’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19세기 말엽부터 영국에서 통용되던 의미로 사용되었다. 제 2차 대 각성운동(1790년 대)이 일어나고 ‘Evangelical’이라는 단어는 전통적인 교회와 구별되는 의미에서 사용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19세기에는 ‘복음주의’가 ‘자유주의’에 반대하는 개념으로 사용되었고, 한동안 ‘근본주의’와는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근본주의 운동은 처음 세대의 열정이 점점 사라지면서 쇠퇴한다. 그 후 1942년 ‘the National Association of Evangelicals’(NAE)가 구성되면서 문자주의적이고 분리주의적인 성격 때문에 인기를 잃어가고 있던 근본주의와 구별되는 형태의 복음주의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복음주의라는 단어는 새로운 힘을 얻게 된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미국에서는 새로운 의미의 ‘Evangelical’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이것을 일컬어 ‘신복음주의’(Neo-evangelicalism)라고 하고 ‘포용적 복음주의’(Broad Evangelicalism)라고도 한다. 이들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으면서도 자유주의적인 신학과 시대 상황과 대화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근본주의와 구별되기 원했고 훨씬 넓은 개념으로 복음주의를 보기 시작했다. 신복음주의는 1960년대 초까지 세계적으로 공유되는 개념으로 자리 잡았다. 이 신복음주의 노선은 개별성과 다양성을 인정하면서 전체적인 연합(Diversity in unity)을 시도하고 있다. 즉 신복음주의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기쁜 소식을 파수하고 연결하는 운동이다. 미국의 Fuller신학교와 Gordon-Conwell신학교와 Wheaton신학교와 『Christianity Today』같은 잡지가 대표적인 예이다. 빌리 그레함(Billy Graham)은 복음주의의 대표적 주자이며 학생 운동과 선교에 많은 동력을 불어 넣었다. 미국 선교사들의 90% 이상이 바로 이 복음주의 운동에 정초하고 있다.
이제 세계적으로 볼 때 복음주의 운동은 큰 세력이 되었다. 제 3세계에서 대부분의 개신교는 복음주의적이다. 미국에서도 개신교의 3분의 2가 복음주의자들이다. 영국, 독일, 스칸디나비아 국가에서도 복음주의가 가장 큰 흐름이다.
2. 복음주의의 특징
복음주의의 특징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복음주의는 그 스펙트럼이 너무나 넓어 모든 개신교를 총 망라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복음주의는 어떤 ‘이데올로기’일 수도 있고, ‘운동’ 또는 ‘공동체’라고도 할 수 있다. 복음주의는 복음을 중심한 것들에 붙일 수 있는 어떤 ‘정신’‘이나 ’사상체계‘ 혹은 ’경향‘, ’흐름‘이라고도 할 수 있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복음’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넓은 스펙트럼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것이 바로 ‘복음’이기 때문이다. 복음이 무엇인가 하는 것은 쉬운 질문이 아니다. 복음에 대해 자유주의자와 보수주의자의 해석이 다를 수 있다. 신학적 영역이기 때문에 복잡하고 어렵고 논쟁적일 수 있기에 대체로 논의를 피하려 한다. 그러나 ‘복음이 무엇인가’하는 문제는 꼭 확인하고 지나가야 한다.
성경에 나타난 복음의 핵심은 고린도전서 15장 1-11절에서 찾을 수 있다. 복음의 핵심은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과 부활이며 이를 믿는 자는 구원 받는다는 사실이다. 이 사실이 복음이지만 개개인의 믿음을 통해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 않으면 복음신앙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이 복음신앙은 사도들이 전해 준 신앙의 핵심이며 기독교의 핵심이다. 이러한 의미의 복음주의는 바울, 어거스틴, 루터와 칼빈, 웨슬레, 조나단 에드워즈 등의 정통 신학자들의 공통분모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실제적으로 강조되는 면은 복음 자체보다는 복음을 받아들이는 신앙인 개개인의 ‘주관적인 확신’과 ‘경험’과 ‘체험’이다. 이런 측면에서 복음주의는 객관적인 복음을 잘 정리하고 주관적인 경험에 의지하는 것을 경시하는 정통주의(orthodoxism)와 구별된다.
복음주의가 ‘복음’과 ‘복음에 대한 개인적 접근’을 핵심으로 정의한다고 하더라도 역사적으로 그 모양과 특징이 다르고, 현재 교회도 여러 교단과 교파들로 나뉘어 있다는 점에서 그 실체와 모양을 정의하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James Davison Hunter는 복음주의를 침례교 전통, 성결교 및 오순절 전통, 재세례파 전통, 그리고 개혁주의적 신앙전통으로 구분했다. Richard Quebedeaux는 분리주의적 근본주의, 개방적 근본주의, 교파적 복음주의, 신복음주의로 구분하기도 한다. Gary Dorrien은 16세기 종교개혁과 청교도들의 복음주의, 18ㆍ9세기 경건주의적 복음주의, 19ㆍ20세기 근본주의적 복음주의, 마지막으로 진보적 복음주의자로 구분했다. Donald Bloesch는 대중전도운동, 학생선교단체, 복음주의 교회들의 성장, 활발한 선교운동, 기독교신문과 잡지들, 많은 복음주의 신학자들 및 신학교들의 등장과 발전들과 같은 복합적인 요인들이 하나로 어우러진 신앙운동이라고 보았다. 모두 나름대로 복음주의가 내포하고 있는 특징을 표현했지만 한 가지로 모아지지는 않고 있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곧 복음주의는 어느 한 사람이나 교파에 국한되지 않은 광의적 개념이라고 할 수 있겠다. 복음주의는 ‘집합개념’이고 ‘분위기’이며, 신학적인 어떤 체계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복음주의는 대체로 종교개혁과 경건주의와 18ㆍ9세기의 부흥운동을 통해 나타났으며 각 나라와 교회의 상황에 따라 여러 형태로 진행되었는데 세 가지 점에서 공통적인 특징을 찾을 수 있다. 첫째, 성경을 권위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인다. 둘째,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는 예수 그리스도와의 개인적인 연합을 강조한다. 셋째, 성도를 전도와 선교 영역에 매진하도록 한다.
3. 한국교회와 복음주의
한국교회의 복음주의는 이미 복음주의 분위기에 젖어 있던 외국 선교사들을 통해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선교사들의 네비우스 선교방법, 성경중심의 교회교육, 사경회, 성경중심의 신학훈련 등이 그렇다. 1905년 선교사들이 초교파적으로 ‘한국 복음주의 선교사 연합 공의회’를 결성한 것이 좋은 예이다. 복음주의적 차원에서 선교사들의 노력은 1907년 평양 대 부흥뿐 아니라 해방 전까지 한국교회에 많은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러나 해방 이후 교권다툼으로 인해 장로교가 많은 분열을 거듭하면서 복음주의 진영 교회들의 영향력이 약화되었다. 1970년대에 들어오면서 복음주의는 다시 활력을 되찾게 되는데, 총신대 박용규 교수는 특별히 초교파 선교단체 운동과 대중전도, 로잔언약, 복음주의 출판사의 발흥, 아세아 연합신학대학 설립, 복음주의 교육기관의 등장, 한국 복음주의 협의회 설립으로 인해 복음주의가 활력을 찾게 되었다고 진단한다. 수많은 대학생 선교단체는 대부분 초교파적 성격을 가졌고 전도에 집중한 대표적인 복음주의 운동이었다. 한국교회는 1973년 빌리 그레함을 초청해 270만 명을 한 자리에 모았다. 1974년에는 ‘엑스플로(Explo) ’74 전도집회’를 개최하고 1977년에는 ‘민족 복음화 대성회’를, 1980년에는 ‘세계복음화 대성회’를 열어 복음주의 운동을 확산시켰다. 1990년대부터는 복음주의 운동이 한국 교회의 분위기를 주도해 나간다. 김상복 목사는 한국교회 목회자의 약 96%는 전통적 복음주의 신앙을 가진 분들이며, 혹 자신을 복음주의자라고 하지 않을지라도 그들의 개인적 신앙은 거의 복음주의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는데 이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어 보인다.
4. 한국교회의 성장 멈춤
한국 개신교회는 지난 한 세기 동안 세계 교회가 부러워할 정도로 놀라운 성장을 보여주었다. 이 영광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돌려져야 한다. 한국 교회의 성장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놀라우신 섭리 가운데 진행된 것이다. 마치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때가 차매’(갈 4:4) 오신 것처럼, 하나님의 섭리의 때(kairos)에 대한민국에 복음이 전해졌다. 심고 물을 주는 일을 교회가 했지만 자라나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특별히 구한말 사상적 철학의 공백기에 기독교는 놀라운 대안이었고, 유약한 민족의 정기를 고취시키고, 봉건적인 구습을 타파하고 민족을 계몽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무지와 미신, 빈곤과 질병, 계급차별과 성차별이 만연한 사회에 민족의식의 각성과 교회의 성장이 동시에 이루어졌다. 일제 강점기에 기독교가 민족 종교로서 역할을 톡톡히 해낸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다. 대체로 기독교를 전파한 나라들은 식민지 지배국가라는 부정적 인식을 얻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기독교가 일본에 대항하고 독립운동을 격려함으로 긍정적인 위상을 얻게 되었는데, 이는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이다. 해방과 한국전쟁 후 한국교회는 우후죽순 생겨나고 특별히 60-70년대를 거치면서 폭발적으로 성장한다. 그 요인으로는 첫째는 교회 재건운동에 대한 열망이고, 둘째는 교단분열로 인한 경쟁적 전도와, 셋째는 사회ㆍ정치ㆍ경제적 혼란이 가져온 정신적 진공 상태로 본다. 근대화에 따른 도시화로 사람들은 삶의 안정과 정신적 위안을 찾아 지연 또는 혈연을 따라 교회로 몰려들었다. 넷째는 부흥회를 통한 전도 운동, 학원에서의 파라처치(para-church) 운동, 오순절교회를 중심으로 한 신유의 은사와 물질적 축복을 강조한 신앙이 한국인들에게 매력적이었던 것도 사실이다.
1990년에 들어서면서 한국교회의 성장 가속도가 떨어지더니, 2005년에는 1995년보다 교인 수가 줄었다. 한국 복음주의 효과가 떨어진 것이다. 특히 청소년 교인수가 줄어든 것은 교회의 미래를 더욱 걱정스럽게 한다. 미자립교회와 폐교회가 증가하기 시작했다. 더 심각한 것은 기독교 전반에 대한 사회 일반인들의 정서가 점점 나빠지고 있다. 2007년 여름 분당샘물교회의 아프칸 피랍사태를 계기로 불거진 일반인들의 기독교에 대한 반감은 심각한 수준이었다. 이러한 경향은 이미 10년 전 1997년 한국 갤럽 조사 연구소에서 ‘한국인의 종교와 종교의식’이라는 조사 결과에도 확연하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한국 교회는 전도의 대상자인 일반인들로부터 공신력을 상실했다. 구한말과 일제 강점기, 한국전쟁 후의 상황과는 정 반대의 상황이다. 이러한 한국 교회의 현 상황은 한국교회의 미래를 어둡게 하고 있다. 한국형 복음주의가 위기에 봉착한 것이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지난 해 2007년에는 ‘어게인 1907년’을 외치며 부흥을 위한 온갖 행사를 열기도 했다. 그러나 옛날과 같은 부흥은 일어나지 않았다. 한국 복음주의는 무슨 문제를 지니고 있는 것일까?
5. 한국 복음주의의 약점
복음주의는 오늘의 한국교회가 있게 한 큰 동력이었지만, 동시에 현재 한국교회의 수많은 문제를 낳게 한 원인일 수도 있다. 복음주의의 강점이 약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제 복음주의의 약점을 살펴보도록 하자.
첫째, 복음주의는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지만 성경해석에 있어서 다양한 관점을 다 받아들이기에 수많은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복음주의에는 공통된 신학체계가 없다. 성경 해석이 그룹별로 혹은 개인별로 너무나 다양하기 때문에 성경의 진리가 일관성 없는 여러 단편들로 분리된다. 이러한 복음주의의 신학적 무체계성은 성경 해석의 문자주의적ㆍ성경주의(Biblicism)적 접근을 양산하게 된다. 이는 성경에 명백하게 나타난 글자 그대로를 진리로 받아들이고 성경에서 명백한 증거를 찾을 수 없는 개념은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입장이다. 이러한 복음주의적 자세는 매우 순수하고 성경적으로 보이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노예제도를 성경적으로 정당화했던 미국 남부의 보수적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은 성경주의적 해석, 곧 문자주의적 해석의 한 예이다. 그들은 함이 셈과 야벳의 종이 되리라는 저주의 말씀을 노예제도의 찬성으로 해석했다. 지금 이 이야기를 듣는 복음주의자는 웃겠지만, 당시 복음주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매우 진지한 신앙적 생각이었다. 20세기 성령운동을 하는 복음주의자들은 방언을 성경주의로 해석함으로 구원 받은 사람은 반드시 방언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오류를 범했다. 세대주의적 성경해석도 비슷한 오류를 범한다. 구속사적인 흐름을 무시하고 문자적으로 성경을 해석함으로 인류의 역사를 창조 일수인 육일과 안식일을 본떠 일곱 세대로 나누었다. 많은 한국 교회에서는 예배당 건물을 ‘성전’이라고 말한다. 구약의 성전 개념을 교회시대의 예배당으로 적용한 것이다. 성전이 성경에 나오는 것은 사실이지만 교회 건물이 성전은 아니다. 예배당 건축을 성전건축이라고 하며 솔로몬이 지은 성전처럼 아름답고 웅장하게 짓는다. 돈이 아무리 많이 들어도 교인들은 불평해서는 안 된다. 한국 복음주의적 교회들은 교회당 건축을 성전건축이라고 하면서 화려하고 큰 교회당을 많이 지었다.
위와 같은 예들은 한국교회에 많다. 아무런 신학적 성찰 없이 목사를 제사장으로 생각하거나, 강단을 제단이라고 부르거나, 새벽기도회를 새벽제단이라고 한다. 신학이 부족한 탓이다. 분명한 신학이 없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 편한 데로 성경을 해석(성경주의ㆍ문자주의)하고 적용하다보니 생긴 문제들이다.
개인적으로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적용하는 큐티는 권장할 일이다. 그렇지만 이것도 성경주의적으로 해석하고 적용하면 위험한 측면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정확한 본문 해석보다는 적용에 강조를 두게 되어 억지스러운 적용을 하는 경우가 많다.
복음주의자들이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지만 그 해석의 기준이 각 개인에게 있기 때문에 위험하다. 성경 해석에 있어서 성령님의 인도에 귀 기울인다면 문제가 없다. 그러나 자신의 경험이나 생각을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원용할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위험성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성경을 읽고 해석하는 좋은 틀이 있는데 복음주의자들은 이 틀을 거부함으로 결국 더 큰 잘못을 범할 수 있다. 복음주의자들은 성경을 보는 좋은 틀인 신앙고백이나 교리를 대체로 좋아하지 않는다. 이러한 경향은 성경주의적 성경해석의 오류에 빠지는 더 큰 문제를 가져올 수 있다.
둘째, 중생과 회심과 성령의 사역에 대한 강조로 개인의 경험이 중요시 되어 주관주의에 빠지기 쉽다. 성경을 읽을 때 개인적인 경험이 해석의 시금석이 되기 일쑤이다. 이 점에서 복음주의는 성경의 권위를 이론적으로는 인정하면서도 실제적으로는 개인의 경험을 앞세운다. 복음주의 교회에서는 예배가 점점 경험적이고 감정적으로 변해가고 있다. 불신자들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예배가 열린 예배 형태로 바뀌고 설교는 딱딱한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듣는 청중의 귀를 만족시키는 예화 위주의 설교가 인기를 끌고 있다. 복음주의 교회에서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지 공의의 하나님은 아니시다. 복에 대한 설교는 좋아하지만 죄에 대한 설교는 인기가 없다. 복음이 곧 세상적인 복이라고 생각하는 세속적인 영향이 크다.
복음주의에서는 영적인 은사가 나타나고 개인적인 경험을 중시하다가 쉽게 이단에 빠질 수도 있다. 교리적인 부분이 약하기 때문이다. 교리적 정통주의를 죽은 신앙이라고 하면서 정통주의가 가지고 있는 교리라는 좋은 틀까지 버린 것이다. 목욕물을 버리려다가 아이까지 내다 버린 꼴이다. 한국 교회는 자신들이 고백하는 신앙고백에 관심이 없다. 신앙고백은 사도신경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점점 많은 한국교회들이 이 사도신경조차도 예배 시간에 고백하지 않는 경우가 있는 것을 볼 때에 복음주의의 약점을 발견할 수 있다. 복음을 아주 단순화시킨 결과이다.
유아세례는 개인적인 신앙의 경험이 없는 가운데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장로교인들 조차 유아세례의 언약적 복의 의미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유아세계를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복음주의에서는 개인적인 경험을 강조하는 은사운동이 인기를 끌 수밖에 없다. 경험적인 신앙을 추구하면서 신유와 환상과 방언의 은사를 강조한다. 대신 하나님께서 창조질서와 말씀 가운데 주시는 평화와 명령에는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모습이 복음주의에 있다.
복음주의는 복음을 단순화함으로 개인의 구원에는 관심이 있지만 삶과 창조세계를 향한 관심은 부족하다. 사회적 불의에 대해서는 관심이 별로 없다. 정치에 대한 관심도 적다. 기독교 교육에도 관심이 없다. 전도를 위한 주일학교 교육에는 관심이 있지만 가정에서 언약의 자녀들을 신앙으로 양육하는 것은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복음주의는 복음신앙을 강조함으로 전도와 세계 선교에 불을 붙였고 복음 전파에 놀라운 결과를 낳았음에 틀림이 없다. 복음주의자들은 개인 구원에 대해서는 위대한 신학자였지만, 문화나 사회에 대해서는 신학자가 아니다. 사회에 관한 신학만으로 이뤄진 기독교도 문제이지만, 개인에 대한 관심이 지나치게 집중되어 문화나 사회를 도외시하는 기독교도 문제다.
특히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개인적 성경해석과 주관적 삶의 양태에서는 복음주의가 매우 인기가 있지만 보편적인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지지 않음으로 신앙의 불균형을 이룬다.
셋째, 복음주의는 전도와 선교를 강조하면서 성경이 말하는 제자도의 기준을 낮추는 위험이 있다. 최권능 목사는 기독교에는 중심 진리가 있는데 그것은 복음신앙을 통한 구원이며, 이것을 “예수 천당”이라는 한 마디로 표현했다. 그러나 예수 믿고 바로 죽으면 천당에 가지만, 세상에 살고 있는 성도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빠져 있다. 구원을 단순히 예수 믿는 것으로 끝난다고 생각한 결과이다. 특별히 학원 선교단체도 비슷한 주장을 한다. 진정한 제자는 다른 제자를 낳을 때 이루어진다고 가르치며 예수를 갓 믿은 초신자를 전도와 선교에 곧바로 투입한다. 성도들이 자신의 삶 가운데 어떻게 세상 속에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는다. 한국교회 성도들은 전도에만 전력함으로 사회적 책임을 등한시 하게 되었다. 전도에 대한 강조는 사회 구조적인 악에 대해서 무관심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사회의 질서, 정치, 경제 체계도 하나님이 주신 일반은총에 속한다. 안타까운 것은 복음주의 그리스도인들이 이 부분에서 아주 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 개신교는 앞에서도 언급한 것과 같이 소금과 빛 된 삶에 헌신하지 않았다. 한국 개신교가 성장이 멈춘 이유는 전도와 선교가 약화되었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한국 교회가 일반인들로부터 매력을 잃게 된 것은 말씀의 행함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의 소금과 빛 된 삶을 통해 그리스도인들이 믿는바 소망이 무엇인지 물어오도록 하는 차원의 전도와 선교가 없는 것이 문제이다. 여기에 한국 복음주의의 맹점이 있다.
넷째, 복음주의가 복음으로 교회의 하나 됨을 강조하지만 보이는 기구적 개체 교회를 무력화하는 위험이 있다. 개 교회의 실제적인 개혁을 추구하기보다는 성령을 통한 부흥만을 강조한다. 한국 교회가 ‘어게인 1907’을 통해 추구한 것은 복음주의의 이러한 경향을 강하게 보여 준다. 커다란 이벤트나 행사에 관심을 기울이고 지역교회의 예배는 덜 중요하게 생각할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한국교회는 대형행사나 연합부흥회 같은 것에 익숙해 있다. 부활절 연합집회 같은 것을 통해 그 영향력을 행사한다.
다섯째, 복음주의는 전도와 선교를 위한 개 교회주의와 대교회를 지향하게 만들었다. 한국교회는 수적인 교회의 부흥을 위하여 경쟁적으로 교세확장에 힘썼다. 교회는 성경적인 원리보다는 자본주의 체제의 기업의 생리를 따라 각 교회는 치열한 경쟁을 했다. 지역교회로서의 역할을 포기하고 멀리까지 버스를 돌리며 교세확장에 힘썼다. 교인들도 교회의 신앙고백이나 질을 보기보다는 목사의 설교나 유명세를 보고 교회를 결정함으로 성도의 쏠림 현상이 심각하다. 성도들은 이 교회에서 실망하면 저 교회로 철새가 이동하는 것처럼 몰려다닌다. 교인들의 교회 쇼핑 현상도 심각하다. 이러한 자본주의적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아 성장한 교회는 점점 더 대형 교회로 발전해 간다. 대형교회는 교회의 연합체인 노회의 통제를 받으려 하지 않는다. 개 교회주의 교회는 중세적인 교회 제도를 가장 철저히 배제한 교회제도라고 하지만 가장 중세적인 교회로 전락할 수 있는 위험이 있다. 개 교회주의 교회는 아무런 상회(다수회)의 제재를 받지 않는, 자체가 최종 권위를 가지는 교회가 되기 쉽다. 또 대형 교회의 목사는 카리스마적 지도자로 추앙받게 되기에 목사로서 작은 교황과 같은 역할을 할 수도 있다. 다시 말하면 얼마든지 독재할 수 있고, 부패될 수 있으며, 잘못된 길로 갈 수 있는 소지를 안게 된다. 이런 개 교회들의 수가 많다 보면 교계는 무정부 상태로 빠지고 만다. 개 교회에 분쟁이 있어도 노회는 조정하는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무능한 노회가 되고 만다. 이러한 현상은 조직적이거나 의도적으로 일어난 것은 아닐지라도 복음주의 교회가 안고 있는 약점이고 한계임에 틀림없다.
여섯째, 복음주의가 복음 자체에만 관심을 가지면서 가정에서의 신앙교육이 약화되었다. 주일학교 운동은 본래 복음주의의 등장으로 활성화된 가장 좋은 예일 것이다. 영국에서는 길거리를 배회하는 아이들에게 성경을 가르쳐주고 그들의 삶을 돌보아주기 위하여 주일학교가 시작되었다. 이것이 19세기 중반부터 미국 대부분의 교회들에 정착되면서 놀라운 선교적 기능을 감당한 것도 사실이다. 아이들이 교회에 나오면서 부모들도 교회에 나오는 경향이 많아지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로 인해 손해를 본 점도 있다. 주일학교가 생기기 전까지는 자녀들에 대한 신앙교육이 가정에서 이루어졌다. 그런데 주일학교가 활성화되면서 믿는 자녀들도 주일학교에 가게 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신자들의 자녀가 주일학교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 후 믿는 부모들이 자녀들의 신앙교육을 주일학교에만 맡기고 가정에서는 신앙교육을 하지 않는 현상이 발생하였다. 자녀들의 신앙교육을 위해 가정에서 가족예배를 드리는 경우가 거의 사라져 버렸다. 미국에서는 이미 19세기 중엽부터 가족예배가 사라졌다. 일부 장로교와 개혁교회에서 가족예배가 아직도 존속되고 있지만, 전반적인 분위기는 그렇지 못하다. 한국 교회도 마찬가지다. 가족예배 경험이 없는 선교사들이 한국에 왔기 때문에 가족예배는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목사들도 가족예배의 필요성에 대해 그다지 강조하지 않는다. 이러한 현상은 복음주의가 강력해지면서 나타난 현상으로 전도와 선교를 강조하면서 가정에서의 하나님 나라 운동이 약화된 것이다.
가정에서의 신앙교육의 약화와 더불어 기독교 교육도 약화되었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전도를 위한 학교만 생각했지, 믿음의 자녀들에게 성경적인 관점에서 지식을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고민한 흔적이 별로 없다. 그래서 무신론적인 세계관으로 교과목을 가르치는 공립학교에 믿는 자녀들을 보내면서도 아무런 문제점을 느끼지 않는다. 기독교적으로 교육하는 기독교학교에 아이들을 보내는 것은 유약한 온실 안의 화초나 우물 안의 개구리로 키우는 것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또 공립학교에 가지 않으면 아이들이 전도할 대상자가 없다는 논지를 펴기도 한다. 그렇지만 아이들이 신앙적으로 분명한 정체성을 갖지 못한 가운데 수많은 세속적인 사상에 노출되는 것을 과연 하나님이 기뻐하실 지에 대한 고민이 없다.
6. 한국교회의 미래와 대안
한국교회는 복음주의 때문에 놀라운 성장도 했지만 복음주의가 가지고 있는 생태적인 약점 때문에 교회성장이 답보 상태에 있다. 한국교회는 21세기라는 사회적 정황가운데 어디로 가야할까? 한국교회가 양적 성장을 추구해 왔다면 앞으로는 질적 성장을 도모해야 한다고 많은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얘기하고 있다. 이 말에는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떻게 질적인 성장을 도모할 것인가에 대한 대안은 별로 없다. 이병선은 이 부분에서 질적으로 우수한 교회 지도자들을 배출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옳은 지적이다. 그러나 이보다 훨씬 더 큰 범위의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복음주의보다 깊고 폭넓은 접근이 필요하다. 예수님의 대위임령은 단순히 복음의 선포로 머물지 않는다. 예수님이 원하시는 제자도는 복음을 듣고 세례 받고 가르쳐 지키도록 하는 단계를 요구한다. 복음은 인간의 구원을 훨씬 넘어서는 하나님의 우주적 구원에 대한 관심도 포함한다. 하나님은 피조물인 각종 동물을 방주에 싣고 구원해 주셨다. 인간의 죄로 인해 인간과 세상이 오염되었지만 예수 안에서 다시 구원 받았다. 바울은 세상의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기를 기다린다고 했다(롬 8:19-23). 구원은 인간에게만 제한되지 않는다. 구원의 범위는 창조의 범위와 동일하다. 그리스도인들이 살아가는 세상의 모든 것들이 구원과 관계가 있다. 대통령 선거, 국회의원 선거, 빚, 동성애, 고소, 먹거리 등등 세상의 모든 것들이 하나님과 관계없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오히려 세상을 적극적으로 끌어안아야 한다. 죄악 된 세상을 안고 말씀으로 거룩하게 하기 위해 기도하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으로 만들기 위해 힘써야 한다.
1974년 로잔언약(The Lausanne Covenant) 선포 이후 복음주의자들도 사회에 대해 점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는 아직도 복음주의의 영향이 너무나 커 인간의 구원과 온 우주의 구원을 이원적으로 보는 경향이 농후하다. 이 부분에 있어 균형 잡힌 시각과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틀이 필요하다. 21세기 한국교회를 이끌어 갈 좋은 틀이 절실하다. 이 틀이 바로 개혁신앙이다. 다음 글에서는 한국교회의 대안인 개혁신앙에 대해 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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