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주의 전도의 원리
오늘날 교회 안에서는 그 종류를 일일이 다 언급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전도 방법이 행해지고 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 수많은 전도의 방법들은 거의 대부분 미신적이든지, 아니면 상업주의적 전략이나 인본주의적 방법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들로 가득하다.
물론 미신적인 전도방법이나 상업주의적, 인본주의적 전도 방법들을 주장하는 분들도 나름대로는 성경의 근거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 한다.
그러나 그러한 그들의 주장은 몇 개의 성경 구절만 사용하더라도 쉽게 그 허구성을 입증할 수 있을 정도로 성경적 근거가 빈약하다.
오늘날 개혁주의 교회들은 이러한 미신적이고 상업주의적이며 인본주의적인 전도법에 대하여 강도 높은 비판을 가해왔다.
그러나 오늘날 이 시대 개혁주의 교회의 문제는 이런 잘못된 전도에 대한 비판과 아울러 성경적이고 실제적인 대안을 제시하는데 미약하다는 점이다.
이런 차원에서 필자는 우리 개혁주의적인 관점에서 바른 전도의 원리를 제시하고자 한다.
성경에서 바른 전도의 원리를 발견하기 위해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성경구절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누가복음 5장이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누가복음 5장은 누구나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예수님께서 시몬(베드로)과 안드레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도록 부르신 유명한 장면이다.
여기서 이 이야기는 예수님께서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가 물고기를 잡으러 바다에 나갔다가 아무런 소득 없이 돌아와서 그물을 씻는 모습에서 시작된다.
예수님은 구름처럼 몰려든 무리들을 향해서 설교를 하기 위해 베드로와 안드레에게 배를 태워달라고 요구한다.
그리고 예수님은 가르침을 마치신 후에 베드로를 향하여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눅 5:4)고 명하신다.
이 명령은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에겐 거북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시몬과 안드레는 밤새도록 그물을 던졌지만 아무 것도 얻지 못한데다가, 이제까지 피곤한 몸을 이끌고 그물을 다 씻어 놓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그들의 그물이 찢어질 지경으로 물고기가 잡힌 것이다.
시몬 베드로는 이 기이한 현상을 보고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고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이렇게 자신의 죄인 됨을 고백하는 시몬을 향하여 주님은 “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눅 5:10)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이 놀라운 기적에 대한 기록 속에서 개혁주의 전도의 핵심 원리를 발견하게 된다.
그러면 여기서 가르치는 개혁주의 전도의 핵심 원리란 무엇인가?
첫째, 전도에는 오직 '십자가의 도'만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여기서 베드로와 시몬에게 “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고 하셨다.
이 말을 마태복음이나 마가복음은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마 4:19; 막 1:17)고 기록하고 있다.
왜 주님은 시몬과 안드레에게 "사람을 낚는 어무가 되게 하리라"고 하셨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 이유는 전도의 행위가 어부의 물고기 잡는 행위와 유사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을 부각시키려는 것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마태복음 13장에 나타난 하나님 나라의 비유 가운데 ‘물고기를 잡는 그물 비유’에서도 아주 잘 나타난다.
즉 전도란 물고기를 잡기 위해 그물을 사용하거나 미끼를 던지는 것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어떻게 유사하다는 것인가?
그것은 어부가 그물이나 미끼를 미리 결정하는 행위가 곧 잡고자 하는 물고기의 종류를 미리 결정하는 것처럼 전도도 이와 유사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어부는 무턱대고 그물을 내려 물고기를 잡는 것이 아니다.
어부가 그물을 정하고 바닷가에 나가기 전에, 자기가 잡으려는 대상(물고기)를 정한다.
그리고 자기가 정한 물고기를 잡기 위해서 그에 적절한 그물(미끼)를 결정한다.
작은 물고기를 잡을 것이라면 그물이 촘촘한 것을 선택하고, 큰 물고기를 잡을 것이라면 그물이 튼튼하면서도 촘촘하지 않은 것을 선택할 것이다.
미끼를 정하더라도 자기가 잡으려고 하는 물고기가 좋아하는 미끼를 정할 것이다.
이것은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상식이다.
그런데 성경이 가르치는 전도의 핵심 원리가 바로 여기에 있다.
성경은 전도가 마치 어무가 물고기를 잡는 행위와 같은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전도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물고기(창세 전에 이미 구원하시기로 작정된 사람)를 잡기 위한 그물이나, 미끼를 사용하라고 명령하신다.
그 그물이나 미끼란 무엇인가?
성경은 ‘십자가의 도(진리)’가 바로 그것이라고 한다.
십자가의 도만이 택한 백성들을 거두어들이기 위해 준비된 유일한 그물(미끼)이다.
사도 바울의 말처럼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개념은 요한복음 10장에서도 아주 잘 나타난다.
요한복음 10장은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의 도를 수 많은 무리들에게 가르치신 장면이 나온다.
여기서 우리 주님은 수많은 무리들이 믿지 않는 현상을 보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요 10:26-27)
그렇다.
십자가의 도를 전하는 것은 주님의 양과 아닌 자들을 구별하는 도구가 된다.
주님께서 택하신 백성들은 반드시 십자가의 도에 반응하게 되어 있다.
이것이 개혁주의 전도에서 가장 중요한 원리이다.
두 번째로, 개혁주의 전도의 원리는 선택과 유기의 원리를 담고 있다.
우리는 앞에서 어부들이 고기를 잡는 원리를 살펴보았다.
어부는 물고기를 잡으러 나가기 전에 자기가 잡고자 하는 물고기를 미리 염두에 두고 그물이나 미끼를 미리 정한다고 했다.
이러한 원리처럼 전도란 아무나 다 끌어와서 예배당을 채우는 것이 아니다.
개혁주의 전도 원리는 선택과 유기를 염두에 둔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선택과 유기의 원리가 적용된 전도를 한다면 그것은 당연히 잡으려는 물고기에 합당한 그물이나 미끼를 준비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들만 반응할 것이라고 말씀하신 메시지만 사용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정하시지 않은 메시지를 그물이나 미끼로 사용한다면 하나님께서 원하신 사람들이 아닌 다른 사람들이 예배당 안을 가득 채울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아무리 많은 물고기를 잡았다고 하더라도 그 물고기는 주인이 원하는 물고기가 아닌 것이 되므로 주인의 칭찬을 받을 수 없다.
마태복음 13장에 나오는 그물의 비유는 이러한 사실을 아주 더 정확하게 말해준다.
“또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 그물에 가득하매 물 가로 끌어 내고 앉아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버리느니라”
여기에 나타난 하나님 나라의 원리가 무엇인가?
하나님 나라는 마치 어부가 물고기를 잡기 위해 그물을 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는 그물 속 물고기가 많다고 무조건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그 속에는 좋은 것만 있는 것과 못된 것(사프로스/무가치한 것-어부가 원치 않는 것)을 나누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다.
그런데 오늘날 이 시대의 교회는 주님께서 정해주신 그물이나 미끼(십자가의 도)를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못된 것들로 가득하다.
아무리 물고기가 많다고 하지만 여기엔 주님의 칭찬을 기대할 수 없다.
마지막 세 번째로 개혁주의 전도의 원리는 하나님의 주권(성령의 주권) 사상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다시 누가복음 5:4을 보면 아주 흥미로운 점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시몬과 안드레의 오랜 경험과 상식에 위배되는 곳(깊은 곳)과 시간(한 낮)에 그물을 던지도록 했다는 점이다.
본래 물고기는 적당한 깊이에 그물을 던져야 하며, 한 낮보다는 한 밤에 잡는 것이 최적이라는 것은 어부들의 상식이었다.
전능하신 성자께서 이런 상식을 모르지 않을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한 낮에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시몬에서 명령하신 것이다.
이렇게 자신의 경험과 상식에 위배된 명령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린다.
그 결과는 놀라운 것이었다.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물고기가 잡힌 것이다.
여기에서 전도가 하나님의 주권, 또는 성령의 주권에 의존되어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전도는 우리의 경험과 상식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볼 때 예수 믿을 것 같아 보이는 사람에겐 도를 전하고, 믿지 않을 것 같아 보이는 사람은 애초부터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사도 바울의 표현처럼 전도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힘써야 하는 것이다(딤후 4:2).
왜 그런가?
전도는 우리의 상식과 경험과 판단에 의하여 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하나님(성령)의 주권에 의존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성령의 주권에 의존되어야 한다는 것은 단순히 대상과 시기(때)만을 말하지 않는다.
거기에는 전도의 주체가 바로 성령님이시라는 점과 전도를 할 때 말씀을 듣는 자의 마음을 여시는 분이 성령님이시라는 점, 그리고 전도를
받아서 심령을 거듭나게 하시는 분이 성령님이시라는 점을 인정하고 기도하는 것이다.
이러한 전도의 원리는 다음과 같은 성경 말씀에 아주 명확하게 잘 나타난다.
먼저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에게 부탁하기를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골 4:3)고 한다.
또 사도행전을 보면 성령님께서는 사도 바울이 전도를 할 때 ‘루디아’라는 여자의 마음을 열어 복음을 듣게 하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말을 듣고 있을 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행16:14)
이것이 바로 개혁주의 전도의 핵심 원리이다.
오늘날 이 시대의 교회들은 이렇게 성경이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는 전도 원리를 분명하게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전도의 원리를 근거로 하여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를 이루어 나가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이 시대 교회의 근원을 개혁하는 중요한 원리라고 본다.
글쓴이 : 회복의교회 김민호 목사
[출처] [전도]개혁주의 전도의 원리|작성자 퓨리탄
[스크랩] 개혁주의 전도의 실제 (0) | 2012.03.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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