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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어둠 속을 걷고 있는 자들에게(토마스 굿윈)

토마스 굿윈

by 김경호 진실 2012. 5. 21.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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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어둠 속을 걷고 있는 자들에게(토마스 굿윈)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늘 밖에서 사업에 열중할 때, 자녀를 돌보지 않고 자기를 내버려 둔다고 탄식하는 어리석고 유치한 아내를 둔 것이 현명한 사람에게 얼마나 큰 고통이 되겠습니까? 그가 그녀의 허물을 나무란다면 그녀는 그가 자기를 미워한다고 말할 것입니다. 하루 종일 친절하게 대해도 그녀의 마음을 편안하게 할 수 없을 때 이것이 얼마나 큰 고통이 되겠습니까?
 
하나님과 이런 식으로 관계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사랑한다는 확실한 지요를 별로 주시지 않고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반복하지 않으면, 여러분은 질투하고 불안해하며 항상 의심하고 모든 것에 눈살을 찌푸립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질책하지 않고 죄악의 길로 가게 내버려 두어 여러분을 파멸로 이끄다거나, 아니면 이전에 보여 주신 그의 모든 사랑에 대해 감사할 줄 모른다고 여러분을 향해 하나님께서 진노하신다고 오해하고 화를 낼 것입니다. 저는 덜 고통을 당하고 이런 식으로 ‘그리스도를 거스르는’ 사람들을 질책합니다.
 
그러나 낙심에 처해 있는 사람들의 경우 고통당하는 책임이 그들에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주께서 낯을 숨기신즉 저희가 떨기’ 때문입니다(시 104:29). 하나님께서는 노하시면 여러분을 패역한 마음의 길로 가게 내벼려 두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쳤으나 그가 오히려 패역하게 굴면 그것을 악하게 여기십니다(사 57:17).
여러분이 이런 식으로 그것을 마음에 두지 않는다면 이는 여러분에게 은혜가 없다는 표징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부재를 견디고 애통해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그를 여러분의 주님으로 삼지 않은 것입니다. 다른 위안거리를 갖고 있는 육적인 인간은 하나님이 없어도 잘 견딜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자신의 주님으로 삼고 큰 보상으로 삼는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나 비록 여러분이 은혜가 없다는 것에 대해 애통해한다 하더라도 실망하지 마십시오. 비록 여러분이 변한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그렇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말 3:6, 약 1:6). 또한 그의 사랑은 그 자신이므로 그의 사랑도 변치 않습니다(요일 4:8-10). 우리는 우리의 인식과 견해를 바꿀 수 있고,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외적인 자세와 태도도 바뀔 수 있지만, 그의 근본적인 사랑은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의 우리는 어제의 우리와 같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히 13:8).
 
그가 얼굴을 감추셨기 때문에 여러분을 내쫓은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마귀의 법칙에서 나온 것으로 그를 상처 입히는 망상입니다. “내가 넘치는 진노로 내 얼굴을 네게서 잠시 가리웠으나 영원한 자비로 너를 긍휼히 여기리라”(사 54:8). 하나님께서는 나는 ‘내 얼굴을 가리웠을’ 뿐, 너를 내 마음에서 내쫓은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비록 ‘진노’하기는 했지만 ‘약간’ 진노했을 뿐이며, 오랫동안 노한 것이 아니라 ‘잠시’ 노한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너를 염두에 두고 ‘내가 너를 기억하리라’, 그리고 ‘영원한 자비로’ 이렇게 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태양이 가려지면(사실은 빛을 내는 태양이 가리워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구가 가리워지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다시는 태양이 빛을 회복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현명한 사람들은 태양이 다시 빛을 발할 것임을 압니다.
 
이의 - 하지만 이런 버림받음이 잠시 동안이라면 그건 대단한 일이 아니지만 나의 버림받음은 오래동안 계속되었습니다.
 
대답 - 얼마나 오랫동안입니까? 이생은 잠시 잠깐에 불과합니다. ‘영원한 자비’, 하나님께서는 영원히 사랑을 보여 주실 것입니다. 여러 가지 불쾌함을 보상해 주기에 충분한 시간을 취하십니다. 본문이 말하는 것, 즉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도 흑암, 즉 어둠 중에 행하리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어둠 속에 한두 발자국 걷는 것이 아니라 어둠 속에 한동안 머무는 것임을 기억하십시오.
 
헤만은 어릴 때부터 시련을 당했습니다(시 88편). 아삽은 하나님께서 자비를 잊으셨다고 생각했습니다(시 77편). 그이 약속은 영원히 이루어지지 않는 걸까요? 그가 다른 경우에 말씀하신 것, 비록 그가 오래 참을지라도 속히 오리라는 말씀(눅 18:8)을 기억하십시오. 즉 우리의 눈에는 길게 보여도 앞으로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할지를 아시는 그분 자신에게는 금방 지나가고 마는 시간입니다.
 
이의 - 그렇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그는 얼굴만 가리는 것이 아니라 나를 두렵게 하신다. 그는 진노하시고 원수가 되신다. 그가 나를 대적하므로 나는 멸망당해 마땅한 진노의 그릇이다.
 
대답 - 욥의 경우가 그랬습니다.
“주께서 어찌하여 얼굴을 가리우시고 나를 주의 대적으로 여기시나이까?”(욥 13:24) 이사야서 63장은 일시적인 진노의 결과일 뿐입니다.
 
‘진노 아래 있는 자녀’와 ‘진노의 자녀’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진노의 자녀가 아니라면 진노 아래 있는 자녀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버지로서 여러분의 상태와 몸에 시련을 가하시듯이, 여러분의 심령에 시련을 가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는 ‘모든 영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히 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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