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스크랩] 교회란 무엇인가(다우리신앙강좌 3) 황대우 목사(2012년 1월 8일)

교회론

by 김경호 진실 2012. 7. 26. 09:00

본문

교회란 무엇인가?

 

다우리 신앙강좌 3

201218일 황대우 목사

 

개혁교회는 성경 에베소서와 가장 친밀한 것 같다. 개혁교회에 대한 내용이 에베소서에 가장 풍성하다. 구약 가운데는 시편을 특별히 사랑한다. 시편의 경우는 신자가 이 땅을 살아가는 삶의 현장 속에서 예상치 않은 많은 문제를 어떤 신앙의 자세로 살아갈 것인지를 보여준다. 개인적으로도 시편이 참 좋았던 것은 인간적이기 때문이다. 감정을 세밀하게 읽어준다.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할 때 가장 유익을 얻는 성경이 시편이라면, 교회란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것이 에베소서이다. 그 질문에 가장 성경적으로 잘 답해주는 것이 에베소서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도 에베소서를 사랑한다. (농담) ‘(아기) 배소서이기 때문에......(하하하) 개혁교회 성도들은 다산을 하는데 애 배소서!’와 관련되지 않을까????

 

신비한 그리스도의 몸에 대한 학위 논문에서 신비한의 의미를 400페이지로 썼다. 칼빈이 생각한 것을 지금의 실정에 맞게 요약하는 것으로 강의를 진행하려 한다.

 

교회 인간의 창조물? 그리스도의 거룩한 기관!

칼빈은 에베소서 411절을 주석하면서 이런 설명을 했다. “무엇보다 먼저 바울이 의미하는 것은 교회가 인간의 고안물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거룩한 기관이라는 것인데, 이유는 교회가 말씀 선포에 의해 다스려 지기 때문이다.” 교회는 인간의 창조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의 주인은 그리스도시다. 이 관점에서 오늘날 한국 교회를 보면 기초부터 잘 못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은 사람과 돈만 있으면 교회가 세워진다라고 생각하고 말한다. 그러나 교회는 하나님께서 세우신다. 하나님께서 죄인을 부르시고 교회로 모으신다.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한 성도이지만 그들은 죄인들이다. 우리 편에서 보면 죄인들의 공동체이다. 죄인들이 있는 곳에는 문제가 있는 것이 정상이다. 제아무리 ‘~다우리!’라고 해도 문제가 없지 않다. 구성원이 죄인이기 때문이다. 죄인들이 모여 그리스도의 사랑을 기억하면 교회다운 교회를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평생 완전한 교회를 만들지 못할 것이지만, 그 교회를 만들기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은 귀한 일이다.

 

교회의 세우는 질서

그리스도의 몸으로 서기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는 질서이다. 질서는 지키면 아름답다. 안 지키면 편리하다. 어떤 것을 택할 것인가? 편리한 것을 추구하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경향이지만, 우리는 반대로 해야 한다. 아름다운 것을 추구해야 한다. 교회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질서가 바로 설 때이다. 이것을 에베소서가 가르치고 고린도서도 가르친다. 질서가 왜 아름다운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분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아름답게 창조하셨다. 그 가운데 최고로 아름다운 피조물이 인간이다. 그런데 맛있고 좋은 것일수록 부패하면 더 고약한 냄새가 난다. 그것이 인간의 타락이다. 자신뿐 아니라, 모든 피조물도 타락의 영향아래 있게 했다. 죄의 영향은 전염성이 강하다. 착하고 바른 말하는 사람은 그대에서 끝날 수 있다. 그러나 거짓말하고 얍삭한 사람은 계속 이어진다.

 

때로는 편리한 것, 때로는 아름다운 것을 선택한다. 여기에 문제가 있다. 언제나 질서를 지키면 아름답다. 자기만 편한 것을 하거나, 격식 없이 행동하고, 권위도 없는 것을 아름답고 화목한 가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사실은 무질서한 가정일 수 있다. 정말 아름다운 가정은 특별히 질서를 억지로 세우지 않아도 질서가 있기 때문에 아름답다. 계절을 보라. , 여름, 가을, 겨울을 보면 나름대로 아름다움을 보여 준다. 사계절은 인생의 의미를 잘 보여 주지 않는가!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 우리 조상들도 철든 사람이 사람답다고 한다. 은 사시사철의 철이다. 봄이 봄다워야 아름답고 여름도 여름다워야 아름답다. 교회가 이 땅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그 모습을 제대로 나타내는 것이 철든 교회이다. 그러면 어떤 교회가 철든 교회인가?

 

교회의 주인은 그리스도

한국 교회의 주인은 목사 아니면 장로이고 아니면 똑똑한 집사인 경우가 많다. 참 교회는 주인이 그리스도인 교회이다. 다우리 교회도 그리스도가 머리이신 교회이길 바란다. 문제가 생겼을 때 사람이 주인인 경우는 말을 잘 하는 사람이나, 능력이 있는 사람이 자기의 뜻대로 뭔가를 한다. 나머지 사람은 모두 피해자가 된다. 다우리 교회에 문제가 생겼다고 가정해 보자. 이 집사와 김 집사가 싸웠다. 서로 원수처럼 될 수 있다. 두 사람만의 싸움이 아니라, 두 편으로 나누어진다. 이렇게 교회에 패가 나뉜다. 이것이 대한민국 교회의 일반적인 모습이다. 그런데 정말 그리스도가 머리라는 것을 고백하고 사는 교회라면 해결하는 방법이 다르다. 주인이 그리스도이니 기도한다. 거룩한 척하기 위해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내려놓는 것이다. (사람만이 교만하다. 짐승은 교만하지 않다) 그래서 겸손하라고 명령하다. 겸손은 모든 것을 포기하라고 한다. ‘내려놓음이라는 책이 있다. 그는 내려놓을 것이 참 많더라.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을 내려 놓으셨다. 온전히 우리와 같이 되셨고 우리처럼 사셨다. 아담과 달리 이 세상의 모든 유혹을 이기시고 죄짓지 않으셨습니다.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아는가? 아담은 죄 짓지 않을 환경에서 살았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죄 짓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서 살았다. 그런 역경과 고민을 생각해 보았나? 그렇게 하신 것은 바로 주님의 교회의 지체들을 위해 하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사랑의 관점에서 절대평가를 해야 한다. 그렇지만 한 순간에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다. 노력하며 나아갈 때 ‘~다운목표를 향해 달려가야 한다.

 

거룩한 교회는 하늘에서 내려와

죄인 공동체는 땅이고, 거룩한 공동체는 하늘이다. 아무리 장대높이뛰기를 해도 그 거리를 뛰어 넘을 수 없다. 비행기를 만들어 아무리 끝까지 올라가도 거룩함이라는 하늘에 도달할 수 없다. 거룩함은 내려오는 것이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죄인이 우리에게 임할 때 가능하다. 하나님의 교회가 어떻게 거룩한가? 문제를 하나님을 통해 해결하려 할 때 거룩해 진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으로 돌아가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 것이다. 그런 방법을 알고 행하는 교회가 필요하다. 이런 교회는 네 가지 방법이 필요하다.

 

1) 봉사 공동체이다.

 

세상은 힘으로 질서를 세운다. 그러나 교회의 질서는 희생으로 세워진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해 희생하셨을 때 비로소 하나님의 질서 있는 교회가 세워진 것처럼, 내가 아닌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정신을 가질 때 이 땅에 그리스도의 몸 다운 교회가 될 수 있다. 교회의 속성은 단일성, 사도성, 거룩성, 보편성으로 나뉜다. 이 가운데 교회의 사도성과 연결시켜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질서를 세우는데 힘으로 세우는 것이 아니라, 희생 곧 사랑으로 세우기 때문이다. 교회의 직분자들은 권위주의로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희생으로 다스리는 것이다. 하나님의 원리로 보면 교회의 직분자들은 교회의 종이다. 교회의 주인은 예수님이시다. 그 주인이 처음 부리는 종이 직분자들이다. 세상에서는 신하들이 권력이 있지만, 교회의 그리스도의 종은 그야 말로 종이다. 종은 주인을 섬긴다. 주인이신 예수님께서 교인을 섬기는 것이 곧 나를 섬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종이 주인을 섬기는 것은 직분자로서 교인을 섬기는 것으로 나타나야 한다.

 

그렇다고 성경은 교인들이 배를 내 밀고 섬겨 봐!’라고 할 수 있나? 성경은 교회의 직분자들을 존경하고 배나 존경할 자로 알아라, 고 한다. 남을 낫게 여겨야 한다. 이것이 가장 아름다운 관계이다. 종으로서의 사역자가 스스로 권위를 세우면 안 된다. 성도들은 사역자의 섬김을 당연시 해서는 안 된다. 상호간의 사랑이 정말 필요하다. 주님은 준비된 사람을 쓰신다. ‘준비된이라는 것을 인간적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 목적을 위해 열심히 준비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마음에 합한 자가 바로 준비된자이다. 사울을 보고 사람이 보기에 준수했다고 했다. 사람이 보기에 준수했지만, 하나님께서 보기에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사울이 왕이 되도록 허락하셨다. 그런데 사울은 실망이었다. 이 때 다윗이 나타났다. 사람이 보기에는 형편없었지 않은가? 그런데 다윗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가 싸웠을 때 승리할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사역자들은 성도들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종이다. 학력, 인물이 직분자의 요건이 아니다. 그 은사에 맞게 하나님께서 세우신 것으로 본다.

 

은사로 교회를 세울 때 아름답다. 은사를 통해 자기를 세울 때는 반 질서적인 것이다. 고린도 교회에서 잘 하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질서가 강조되고 있다.

 

사역자만 봉사자인가? 그렇지 않다. 칼빈은 교회에 은사를 주셨는데(양을 똑 같다는 말이 아님), 그 사람이 그 일을 적절하게 감당할 수 있게 주셨다고 말했다. 다우리 교회에는 남을 섬기는데 필요한 은사는 반드시 주셨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교회의 은사를 교회를 세우는데 써야 한다. 그 은사가 많고 빛나는 것일 수 있다. 마이크 잡는 사람은 빛나는 것인데 한 순간 넘어갈 수 있다. 위험 요소도 많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많은 은사를 받고 싶은 마음이 없다. 주께서는 분량대로 주신다. 아무리 많은 은사를 가져도 부족한 것이 없는 사람은 없다. 한 가지를 가졌거나, 99가지를 가졌거나 하나님 보시기에는 똑 같다. 한 달란트든 다섯 달란트든 똑 같다.

 

이것이 봉사 공동체로서의 교회이다.

 

2) 진리 공동체이다.

 

교회의 단일성과 관련되는 부분이다. 단일성과 통일성의 잣대는 진리이다. 진리가 있느냐 없느냐가 교회 연합에 가장 중요한 원리가 된다. 교회는 진리의 기둥과 터라고 했다. 교회가 진리가 무엇인지 보여주지 못한다면 문제이다. 절대로 포기하지 않아야 할 것이 진리이다. 에베소 교회와 대조되는 교회가 두아디라 교회이다. 사랑이 있었지만 진리를 애매하게 혼합하고 비 진리를 용인했다. 에베소 교회는 진리가 살아있었기 때문에 귀한 교회였다.

 

그런데 진리를 순수하게 보존하려는 추구가 과해 사랑의 표현이 미숙하기도 하다. 최근 한국 교회가 새로운 신자가 오는 것을 환영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것은 신천지 때문이다. 초신자일 경우는 대 환영이다. 그런데 교회 생활하는 데 이동해 올 경우에 신천지인지를 본다. 이것은 교회의 이상한 모습이다. 에베소 교회도 그런 상황이 아닌가,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진리를 희생당할까봐 사랑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아 성도를 거부하는 상황이다.

 

다우리 교회가 정말 좋은데 교회다운 교회를 만들려면 진리와 사랑을 갖추어야 한다. 두 가지 모두 소홀히 할 수 없다.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고 진리를 알 수 있나? 진리가 아니고 하나님의 사랑을 알 수 있나? 불가능하다. 하나님의 사랑이 소멸되지 않게 진리의 수호자가 되어야 한다. 순수한 진리 선포를 원하셨다. 이 순수한 선포를 통해 영적 양식을 먹이시고 구원에 필요한 모든 것을 먹이신다. 전도하는 일과 양육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이 전도는 복음 선포를 말한다. 불신자를 향한 것은 선포이고 믿는 자들에게는 양육이 될 것이다. 복음 전도를 통해 믿음이 태어나기 때문이다.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 모든 신자들은 어머니인 복음으로부터 태어나고 복음에 의해서 양육 받는다. 칼빈은 교회를 어머니라고 부른 것은 교회가 진리를 선포하기 때문이다. 다우리 교회가 엄청난 귀한 천국의 열쇠를 가졌지만, 자만심이 되어서는 안 된다.

 

3) 사랑 공동체이다.

 

보편성과 연결되는 개념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사랑의 선물이다. 하나님 사랑의 결정체가 교회이다. 교회에 가면 하나님의 사랑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교회는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는 곳이어야 한다. 로마는 칼로 지중해를 중심으로 재패했다. 그런데 기독교는 사랑으로 로마를 재패했다. 초대 교회 모습을 보면 정말 대단하다. 엄청난 핍박이 닥쳐도 칼로 대항하지 않았다. 사랑으로 이겼다. 사랑은 칼보다 힘이 있다. 칼로 정복할 수 있는 것은 사람의 목숨이지만, 사랑으로는 사람의 마음까지 정복할 수 있다. 복음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전염된다. 사람의 사랑도 그런 점이 있지 않나!!! 하나님의 사람은 두 말할 것도 없다. 이 사랑을 소지하고 담지한 곳이 바로 교회이다. 부족하기 때문에 기도해야 한다. 기도하는 자는 겸손한 자이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단 하나도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는 겸손한 교회가 되어야 한다.

교회의 머리 되신 그리스도가 사랑의 기원이다. 그 분을 보면 교회가 어떤 방향으로 갈 것인지를 알 수 있다. 끝까지 희생하셨다. 모든 것을 버리시고 사랑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받아 주시고 우리 속에 진리로 강화하신다. 지체들을 연합하시는 성령님을 주셨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령 충만한 교회가 되어야 한다.

세상에는 당연한 것이 하나도 없더라. 당연한 것이 많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 감동이 없는 사람이다. 모든 것이 다 감동이지 않을까? 내가 강의를 할 수 있다는 것, 당연한 것 아니다. 자녀가 잘 자라고 있는 것, 당연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다. 당연한 것이 하나도 없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결과라는 것을 고백하는 사람은 감사하지 않을 수 있을까?

 

버스에서 잘 닦은 구두를 밟혔을 때 인생은 계획대로 되는 것이 아니구나라는 것을 배우는 것이 아닐까?

 

4) 성장 공동체이다.

 

몸은 자란다. 교회는 머리 되신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가야 한다. 이것이 교회의 최종 목표이다. 그리스도인은 이 땅의 작은 그리스도여야 한다. 우리 자녀들이 밖에 나가서 무엇을 하면 누구 집 자식이냐?’라고 묻는다. 부모를 대표하고 나타낸다. 성장을 교인이 많아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신앙의 성장 혹은 성숙을 의미한다. 성숙하다보면 수적인 성장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아닐 수도 있다. 수적 성장을 사람의 노력과 능력으로 돌리는 것은 문제이다. 하나님의 은혜라고 보아야 한다. 교회가 성장해야 한다는 목표의식이 아주 분명해야 한다. 직분자를 세우는 목적이 있다. 그것은 성도를 온전케 하(준비시켜)는 것이다. 말과 행동이 향기로우면 사람들이 교회로 향할 것이다.

우리는 자라가야 한다. 함께 자라가야 한다. 서로 연결되어 있다. 영양분을 서로 주고=받을 때 도움을 받게 될 것이다. 서로 돌보는 일에 힘써야 한다.

출처 : 다우리교회
글쓴이 : 임경근 원글보기
메모 :
728x90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