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뱀과 놋뱀’(민 21:4-9)의 의미
김영철 목사_미문교회
“놋뱀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예표하는 사건”
본문은 한 마디로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여 불뱀에게 물린 자가 그 뱀의
모형을 보고 살아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내용을 아는 것
만으로 그 의미가 저절로 드러나지는 않습니다.
내용만으로는 의미까지 알지 못해
우리는 이 내용을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즉 하나님께서 자신을 드러
내 놓으신 계시(啓示)다’라는 입장에서 정리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
고 이것은 마치 금이 들어 있는 원석(原石)에서 금을 추출하는 작업에 비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본문의 의미를 찾기 위하여 우리가 반드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어째서
하나님께서는 올바로 회개한 백성들을 즉각 치유하시지 않고 뱀의 모형을 만
들어 그것을 바라봄으로써 살아나도록 하셨을까?’ 하는 점입니다.
잘 아시는 바와 같이 광야에서 40년
간 그들에게 만나를 먹이심은 그들로
‘사람이 여호와의 말씀으로 사는 것임을 믿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
나 그들은 오히려 만나에 대해 혐오하고 그것을 무가치한 것으로 여겼습니
다. 이것은 그들이 ‘사람이 여호와의 말씀으로 사는 것’임을 전혀 깨닫지
못한 상태에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주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그러한 의도를 멸시해 버린 자들을 심판하시면
서 동시에 그러한 의도를 깨달아 믿는 자에게는 ‘여호와의 말씀으로 사는
것’임을 체험(體驗)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죽음을
코 앞에 둔 사람에게는 사실 아무런 소용이 없는 ‘뱀의 모형인 놋뱀을 바라
보는 행동’을 요구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그 모형 뱀에게서 어떤 치유(治癒)의 마력(魔力)이 나올 것을 기대하
라는 의미가 아니라 “그것을 보면 살리라” 하신 여호와의 말씀과 그분의
능력을 믿는 믿음을 요구한 명령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믿는 자를 살리신, 즉 생명을 주신 이 놀라운 일은 단
지 그 옛날 그 시대에만 가능했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본문에
기록된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 자신이
역사 가운데서 어떻게 일해 나가시는
지 그 원리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언제나 변치 아니하는 분
이시므로 지금도 그 때와 똑같은 원리로 일하고 계신 것입니다.
바꿔 말하자면 ‘하나님은 지금도 하나님을 믿는 자에게 새 생명을 주신다’
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 새 생명은 단지 이 땅에서 우리가 수명을 연장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죽지 않는 영원한 생명인 것입니
다. 바로 이런 점에서 불뱀과 놋뱀 사건에서 드러나게 된 하나님의 일하시
는 원리는 더욱 증폭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처럼 증폭된 원리는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와 말씀을 나누신 내용에서 잘 드러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시는 가운데,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요 3:14)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하나
의 요소를 비교한 것이 아닙니다. 비교되는 요소들이 그 성격상 서로 들어맞
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광야에서 들린 뱀은 주조(鑄造)된 놋뱀인 반면에 이에 비교되는 것
은 예수님 자신입니다. 놋뱀은 높은 받침대 위에 놓였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나무 십
자가에 달리셨습니다. 따라서 여기서 서로 비교되는 것
은 적어도 표면적인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진정 이 구절에서 비교되는 것은 ‘모세가 뱀을 든 사건’과 ‘예
수님이 들리는 즉 예수님의 죽는 사건’인 것입니다. 이 두 사건은 그 성격
상 서로 어울리는 것입니다. 놋뱀 사건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믿는 자에
게 새 생명을 주셨음’을 의미하는 반면에, 예수님의 죽음 사건은 요한복음
3장 15절의 표현대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영생을 얻
게” 한다는 사실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두 사건의 의미가 갖는 동질성에 근거하여 구약의 놋뱀 사
건을 들어 자신의 죽음을 설명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로써 놋뱀
사건은 예수님 사건의 그림자이며 예수님 사건은 놋뱀 사건의 실체인 것입니
다. 바꿔 말하자면 놋뱀 사건은 예표(type)이며 예수님 사건은 원형
(antitype)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주시는 ‘영생’이란 무
엇입니까? 영생은 죽은 후에야 비로소 얻게 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이 땅에
서 시작되는 삶입니다. 하지만 영생은 이 세상의 기준에
비추어서 잘 살고
부자 되는 그런 삶은 아닙니다.
영생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삶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책
임지는 삶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영생을 가진 자는 어려움이 전혀 없
는 삶을 사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의 삶은 영생을 갖지 못한 자들보다
힘들고 핍박을 받는 삶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서도 주님의 함
께 하심으로 인하여 세상을 이기고 기뻐할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
다.
이런 영생의 삶은 참으로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주
님으로 믿는 자라야 소유할 수 있는 삶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삶이 더욱 풍
요로우려면 신비한 체험을 많이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 말씀대로 그분
을 믿는 믿음이 자라나야 하는 것입니다. 바꿔 말하자면, 이 삶은 그분을 더
욱 많이 알아갈수록 그래서 그분을 신뢰할수록 더 튼튼해진다는 뜻입니다.
영생을 주시는 하나님을 알아야
우리는 이미 그런 삶을 그분의 은혜로 소유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어
렵고 힘든 삶 속에서도 그분을 원망하는 마음을 버리고 도리어 그분을 신뢰
하며 그분께 모든 것을 맡기
는 마음과 이제껏 우리를 이끌어 오셨으며 앞으
로도 우리를 신실하게 인도하실 것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입
니다
http://rpress.or.kr/xe/index.php?mid=sinhak&page=3&document_srl=13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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