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철 목사_미문교회
“선지자라면 하나님이 누구인가를 전해줘야”
성경은 한 마디로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누구이시며 어떤 분이신 지를 알
려주는 그분 자신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성경이 그런 사실을 알려주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러하신 하나님을 바로 섬기도록 하는 데 그 목적이 있습니
다.
성경은 하나님을 섬기는 데
목적 있어
그러기에 성경은 언제나 하나님께서 하신 일들을 강조하며 따라서 우리는 오
늘 본문에서도 그런 흐름을 놓치지 말고 내용을 이해하도록 해야 합니다. 이
제 그런 흐름을 좇아서 본문의 내용을 굵게 되짚어 보겠습니다.
본문 1절은 나아만이 크고 존귀하게 된 이유를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여호와께서 전에 저로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음이라.” 사람들은 나아
만이 그 나라를 구원한 것은 그의 탁월한 능력 때문이라고 평가했을 것입니
다. 그러나 성경
은 그렇게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
신 일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 ‘나아만’이 가진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 문제점은 이것입
니다. “저는 큰 용사지만 문둥병자였더라.” 여기서 우리는 본문의 흐름이
‘어떻게 이 문둥병자가 고침을 받게 되는가?’를 알려 주는 방향으로 전개
될 것임을 짐작하게 됩니다. 그리고 3절에서 어떤 이름 모를 소녀가 등장합
니다. 이스라엘에 있는 선지자는 고칠 수 있다는 것이 그 소녀가 전해 준 정
보였습니다. 그래서 장군은 모든 것을 준비하여 이스라엘 왕 앞에 나아갑니
다.
반면에 이스라엘 왕은 ‘아닌 밤중에 홍두깨’와 같은 심정이었습니다. 문둥
병을 고치는 것은 마치 죽은 사람을 살려내는 일과 같이 도저히 불가능한 일
이었습니다. 그러기에 그것은 인간의 힘으로는 도무지 어찌할 수 없는 것이
고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그래서 왕은 자기 옷을 찢으며
이렇게 절규합니다.
“내가 어찌 하나님이관데 능히 사람을 죽이며 살릴 수 있으랴?”(7절). 이
러한 왕의 말속에서 우리는 문둥병에 대한 왕의 견해를 알 수 있게 됩니다.
왕은 오
직 하나님만이 문둥병을 고치실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드디어 ‘나아만’은 임자를 만날 수 있는 시점에 이르렀습니다. 엘리사는
아람 장군을 자기에게로 오게 하라는 전갈을 왕에게 보냈습니다. 왜 그랬을
까요? 8절 끝 부분에 보면 그 목적이 표현됩니다. “저가 이스라엘 중에 선
지자가 있는 줄을 알리이다.” 그렇다면 이 말씀이 무슨 의미인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첫째, 단순히 ‘이스라엘 안에도 선지자가 있다’는 뜻일까요? 그렇지 않습
니다. 왜냐하면 그는 이스라엘에 선지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왔기 때문입
니다.
둘째, 엘리사 자기만이 진짜 선지자임을 드러내겠다는 뜻일까요? 이것도 아
닙니다. 사실 나아만은 이방 종교에서 하던 행사가 자기 앞에서 벌어질 것
을 기대하였습니다. 그런 행사는 한 마디로 신이 신접(神接)한 자를 사용하
는 것이 아니라 그와는 반대로 신접한 자가 신을 부리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나라 무당의 예를 들자면 무당이 자신이 필요한 대로 조상귀신들을 불러
내서 사용합니다. 이처럼 신접한 자가 신을 자신의 목적에 맞게 불러다가 사
용하는 것이므로 이런 행사에서는 신접한 자의 능력
이 돋보일 수밖에 없습니
다.
그런데 이 선지자, 하나님의 선지자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기대했던 치료를 위한 종교 의식도 전혀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바꿔 말하자
면 엘리사는 자신의 능력을 하나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런 과시(誇
示)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또한 전할 말조차도 심부름꾼을 통해 보냈습니
다. 이렇게 하여 그 자신은 결코 전면에 나서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서 우리는 “선지자가 있는 줄을 알게 하겠다”는 말씀
의 뜻은 엘리사 자신이 진짜 선지자임을 드러내겠다는 것이 아님을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게다가 14절에서는 어떻게 해서 문둥병이 깨끗해졌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은 ‘하나님의 사람의 말씀대로’ 행하므로 깨끗
해졌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에서 선지자를 가리켜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
습니다. 다시 말하면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움직이는 사람이라는 것입
니다. 따라서 선지자가 전한 말은 그 개인의 의견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의
말씀입니다.
이러한 선지자, 즉 하나님의 사람의 말씀대로 행하니까 낫게
되었다는 말씀
은 문둥병이 나은 것이 요단강 물의 효능 때문도 아니며 또한 선지자의 능
력 때문도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말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오직 이 선지자
를 통해 전달된 하나님 자신의 말씀 때문에 문둥병은 치유될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이 모든 사실들을 종합해 볼 때 8절 뒷부분에 나온 “이스라엘에 선
지자가 있음을 알게 하겠다”는 의미는 선지자 자신은 나타나지 않고 오직
그가 하나님께 받은 말씀만 전함으로써 하나님만이 드러나도록 하겠다는 것
으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바꿔 말하면 선지자는 아무 것도 아니고 오로지 그
가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과연 어떤 분이신 지를 드러내겠다
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엘리사 선지자의 의도가 성공하였습니까? 일단은 성공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곳에 왔던 나아만은 잔뜩 화를 내고 후퇴해 버렸기 때
문입니다. 그러나 후에 나아만은 자기 종들의 충고에 따라 하나님의 말씀대
로 행함으로써 문둥병을 고치게 되었습니다. 이런 일련의 상황을 모두 겪은
나아만은 무엇을 알고 깨달았을까요? 15절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나아만이 모든 종자와 함께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도로 와서 그 앞에 서서
가로되 내가 이제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는 줄을 아나이다.”
나아만의 말속에서 우리는 그가 깨달은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
것은 이스라엘의 신 여호와 하나님만이 참 신이며 유일한 신이시라는 사실입
니다. 물론 나아만이 전에도 “그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고칠
까 하였도다”(11절)라고 생각한 것을 보아서 그가 이스라엘의 신의 이름이
여호와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음이 분명히 드러납니다.
유일한 참 신이신
‘하나님’ 알아야
나아만은 비로소 하나님을 아는 참된 신앙에 이르게 됩니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했습니까? 그분의 말씀대로 행했기 때문입니다
http://rpress.or.kr/xe/index.php?mid=sinhak&page=3&document_srl=13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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