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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함에 대하여(토마스 왓슨)

토마스 왓슨

by 김경호 진실 2012. 8. 20.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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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시 107:9)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마 5:6)라고 하였다. 비록 그대는 의롭고 싶은 만큼 의롭지 못하다 하더라도, 그대가 복이 있는 이유는 의를 갈망하기 때문이다. 갈망은 그리스도인의 최선의 발견물이거니와, 행동은 가식적일 가능성이 있다. 사람은 나쁜 목적으로 선행을 보이는 행동을 할 수 있다. 예후가 그러하였다. 행동은 또한 억지로 하는 것일 수 있다. 사람은 억지로 선한 일을 할 수 있지만, 선한 일을 강제로 의도하게 할 수는 없다. 이런 의에 대한 갈망은 사랑에서 우러나온다. 사람은 자기가 사랑하지 않는 것을 갈망하지 않는다. 만일 그대가 그리스도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대는 그를 갈망할 수 없을 것이다.

위선자는 의의 도를 갈망하기보다 오히려 의의 면류관을 갈망한다. 그의 욕구는 그리스도를 닮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함께 왕노릇하는 것이다. 이것이 발람의 바램이었으니, “나는 의인의 죽음 같이 죽기를 원하며”(민 23:10“라고 하였다. 이것이 바로 위선자의 열망이다. 하나님의 자녀는 그리스도 자신을 위하여 그리스도를 사모한다. 믿는 자에게는 하늘나라만 귀중하지 않고, 그리스도가 귀중하다(벧전 2:7). 위선자들의 욕망은 단지 욕망에 그칠 뿐, 그들은 게으르고 나태하다.“게으른 자의 정욕이 그를 죽이나니 이는 그 손으로 일하기를 싫어함이니라”(잠 21:25)라고 하였다. 그러나 진실한 욕망은 분발하여 노력한다. “밤에 내 영혼이 주를 사모하였사온즉 내 중심이 주를 간절히 구하오리니”(사 26:9)라고 하였다.

만일 우리가 지금 이곳에서 갈망하지 않으면 우리는 너무 늦었을 때 갈망하게 된다. 만일 다윗이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생존하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시 42:2)라고 한 것처럼 우리가 갈망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부자가 물 한 방울을 갈망한 것처럼 갈망하게 될 것이다.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라고 하였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절대로 하나님을 헛되이 찾으라고 명하시지 않는다.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눅 1:53)라고 하였다. 또 “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시 107:9)라고 하였다. 하나님은 우리가 사모하는 바를 잃어버리게 놔주시지 않는다.

사람은 세상을 갈망하면서도 채워지지 못할 수가 있다. 세상은 쇠잔해 가고 채워지지 않으며, 사람은 채워져도 만족함이 없다. 죄인은 죄를 마음껏 지을 수 있겠지만, 그것은 만족과는 거리가 멀다. “마음이 패려한 자는 자기 행위로 보응이 만족하겠고”(잠 14:14)라고 하였다. 이런 만족은 지옥 판결을 받은 자가 가지는 따위의 포만감이라, 그들은 주님의 격노로 가득 채워질 것이다. 그러나 의를 갈망하는 이는 만족스럽게 채워질 것이다. 그러나 의를 갈망하는 이는 만족스럽게 채워질 것이다. “내 은혜로 내 백성에게 만족케 하리라”(렘 31:14)라고 하였다.

하나님은 주린 영혼을 채워 주실 수 있다. “대저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시 36:9)라고 하였다. 저수지는 물이 말라 우리를 채워 주지 못할 수 있지만, 샘물은 항상 가득 찬다. 하나님의 충만은 무한한 충만이며, 그것은 경계도 바닥도 끝을 모른다. 그것은 일정불변한 충만인지라, “주는 여상하시고”(시 102:27)라고 하였다. 하나님은 절대로 고갈되실 수 없고, 그의 충만은 넘쳐흐르고 끊임없이 흐른다.

하나님은 그의 다정하시고 측은하신 마음 때문에 주린 영혼을 채워주신다. 군중이 먹을 것이 하나도 없었을 때도, 그리스도께서는 측은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셨다. 주린 영혼은 이렇게 생각하라 “나 비록 궁핍으로 가득 찼으나, 나의 하나님은 자비심으로 충만하시다.”

하나님이 주린 자를 채워 주시려는 이유는 그의 말씀을 성취하시기 위해서이다. “이제 주린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배부름을 얻을 것임이요”(눅 6:21)라고 하였다. 주님이 말씀하셨는데 이것이 아니 이루어지겠는가?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애 3:22)라고 하였듯이. 그는 “나의 성실함도 폐하지 아니하며”(시 89:33)라고 말씀하신다. 만일 주린 영혼이 채워지지 않는다면, 약속은 성취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주린 자를 채워 주시려는 이유는 하나님이 친히 굶주림을 야기하셨기 때문이다. 기도의 경우와 같이 하나님은 기도할 마음을 준비시키실 때, 들으실 귀를 준비하신다(시10:17). 이와 같이 영적인 굶주림의 경우에도, 하나님은 굶주리는 마음을 준비시키실 때 채워 주시는 그의 손길을 준비하신다.

하나님은 굶주린 죄인들을 위하여 집문을 항상 열어 놓으신다(사 55:1,2).

맹목적인 운명 따위는 없으며, 오직 세상을 인도하시고 다스리시는 섭리가 있을 뿐이다. “사람이 제비는 뽑으나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잠 16:33)고 하였다.

섭리란 하나님이 자기 의지의 계획에 따라,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사물의 모든 발생과 사건들을 지위통제하시는 명령체계이다. 시계의 톱니바퀴들은 서로반대 방향으로 돌고 있는 것 같지만, 실상 그것들은 시계의 전진 운동을 촉진시키며, 자명종도 울리는 역할을 한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섭리들도 엇갈리는 회전운동들로 보이지만 실상 그것들은 택한 자의 유익을 성취해 나가는 운영체제이다.

하나님은 집을 짓고 난 다음 그곳을 떠나 버리는 건축자와 같지 않고, 도선사처럼 전 창조계의 선박을 조종하신다.

“여호와는 그 경외하는 자 곧 그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를 살피사 저희 영혼을 사망에서 건지시며 저희를 기근시에 살게 하시는도다”(시 33:18)라고 하였다. 하나님은 섭리적인 보살핌으로 그의 백성에게 위험을 차단하시고, 그들 주위에 수호천사들을 둘러 세우신다(시 34:7). 하나님의 섭리는 성도들의 뼈까지도 보호시시고(시 34:20), 그들의 눈물을 병에 담으시며(시 56:8), 성도들이 약할 때 강하게 해 주시고(히 11:34), 그들의 모든 부족을 구원의 금고를 열어 주신다(시 23:5). “그의 성실로 식물을 삼을지어다”(시 37:3)라고 하였다 만일 하나님이 그의 백성이 죽을 때 하늘나라를 주신다면, 그들이 살아 있는 동안 매일의 양식을 거절하지 않으시리라.

다른 모든 만물이 한계를 정하시는 하나님이시지만, 하나님 자신에게는 한계가 없으시다. 그는 바다에 경계를 정하시고, 여기까지만 이라고 말씀하셨다. “여기까지만 너는 오고, 그 이상은 안 된다”라는 말이다. 그는 천사들에게 한계를 정하신다. 천사들은 그룹 천사들처럼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기도 하고 멈추기도 하지만(겔 10:16). 하나님은 한계가 없이 무한하시다. 하늘들을 능히 뼘으로 재시며 지구를 저울에 다시는 하나님은 분명 무한하신 하나님이시다(사 40:12). “나는 천지에 충만하지 아니하냐”(렘 23:24)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은혜로우신 임재로 말하자면 겸손한 마음이 그의 보좌이며(사 57:15). 하나님의 영광스러우신 임재로 말하자면 하늘이 그의 보좌이다(사 66:1). 그럼에도 이 두 가지 보좌들도 하나님을 지탱하지는 못할지니. 왜냐하면 하늘의 하늘이라도 하나님을 수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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