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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교회는 어떤 교회인가

최더함목사(서울)

by 김경호 진실 2012. 11. 27.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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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교회는 어떤 교회인가? (대니얼 하이드의 'Welcome to Reformed Church' 중)

 

1. 개혁교회는 기독교회다.

- 개혁교회는 그 역사적 뿌리가 초대교회에 있기 때문에 기독교 교회다. 초대교회와 마찬가지로 개혁교회는 성경을 하나님 말씀으로 받고 하나님 말씀 자체로 믿는다. 따라서 개혁교회는 성경에 없는 새로운 교리를 가르치지 않는다.

- 삼위일체 교리를 주장했던 아타나시우스(296~373)는 “성경은 목마른 자들이 살아 있는 말씀으로 만족을 얻을 수 있는 구원의 샘이다. 성경 안에만 경건의 교리가 분명히 제시되어 있다. 성경에 아무 것도 더하지 말고 아무 것도 빼지 말라”고 말했다.

- 결론적으로 개혁교회는 성경을 하나님 말씀으로 믿고 영원히 삼위일체로 존재하시는 유일하신 하나님을 믿고 우리의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시면서 동시에 사람이라는 것을 믿는 기독교회이다.

 

2. 개신교 교회다.

- 로마 카톨릭이 잘못된 것을 가르치고 있다고 확신한 독일의 몇몇 제후들이 신성로마제국의 카를 5세 황제(1500-1558)에게 항의서를 제출했는데, 이에 신성 로마제국 황제와 제후들이 제국회의인 2차 슈파이어 회의(1529)를 열고 항의한 이들을 일컬어 ‘저항자, 반대자’ 라는 뜻의 protestant라는 말을 처음으로 사용했고 이후 이들은 개신교도라 불리어졌다.

- 카톨릭은 성경은 전통과 교황과 같은 여러 권위 가운데 하나의 권위에 불과하고, 죄인들은 하나님의 은혜에 협력하여 선행을 함으로서 자기 죄와 하나님의 진노에서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쳤다. 이에 종교개혁진영은 오직 성경(sola scriptura)만이 교회의 궁극적 권위이며 죄인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sola gratia)에 의해서만 구원받는데, 이 은혜는 오직 믿음을 통해서만 받고, 이 믿음은 오직 그리스도만을 믿는 믿음이라고 했다.

- 로마 카톨릭에 대한 이런 저항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중요하다. 왜냐하면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처음 종교개혁자들이 목숨을 걸고 반대했던 바로 그 타락한 교회로 사실상 변해버렸기 때문이다. 많은 복음주의 교회들이 ‘우리는 성경만 믿는다’는 미명아래 자기네 목회자가 스스로 고안해 낸 가르침을 추종하고 있고, 영적 은사를 받기 위해 신자들을 광적인 집회의 현장으로 몰아 가고 있다. 대형교회를 추구하면서 기업경영철학을 전용하고, 마케팅 원리를 도입하여 교회를 성장시키고자 하는 마케팅교회가 붐을 이루고, 전통적 복음주의와 대형교회운동에 대한 저항으로 신비주의와 자유주의 신학을 결합하여 포스트모던문화에 어울리는 교회를 추구하는 이머징교회가 출현했으며, 스스로 사도와 예언자라 주장하고 직통계시를 받았다고 하며 거짓 예언을 남발하고 교회를 큰 혼란에 빠트리고 있는 신사도교회 등이 각자의 세력과 판도를 확장하려고 서로 경쟁하면서 복음주의제국의 춘추전국시대를 형성하고 있다. 이러한 때 진정한 개신교회는 종교개혁정신으로 다시 되돌아가야 하는 시대적 책무를 부여받고 있다.

 

3. 개혁주의 교회 즉, 신앙고백주의 교회다.

- 개혁주의란 칼빈주의를 모태로 하는 개혁신학사상을 말한다. 이는 하나님 중심, 성경중심, 교회중심사상으로 요약된다. 한편 개혁주의는 교회가 베드로의 신앙고백(마16:16) 위에 세워졌음을 믿고 이 교회를 통해 하나님나라가 건설된다고 선언한다.

- 종교개혁이 일어나고 시간이 지나면서 루터교회와 개혁교회는 개신교진영 안에서 별개의 신앙고백서를 가진 두 진영으로 나뉘어졌다. 루터교회는 여러 교리문답과 신앙고백서들을 담아 ‘일치서’(1580)라 불리는 한 권의 책을 엮어내었다. 그러나 독일 외 유럽의 다른 지역들은 칼빈주의를 따랐다. 유럽대륙의 개혁교회들은 3대 일치신조라 불리는 벨기에, 하이델베르그, 도르트신조를 공통적으로 고백했다.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는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를 고백했다. 다시 말해 기독교 교회에 속해 있고 개혁주의교회라고 함은 하나님 말씀에 서 있다는 것이고, 이는 다시 고대교회의 보편 신조라고 불리는 사도신경, 니케아신경(325), 칼케돈 신조(451) 뿐 아니라 벨기에 신앙고백서(1561), 제2 스위스 신앙고백서((1561),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1563), 도르트신조(1618),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1647), 대, 소 교리문답(1648), 공예배지침서(1645), 장로교정치형태(1645)를 믿고 그대로 수용한다는 것을 말한다.

- 벨기에 신앙고백서는 귀도 드 브레(1522-1567)에 의해 작성되어 1561년에 출판되었다. 그는 당시 네덜란드를 통치하던 로마 카톨릭 교도인 스페인의 필립 2세에게 개혁신앙을 변호하기 위해 이 고백서를 작성했다. 그는 개혁교회신자들은 재세례파와 같은 급진적 그룹과는 딜리 필립왕과 그의 통치를 전복시킬 의도가 조금도 없음을 분명히 알리고자 했다.

- 하이델베르그 교리문답은 독일 팔츠의 통치자 선제후 프리드리히 3세의 요청에 따라 팔츠 주민에게 종교개혁 교리를 가르치기 위해 1563년에 작성되었다. 주 저자는 당시 28세이던 신학교수인 우르시누스와 올레비아누스였다. 로마서의 구조를 따라 세 부분으로 구성되었는데 문답 1-2번에서 신자의 위로와 확신에 대한 설명 및 교리문답 개요가 설명된 다음, 죄와 죄책(3-11문, 롬 1:18-3:20), 은혜와 구원(12-85문, 롬 3:21-11:36), 감사와 봉사(86-129문, 롬 12-16장)로 구성되어 있다.

- 도르트신조는 네덜란드 도르드레흐트에서 1618-1619년에 작성되었다. 이것은 레이던 대학의 교수였던 아르미미우스(1560-1609)가 신앙고백서의 내용에 반하는 새로운 교리를 가르침으로 정죄를 당했는데, 그의 추종자들이 정부에 ‘항론서’(1610)를 제출하여 아르미니우스의 가르침을 변호했다. 이 문제를 다루기 위해 네덜란드와 유럽 전역의 목회자와 신학자들이 회의에 모여 아르미니우스주의자들의 가르침을 정죄하고 칼빈주의 5개 조항이라고 불리는 TULIP을 작성했다.

-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들은 17세기 중엽 청교도가 영국의 주도권을 잡았던 짧은 기간에 작성되었다. 1643년 1월 영국 국교회를 실제로 다스렸던 주교직 철폐를 위해 크롬웰이 주도하는 영국 의회가 개최되었다. 1643년 7월에 151명의 신학자와 장로들이 회의에 참석하여 이후 5년 6개월간 동안 1,163회의 마라톤 회의 끝에 신조와 여러 문서들을 작성했다.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는 칼빈의 기독교강요의 구성에 따라 성경(1장), 하나님(2-5장), 인간(6-7장), 그리스도(8장), 구원(9-24장), 교회(25-31장), 종말(32-33장)로 구성되어 있다.

 

<결론>

- 개혁교회는 역사적인 기독교회로서 종교개혁을 이루고 고대교회의 신조와 신앙고백서와 교리문답을 가진 유일한 성경적 신앙고백의 교회이다. 이런 신조, 신앙고백서, 교리문답은 성경의 가르침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에 개혁교회 자체가 성경에 깊이 뿌리박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19세기 스코틀랜드 장로교 신학자인 존 던칸(1796-1870)은 “나는 첫째로 그리스도인이고, 둘째로 보편교회에 속해 있기 때문에 카톨릭이고, 셋째로 칼빈주의자이고, 넷째로 유아세례주의자이고, 마지막으로 장로교인이다”고 고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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