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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론-작정과 예정

최더함목사(서울)

by 김경호 진실 2012. 11. 30.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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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루이스벌콥, 로버트 레이몬드

 

하나님의 작정과 예정      리폼드스쿨

 

1. 작정

 

(1) 용어들

 

1) 구약: 예차(계획하다, 충고하다), 소드(함께 숙고하다), 메짐마(곰곰이 생각하다. 의도하다)

2) 신약: 불레(일반적인 하나님의 뜻, 행2:23, 4:28), 델레마(의지적인 요소가 더 강조된 계획, 엡1:11)

 

(2) 작정의 특징들

 

1) 하나님의 지혜에 기초한다.

- 작정은 인간의 이해를 초월한다.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서 정사와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 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엡 3:10-11)

“여호와여 주의 하신 일이 어지 그리 많은지요 주께서 지혜로 저희를 다 지으셨으니 주의 부요가 땅에 가득하나이다”(시 104:24)

“여호와께서는 지혜로 땅을 세우셨고 명철로 하늘을 굳게 펴셨고”(잠 3:19)

2) 영원하다

- 작정은 시간 내에서 행동되지만 영원성과 연속성의 성질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딤후 1:9)

“여호와의 계획은 영원히 서고 그의 생각은 대대에 이르리로다”(시 33:11)

3) 효과적이며 불변적이다.

- 하나님이 작정하신 것은 분명히 일어날 것이라는 사실, 즉 어떤 것도 그의 목적을 훼방할 수 없다.(시33:11, 잠19:21, 사46:10)

4) 보편적이며 전포괄적이다.

- 작정은 물리적인 영역에서든, 도덕적 부분에서든, 혹은 선하든지 악하든지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포함한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심이니라”(엡 2:10)

5) 죄에 관하여 허용적이다.

- 하나님께서 인간이 하나님의 계시에 거슬러서 행할 때, 인간 속에서 인도하고 행하도록 적극적으로 역사하지 않는다. 즉, 유한한 의지의 죄악된 자기 결정을 막지 않지만 이러한 유한한 죄악된 자기 결정의 결과를 규제하고 통제할 것을 결정하신다.

“그들이 계속해서 하나님께 범죄하여 메마른 땅에서 지존자를 배반하였도다(17). 그들이 먹고 심히 배불렀나니 하나님이 그들의 원대로 그들에게 주셨도다(29). 하나님이 그들의 날들을 헛되이 보내게 하시며 그들의 햇수를 두려움으로 보내게 하셨도다(33). -시편 78편 중에서.

-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 결정되었으나 그럼에도 그들은 그들의 사악한 행위 과정에서 완전히 자유로웠으며, 이 범죄에 대하여 책임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은 일어나야할 모든 일을 자신의 직접적인 행동에 이해 실행되도록 작정하시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양 진리를 조화시킬 수 없다 해도 이 사실에서 여기에 모순이 있다는 가정을 삼가게 된다.

 

(3)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자유에 관한 논쟁

 

1) 작정교리를 반대하는 자들(펠라기우스주의자, 소지니주의자, 반펠라기우스주의자, 알미니우스주의 등)은 만약 작정교리가 맞다면 끔찍하고 해결할 수 없는 다음의 문제가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❶ 만약 하나님께서 앞으로 일어날 모든 일을 예정하셨다면 우리가 논리적으로 이끌어낼 수 잇는 유일한 결론은 인간들이 실제로 자유롭지 않다는 것이다.

❷ 만약 양립할 수 없는 어떤 행동의 상황에서 인간이 실제로 자유롭지 않고 오히려 그들이 어떤 선택을 내리도록 하나님이 결정하였다고 하면 인간의 죄악된 선택의 원인은 궁극적으로 하나님께로 돌려져야 한다.

 

“하나님의 지혜롭고 정당하며 선하신 본성과 인간의 자유로운 본성에 위배되며 하나님을 죄의 조성자로 만드는 것이다”(그라이더, 알미니안주의자)

“인간은 신의 의지에 의해 결정되지 않은 자유로운 도덕 행위자이다. 인간의 자유는 인간의 모든 직관 가운데 가장 깊은 것 중의 하나이며 기본적인 자기 인식이다. 인간의 자유는 도덕적, 지적 책임의 전제조건이다. 인간의 자유를 침해하는 모든 형태의 예정에 대해서 일관되게 반대한다”(피녹)

 

2) 피녹과 같은 알미니우스주의자들의 주장은 다음과 같은 문제를 낳는다

❶ 하나님으로 하여금 인간의 선택에 전혀 개입하지 못하도록 만든다.

- (예) 아직 성년이 되지 않는 아들이 나에게서 총 쏘는 법을 배웠다. 그런데 나는 그 아들이 범죄에 총을 사용할 의도를 가지고 있었음을 미리 알고 있었고 사전에 경고를 했다. 그럼에도 아들은 범죄했다. 그런데 법은 내가 모든 정당한 힘을 동원하여 아들의 범죄를 막지 못했다는 점에 근거하여 나를 사전종범으로 판결했다. 아들의 행동을 방치한 나에게도 책임을 물은 것이다. 그러므로 아들에게만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는 알미니우스주의자들의 주장은 틀린 것이다.

❷ 인간이 행동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그들이 무엇을 행할지 알고 계신다는 생각을 부인하는 것은 성경의 범위를 완전히 넘어가 버리는 것이다.

- 이것은 하나님의 전지하심을 완전히 부인하는 것이다.

❸ 하나님을 죄에 대한 단순한 허용주의자로 만든다.

- 하나님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존중하시지만 인간이 죄를 짓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하나님께서 아무 것도 허락하지 않으셨는데 인간이 자기 힘으로 멸망을 초래했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 뜻하신 것은 필연코 발생한다.”(칼빈, 기독교강요 3-20-3)

❸ 인간의 의지는 완전히 자유롭다는 잘못된 자유의지론을 펼친다.

- 성경은 인간은 유한하고 죄인의 상태라고 알려준다. 본성상 인간은 선한 열매를 맺을 수 없으며(마7:18), 자신들에게 생명이 될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을 수 없다(요8:43). 본성상 하나님의 법에 굴복할 수 없고(롬8:7), 진리를 분별할 수 없으며(고전2:14), 혀를 통제하지 못하며(약3:8),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하지 못한다(고전12:3).

- 인간이 모르는 원인들이 수없이 인간에게 영향을 끼친다. 인간은 자기도 모르는 행동을 선택한다. 인간은 자신의 의지로만 선택을 하는 존재가 아니다. 인간의 선택에 미치는 여러 요인들이 있다. 예를 들어, 날씨마저 인간의 선택에 영향을 끼친다. 몸 안의 질병들도(뇌종양 등) 인간으로 하여금 비합리적인 결정을 내리도록 만든다. 인식하지 못하지만 현재의 나는 부모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고 자신의 의사결정에 이것들이 크게 작용한다. 어떤 사람이 내가 특정한 행동을 선택했을 때 나는 모든 외부적인 내재적 작용원인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웠다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겠는가?

 

3) 성경은 어느 곳에서도 인간은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뜻이나 그분께서 섭리하시는 통치로부터 자유롭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❶ 창세기의 주요 인물들을 선택하시어 그들을 복의 근원이 되게 하셨다. 아브라함의 종을 환영하기 위해 리브가를 우물가로 인도하셨고(창24:12-27), 아기 모세를 바로의 딸에게로 인도(출2:1-10)하신 것인 단지 우연일 뿐인가?

- 욥 12:10-23, 36:32, 출 34:24, 신 2:30, 4:37, 7:6-8, 9:4-6, 10:15, 수11:19-20, 삿 14:4, 삼상 2:25, 삼하 17:14, 왕상 12:15, 대상 29:11-13, 대하 25:20, 시 31:15, 39:5, 65:4, 115:3, 139:16, 잠19:21, 20:24, 21:30, 사14:24, 46:10-11, 암 3:6, 단 4:17

❷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신약의 증언은 더욱 명백하다.

- 공중의 새를 먹이시고(마6:26), 꽃으로 들을 입히시고(6:28), 머리털까지 세신다(마10:29-30)

-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구원을 위해 먼저 행동하지 않으시면 누구도 그분께 올 수 없음을 분명히 가르치셨다.(요6:44-45, 6:65, 15:16, 17:2, 9, 12)

- 요한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눈멀게 하시고 강퍅하게 하셨기 때문에 그들이 예수님을 거부했다고 밝힌다(요12:37-40, 사 6:9-10, 마 4:11-12, 롬 9:18-24, 11:32)

- 베드로는 악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처형하고 죽인 것이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바”(행 2:23)라고 말했다.

- 이외, 마 22:14, 행 13:48, 16:14, 18:27, 롬 9:11-13

-하나님께서는 모든 이스라엘 사라들을 구원하겠다고 약속하신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중에서 택한 이스라엘 백성들(롬 9:6)을 구원하겠다고 약속하셨다.

❸ 칼빈의 증언

“왜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느냐고 묻는다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것을 원하셨기 때문이라고 대답해야 한다. 왜 그것을 원하셨느냐고 묻는다면 이 질문은 하나님의 뜻보다 더 위대하고 더 높은 어떤 것을 찾으려는 것이며 그것은 찾아볼 수 없다”

 

4) 왜 하나님이 죄의 조성자가 아닌가?

❶ 하나님은 빛이시며 그분 안에는 어둠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요일 1:5)

❷ 하나님은 모든 것을 작정하심과 같이 모든 일이 ‘제2원인들’의 성질에 따라 행성들이 지구의 궤도를 도는 것처럼 필연적으로, 또 자유롭게 피조물의 의지를 침해하지 않는 가운데 자발적으로, 또 미래 사건의 우발성에 대한 적절한 고려 가운데 일어나도록 작정해 두셨기 때문이다.

❸ 책임이라는 말은 의무 도는 법률 수여자에게 자신의 행동에 대해 설명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 개인을 책임 있게 만드는 것은 그 사람의 생각과 말과 행동에 대해 근거를 제시하도록 요구하겠다고 선언했던 법률수여자가 존재하느냐 않느냐이다. 인간에게 법률 수여자는 하나님 한 분 이외 존재치 않는다. 십계명은 하나님이 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위해서이다.

 

2. 예정

 

1) 용어

- 히) 야다: 어떤 이를 사랑의 관심으로 알다. 헬) 기노스케인, 프로그노시스

- 히) 바카르: 선함과 기뻐하심을 동반한 선택. 헬) 에클로게, 에클레게스타이

 

2) 작정과의 구분

- 때때로 작정과 예정은 같은 용법으로 사용되지만 특별히 예정은 모든 도덕적 피조물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을 표시한다. 작정은 모든 피조물에 대한 하나님의 다스림을 휘한 것이지만 예정은 죄인의 구원을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3) 역사

- 펠라기우스는 절대예정을 인정하지 않고 조건예정을 인정했다.

- 어거스틴은 하나님이 구원에 관한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저주와 그 방편들을 예정하지 않으셨다는 점과 생명의 예정은 주권적인데 영원한 죽음으로의 예정은 심판적이고 인간의 죄를 고려하고 있다는 이중예정설을 주장했다.

- 半 펠라기우스주의자들은 구원을 위한 신적인 은혜의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예지에 근거한 예정론을 거듭 주장했다.

- 칼빈은 어거스틴주의적인 이중 예정론을 확고하게 주장했다. 그는 죄가 세상에 들어온 것은 허용적 작정으로 보았고, 유기의 작정에 대해선 하나님은 결코 죄의 조성자가 아니며 그것에 대해 책임이 없으신 분으로 강조했다.

- 도르트신조는 알미니우스주의의 조건예정론에 대래 절대 예정론을 교리로 채택했다.

- 19세기 슐라이에르마허 이후 종교는 절대의존감정으로 변했고, 모든 인간의 결심과 행동들을 미리 결정하는 불변적인 법칙들과 2차적인 원인을 가진 자연 질서에 고유한 인과율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하나님의 의식으로 간주했다.

- 바르트의 예정론은 어거스틴과 칼빈의 것과 상당히 거리가 멀다. 그는 사람들의 예정된 분리를 알지 못했고, 선택을 특별한 선택으로 인식하지 못했다.

 

4) 예정의 부분들

❶ 선택

- 이스라엘의 선택. 어떤 직분자들의 선택. 구원을 위한 개인의 선택.

- 선택의 목적: 선택자의 구원과 하나님의 영광이다.

❷ 유기

- 어거스틴의 이 난해한 교리는 상당한 반대에 부딪쳤다. 로마 카톨릭과 루터파의 대다수, 알미니우스주의자, 감리교인들은 일반적으로 이 교리를 절대적인 형식에 있어서 거절한다. 그러나 칼빈은 이 굘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고 유기론을 ‘두려운 작정’으로 표현했다. 바르트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인간의 거부에 의거하고 있는 유기를 가르친다. 브룬너는 유기론을 완전히 거부했다. 그는 유기론이 논리상 선택론으로부터 추론된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유기론을 성경에서 가르친 바가 없다 하여 인간 논리의 지도에 대해 경고한다.

- 유기의 두 요소는 간과와 정죄이다(도르트신조). 간과는 인간의 과실을 고려하지 않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행동이고, 선고는 인간의 죄를 벌하시는 법적 행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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