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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묵상의 원리(존 오웬)

존 오웬

by 김경호 진실 2012. 12. 29.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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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묵상의 원리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단 12:4b)
는 말씀대로 현 시대는 지식의 홍수 시대요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시대적 요구에 부응해야만 생존할 수 있는 시대다. 이런 가운데 성경을 읽고 묵상하며 자기 심중(心中)에 말하고 잠잠히 하나님 앞에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사실을 느끼는 신자가 얼마나 될까?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기도와 성경읽기에 충분한 시간을 기울이지 못하며, 묵상하는 것도 포기하였다. 한 때 묵상은 기독교 영적 훈련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훈련으로 여겼지만, 요즘 묵상은 비성경적인 “뉴에이지”의 영성과 관련된 단어로 쓰이고 있다. 초월 명상이나 심신수련을 하는 사람들의 전유물이 되고 만 것이다. 이제 우리는 기독교 영적 훈련의 해심인 성경 묵상을 되찾아 와야만 한다.

1. 성경이 우리 손에 들려지기까지

유대인의 성경은 본래 유대인의 기록된 유대인의 책이었다. 주전 3세기 전까지만 해도 성경은 히브리어로만 기록되었다. 그런데 히브리인의 성경이 헬라어 성경(70인역, Septuagint, B. C. 270년에 완성)으로 번역되면서 모든 사람에게 퍼져 나갔다. 주후 1세기 때에 신약성경은 당시 문명세계의 공용어였던 헬라어로 쓰이게 되었고 그 후부터 신구약 성경은 온 세상에 증거되었다. 헬라어 성경은 복음이 세계 각 곳으로 흐를 수 있게 하는 거대한 운하와 같은 역할을 하였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온 세상의 책이 되었다. 기독교가 전파되는 곳이면 어디든지 성경이 따라갔으며, 성경이 전파되는 곳이면 기독교가 전파되었다.
초대교회 시대는 신속하고 값싼 책을 마구 찍어낼 수 있는 발달된 인쇄술이 없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다 골고루 교육을 받던 시대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성경은 각 나라 사람들에게로 전파되어 갔다. 당시 경건한 신자들은 성경을 필사하는 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여겼으며, 이런 작업은 수도자들의 주요한 업무였다. 어떤 신자들은 많은 성경을 구입해 놓고 성경이 필요한 자들에게 아무런 대가를 받지 않고 선물로 주는 선행을 베풀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중세기에 들어와서 사람들은 성경을 잃어버렸다. 그리고 얼마 후 종교개혁이 발생하였고 사람들은 다시 성경을 돌려받을 수 있었다. 이후 선교사들의 손에 의해 성경이 번역되었고, 마침내 한국어로 번역된 성경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2. 성경 읽기와 묵상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을 거룩한 책으로 이해하고 성경을 믿고 거기서 도움을 구하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을 지속적으로 읽지 않으며, 이로 인해 죄책감을 많이 느낀다. 대부분의 성도들은 자신이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만큼 성경을 읽지 않는다. 이런 역설이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자신들의 신앙을 의심케 하는 주요 원인이 되었다. 이제 성경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평생의 동반자가 되어야 한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마치 날마다 새로운 생명의 샘물이 터져 나오는 우물가에서 그 생명수를 마시는 것처럼 매일, 그리고 해마다 반복해서 읽어야 한다.
하지만 성경은 한 번 읽고 몇 가지 말씀만 기억하는 것으로 충분치 않다. 성경은 단 한 번에 공부를 다 마치고 그 후에는 잊히는 책이 아니다. 성경은 읽은 뿐 아니라 지속적으로 묵상해야 한다. 만약 음식을 먹기만 하고 씹지 않는다면, 또 그것을 삼키지 않는다면, 그 음식은 아무런 유익을 줄 수 없다. 영혼의 양식인 성경도 마찬가지다. 성경말씀을 듣고 읽기만 하고 그 말씀을 혀 밑에서 굴려보고 영혼의 미각에서 단맛을 느낄 때까지 씹지 않는다면, 그 말씀은 신자에게 유익을 줄 수 없다. 윌리엄 베이츠는 “말씀을 듣는 것은 음식물을 섭취하는 것과 같고, 그 말씀을 묵상하는 것은 그것을 소화하는 것이며, 그 묵상을 통해 말씀을 소화할 때 따뜻한 정서와 열정적인 결단과 거룩한 행실을 배출한다."고 하였다.
사람을 통해 배운 사람은 사람을 배우지만, 성경을 자신의 교사로 여기며 성경을 읽는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배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읽고 묵상할 때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모든 그리스도인이 성경을 읽고 묵상해야만 하는 가장 궁극적인 이유다. 공부와 묵상은 다르다. 공부는 진리를 찾아내는 것이지만, 묵상은 진리를 영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토마스 왓슨은 “공부란 따뜻함이나 영향력이 적은 겨울 해 같지만, 묵상은 마음이 얼어있을 때 그것을 녹여주며 사랑의 눈물을 흘리게 한다.”고 하였다.

3. 묵상의 정의와 종류

1) ‘묵상’이란 말의 뜻
‘묵상하다(mediate)’ 또는 ‘명상하다(muse)’라는 단어는 히브리어 하가(HaGa)에서 왔는데, 이 단어는 의성어이기도 하다. 우리말에 비둘기 울음은 “구구”라고 표현하지만 히브리어는 비둘기 울음을 “하가하가”로 표현한다. 비둘기가 읊조리는 데서 파생한 단어이다. 기본 뜻으로는 “곰곰이 생각하다(think upon)” 또는 “반추하다(reflect)”라는 뜻을 가지며, 때로 묵상은 “중얼거리거나 읊조리는 것, 혹은 나지막하게 말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고, “우리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스스로에게 말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런 묵상에는 자신이 암송하고자 하는 성경구절을 낮은 목소리로 낭독하는 것도 포함된다.

『이삭이 저물 때에 들에 나가 묵상하다가 눈을 들어 보매 약대들이 오더라.』(창 24:63)
『이 율법 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수 1:8)

그런데 무엇보다 묵상이라는 단어는 시편에 많이 나타난다. 시편 1편은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였고, 시편 63편 6절에서는 다윗이 그의 침상에서 주를 기억하고 방중에 주를 묵상한다고 고백한다. 시편 119편 148절에서는 “주의 말씀을 묵상하려고 내 눈이 야경이 깊기 전에 깨었나이다.”라고 말씀한다.

2) 묵상의 정의
묵상은 자기 영혼을 성찰하는 행위이다. 묵상은 마음을 영적인 것과 천상의 주제에 진지하게 적용하는 것이며, 거기에서 자신과 대화하며, 그럼으로써 자신의 마음이 따뜻해지고 거룩한 정서가 함양된다. 여기서 더 나아가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고자 하는 결단을 내리고, 죄를 미워할 수 있게 된다. 토마스 왓슨은 묵상을 “하나님의 진리를 기억하고 그것드레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우리 자신에게 적용시키는 마음의 거룩한 행동”이라고 정의하였다.

3) 묵상의 종류
시편 8편에서 다윗이 달과 별들을 보면서, 잠언 6장에서 솔로몬이 개미들을 보면서 묵상하였다. 이를 소위 만물 묵상이라고 한다. 이런 불규칙적인 묵상은 쉽다. 어느 때, 어느 장소, 어떤 사람과 함께 있든지 실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불규칙적인 묵상에는 위험이 따른다. 사람의 상상력은 거룩한 말씀의 통치를 받아야 한다.
설교도 묵상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화이트는 “두 편의 설교를 듣고 묵상하지 않는 것보다는 단 한 편의 설교만을 듣고 그것에 대해 묵상하는 것이 더 좋다.”고 하였다. 어떤 경우 하나님과 천국에 대해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묵상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보다 더 중요한 것은 기록된 말씀이다. 하나님의 구원사건은 물론,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섭리와 뜻, 그리고 구원의 도리와 신자로서의 삶의 원칙은 오직 기록된 말씀으로 표현되었다. 따라서 말씀보다 더 우선할 수 있는 묵상의 대상은 있을 수 없다.

4. 묵상은 어떻게 하는가?

1) 전인격적 활동으로서의 묵상
하나님께서 인간을 이성적 인간으로 만드셨을 때, 인간이 이기적이고 죄 된 목적에 생각을 사용하도록 의도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인간이 하나님 자신과 자신의 사랑과 은혜를 생각하며 살도록 의도하셨다. 그럼에도 신자가 하나님의 말씀과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해 묵상하지 않고 죄악된 것들을 묵상한다면, 이처럼 하나님을 모욕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신자는 다른 일보다 성경을 묵상하는 일에 이성을 사용해야 하는데, 그것은 성경이 우선적으로는 내 지성을 향하여 말하고 내 의지를 향하여 빛을 비추기 때문이다.
하지만 묵상은 이성적 활동만이 아니다. 묵상은 전인격적 활동이 되어야 한다. 곧 생각은 물론 마음까지 움직여야 한다. 에드먼드 칼라미는 “참된 묵상은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에 대해 생각할 때 그의 마음이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으로 불붙게 되는 것이며, 하나님의 진리에 대해 묵상할 때에는 그 진리들로 변화되고자 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며, 죄에 대해서 생각할 때는 그 죄를 미워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는 계속 말하기를 “선을 행하기 위해서는 묵상은 세 가지 문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그 세 가지 문은, 이해의 문, 마음과 정서의 문, 실천적인 생활의 문이다.”고 하였다.

2) 적용
성경은 행동을 요구한다. 성경을 읽으려 할 때 마다 우리는 부르짖어야 한다. “주여 내가 무엇 ‘하기를’ 원하나이까?”(행 9:6). 하지만 외적인 적용에 앞서 먼저 내적인 적용이 내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묵상은 마음에 적용하는 것이다. 내면적 적용이 먼저고 그 후에 외면적 적용이 이루어져야 한다. 묵상을 통한 삶의 변화는 내면에서 시작된 하나님의 말씀의 실천적인 적용이 외면적으로 확대된 자연스런 결과여야 한다.

5. 묵상의 회수와 시간

1) 거룩한 묵상은 자주해야 한다. 하루에 두 번 하는 것이 가장 좋고, 적어도 하루에 한 번은 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바쁜 사령관이었던 여호수아에게 그의 율법을 묵상하라고 명하였다면, 우리 역시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것을 즐거워해야 되지 않겠는가?
윌리엄 베이츠는 “만일 새가 그 둥지를 오랫동안 떠나 있게 되면 알들이 차갑게 되어 거기에서는 새끼들이 부화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쉬지 않고 (아들을) 품게 되면 그들은 부화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오랫동안 종교적인 의무에서 떠나 있게 되면 우리의 정서는 식어버려 점점 차갑게 될 것이며, 거룩함을 부화하기에 적합하지 못하게 될 것이며, 우리 영혼도 위로를 얻지 못할 것이다.”고 하였다.

2) 묵상을 위한 시간을 정하고 그 시간을 엄수하라. 새벽 시간이나 밤늦은 시간, 또는 그 중간에라도 다른 의무들로부터 자유로운 시간을 정하라. 무엇보다 주일에는 묵상 시간을 넉넉하게 가지라. 웨스트민스터 총대들은 ‘공예배 모범’에서 “(주일) 공예배를 전후해서 남게 되는 시간을 사용해서 성경읽기, 묵상, 그리고 설교의 새김질”을 하라고 충고하였다.

3) “당신의 영혼이 지각할 만한 유익을 발견할 때까지 통상적으로(꾸준히)” 묵상하라. 묵상하는 것은 마치 젖은 나무에 불을 붙이려고 애쓰는 것과 같다. 인내하는 자만이 불을 지필 수 있다. 처음 묵상하기 시작할 때 약간의 연기만이 올라가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 다음에는 두 세 번의 불꽃이 잠시 튀는 것을 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결국에는 거룩한 정서의 불꽃이 일어나서 하나님을 향하여 올라가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불이 위로 올라갈 때까지 인내하라(베이츠). 인내하며 힘썼음에도 불구하고 불이 위로 올라가지 않을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럴 때는 다음 기회를 보면 된다. 하나님의 은혜가 억지로 오도록 강요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묵상을 생략하면 마음이 강퍅하게 된다. 하나님의 축복에 대해 감사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섭리와 고난 속에서 경건한 열매를 맺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말씀과 성례로부터 유익을 얻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에 대해 그토록 비판적이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묵상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닌가! 당신의 마음속에 있는 영적인 생각이 당신의 삶 속에서 거룩함을 만들어 낸다.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잠 23:7)

6. 묵상의 의무와 필요성

1)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 말씀에 대해 묵상할 것을 명령하셨다.(신 6:7, 수 1:8, 시 19:14, 딤전 4:13)

2) 우리는 성경 말씀을 묵상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록하신 편지로서 묵상해야 한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개인적인 메시지도 주신다. 그러므로 급하게 읽어 내려가지 말고 천천히 한 말씀, 한 말씀을 묵상하면 그 묵상이 우리의 정서와 사랑에 불을 붙일 것이다.

『또 나의 사랑하는 바 주의 계명에 내 손을 들고 주의 율례를 묵상하리이다』(시 119:48)

3) 신자가 묵상하지 않으면 견실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다. 다윗이 시편 119편 92절에서 “주의 법이 나의 즐거움이 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내 고난 중에 멸망하였으리이다.” 고 말했다. 토마스 맨톤은 “믿음은 그것이 하나님의 약속들에 의해 계속적으로 배불리지 못하면 굶주리게 되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토마스 왓슨은 “묵상이 없는 그리스도인은 무기가 없는 군인과 같고 연장이 없는 일꾼과 같다.”고 하였다. 묵상이 없다면 하나님의 진리는 우리와 함께 머물러 있지 않을 것이고, 마음은 강퍅해지고, 기억은 불분명해질 것이다.

4) 묵상이 없으면 설교 말씀도 우리를 유익하게 하지 못할 것이다. 묵상이 없이 성경을 읽기만 하는 것은 “날 것을 먹고 소화시키지 못하는 음식”을 삼키는 것과 같다. 리처드 백스터 목사는 “사람은 과식할 수는 있지만 그것을 잘 소화시킬 수는 없다.”고 했다.
횃불의 빛과 태양의 빛이 큰 차이가 있는 것처럼, 진리를 아는 것과 진리에 대해 묵상하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정원에 횃불을 밝혀도 식물에 별 영향을 주지 못한다. 하지만 태양은 식물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묵상이 이와 같다. 묵상은 빛나는 태양과 같고, 우리의 정서에 역사하며,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고 더욱 거룩하게 만들어 준다.

5) 묵상이 없이는 우리의 기도도 덜 효과적이 될 것이다. 묵상은 말씀과 기도 사이에 일종의 중간적 의무이다. 열매 없게 되지 않기 위해서는 묵상해야 한다.

6) 묵상에 실패한 그리스도인은 진리를 보수할 수 없다. 그들은 뼈대가 가없고 자기 자신에 대해 알지 못한다. 토마스 맨톤은 “묵상에 이방인이 된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도 이방인이다.”라고 말했다.

7. 성경 묵상의 유익

1) 묵상은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하여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며, 지적으로나 영적으로나 심미학적으로나 삼위일체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를 즐거워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요일 2:8).

2) 묵상은 거룩한 진리에 대한 지식을 배가시키는데 도움을 준다. “진리의 표면으로부터 베일을 벗겨내” 준다(잠 4:2).

3) 묵상은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지혜의 근본이 되는-을 증진시키므로 “지혜의 유모”라 할만하다.

4) 묵상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모든 영적 환란과 외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의 섭리와 약속을 신뢰할 수 있도록 도와줌으로써 우리의 믿음을 크게 하여 준다.

5) 묵상은 사람의 정서를 증가시킨다(시 39:3). 왓슨은 묵상을 “정서의 고함소리, 포효”라고 하였다.

6) 묵상은 회개와 삶의 개혁을 불러일으킨다(시 119:59; 겔 36:31).

7) 묵상은 암송의 훌륭한 친구이다.

8) 묵상은 우리 영혼의 구조가 성경 말씀에 잠길 수 있게 해준다.

9) 묵상은 기도에 큰 도움이 된다(시 5:1). 마치 악기를 연주하기 전에 조율하듯이, 묵상은 기도하기 전에 기도라는 악기를 조율해준다.

10) 묵상은 죄의 해악을 강조한다. 묵상은 “모든 무기들을 불러일으키며, 우리의 죄를 억누를 수 있는 모든 주장(argument)들을 모으며, 그것들의 무게를 절감하게 한다(훼너).” 토마스 후커는 “묵상은 타락의 아픔과 힘을 날카롭게 하여서 보다 더욱 효과적으로 (우리의 마음을) 찔러 관통하게 한다.” 고 하였다. 이런 면에서 묵상은 ‘죄의 해독제’이며 ‘탐욕의 치료제’이다.

11) 묵상은 일상생활에 대한 지침을 포함해서 (잠 6:21-22) 자신이 의지해야 할 내적 자원들을 제공해 준다(시 77:10-12).

12) 묵상은 우리의 영적 교제와 상담으로 다른 사람을 유익되게 할 수 있게 도와준다(시 66:16; 77:12; 145:7).

“묵상은 마음과 영혼을 죄악된 생각으로부터 지켜 주는 것이다. 그릇에 가득 차면 더 이상 담을 수가 없다.… 만약 마음이 죄악된 생각들로 가득하다면, 경건하고 신실한 생각이 들어설 여지는 전혀 없다. 만약 마음이 묵상을 통해 경건하고 신실한 생각들로 가득 차 있다면, 악하고 죄된 생각은 들어설 여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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