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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들은 복음을 배반 하는가? 3 (존 오웬)

존 오웬

by 김경호 진실 2013. 1. 28.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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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복음에 대한 부분적 배반 이제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손에 의해 고난당하실 수 있는 곳은 그의 복음과 교회 안에서 뿐이다.
중요한 복음적 진리 중 어느 것을 저버리고 거부할 때, 복음에 대한 순종을 계속 등한히 할 때, 복음이 가르치고 요구하는 대로 살지 않고 다른 것들을 믿기 시작할 때, 우리는 복음을 부분적으로 배도하는 셈이다.
인간은 자신을 기쁘게 하고 자신에 대해 좋게 생각하려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교회들은 자기들이 드리는 예배 의식이나 순서가 제대로 지켜지면, 특히 그로 말미암아 세속적 유익을 얻게 되면 아주 만족해한다. 그리스도인들이 교회에 대해 내리는 판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대해 내리는 판단과 다를 때가 상당히 많다.
라오디게아 교회 교인들은 자기들이 “부자고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그들이 그 교회의 실상을 모른다고 말씀하셨다. 그리스도의 눈에는 그들이 “곤고하고 가련하고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은”교회였다. 이것은 “아멘이시오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신 그리스도의 판단이다(계 3:14-17).
마치 하나님께서 구약 시대의 교회에 대해 말씀하셨던 것처럼 그리스도께서 오늘날의 교회를 보시고 아마 다음과 같이 말씀하실 것이다.
“내가 너를 순전한 참 종자 곧 귀한 포도나무로 심었거늘 내게 대하여 이방 포도나무의 악한 가지가 됨은 어찜이뇨”(렘 2:21) “신실하던 성읍이 어찌하여 창기가 되었는고? 공평이 거기 충만하였고 의리가 그 가운데 거하였었더니 이제는 살인자들뿐이었도다 네 은은 찌끼가 되었고 너의 포도주에는 물이 섞였도다.”(사 1:21,22)
따라서 오늘날 많은 교회 안에서는 복음의 은이 찌끼가 되었고 그 순전한 포도주에 전통과 이성이라는 물이 섞였다. 인간은 복음의 진리에 대해 너무 금방 싫증을 느껴 그것을 자신들이 생각해낸 아이디어나 방법들과 바꾸려 든다. “어느 나라가 그 신을 신 아닌 것과 바꾼 일이 있느냐 그러나 나의 백성은 그 영광을 무익한 것과 바꾸었도다.”(렘 2:11)

로마 가톨릭 교회의 특별한 주장
그러나 로마 가톨릭 교회는 별난 특권을 주장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오류에 빠지거나 참 구원의 진리와 순종을 저버리게 되지 않도록 지켜주는, 그 교회의 교제에 속한 모든 사람들의 마음과 뜻 가운데 역사하시는 은혜의 내적 특권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흠 없이 완전하다는 외적 특권을 주장한다.
로마 가톨릭 교회가 스스로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이 무흠하다는 은사가 교회를 복음이 요구하는 상태에 완벽하게 거할 수 있도록 지켜준다는 것이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이 은사가 어떻게 역사하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이 그것을 좋아하든 싫어하든 또 그들이 그것을 원하든 원치 안든 아무튼 이 은사는 역사한다는 것이다!
이 무흠의 은사는 구약시대 때 유대인들에 의해 이미 만들어진바 있다. “이것이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렘 7:4).
그들은 자기들이 여호와의 전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리 큰 죄를 짓는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그들이 배도하지 않도록 틀림없이 지켜 주시리라 믿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그들이 거짓말을 믿고 있다고 선언하고 있다.
“너희가 무익한 거짓말을 의뢰하는도다 너희가 도적질하며 살인하며 간음하며 거짓 맹세하며 바알에게 분향하며 너희의 알지 못하는 다른 신들을 좇으면서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에 들어와서 내 앞에 서서 말하기를 우리가 구원을 얻었나이다 하느냐 이는 이 모든 가증한 일을 행하려 함이로라.”(렘 7:8-10)

모든 사도들 가운데 유독 베드로만 자신의 완벽(무흠)을 주장했다. 그는 위기가 닥쳐오더라도 자기는 절대 그리스도를 부인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는 그리스도를 부인하지 않았는가! 물론 다른 모든 사도들도 그리스도를 버리고 도망갔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리스도를 버렸을 뿐 아니라 부인까지 하지 않았는가!
마찬가지로 로마 가톨릭 교회도 자기네만은 완벽하다고 주장하는데 이 주장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있는 다른 어느 교회보다도 더 심한 특별 배도를 자행하고 있는 셈이다.
그들이 완벽함을 부인할 만한 증거는 많지만 지지할 만한 증거는 전혀 없는데도 이런 주장을 하다니, 이보다 더 심한 거짓말도 없으며 또 이보다 더 인간 영혼에 해를 가하는 것도 없을 것이다.
가톨릭교를 신봉하는 국가들은 그동안 무시무시하고 피비린내 나는 전쟁, 뚜렷한 대의명분도 없는 전쟁을 일삼아 왔다. 그래 그들이 평화의 왕에 의해 다스려지는 나라들이라 그렇게 전쟁만 일삼아 왔단 말인가? 역사가 분명히 보여주고 있듯이 로마 가톨릭 교회는 그동안 참으로 사악한 일을 많이 저질렀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그 역사 전체를 통틀어 볼 때 한 번도 사랑과 평화의 본을 보여준 적이 없다. 오히려 전쟁과 가혹한 핍박의 본만 보여주었을 뿐이다. 로마 가톨릭 교회의 행위가 어떻게 이사야 2:2-4 말씀에 나오는 내용과 같다고 할 수 있으며 사랑과 평화 및 하나 됨을 가르치시는 그리스도의 교훈과 일치된다고 볼 수 있겠는가?

만약 로마 가톨릭 교회가 참으로 흠 없이 완벽하다면 우리는 그 교회가 이 땅에 가져다 준 황폐함보다 더 나은 것을 기대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교회는 자칭 성령의 인도를 받는다 하고 평화와 사랑의 왕이신 그리스도의 지배를 받는다고 주장하는 자들의 정욕과 분노를 통해 이 땅에 황폐만 가져다주었을 뿐이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어느 모로 보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세우기 위해 오셨던 의와 사랑과 평화의 나라를 대표하지 않는다.
역사를 살펴볼 때 로마 가톨릭 교회는 빛과 진리 및 거룩한 나라, 그 원리나 소원 및 행실에 있어서 이 세상과 분리된 나라, 하나님과 친밀하게 지내고 인간에게는 사랑과 친절을 보이는 하나의 본보기, 성령 안에서 의와 기쁨 및 평화의 본보기가 되기보다 오히려 흑암, 교만, 무지, 야망, 핍박, 피, 미신 및 우상 숭배의 나라가 되어 왔다.
그들은 자기들의 연합을 주장한다. 그 이유는 모든 가톨릭교도들이 교황이라는 한 머리 아래 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이 연합이야말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 할 유일한 연합이라 믿고 있다. 그러나 복음에서 말하는 연합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연합이요 그의 법에 순복하는 것을 말한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또 자기들 가운데는 성인(聖人)들이 있다는 것, 경건하고 관대할 일을 많이 함으로써 하나님의 사랑(자선)을 증거했다는 것, 이것들을 들어서 예배의 신성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복음은 성화와 거룩 및 사랑을 요구한다. 복음은 경건함과 순종에 있어서 그리스도와 하나 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따라서 로마 가톨릭 교회는 “경건의 모양”은 가지고 있으나 “그 능력은 부인하고 있는” 셈이다(딤후 3:5)

복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경건치 않은 것과 이 세상의 정욕을 다 버리고 근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라”(딛 2:11-12)고 가르친다. 그러나 사람들은 “어리석은 자요 순종치 아니한 자요 각색 정욕과 행락에 종노릇 한 자요 악독과 투기로 지낸 자요 피차 미워한 자”(딛 3:3)로서 지내기를 더 좋아하여 이것을 거절한다.
이러한 사람들은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딛 3:5)으로 구원받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
경건의 능력을 상실할 때 인간은 그들 존재의 명분을 세우려는 헛된 노력에서 경건의 모양에 치중한다. 애굽 왕 시삭이 올라와서 예루살렘을 치고 솔로몬이 만든 금 방패를 빼앗아 가자 르호보암 왕은 그 대신 놋 방패를 만들어 놓았다.(왕상 14:25-27 참조)

마찬가지로 로마 가톨릭 교회 교인들 대다수가 기독교의 참 영광을 모두 부인하고 경멸하며 믿음, 사랑, 평화, 거룩함, 그리스도와 하나 됨, 자기부인 및 천상적 행실의 모든 원리라는 금방패의 능력을 상실하고 부인했을 때, 그 자리에 그 영광의 모양 혹은 형상에 지나지 않는 놋 방패를 대신 만들어 놓았다. 이 모양 혹은 형상을 가지고 자기네만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참 교회라고 믿으며 만족스러워한다.

그리스도인들을 진정으로 연합시키는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그의 피로 사시고 위해 기도한 그리스도와의 신비하고 영적 일치라는 금 방패 대신 그 교회의 유일한 연합의 표로 교황에게 순종할 것을 고백하는 놋 방패를 만들어 놓았다.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를 위해 나누는 천상의 사랑과 그리스도께서 그 자신을 위해 신자들의 영혼을 새롭게 하시는 은혜라는 금 방패 대신 로마 가톨릭 교회는 자선과 관대한 행위라는 놋 방패를 만들어 놓았다. 그런데 이 자선과 관대한 행위라는 것이 실상은 로마 가톨릭 교회가 그 교회의 유익 및 세상적 부요와 진흥을 위해 행해진 일들에 대해 답례로 주는 보상으로 측정 평가되는 것들이다.
영혼 안에서 효과적으로 일하시는 성령의 은혜라는 금 방패 대신 로마 가톨릭 교회는 인간이 세운 규례라는 놋 방패를 만들어 놓았다.
거듭남이라는 금 방패가 세례라는 놋 방패로 변했다.
은혜 안에서의 성장이라는 금 방패가 주교의 승인이라는 놋 방패로 변했다.
우리를 위해 거룩한 제사 안에서 단번에 드려진 그리스도의 피에 대한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 얻는다는 금 방패를 죽은 자와 산자들의 죄를 위해 매일 드려지는 미사 예배라는 무가치한 놋 방패가 대신했다.
죄를 짓지 않으려고 영적인 몸부림을 치는 금 방패 대신 고해성사와 몸에 가혹하고 고통스러운 형벌을 가하는 놋 방패를 만들어 놓았다.
예배를 다스리시는 은혜와 탄원의 영이라는 금 방패 대신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져 한데 합쳐진 예배 의식이라는 놋 방패가 세워졌다.

그러나 이 모든 것보다 더 나쁜 것이 있다. 그것은 로마 가톨릭 교회가 모든 참 신자들로 하여금 순종과 사랑 안에서 하나 되어 열매 맺게 하려는 성령의 겸손하시고 거룩하신 그리고 온유하며 부지런한 수고를 거부한다는 점이다. 성령은 그리스도의 명령을 신자들의 영혼과 양심에 적용함으로써 이 일을 행하신다. 그런데 로마 가톨릭 교회는 이것을 거부하고 이 세상에 있는 어떤 전제주의 국가가 가지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세력, 사기, 착취, 압제, 폭력 및 피 흘림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교회 위에 군림하는 하나의 세상적 지배권을 세워 놓았다.

이런 비판들에 대한 로마 가톨릭 교회의 답변

“너희가 우리를 넘어뜨리기 위해 어떤 비판이나 정죄를 하든, 그것에 상관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교회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겠다고 하신 성령의 약속이 우리에게 주어졌을 뿐 아니라 그 약속은 오직 우리에게만 국한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어떤 악에 빠지든 상관없이 우리 안에 들어와 있는 모든 사람은 그 신앙과 믿음이 영원히 안전하다. 우리만 약속된 그리스도의 영을 가지고 있다. 그것 때문에 우리 교회만이 흠 없고 완벽한 것이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승리는 로마 가톨릭 교회의 것으로, 그 교회는 어떠한 비난이 가해져도 절대 넘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주장은 약할 뿐 아니라 한심하기까지 하다. 로마 가톨릭 교회의 주장을 종합해 보면 결국 다음과 같은 말이 될 것이다.
“우리만 교회다. 따라서 성령을 주시겠다는 약속은 우리에게만 주어진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그들이 그렇다고 주장하니까 그들만 교회라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로마 가톨릭 교회가 “약속된 성령이 우리에게만 주어졌으므로 우리만 교회다”라고 말한다면 이 주장은 보다 쉽게 시험해 볼 수 있고 또 만족스런 결론에 도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약속에 의하면 성령이 계신 곳에 그리스도의 참 교회가 있다. 왜냐하면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기”(롬 8:9) 때문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영이 계시는 곳에서 그분의 사역과 은사 및 은혜로써 자신을 가장 확실하게 계시하실 것이다. 그분은 진리의 영이기 때문에 세상은 그분을 받을 수 없다. 따라서 만약 성령이 로마 가톨릭 교회의 교제 속에만 거하신다면, 그리스도의 교회라고 주장하고는 있지만 로마 가톨릭 교회와의 교제 속에 들어 있지 않은 다른 모든 교회들은 성령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께서 그리스도와 함께 거하시지 않음이 분명히 보여야 할 것이다.
만약 로마 가톨릭 교회가 자기만 성령의 은혜로운 역사를 즐기고 자기만 그의 은사(보통 은사든 특별한 은사든)를 받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 줄 수 있다면, 그렇다면 로마 가톨릭 교회만이 유일하게 참된 그리스도의 교회라는 주장이 증명될 것이며 배도의 위험이 바로 그 문 앞에 있다는 어떤 비난도 받지 않게 될 것이다.

그러나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되는 대신 로마 가톨릭 교회는 그 안에 참 복음의 기미라고는 거의 남아있지 않다고 할 만큼 그렇게 진리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죄인들을 하나님께 이끌어 그와 화목하게 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과 영광에 순종하며 하나님 앞에서 살 수 있는 방법을 인간에게 가르치기 위해 주어진 성령의 안내서에 불과하다. 성경이 주어진 목적은 바로 이것 때문이다. 그 외에 다른 목적은 없다.
따라서 로마 가톨릭 교회가 자기만 진리를 소유하고 있으며 자기만 성경의 참 해석자(자신이 성경을 그 적절한 목적을 위해 사용하든 하용하지 않든 상관없이)라고 주장할 때, 로마 가톨릭 교회에 그 신앙을 고백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들의 영원한 장래를 확보해 줄 수 있다 - 그들이 복음에 대해 무지한 채 계속 죄 된 삶을 영위하며 아직 하나님께 대적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서 하나님과 화목하지 않은 상태에 있을지라도-고 말할 때, 로마 가톨릭 교회는 이 세상 사람들 눈앞에 드러내 놓고 복음을 경멸하고 비웃는 셈이 된다.
따라서 로마 가톨릭 교회가 무어라 주장하든 우리는 대다수의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부분적으로 복음의 진리를 배도해 왔는지 그 진상을 보여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왜 그랬는지, 어떻게 해서 이런 부분적 배도의 상태에 이르렀는지 그리고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이런 배도를 하게 했는지에 대해 질문을 제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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