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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 바랜 안식일 1 (월터 챈트리)

월터 챈트리

by 김경호 진실 2013. 3. 25.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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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계명은 거룩하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 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출 20:8-11)

가장 엄청난 죄

우리는 굉장히 바쁜 사회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다는 데에 따른 중압감은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하기도 합니다. 어린이들과 젊은이들의 슬픔과 고통의 커다란 요인들 중 하나는 그들의 부모가 다른 일에 너무 바빠 자녀들과 함께 지낼 시간을 전혀 갖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자녀들에게 책을 읽어줄 시간도 없고, 그들과 함께 놀아줄 시간도 없고, 그들이 마음속으로 정말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를 알 만한 시간도 없습니다. 아주 어린아이들도 그들이 엄마나 아빠가 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 주지 못하고 있다는 고통스러운 사실을 어렴풋이나마 깨닫고 있습니다.

아내들 역시 남편들이 자기들과 함께 지낼 시간을 갖지 못한다고 불평합니다. 그들은 다른 데 너무 얽매어 있어서 부부간에 정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아내와 함께 전혀 이야기를 나눌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들이 함께 어떤 즐거운 활동을 할 시간도 없고, 서로의 목표를 위해 함께 일할 시간도 없습니다.

상대방에게 ‘나에게는 당신과 함께 지낼 시간이 없어!’라고 말하는 것보다 더 큰 모욕이 또 있을까요? 물론 우리는 평소에 그렇게 말하지는 않지만, 지속적인 무관심과 자신의 생활 속에서 다른 사람들을 잘라냄으로써 그런 결과를 초래합니다. 이런 결과는 친구를 위한 시간이 조금도 남아 있지 않게 될 때까지 다른 일에 시간을 모두 사용함으로써 초래될 수도 있습니다. ‘나는 당신을 위해서라면 언제든지 시간을 낼 수 있어!’라고 말하는 것보다 더 큰 경의(敬意)가 또 어디 있겠습니까? 상대방에게 전적인 관심을 표명함으로써 그 사람이 당신에게 있어서 아주 중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 주는 일보다 더 큰 친절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머지않아 우리는 이렇게 말하게 될 것입니다. ‘나는 당신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고 싶어. 나는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 싶어. 나는 당신과 함께 있고 싶어. 이런 일들은 나에게 아주 중요한 일이야.’

만약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지낼 시간을 갖지 못함으로써 인간관계가 비극적으로 깨어지고 그들이 깊은 상처를 입게 된다면, 하나님과 당신과의 관계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당신은 당신을 지으신 분을 위해서도 시간을 내지 못하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당신이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나님이 자신을 위하여 당신을 지으셨다는 사실을 잘 알 것입니다. 그분은 당신과 교제하고 자신의 마음속에 품고 계시는 생각을 당신에게 말씀하시기 위하여 자신의 형상을 따라 당신을 지으셨습니다. 그분은 당신이 자신과 함께 동행 하고 대화하며 자신을 기쁘게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자신의 모양대로 당신을 창조하셨습니다.

영원 전에 당신을 선택하사 그분의 특별한 백성이 되게 하신 그 하나님을 위해 시간을 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분은 당신이 그분 자신의 소중한 자녀가 되도록 하기 위하여 자기 아들의 죽음을 통해 당신의 모든 죄를 씻으셨습니다. 주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셨는데, 그 십자가는 바로 당신이 져야 할 십자가였습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곁에 그리고 그의 아버지 곁에 당신을 위한 처소를 마련하시기 위하여 하늘로 가셨습니다. 당신이 아버지와 아들과 함께 교제할 충분한 시간을 갖게 된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너무 바빠서 지극히 거룩하신 그분을 위한 시간을 내지 못한다는 그런 무례한 말은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주님을 위해 시간을 낸다는 것은 제4 계명이 말하고 있는 주제입니다. 신약과 구약은 모두 가장 중요한 도덕법이 우리의 온 마음을 다하여 주 우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인간의 도덕성의 주요 요소는 전능자에 대한 사랑입니다. 주 여호와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가장 엄청난 죄를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은 어떻게 표현되는 것인가요? 사랑의 행위는 어떤 것인가요? 바울은 ‘사랑은 율법의 완성’ 이라고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롬 13:10). 하나님의 도덕법은 사랑의 행위가 어떤 것인지를 규정합니다. 시내산에서 하나님께서 손가락으로 직접 돌판에 십계명을 쓰셨다는 것은 주님 자신이 도덕법을 요약하셨으며 사랑의 행위를 규정하셨다는 것입니다.

십계명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입니다. 우리를 지으신 분에 대한 사랑을 개괄하고 있는 4개의 계명들은 이 행위규범의 맨 처음에 나오며 또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두드러짐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인간의 윤리에 있어서 결정적인 문제라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제1계명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우리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우리에게 오직 그분만을 예배하고 그분만을 섬길 것을 요구한다는 사실입니다. 제2계명은 그 사랑으로 주님을 예배하고 섬길 방법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제3계명은 그 사랑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고 심길 태도를 규정합니다. 제4계명은 그분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표현할 시간이 언제인가 하는 것을 규정합니다. 우리가 시간의 제약 속에 사는 한, 우리의 최고의 사랑의 대상이신 그분께 우리는 시간을 바쳐야 합니다. 더 이상 시간이 존재하지 않게 될 때, 우리는 그분의 즉각적인 임재 속에 영원히 거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창조주의 도덕법령이 그분의 피조물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매우 합당한 것들입니다. 그분은 당신에게 누구보다도 합리적이며 관대하십니다. 7일 중 단 하루만이 그분을 예배하고 섬기는데 온전히 바쳐져야 합니다. 6일 동안은 당신이 정당하게 일과 오락을 추구하는 것이 허용되었습니다.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 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 인즉 …”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 지구 전체를 우리의 행복과 즐거움을 위해 사용하도록 주셨습니다. 그런 다음 하나님이 모든 것의 주인이라는 것을 인정한다는 표시로 단지 10분의 1(혹은 십일조)만을 바치도록 요구하셨습니다. 당신은 10퍼센트의 세금이 너무나 많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러나 당신에게 햇빛과 비를 내려주시며 당신이 이용하고 있는 모든 자원과 광물과 동물 등을 값없이 주신 주님께서는 단지 10분의 1만을 요구하십니다. 당신의 지상의 생명과 영원한 소망을 주신 분은 당신에게 7일 중에서 단 하루만을 그분께 바치도록 요구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1주일에서 하루 전체는 너무나 많은 요구라고 불평합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위해 많은 시간을 갖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더욱 슬픈 것은 인류의 대부분이 이 도덕적 책임에 관해 생각조차도 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안식일을 기억하여’라는 말씀으로 시작되는 여호와의 도덕법을 재빨리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의 이 국면을 무시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양심을 둔화시키는 성경적 원리들 중 주요한 것입니다. 우리 시대에는 대다수의 복음주의적 그리스도인들조차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시간에 관해, 이 도덕적 문제에 대해 전혀 들어 본 적이 없는 것처럼 행동합니다. 한 대학생이 ‘나는 십계명 중에서 9가지의 모든 계명들을 믿사오며’라는 풍자적인 제목의 논문을 쓴 적이 있습니다. 그는 제4계명을 무시하는 습관에 빠져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충격을 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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