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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비기독교적 은사주의 운동을 분별하자. 비클과 직통계시파의 문제점(1) 김재성교수

마이크 비클

by 김경호 진실 2013. 11. 15.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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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기독교적 은사주의 운동을 분별하자. 비클과 직통계시파의 문제점(1)

정통 기독교 신학을 받아들이지 않는 비클의 문제점은 예언과 계시를 하나님께서 직접 자신에게 내려 주신다는 허황된 이야기를 정당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과 사상은 모두 진공 상태에서 나오지 않는 법이다. 어머니의 품에서 나오며, 시대와 환경의 흐름 속에서 파생되어 나온다. 마이크 비클이 몸담고 배웠던 뿌리는 왜곡된 은사주의, 신비적인 예언활동, 변질된 성령운동이었다. 그가 말세에 내린 은사들을 강조하고 있고,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내려오는 예언활동을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은 바로 그의 태생이 잘못된 기독교임을 말해준다.1)

1. 이단은 저급한 은사운동의 뿌리에서 출현함
1979년 목사가 되었다는 마이크 비클은 처음부터 성령 은사파 교회에서 즉흥적으로 선발되었다고 한다. 몇 주간 학생들에게 설교하다가 목사가 되었다는 것이다. 정통 기독교 교단에서 안수를 받은 목사로서의 정확한 신임이나 검증이 전혀 없었다. 그리고 그는 목회사역 초기에 선지자들에게서 계시를 받아서 활동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나님의 예언을 가장 먼저 내세우는 것은 그의 경력에 항상 일관되게 나타나는 주장이다.
그는 미주리 대학교 1학년이 최종학력으로 정규 신학교에서 수학한 적이 전혀 없다. 그는 자신이 잠을 청하는 안방에서 즉, 스스로 침대 학교에서 성경을 읽고 공부했다고 주장한다. 바로 여기에 목회자로서, 감히 성경에 나타나는 예언자로서 그가 주장하는 것들이 허구라는 점이 드러난다.
마이크 비클은 캔사스에서 어린 시절 성장하였고, 지금 주요 사역지도 역시 캔사스 시티이다. 하지만, 1976년부터 1982년까지 그의 첫 목회 사역은 세인트루이스 서쪽 지역에서 스물다섯 명의 청소년들과 함께 공동생활을 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당시에 비클은 미주리 로즈버드에서 교회를 세우려다가 실패하고, 세인트루이스로 돌아와서, “뉴 커버넌트 펠로쉽” 교회의 청소년 목사로 있으면서, “남부 세인트루이스 펠로쉽”이라는 교회를 두 번째로 세우고자 약 1년 반 동안 노력했다. 푸트남이 목회하던 교회가 거의 죽어가는 상황에 처했을 때 서로 합하였고, 그때에 좀 더 급진적인 형식을 받아들여서 춤을 추는 식으로 변해갔다고 한다.

2. 신비주의 예언을 따름
마이크 비클이 처음으로 자신의 인생에 전환점이 되는 목회적 사역에 관한 예언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사건은 1982년 6월경에 일어났다. 마이크 비클은 그전에 전혀 알지 못하는 예언자, 어거스틴 알카라라는 선지자가 교회의 모임 시간에 일어나서 공개적으로 “주님은 너와 너의 아내 다이앤의 갈 길을 다시 지도하고 계시는데, 너는 앞으로 캔사스 시티로 돌아가게 될 것이고, 새로운 교회를 세우게 될 것이다”라는 예언을 들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그는 “캔사스 시티로 이사해서 하나님의 사역을 하기를 원하신다”는 예언을 따르게 되었다고 한다. 즉, 그 이전에는 이런 예언에 대해서 별로 관심이 없었는데, 비로소 이 무렵부터 아주 극단적인 신비주의자들의 초자연적인 예언에 대해서 개인적인 접촉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그대로 믿기에는 너무나 의문점들이 많다.2) 다시 말해서 캔사스 시티에서 나오는 일방적인 이야기를 무비판적으로 그래도 받아들이기에 너무나 의문점들이 많다는 것이다. 자신에게 유리한 예언들은 진실한 것으로 인정하라는 것인데, 과연 이러한 예언을 받았는지도 의심이거니와, 그 당시 예언하는 자들이 누구였으며, 그들의 예언들이 어디에서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었는지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과연 그가 캔사스로 다시 돌아오는 데는 어거스킨 알카라로부터 받은 예언의 지시에만 전적으로 의존한 것일까? 당시 그의 주변에 있던 증언에 의하면, 그는 새로운 형식의 교회를 세워서, 어느 교단에도 소속하지 않고, 자신만의 지도력을 발휘하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권위에만 굴복하는 극단적인 무리를 만들어보려는 헛된 야심에 가득 차 있었다는 것이다. 이단들은 오직 특정인 한 사람의 권위에만 의존하도록 심리적으로 교묘한 전술을 구사한다. 그리고 이런 자신의 결정이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라는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서 예언자를 이용한다.

3. 침대신학의 위험성
비클은 자신의 신학적 토대를 묻는 자들에게 ‘침대에서 기도함으로 신학을 마쳤다’고 대답했다. 마이크 비클에게서 ‘침대신학’이라는 말이 나온 것이다. 참으로 간편하고 단순하다 못해 실소하다가, 동시에 분노를 참을 수 없다. ‘신학’이 어찌 그리 단순하던가? 성경은 히브리어, 아람어 헬라어로 기록되어 있으며, 그 안에 문법과 사상이 흐른다. 신학을 공부하는 것은 쉽지 않다. 라틴어와 현대 유럽 언어들로 체계화되어 있기 때문에 수많은 날을 도서관에서 보내고, 책을 뒤져보아도 “하나님이 펼쳐놓으신 백사장에서 조약돌 몇 개를 가지고 노는 어린아이”에 불과하다. 이 말을 남긴 사람은 어거스틴이다. 그런데 침대에서 신학을 끝낼 수 있는가? 침대는 잠을 자는 곳이지, 신학을 공부하는 곳이 아니다. 제발 헛소리에 현혹당하지 말고, 들을 귀 있는 분들은 정신을 차리기 바란다.
신학이란 학문을 마이크 비클은 매우 얕잡아 보고 있다. 정규학교에서 공부하는 신학을 조롱하는 그는 심각한 문제를 갖고 있다. 요즘에는 신학이 마치 유행처럼 옷을 갈아입는다. 무엇이든지 이름을 만들면 되는 시대이다. ‘침대신학’이라니, 도대체 기가 막힐 노릇이다. 앞으로 어떤 신학이 또 나오게 될지 모를 일이다.
앞에 언급한 예언을 듣게 된 무렵에, 마이크 비클은 인도에서 설교할 일정이 있어서 한국을 포함하여 아시아 여러 나라를 순방하게 되었는데, 자신도 동일한 예언을 직접 받았다고 주장한다. 마이크 비클은 한 달 동안 어디든지 다닐 수 있는 비행기 표를 가지고,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을 보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받고자 결심했다고 한다.
1982년 9월 인도와 한국을 거쳐서 이집트 카이로에 머물고 있던 중, 호텔 방에서 “내적으로 울리는 음성”을 들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캔사스로 이사하여 새로운 운동을 전개하기를 원하신다는 음성을 들었다고 주장한다. 그는 두려웠지만, 곧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 세상 끝까지 미치게 될 사역의 동반자로 너를 초대한다. 나는 이 일에 많은 사람을 초대했고, 많은 사람이 예라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에게 네 가지 계획을 가지고 새로운 교회를 세우라고 하셨다고 주장한다. ① 밤과 낮으로 드리는 기도 ② 마음의 거룩함 ③ 흔들리지 않는 믿음 ④ 가난한 자들에게 흡족하게 나눠주는 일
그리고 “너희 마음에서 네 동료들이 이런 마음을 빼앗아 가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주의를 받았다고 한다. 하나님께서 한 가지를 더 첨가하여 “이 한 세대 내에 교회의 이해와 표현을 내가 바꿀 것이다”고 하는 음성을 들었다는 것이다. 그는 이 구절을 믿지 않는 자들이 기독교인들에 대해서 존경심과 두려움을 가지게 하려는 것이라고 이해했다고 한다. 비록 세상에서 미움을 받더라고, 하나님의 능력이 그들 가운데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사도행전 5장 13절에 “그 나머지는 감히 그들과 상종하는 사람이 없으니 백성이 칭송하더라”는 것과 같이 되리라는 것이다. 정작 비클은 하나님 나라에서 큰 자로서 명성을 꿈꾸며, 챨스 피니와 죤 레이크처럼 체험적인 부흥사로 전 세계에 널리 알려진 운동을 일으키려는 야심을 품고 있었다.
마이크 비클은 정상적인 신학훈련을 받지 않았으므로 그가 주위에서 보고 배운 것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정말로 “해 아래 새것이란 없다.” 정통 기독교 신학을 받아들이지 않는 비클의 문제점은 예언과 계시를 하나님께서 직접 자신에게 내려 주신다는 허황된 이야기를 정당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침대에서 신학을 마쳤다고 한다. 이것은 극도의 개인적 주관주의와 무지한 신앙심에 몰입하게 되어져서 허황된 야심으로 발전하고 만다. 보편적인 기독교 교회에서는 개개인의 성도가 성경을 읽고, 해석하고, 은혜를 받는 것에 대해서 아무런 제한을 두지 않는다. 다만, 어떤 사람이 공적인 예배 장소에서 다른 사람을 가르치려고 한다면, 그 사람은 반드시 공적인 승인 절차를 거쳐서 자신의 신앙 조항을 밝혀야 한다. 그런데, 스스로 교회를 차리고, 스스로 인정하여 어느 날부터 말씀의 사역자가 되었다고 한다면, 이것은 전혀 성경적인 것이 아니다.
미국 내 다양한 교회들과 특히, 이단적인 오순절과 성령운동가들은 일반 교회의 목회자 양육과정과 철저한 검증, 시험 등과는 달리 비교적 단순하게 목사 안수를 받는다. 또한 침례교회와 회중교회, 독립교회에서는 엄격한 교육과 객관적 검증절차를 신중하게 시행하지 않는다. 1920년대에 시작된 포스퀘어 교단이나, 척 스미스의 갈보리 채플, 수많은 독립적인 침례교회에서는 신학교육을 받지 않은 평신도들의 사역에 강조점을 두었다. 지금도 얼마든지 신학공부를 하지 않아도 목사가 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빈야드 운동을 하고 있는 교회들도 평신도 목회자를 선호하는 경향이 많았다. 그리고 캔사스 시티 예언자들도 모두 그러하다. 평신도에서 곧바로 사역자가 될 수 있고, 그런 것을 반대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들의 문제는 기독교가 과연 어떤 신앙을 핵심으로 가지고 있는지에 관하여 정밀하게 공부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20세기 초반, 신학훈련이 없이 사역지에 뛰어들어 가게 된 일부 오순절파 목회자들이 남보다 특이한 성령 체험을 가지고 앞장서서 나타났다. 방언을 하는 자, 병 고치는 은사를 행하는 자, 기적을 행하면서 귀신을 쫓아내는 자들, 이들은 현상적으로 성령을 체험했다고 주장하면서 교회를 세우고, 스스로 목회자가 되었다.
누구에게 어떤 영향을 받았고, 객관적으로 어떤 ‘자격’을 구비했는지 알 수가 없다. 따라서 수많은 오순절파 교회들은 체계적인 신학 공부를 하지 않았기에 교리적으로 문제점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혼란과 혼돈을 피할 수 없다. 사도 바울이 디모데전서 4장 14절에서, “네 속에 있는 은사 곧 장로의 회에서 안수받을 때에 예언을 통하여 받은 것을 가볍게 여기지 말며”라고 부탁한 바 있다. 누구에게 어디에서 안수를 받았느냐는 말은 곧 신앙의 뿌리와 전통을 의미한다. 마이크 비클과 그의 동료들은 기독교 교회의 어디에도 연계되어서 성장하거나 훈련받거나 지도를 받지 않고, 스스로 사도라고 칭하는 그룹에 연계되어서 활동하고 있다. - 각주 일부는 생략하였습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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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Mike Bickle, Growing in the Prophetic, 22 비클은 두 가지를 강조한다: “prophetic ministry”와 “the End time”에 오는 기적과 초자연적 이적들이다.
2) James A. Beverly, Holy Laughter & the Toronto Blessing (Grand Rapids: Zondervan, 1995), 212-213.

 
 
김재성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부원장, 조직신학 교수
저서 : 『칼빈과 개혁신학의 기초』 『개혁신학의 전망』『기독교신학 어떻게 세워야 하나?』『교회를 허무는 두 대적』등 다수

크리스천인사이드 제55호 2013년 6월17 일 4면

출처 : 개혁주의 마을
글쓴이 : grace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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