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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이 난무한 세상에서 사는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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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호 진실 2014. 6. 9.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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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창원 교수, 총신대신대원, 한국개혁주의선교연구원, 본지 편집고문



정직은 삶에 있어서 최고의 무기이다. 정직이 주류를 형성하는 사회에는 질서와 평화가 존재한다. 그러나 부정과 거짓이 난무하는 곳에서는 안정도 쉼도 평화도 정착할 수 없다. 세상이 시끌벅적한 이유이다. 각종 사고와 사건이 끊이지 않는 원인이다.

그러나 정직이 언제나 공의한 것은 아니다. 공공선을 이루기 위하여 자신의 생각을 숨겨야 하고 자신의 자유를 억압해야 할 때도 있다. 공공선이라는 기준은 무엇인가? 대중의 선호도를 말한다면 그것 역시 불합리한 것이다. 왜냐하면 대중의 선호도는 시대를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과거에 태어났더라면 영웅의 반열에 오를 사람이 지금은 역적으로 몰락하는 경우도 있다. 지금의 역적은 다른 시대에 살았더라면 인기 절정을 누리는 자가 되었을 것이다. 공공선의 기준을 당대의 사회적 기준에 맞는 것으로만 한정한다면 미치광이로 비난받는 자들이 최고의 천재가 될 수 있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거짓의 아비의 자식들로 태어난다. 악마가 가진 선이란 부귀영화가 전부이다. 그 목적 달성을 위한 것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겉으로 보기엔 모든 사람들이 흠모하는 것들이다. 정말 보기에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다. 먹을 만하고 보암직도 하니 가지고 싶은 욕구가 솟구친다. 그 욕구 충족을 위한 거짓과 술수는 당연시되는 것이다. 특별히 들키지만 않으면 정당한 것이 된다. 이것 때문에 각양 각색의 분쟁과 다툼이 연쇄적으로 폭발한다. 한 가정에서도 그러하고 한 단체 안에서도 무수히 벌어지는 치열한 다툼이다. 그러나 국가 안에는 어떠하랴! 교회라고 예외가 아니다. 성도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지만 악마가 제시하는 부귀영화를 쟁취하기 위하여 치열한 경쟁체제에 과감하게 뛰어든다. 이겨야만 제대로 된 사람인양 부추기는 것은 교회도 예외가 아니다.

정직이라는 단어 앞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누가 있는가? 입으로 정직을 외쳐도 속은 거짓으로 똘똘 뭉쳐있는 것이 인간이다. 해로운 거짓말과 선한 거짓말로 편리하게 나누지만 거짓말 그 자체는 죄의 범주 안에 있다. 아는 사실을 함구하고 있는 것은 법정에서는 위증죄로 다스린다. 세상에서는 개인의 자유라고 봐준다. 그것을 죄악이라고 누가 정죄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처럼 공의하시고 거짓이 없으신 분은 없다. 그 자신은 진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도 알고 계신 것을 함구하시는 분이시다. 왜냐하면 우리의 마음의 모든 생각도 아실 뿐 아니라 우리의 거짓된 행위까지도 다 살피시는 분이신데 그 분은 우리의 죄악대로 우리를 처치하지 아니하시기 때문이다. 주께서 우리의 죄악을 살피시면 그 앞에 설 자가 아무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보지 않으신 것처럼 혹은 알지 못하는 것처럼 침묵하신다. 인간의 활동에 개입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다. 사람들이 회개하고 돌이키게 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의 지혜로운 행동이다.

때로 우리들의 삶에서 벌어지는 일들 가운데 침묵해야만 평화로울 때가 있지 않는가? 잠잠히 있어야 질서를 유지할 수 있을 때가 많이 있다. 알고 있는 사실이라고 해서 하나같이 다 말해 버리면 사회적 혼란과 무질서를 일으킬 일들이 산재해 있는 것이 세상이다. 지식은 말함으로서 사회적 선을 봉사한다. 그러나 어떤 지식은 말함으로서 사회적 손실이 무진장 크다. 용서와 사랑은 이 두 사이에서 발생하는 은총의 산물이다. 만일 하나님의 용서가 없다면 정의를 부르짖는 수많은 사람들도 유구무언이 될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죄인은 영원히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 죄인은 사회적 무대 앞에서 사라져야 할 존재라고 떠들며 구치소에 평생 가두어 두어 거기서 썩어야 할 자라고 외치는 자들도 하나님의 공의하신 판단 앞에서는 죄악 가운데서 태어나 죄악가운데서 살다가 죄로 인하여 죽는 자임을 결코 부정할 수 없다.

적당한 거짓은 필요하다. 그러나 그 기준이 무엇인가? 공공의를 세우는 것과 공공선을 세우는 것 사이에서 갈등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침묵을 배우라고 말하고 싶다. 공개적으로 들어난 죄악들에 대해서 옳고 그름을 분명하게 제시할 수 있어야 공의가 세워진다. 그러나 사회적 혼란과 분열을 조장하는 요인이 될 수 있는 것들은 자발적인 근신과 회개하도록 이끌어 주어야 한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때는 공공의를 택해야 한다. 그것이 지혜라고 본다. 죄인들의 악행을 덮어두는 것이 사랑의 전부가 아니다. 사랑이신 하나님도 인간의 행위대로 판단하신다.

하나님의 의도는 선이다. 살리는 일이다. 세워주는 것이다. 심지어 다 부서진 질그릇조차도 그의 손에서 새로운 그릇이 되게 한다. 그는 전능한 토기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악마의 의도는 그와 정반대이다. 악을 조성한다. 죽이는 일을 한다. 무너지게 한다. 다시는 재기할 수 없게 한다. 혹 그런 마음이 내 안에 조금이라도 있다면 공의를 가장한 사악한 무리 중 하나임을 기억하라. 진리의 영이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하나님의 아들들로 살아가는 복이 거짓이 난무한 세상에서 성도가 사는 지혜이다. 오, 나의 주 하나님 나를 가르쳐서 주의 뜻을 행하게 하소서 나를 공평의 땅으로 인도하소서!(시 14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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