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청교도의 사상과 신앙과 삶
1. 청교도들의 언약 사상
청교도들의 신앙은 하나님의 뜻대로 개인적인 삶을 살며,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교회와 사회를 세우자는 것이다. 하나님 뜻대로 개인의 삶을 살고 교회와 사회 공동체를 세우자는 것은 목표이고 대 전제이다.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하여 청교도 성직자들은 먼저 스스로 설득되고 그리고 사람들을 설득시키며 그 목표에 도달하도록 하기 위하여 신앙적이고 사상적인 힘을 불어넣어야 했다.
바로 그 구체적인 사상적 틀과 정신적인 내용이 무엇인가 하면 그것은 청교도 언약사상이었고 그것에서 우러나오는 자발적 참여의식이었다. 언약사상은 이미 유럽대륙에서 소개되었지만 이것이 영국으로 넘어오면서 발전되었고, 청교도들은 이것을 개인 언약, 교회언약, 사회언약의 크게 세 가지로 발전시키면서 삶의 모든 부분을 하나님과의 언약관계로 정리했다. 청교도 개혁운동은 바로 이 언약사상의 뒷받침으로 전개되었다.
청교도 언약사상은 사람들에게 자발적 참여의식을 낳게 했고, 이 자발적 참여의식은 개혁의 원동력이 되었던 것이다. 우리는 청교도 개혁운동 역사 가운데 언약사상이 어떻게 형성, 전개되었으며 자발적 참여의식이 어떻게 발생되었는가를 보게 될 것이다.
2. 청교도 운동의 7대 기준
청교도 운동에는 일곱 가지 뚜렷한 기준이 있다.
첫째가 성경중심의 신앙이다. 청교도 운동의 시작이 성경을 바로 읽고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바르게 살자는 운동이다.
둘째가 성수주일(聖守主日)이다. 십계명의 네 번째에 지시한 바를 따라 안식일을 철저히 지키며 살자는 운동이다.
셋째가 직업에 대한 소명 정신이다. 신부와 목사만이 사명자요 사역자가 아니라, 모든 직업이 하나님이 맡기신 청지기로서의 사명이라 여겼다.
넷째는 자녀들에 대한 책임이다. 그들은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바로 가르치는 것을 자신들의 책임으로 여겼다.
다섯째는 바른 교회를 세우는 운동이었다. 교황이나 사람의 권위가 지배하는 교회가 아니라 예수께서 머리가 되시는 교회를 세우자는 운동이었다.
여섯째는 예언서의 기준을 따라 정의로운 사회와 국가를 세우자는 운동이다. 이 운동이 영국에서는 제한적인 역할만 하고 실패하였지만, 미국으로 건너간 청교도들에 의하여 미국이란 국가가 세워지게 되었다.
일곱째는 재물에 대한 청지기 정신과 십일조 생활에 대한 강조이다. 재물에 대한 이런 사고와 습성이 후에 자본주의를 일으키는 모체가 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3. 청교도들의 삶
(1) 청교도들은 성경의 사람들이다.
엘리자벳 시대의 청교도인 토마스 샘슨 박사(Dr. Thomas Sampson)는 청교도들을 이렇게 표현한다. “그 누구도 정당하게 잘못을 찾을 수 없는 교리와 생활을 지닌 형제들” 이라고 한다.
리랜드 라이큰(Leland Ryken)이 표현하였듯이 청교도들은 “이 세상의 성자들(Worldly Saints)”이다. “청교도들은 세속의 오염으로부터 격리된 거룩한 양심을 소유한자들이었다. 이들은 초대교회로부터 물려받은 사도적 순결과 거룩한 양심을 지키기 위해 세속으로부터 격리되기를 염원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성경에 근거하지 않는 신앙생활은 어떠한 것이라도 거부하였다.”
청교도들이 누구인가? 성경에 가장 가까운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로이드존스의 말처럼 “청교도는 언제나 신약으로 돌아가기를 원했습니다.” 제임스 헤른(James Heron, D.D)은 "청교도들이 원했던 것은 가능한 성경 속에 나타난 원리들에 적합한, 교리는 물론이고 교회의 규율과 행정조직을 갖기 원했던 것이다.“ 라고 한다. 청교도들은 오로지 성경의 가르침에 기초하여 모든 것을 복음적인 관점에서 보았던 사람들이다. 즉 그들은 철저하게 성경의 사람들이었다 말할 수 있다. 그래서 그들을 통하여 성경의 권위가 온전히 드러났다.
(2) 청교도들은 온전한 개혁을 이루려고 한 사람들이다.
청교도들이 살던 당시의 카톨릭의 사제들은 정치적이고 형식적이었고, 반쯤 개혁된 영국 국교회(성공회)도 이러한 잔재가 남아 있었다. 또한 왕이 교회의 통치자가 되어 교회를 국가의 시녀로 전락시키었다. 놀라운 것은 당시 성직자들 가운데는 글을 읽을 줄 모르는 벙어리 성직자들도 많았다고 한다. 결국 설교 없이 의식만 거행되는 예배가 만연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종교상황 속에서 사람들은 혼란에 빠졌고, 빈곤 및 도덕성의 상실로 사회경제적인 불안이 심각하였다.
이러한 때에 청교도들은 국교회의 예배의식을 반대하고 초대교회와 같은 순수한 예배를 하나님께 드리고자 했다. 또한 성경을 연구하고 그 성경을 기초로 죄와 회개 구원의 은혜를 중심한 설교를 강조하였다. 또한 이들은 거룩과 경건을 생활의 절대적인 요소로 삼았다. 결국 청교도들에 의해서 종교개혁의 모토인 ‘오직 믿음으로 (Sola Fide)’, ‘오직 성경으로(sola Scriptura)',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Soli DEO Gloria)’ 라는 온전한 개혁이 이루어지는 계기가 된 것이다. 비록 영국 국교회 내에서는 온전히 이루어지지 못하였지만 영국 개신교 교회에 종교개혁의 주역들이 되었다.
(3) 청교도들은 성경의 진리를 바르게 설교한 사람들이다.
“청교도들은 다른 어떤 자이기 전에 먼저 설교자였다”는 것이다. 청교도들은 교회가 성경의 권위아래 있게 했을 뿐만 아니라 성경의 진리를 드러내는 설교의 권위를 되찾게 되었다. 특히 이것은 강단위의 설교자들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청교도들은 무혈적이고 영적이고 구두적인 개혁을 설교를 통하여 이룬 자들이다.
그들은 “설교시간은 대체로 예배시간과 동의어로 사용될 정도로 예배에 있어서 설교는 가장 핵심요소였다.” 그들은 설교를 공예배의 절정으로 간주했던 것이다. 즉 “성령의 권능에 의해서 수반되는 말씀 선포와 그 말씀으로부터 오는 교훈을 구원과 성화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권능의 중요한 중재수단으로 여겼던 것이다.” 그래서 강단위의 청교도들은 설교를 위하여 성경을 철저히 연구하였고, 실제의 강단에서 리차드 백스터(Richard Baxter 1615 - 1691)의 말처럼 설교했던 것이다. “이것이 나의 마지막 설교인 것처럼 선포하였고, 그들 모두는 ‘죽어가는 사람으로서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설교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철저하게 성경의 진리를 설교함으로서 인생의 제일 되는 주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임을 강조하고, 의지하고 바라보아야 하는 유일한 대상이 그리스도임을 제시하고, 신앙인의 삶의 방향이 경건과 거룩임을 일깨웠고, 철저한 직업 소명의식을 일깨우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건전한 가정생활을 하게하고, 세상의 쾌락과 사치로부터 돌아서게 했다. 설교된 성경의 진리에 의해서 실제적으로 설교자들은 가장 성경적인 삶을 살았음은 물론이고 회중속의 청교도들도 그와 같이 살았다.
(4) 청교도들은 삶의 전반적인 영역에서 경건한 의무에 충실한 사람들이다.
청교도들에게 있어서 중요시되는 단어가 ‘의무’라는 단어이다.
청교도들은 그들의 의무가 성경의 내용대로 순수한 신앙을 지키며 이것을 세상에 전파하는 것이요 그 대가로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특별한 대우를 받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그들은 순수한 신앙이 가정과 교회뿐 아니라 사회 전체에서 실현되어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기를 그렇게 원하고 싸웠던 것이다.
청교도들은 교회와 가정에서 청교도의 삶의 의무를 실제적으로 강조하였는데 목회자들은 설교에서 공통적인 표현으로 하나님께 순종과 충성을 강조했으며 양떼들에게 신앙과 의무를 이행하라고 강조했다.
청교도들이 철저하게 자신들의 의무로 삼았던 것들은 다음과 같다.
1. 성수주일이며 2. 예배이며 3. 기도이며 4. 경건한 가정이다. 5. 거룩한 삶이다.
l. 철저한 주일 성수의 의무이다.
그들은 주일을 ‘영혼을 위한 장날’ 이요 단체의 찬양과 기도로 천국 잔치에 참여하는 날로 생각하였다.
청교도들이 체계화시킨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The Westminster Larger Catechism) 제 118문은 이점을 분명히 하는데,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그들의 주요한 의무임을 명확히 하고 있다.
“왜 가족의 어른들과 다른 윗사람들을 향해 안식일을 지키라는 명령이 특별히 주어졌습니까?
답: 가족의 어른들과 다른 윗사람들을 향해 안식일을 지키라는 명령이 특별히 주어진 것은 그들 자신에게 안식일을 지킬 의무가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통솔 아래 있는 모든 사람들로 안식일을 지키게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며, 그들 자신의 일로 아랫사람들의 안식일을 방해하는 일이 흔히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소요리문답(The Westminster Shorter Catechism) 제60문과 대요리문답 제117문에서는 어떻게 안식을 거룩히 지켜야하는 지를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다.
대요리 문답에서 “안식일 혹은 주일을 어떻게 거룩하게 하여야 합니까? 답: 안식일 혹은 주일을 거룩하게 한다는 것은, 온 종일 거룩히 쉼으로 할 것이며, 언제나 죄악 된 일을 그칠 뿐만 아니라 다른 날에 합당한 세상일이나 오락까지 그만두어야 하며, 부득이한 일과 자선 사업에 쓰는 것을 제외하고는, 그 시간을 전적으로 공사 간 예배하는 일에 드리는 것을 기쁨으로 삼을 것입니다. 그 목적을 위하여 우리는 마음을 준비할 것이며, 세상일을 미리 부지런히 절제 있게 배치하고 적절히 처리하여 주일의 의무에 보다 더 자유로이 또는 적절하게 행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주일성수에 방해가 되는 것들을 금지해야 할 것을 분명하게 명시하고 있다.
소요리문답 제61문과 대요리문답 제119문에 “제 사 계명에서 금지된 죄들은 무엇입니까? 답: 제 사 계명에서 금지된 죄들은, 요구된 의무를 하지 않는 모든 것과 모든 부주의와 등한함과 그것들을 무익하게 이행함과 이에 지쳐 괴로워함이며, 또 게으름과 죄악 된 일을 하는 것과, 세속적인 일과 오락에 대하여 필요 없는 일, 말, 생각들을 함으로써 그 날을 더럽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청교도들은 주일성수를 의무로 여기며 철저하게 지킨 좋은 전통을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실제로 이러한 주일성수에 대한 의무와 철저한 준수는 리차드 박스터가 사역하던 키더민스터의 변화된 모습을 통하여 확인된다. 그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주일날에 거리에서 전혀 무질서가 보이지 않게 되었고 거리를 지날 때 수 많은 가정들이 찬송가를 부르고 설교를 되풀이 이야기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었다.”
2. 예배의 의무이다.
청교도들은 형식적이고 의식에 치우친 예배를 배격하고 성경에 근거한 순수한 예배, 간결한 예배를 사모하였다. 그들은 존 카튼(John Cotton, 1585-1652))의 표현처럼 “그리스도인의 예배는 사모함이다.” 청교도들이 주일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함이다.
그들은 기독교 예배의 세 가지 영역이 있다고 말한다. 곧 지역교회에서의 공적 예배와 가족 단위의 가정 예배와 골방에서의 개인 예배인 것이다. 이중에 공적 예배가 가장 중요하다. 공적 예배는 주일의 중심이다. 그들의 주일은 아침과 오후 혹은 저녁의 공적 예배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 복음적인 예배는 중생한 자들만의 특권이며 동시에 의무였다.
그리고 그들에게서 발견하는 중요한 특징 가운데 그들은 가정에서 중요한 의무도 예배였다. 웨스트 민스터 예배모범을 보면 “모든 가정이 통상 아침과 저녁에 시행하야 하는 가정예배는 기도와 성경읽기와 찬양으로 이루어진다.”라고 말한다. 청교도들은 가정 예배를 권면하였고 실제로 가정에서 매일 예배하였다.
리차드 백스터는 “가정예배를 위해 단지 2명만 있어도 된다.”고 하며, 죠지 휫필드는 “마음만 올바르게 갖추어져 있다면 가정예배를 품위 있고 건덕스럽게 드리는데 있어서 다른 어떤 비장한 능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한다. 죠엘 비키(Joel R. Beeke)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모든 부모들이 가정예배를 지속적으로 시행해야하는 이유를 이렇게 제시한다. 부부와 자녀들의 영원한 복락을 위해, 선한 양심의 만족을 위해, 자녀 양육의 도움을 위해, 주어진 시간이 짧기에, 하나님과 그의 교회에 대한 사랑 때문에 가정에서 매일 지속적으로 예배해야한다는 것이다.
3. 기도의 의무이다.
청교도들은 국교회의 고정된 기도서를 거절하고 즉석기도를 했다. 그들은 주일은 말할 것도 없고 일주일 내내 개인기도와 가족기도로 충만했다. 청교도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는 존 낙스가 기도의 사람이었듯이 청교도들은 기도의 사람들이었다. 특히 청교도들은 “경건한 생활을 위해서 많은 시간을 기도로 보냈으며 기도의 의무 실천을 계속하는 것이다.”
이러한 그들의 기도에 대한 의무가 대요리 문답 185문과 186문에 잘 나타난다. “
185문 :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합니까? 답: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위엄에 대한 엄숙한 이해와 우리 자신의 무가치함과 필요한 것들과 죄에 대한 깊은 의식과 통회하며 감사하는 열띤 마음을 가지고 이해, 믿음, 성실, 사랑과 인내로써 하나님을 바라며, 그의 뜻에 겸손히 복종함으로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제 186문에서 “하나님께서 기도의 의무에 관한 우리의 지침으로 어떠한 규칙을 주셨습니까? 답: 하나님의 말씀 전체가 기도의 의무에 관한 지침으로 사용되지만, 특별한 기도 법칙은 우리 구주 그리스도께서 자기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기도의 양식인데, 곧 주기도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4. 경건한 가정의 의무이다.
청교도들은 가정을 사회의 기본적인 단위인 동시에 하나의 교회로 보았다. 그들은 남편을 목사로 아내를 전도사로 하는 작은 교회라고 주장했다. “남편의 의무는 가족을 신앙으로 이끌고 주일날 그들을 교회에 데리고 가고 가정에서 그날 온종일 성별하도록 감독하고, 자녀에게 교리문답을 하고 믿음을 가르치고 설교를 들은 후에 가족 전체의 시험을 보아 얼마나 기억하고 이해하고 있는지 살펴보고 부족하면 이해시키고, 매일 가정 예배를 이상적으로 하루에 두 번 인도하고, 언제나 모든 문제에서 근실한 모범이 되는 것이다.”
토마스 왓슨(Thomas Watson)은 그리스도인 부모들이라면 “자녀들을 그들의 자녀로 만들기보다 하나님의 자녀로 삼기위해 애쓴다”고 믿었다. 설교자들은 가정을 경건한 가정으로 유지할 것을 강조하였다.
5. 거룩한 삶에 대한 의무이다.
칼빈(John Calvin, 1509 - 1564)은 물론이고 존 오웬( John Owen, 1616 - 1683)이 말했듯이 “그리스도인의 땅의 삶 동안 그를 위한 하나님의 목적은 성화이다.” 그는 분명하게 말한다. “거룩은 하나님의 약속의 선물이기도 하며 인간에게 명해진 의무이기도 하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우리는 이 의무를 실행할 수 없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우리의 의무를 바르게 실행할 수 있도록 하는 목적 아닌 다른 목적으로 이 은혜를 주시지 않으신다.”
거룩을 이루기 위해서는 죄를 억제하여야 하고 죄와 피 흘리기까지 싸워야 한다. 청교도들은 이것을 하나의 교리로 다루어 ‘죄 죽임의 교리(A doctrine on mortification)’를 강조하였다.
이 땅에서 완전한 거룩이 불가능하지만 그들은 거룩의 최고봉에 이르기 위한 열망으로 완전한 거룩을 추구한 사람들이다. 실제로 그들은 성경이외의 교회사에서 가장 거룩한 무리들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탁월한 거룩은 그들의 특징인 동시에 그들의 능력이 되어서 자신들의 시대는 물론 지금껏 남긴 글을 통하여 영향을 미치고 있다.
(5) 청교도들은 개신교회의 형성에 영향을 미친 사람들이다.
초기 청교도들은 장로교도였다. 제임스 헤른(James Heron)은 독립파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존 로빈슨(John Robinson)의 말을 인용한다. “교황주의자들은 그리스도의 통치권을 교황에게, 신교도들은 감독들에게, 청교도들은 장로회에, 우리들은 교회로 불리 우는 다수의 회중의 몸에 그것을 두었던 것이다” 그는 장로정치가 초기의 청교도들의 특성이었음을 말한다. 로이드 존스는 다음과 말한다. “청교도주의는 궁극적으로 하나의 정신구조요 하나의 정신입니다. 저는 주장합니다. 참된 청교도주의는 궁극적으로 장로교회 안에서 발견됩니다. 특히 존 낙스에게서 말입니다”
초기의 청교도들이 칼빈주의 적인 전통을 따르는 장로교였으나 이후에 여러 개신교의 산실이 되었다. 물론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면 더 초기적인 형태의 청교도는 침례교도라고 말하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들이 전체 개신교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종교의 자유를 찾아 미국과 대륙으로 떠나 교회의 형성에 영향을 미쳤으며 영국 교회 내에서도 장로교회, 영국의 회중교회, 분리주의교회, 감리교회 등에 영향을 미쳤다.
4. 청교도들의 신학 사상
청교도들의 신학과 사상의 유일한 근간은 성경이었다. 그래서 청교도 신학을 한마디로 말하라 한다면 칼빈주의 적인 신학이라 말할 수 있다. 물론 청교도들은 다양한 신학적인 뿌리를 형성하는 사람들이었다. 청교도들은 후대에 감리교회에 영향을 주고 침례교회에 영향을 주기도 했으며,고 교회주의 자들에게 영향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정직하게 초기의 청교도들은 모두 칼빈주의 자들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의 신학과 사상은 종교 개혁의 연속선상에서 생각할 수 있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영국 국교회에 종교개혁이 온전히 완성되기를 소망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청교도들의 신학과 사상이 가장 잘 나타나고 있는 문헌이 웨스트민스트 신앙고백이다. 그래서 청교도 신학과 사상은 종교개혁의 4가지의 모토와 웨스트 민스터 신앙고백을 기초로 형성할 수 있다.
종교개혁의 네 가지의 모토(Motto)는 ① 오직 성경! (Sola Scriptura : only through Scripture) ② 오직 믿음! (Sola Fide : only by Faith) ③ 오직 은혜 ! (Sola Gratia : only by Grace) ④ 오직 하나님의 영광! (Soli Deo Gloria : Glory be to God Alone)이다.
또한 여기에 청교도들에게서 두드러지게 발견되는 ⑤ 오직 그리스도! (Soli Christo : only through Christ)라는 사상을 발견할 수 있다.
① 청교도 신학과 사상은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이다.
종교개혁자들은 한결같이 ‘오직 성경’을 강조한다. 즉 성경이 말하고 있는 말씀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종교개혁자들의 이런 주장은 성경이외의 변질된 교회전통이나 교황의 권위를 중시하는 카톨릭 교회의 문제점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들은 오직 성경이 최고의 권위를 가진 것임을 강조한다.
루터(Martin Luther, 1483 - 1546)의 경우 “성경은 그 자체로 해석한다(scriptura, sui ipsius interpres)”라고 말한다. 그는 교회의 전통보다도 성경 자체에 권위를 두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교황의 권위를 부정한다. "교황이 성경보다 위라는 점에 나는 반대하네. 누가 그에게 그런 권위를 주는 것인가? 그의 근거는 성경에 없고, 그의 교서는 단 한 번도 성경에 근거한 적이 없다네. 아첨꾼들이 교황을 성경 위에 올려놓고 잘못을 저지를 수 없는 사람이라고 우겨대지만, 그렇게 되면 성경은 사라지고 남는 것은 인간의 말뿐일세." 이렇듯 루터는 카톨릭의 비성경적인 사상에 반대하여 "나의 신앙은 오직 그리스도의 말씀에 사로잡힌 포로이다"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만이 하나님과 종교 문제에 대한 바른 지식을 얻을 수 있다"고 외쳤다. 그리고 자신이 친히 독일어로 된 자국어 성경을 번역하였다.
칼빈은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이라는 그의 개념에 기초를 두고 "성경으로부터 생각하고 말하는 규범(ex scripturis et loquendi regula)"을 말한다. 즉 성경으로부터 생각하고 말하는 규범이란 성경에 따라서 우리들의 마음의 모든 생각과 입의 모든 말들이 측정된다는 것이며 모든 삶의 유일한 척도이며 표준이라는 것이다. 그는 "오직(sola)" 성경을 통해서 모든 사실에 대하여 그리고 전 삶에 있어서 주의 깊고 절제 있게 생각하고 말하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렇듯 성경이 모든 것의 절대적인 기준이 됨을 강조하였다.
그밖에 종교 개혁자들도 한결 같이 성경의 권위를 강조하였다. 왜냐하면 성서의 권위가 하나님에게서 왔으며 성령에 의해서 기록된 성경이 교회의 권위 위에 있기 때문이다. 즉 성경이 신적인 기원과 신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절대적인 권위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종교개혁자들은 성경의 권위를 교회 위에 두고 있으며 오직 성경(Sola Scriptura)만이 그들의 신학과 사상의 최고의 권위가 되었다. 이러한 종교개혁자들의 신학과 사상은 그대로 청교도들에게 이어진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 그대로 반영되어 나타난다. 성경이 하나님과 그의 뜻을 충분하게 알게 하시려고 진리를 온전히 기록해두신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렇게 기록한다. “이 모든 책들(66권)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으로, 신앙과 생활의 법칙이 된다(눅16:29,31, 엡2:20, 계22:18-19, 딤후3:16).”고 언급하며,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그 권위를 받아들여야 함을 말하면서 “성경이 무오한 진리요, 신적 권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충분하게 납득하고 확신하게 되는 것은, 우리의 심령 속에서 말씀에 의하여 말씀을 가지고 증거하시는 성령의 내적 사역에 의해서이다(요일2:20,27, 요16:13-14, 고전2:10-12, 사59:21).”라고 한다.
“성경은, 성경이 전수된 모든 나라의 자국어로 번역되어야 한다(고전14:6,9,11-12,24,27-28). 그리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모든 사람에게 풍성히 거하게 하여, 그들이 하나님을 합당한 방법으로 예배할 수 있게 하며, 성경이 주는 인내와 위로를 통하여 소망을 가질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한다(골3:16, 롬15:4).”고 한다.
그리고 성경 해석에 대하여 “성경 해석을 위한 무오한 법칙은 성경 자체이다. 그러므로, 어떤 성경 구절의 참되고 완전한 의미에 대하여 의문이 생긴 때에는(참되고 완전한 의미는 여럿이 아니고 하나뿐임), 보다 분명하게 말하고 있는 다른 구절을 통해서 연구하고 알아내야 한다(벧1:20-21, 행15:15-16).”라고 한다.
마지막으로 종교에 관한 모든 논쟁들의 최고의 재판관은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성령이라고 정의한다. 이렇듯 성경이 무엇보다도 최고의 권위가 있음을 분명히 한다.
또한 웨스트 민스트 대요리 문답은 성경의 권위를 이렇게 표현한다. 제3문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인가?”라고 묻고는 이렇게 답한다. “신·구약 성경이 곧 하나님의 말씀이며, 신앙과 순종을 위한 유일한 법칙이다.”유일한 법칙이라는 표현이 성경의 권위를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대요리 문답은 한걸음 더 나아가서 이 성경을 어떻게 읽어야하는 지를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제157문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읽어야 합니까?” 에 답하기를 “성경은 높이 경외하는 마음으로 읽고, 성경은 곧 하나님의 말씀이며, 하나님만이 우리가 성경을 깨닫을 수 있게 하실 수 있다는 굳은 신념으로, 거기에 계시되어 있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믿고, 순종하고자 하는 소원으로 부지런함과 성경의 내용 및 범위에 주의함과 묵상과 적용과 자기 부정과 기도함으로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청교도들은 성경이 성령에 의해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임으로 신앙과 삶에 절대적으로 권위가 있음을 분명하게 언급하였다. 또한 그들은 자신들이 친히 성경의 절대적인 권위를 인정하였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그 권위 아래에서 순종하는 삶을 살았던 신자들이었다. 오직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종교개혁의 전통을 그대로 수용하고 실제의 삶과 사역을 통하여 입증하였던 것이다.
② 청교도 신학과 사상은 오직 믿음(Sola Fide)이다.
종교개혁자들의 또 다른 모토는 오직 믿음이다. 여기서 오직 믿음은 이신 칭의 구원론의 핵심이다. 이것은 루터가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 진리를 재발견한 것이다. 그가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서 하나님의 의와 그것을 수납하는 믿음을 깨달음으로 종교개혁이 포문이 열린 것이다. 그는 1517년 10월 31일에 비텐베르그 성곽교회 문에다 면죄부(행위 구원)에 반대하는 95개 조항을 계시하였는데 그는 여기서 로마 카톨릭의 행위로 구원을 강조하는 모든 비성경적인 것들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그는 행위로 구원을 지양하고 오직 믿음( Sola Fide)을 모토로 삼았던 것이다. 이것이 종교개혁의 신학과 사상이 되었다.
사실 오직 믿음으로 칭의를 얻는다는 진리는 초대교부 암브로시우스(Ambrosius , 340~397)와 어거스틴(St. Augustine, 354-430)이 강조한 칭의론에 근거를 둔 것이었으며, 더욱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의 중심 진리였다.
루터가 재발견한 이신칭의 진리를 칼빈에게 와서 동일하게 주장된다. 그는 이 진리가 "종교의 유지를 위한 결정적 구심점"이 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칭의의 근거는 인간에게 있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한다. 또한 그는 말하기를, “인간에게 의뢰함이 없이 하나님께만 의지하여 안식함이, 믿음의 본질인데, 믿음이 그만한 견고성을 가져야 지옥의 모든 공세 앞에서도 실패하지 않고 끝까지 견디어 나간다”고 한다.
이것은 동일하게 청교도들의 신학과 사상의 근간이 되었다.
청교도들이 성경에 근거하여 제정한 웨스트 민스트 신앙고백에서도 동일하게 오직 믿음으로 인한 칭의가 뚜렷하게 나타난다.
청교도들이 말하는 오직 믿음으로 인한 칭의는 믿음 자체가 아니라 그리스도와 그의 의에 있음을 명확히 한다. “부르심을 입은 그들은 그리스도와 그의 의를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의존할 때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이다.
그 믿음은 그들 자신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고, 그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다(행10:44; 갈2:16; 빌3:9; 행13:38,39; 엡2:7,8). 이같이 그리스도와 그의 의를 받아들이고 의존함에 있어서 믿음은 칭의의 유일한 방편이다(요1:12; 빌3:28; 5:1).”라고 한다. “그들의 칭의는 오직 값없는 은혜로 되어진 것이며 (롬3:24; 엡1:7) 성령께서 때를 따라 실제로 그리스도를 그들에게 적용시키실 때에 비로소 가능하다(골1:21,22; 갈2:16; 딛3:4-7).는 것이었다.
웨스트 민스트 대요리 문답에서도 칭의는 하나님의 은혜의 행위로서 우리의 믿음을 강조한다. 제70문에서 “칭의가 무엇인가?” 란 질문에 “칭의는 죄인들에게 하나님께서 자의로 베푸시는 은혜의 행위이다. …… 다만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하신 순종과 보상하시는 속죄 까닭에 하나님께서 죄인들에게 부여하시는 것인데, 믿음으로만 받는 것이다.” 라고 답한다.
그리고 제72문에서 “의롭게 하는 믿음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의롭게 하는 믿음은 죄인의 마음속에 성령과 하나님의 말씀이 역사하여 구원을 베푸시는 은총이다. 하나님 앞에 자신이 의롭다는 인정을 받기 위하여 말씀에 계시된 그리스도와 그분의 의를 받아들이고 의지하는 것이다.”라고 답한다.
그리고 제73문에서 “믿음이 어떻게 죄인을 하나님께서 보시는 가운데 의롭게 하는가?” 라는 질문에 “오직 믿음은 다만 그리스도와 그분의 의를 받아들이고 적용하게 하는 도구로서 의롭게 할뿐이다.”라고 답한다. 그러므로 오직 믿음이란 인간의 모든 행위를 부인(심지어 믿음이 자신에게 나온 것이라고 생각하여서 또 다른 행위로 생각하는 것까지)하는 것으로 그리스도와 그의 의를 수납하는 손(도구)을 말하는 것이다.
윌리암 퍼킨스(William Perkins, 1558-1602)가 말했던 것처럼 “믿음은 인간의 자유의지의 결과라기보다는 오히려 하나님의 효과적인 부르심의 결과이다.” 존 오웬은 구원 얻는 믿음이란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중보로 말미암아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구원방식만을 의지하며 그 구원 방식을 선택하고 인정하는 것이다.”라고 한다.
토마스 굳윈(Thomas Goodwin, 1600-1679)의 표현처럼 “믿음은 은혜의 보좌에 좌정해 계시는 그리스도를 직접적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유일한 믿음의 대상이 그리스도와 그의 사역이다”라고 강조한다.
그러므로 오직 믿음이란 자신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와 그의 의를 바라고 의지하는 믿음을 받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청교도들은 이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③ 청교도 신학과 사상은 오직 은혜(Sola Gratia)이다.
로마 카톨릭 교회의 구원관은 공로사상에 근거한 행위구원에 있다. 즉 구원이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가 아니라 행위에 근거한 것이기에 수많은 성자를 숭배하고, 금식기도와 고행이 수반되었다. 그래서 루터가 95개조 반박문을 내놓을 무렵에는 면죄부를 판매함으로 그것으로 지옥 간 영혼일지라도 구원에 이룰 수 있다고 그릇된 교리를 가르치게 되었다.
그래서 루터는 성경에 근거하여 오직 은혜로 인한 구원을 강조하게 되었다. 루터는 자신의 구원을 고민하면서 “어떻게 준엄하시고 공의로우신 하나님 앞에 바로 설 수 있겠는가.” 였다. 성경(특히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의존하는 구원론의 재발견은 자신의 의를 통해서 구원에 이룰 수 없음을 알고 하나님의 의만을 의존하게된 것이다. 그래서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이 죄인이 살길임을 외치는 슬로건을 내세우게 되었다. 그가 말하는 오직 은혜란 “모든 인간의 공덕과 행위를 배제하고 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인류를 위한 화목제물로 삼으신 하나님의 은혜로우신 구원의 사역에 의존하는 구원의 원인적 근원에 대한 슬로건이다.” 오직 구원은 오직 하나님께 속하였고, 그 구원은 하나님의 값없는 선물이다. 사도바울이 말한 진리와 일치한 것이다.
칼빈도 동일하게 오직 은혜로 인한 구원을 강조한다. 그는 그의 기독교 강요 3권에서 불가항력적 은혜와 관련된 내용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는 신. 인 협력설 주의와 공로주의를 비평한다. 그는 소명과 중생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통한 선택의 열매로 주어지는 것이라고 한다. 즉 인간의 의지를 통한 자력적 구원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원 전에 선택과 그 은혜의 결과로 구원의 부르심과 중생이 주어지는 것으로 제시한다.
“부르심은 선택의 증거라고 부르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복음의 선포는 선택이라는 원천에서 흘러나오는 것이지만, 이런 선포는 악인들도 함께 듣는 것이므로, 그 자체로서는 선택을 완전히 증거 하지 못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선택된 자들을 믿음으로 인도하시기 위해서 효과적으로 가르치신다. ……누구를 왜 부르시느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그가 선택하신 사람을 부르신다는 것이다. …… (더 나아가서) 지금 경건한 자들이 구원을 위한 도움으로서 받는 것은 복락까지도, 모두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이다.”
이와 같이 칼빈도 구원이 하님의 절대적인 주권과 은혜에 있다는 것을 명확하게 한다. 오직 은혜로 구원에 이르게 됨을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구원이후의 삶도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임을 말하고 있다. 그는 구원의 전 과정이 오직 절대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짐을 언급하고 있다.
이러한 종교개혁자들의 오직 은혜에 대한 사상은 청교도들에게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웨스트 민스트 신앙고백은 오직 은혜에 대한 진리를 총체적으로 정리하고 있다. 먼저 구원에 이르게 하는 유효적 부르심에 대하여 이렇게 정리하고 있다.
“이 유효한 부르심은 하나님의 값없이 주시는 특별한 은혜로만 되어지는 것이며, 결코 사람 안에 있는 어떤 것을 미리 하나님이 보시고서 하는 것이 아니다(딤후1:9; 딛3:4,5; 엡2:4,5,8,9; 롬9:11).”
더 나아가서 칭의에 대해서도 “믿음 자체, 믿는 행위, 또는 어떤 다른 복음적인 순종을 그들의 의로 돌림으로써가 아니라 -- 그 믿음은 그들 자신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고, 그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다. ……그들의 칭의(稱義)는 오직 값없는 은혜로 되어진 것이다(롬3:24; 엡1:7).” 라고 분명히 언급하며, 또한 양자됨에 대해서도 “ 하나님께서는, 의롭다 함을 받는 모든 사람들이 그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그를 위하여 양자됨의 은혜에 참여하는 자들이 되는 것을 허락하신다(엡1:5; 갈4:4,5).”고 하나님의 은혜임을 설명하고 있다.
또한 성화에서도 내주하시는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그들은 점차 모든 구원하는 은혜 안에서 활기를 되찾아 강건하게 되어(골1:11; 엡3:16-19), 참된 거룩의 생활을 하게 된다.”라고 분명하게 하나님의 은혜임을 정리하고 있다.
이와 같이 청교도들에게서 오직 은혜로 구원에 이르게 된다는 진리가 더욱 명확하게 종합적으로 정리되어 나타나고 있다. 구원의 전 과정이 인간의 어떠한 노력이나 공로가 아니라 성령의 역사에 의한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된다는 것이다.
④ 청교도 신학과 사상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 (Soli Deo Gloria)이다.
종교 개혁자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산자들이다. 즉 그들의 신학과 삶의 최종적인 목적은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었다.
루터는 오직 성경, 오직 믿음, 오직 은혜를 강조하였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영광도 강조하였다. 그는 “구원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오는 믿음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사역에서 드러난 하나님의 은혜로써만 가능하다” 는 것을 강조한 것인데 이것을 강조한 이면에는 “인간 구원의 모든 계획과 사역의 주체 자이신 하나님 한 분에게만 찬양을 드리며, 그 은덕에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는 의도가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특히 루터는 죄로 인하여 어두워진 인간의 본성을 이렇게 표현한다. “인간의 본성은 너무나도 타락되어 있기 때문에 의롭게 하시는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려고 하지 않는다. 그 대신 영광을 그 자신에게 돌리려고 한다. 인간의 본성이 잘못되어 있음을 알면서도 잘못되었다는 것을 나타내려고 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것을 바로 잡기위하여 교육의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임을 분명히 말한다.
엄밀하게 말해서 오직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진리를 루터가 주창하였다면 이것을 발전시켜서 자신의 신학의 중심주제로 삼은 사람은 칼빈이었다. 종교 개혁자들 중에 어느 누구보다도 칼빈의 중심사상은 Soli Deo Gloria 였다고 말할 수 있다. 그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 인간 영혼의 구원보다도 더 중요한 일임을 말한다. “인간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열심을 자기 실존의 제일의 목적으로 삼지 않고, 자신에게만 생각을 한정하는 것은 건강한 신학이 아니다.” 라고 한다.
그는 “하나님의 나라의 역사는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자신의 이름의 영광을 위해 일할 자들을 선택하심으로써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기독교 강요에서 기도를 강조하면서도 기도 시에 중심 생각이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이렇게 말한다. “자기를 생각하거나 신뢰하지 말고 전적으로 겸허한 자세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만 생각하며, 자기의 욕심이 성취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해야 한다.”라고 한다. 더 나아가서 세상의 모든 권세들은 하나님의 영광의 완전한 실현을 향해 나아가야함을 말한다.
제네바 교리문답을 살펴보면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신학과 삶이 중심 사상이었음을 알 수 있다.
“1문: 인간의 삶의 제일 된 목적이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답: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라고 답한다.
그리고 “2문: 무슨 이유에서 당신은 그렇게 말합니까?”라고 질문 하곤 이렇게 답한다. “답: 하나님은 우리들 가운데서 영광을 받으시기 위하여 우리를 지으시고 세상에 살게 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님은 우리의 삶의 근원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삶을 살아가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칼빈이 제네바 교회에서 자녀들과 새신자의 성경 교육을 위해서 사용하던 교리문답서의 내용에서 제일 먼저 다루고 있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이었다. 여기서 그의 신학과 사상과 삶의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었음을 분명히 알게 된다.
이러한 종교개혁자들의 신학과 사상은 청교도들에게 그대로 전하여져서 더욱 체계화 된다. 청교도들이 제정한 웨스트 민스트 대. 소요리 문답에서 칼빈의 정신은 그대로 반영되어 나타나고 있다.
웨스트 민스트 대요리 문답에서 “제1문. 사람의 제일 되는 가장 중요하고 고귀한 목적은 무엇인가? 답: 사람의 제일 되며 가장 중요하고 고귀한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그분을 영원히 마음을 다하여 즐거워하는 것이다.”
또한 소요리 문답에서도 “제1문.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 무엇인가?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다.” 라고 명확히 정리하고 있다.
청교도들이 교리 교육에서 최우선적으로 가르치고 있는 진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이라는 것을 볼 때에, 청교도들에게 가장 중요한 신학과 사상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알게 된다. 그들은 이 진리에 입각하여 실제로 하나님의 영광을 주목적으로 하는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다.
청교도들의 실제의 말을 살펴보면 더욱 명확해진다.
토마스 왓슨은 “모든 사람들의 삶과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야말로 진리의 대강령이다”라고 언급한다.
그리고 실제의 청교도들의 설교를 살펴보면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혹은 하나님의 이름, 하나님 자신과 성품들)을 설교하기에 힘쓴 자들임을 알게 된다. 그들은 사람들의 마음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의 지표를 분명하게 제시하였다. 그래서 성도들로 하여금 성경의 가르침대로 하나님의 영광(하나님)을 위하여 살도록 도와주었다. 청교도들은 교회사속에서 가장 실제적으로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영광을 전하며 하나님만을 위하여 살아간 사람들이다.
⑤ 청교도 신학과 사상은 오직 그리스도 (Soli Christo)이다.
청교도 신학과 사상의 중심은 오직 그리스도이다. 청교도들의 설교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를 맴도는 신학”이라고 일컬어진다. 이 진리도 동일하게 종교 개혁자들의 사상과 신학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종교개혁자들은 신학과 사상의 중심이 그리스도였다. “마리아와 성자들의 중보는 사족에 불과하며, 사제들의 중보적 역할도 그 필요성이 전무하다. 인간의 공덕체제로써의 성례전을 부정하며, 미사의 피 없는 희생제사 제도를 배격한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십자가에 죽으심을 통해서 단번에 모든 율법의 요구를 충족시키셨으며, 인류구원을 위한 족한 화목제물이 되셨다. 그리스도만이 인간구원의 소망이다.” 이라고 하여 그리스도 중심 사상과 신학을 전개하였다.
특히 루터의 ‘십자가 신학’은 구원의 문제에 관한 신학의 중심테마였다. 구원의 전 과정의 중심이 그리스도라고 하였다. 그래서 루터의 신학을 “그리스도 중심의 신학이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것은 칼빈에게 있어서 더욱 분명하다. 그는 “세계사의 중심적 전환점은 그리스도이다.”라고 한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해 세상을 창조하시고, 섭리하시고 대 섭리사역인 구속활동을 행하신다. 칼빈은 그리스도 중심적인 구속사관을 언급하는데, 즉 메시야 사상이 역사 속의 종교의 기초, 기본이며, 모든 것들은 메시야를 지시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현현이며, 그리스도의 비하의 신분과 더불어 그리스도의 승귀의 신분이 강조되어 있다. 즉 칼빈은 그리스도의 왕의 권능적 위엄을 강조했던 것이다.
성경에서 그리스도가 없으면 휴지조작에 불과한 것처럼 청교도들의 신학과 사상에서도 그리스도가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청교도 설교는 그 방향에 있어서 철저하게 그리스도 중심적이었다.
리차드 시베스(Richard Sibbes, 1577 - 1635)는 젊은 토마스 굳윈에게 이렇게 조언한다. “젊은이, 만일 그대가 선한 일을 하고자 한다면 하나님의 값없이 주시는 은혜의 복음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설교해야 한다네.”
이렇듯 “청교도 설교는 그리스도와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 주위를 맴돌았다. 왜냐하면 그것이 성경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설교자의 임무는 하나님의 모든 의도를 선포하는 것이다. 그런데 십자가가 그 의도의 중심이다.”
윌리암 퍼킨슨은 예언의 기술에서 “설교 문제의 심장은 이것이다 ; 그리스도를 찬송하기 위하여 그리스도에 의하여 한 그리스도를 설교하라” 이렇듯 청교도들의 설교와 신학의 중심은 그리스도였다.
청교도 신학과 사상은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이며, 오직 믿음(Sola Fide)이며, 오직 은혜(Sola Gratia)이며, 오직 하나님의 영광 (Soli Deo Gloria)이며, 오직 그리스도 (Soli Christo)이다. 이러한 종교개혁의 신학과 사상의 토대위에 세워진 것이 바로 청교도 신학과 사상인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생각할 때에 청교도들은 종교개혁자의 사상과 신학을 체계화시키고 완성한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5. 미국 청교 주의의 성격
(1) 청교 주의의 특징과 실천주의
1570년에서 1680년 사이에 일어난 청교 주의는 몇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째는 영국 국교의 종교개혁에 대한 견해와 로마 카톨릭의 신앙 해석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불만이 개인의 깊고 격렬한 신앙적 체험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로 이와 같은 개인적 체험으로부터 예배 및 생활 전반의 개혁 열정을 가지게 되었다는 점이다. 사실 국교도들은 로마 카톨릭의 미신과 의식을 제거하지 못했으며 카톨릭 전승과 관례를 성경보다 중요시하였다. 게다가 그들은 기독교다운 생활에 별 관심이 없었다. 그리하여 청교도들은 영국을 신의 뜻에 따라 개혁하기 위하여 정당을 발전시키기에 이르렀다.
중생이나 회심은 단순히 예배 의식이나 설교에 의해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은 모두 청교도들에 의해 체험된 실재들이다. 청교도들은 새로운 삶의 고통과 집요 불굴의 신앙 순례의 길을 걸으며 새로운 삶의 형태로의 개종을 개인적으로 체험할 수 있었다. 청교도 신앙의 개인적이며 경험적인 면은 그 운동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특성들을 만들어 내게 되었다.
신의 진노와 사랑에 대한 개인적인 경험은 회심에 있어서 필수적이고 성경에 기록된 대로 전파된 신의 말씀은 인간이 따라야만 하는 중요한 길이었다.
회심이라는 것은 신의 말씀과의 부딪침을 통하여 올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성경 해석에 대해 크게 강조하게 되었다. 심지어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신의 뜻이라 생각했으며 홍수나 가뭄 등의 재난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며 감추어진 죄에 대해 더욱더 깊은 자기반성을 하곤 하였다.
캘빈의 예정론은 청교도들에게 있어 또 하나의 힘이었다. 청교도들은 개인적 경험을 통해 회심하려 노력하였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들을 선택의 범위로 할 것인가를 알고 있다.'하는 예정론은 청교도들에게 하나의 희망이 될 수 있었으며 그 희망을 바라며 개인적인 믿음은 더욱 깊어지게 되었다.
그들은 신세계의 새로운 환경에 직면하며 세상의 존경과 영광을 한 몸에 받았다.
그러나 그들의 열정은 때때로 그들 자신을 협소하고 완고한 사람들로 만들었고 개인의 삶에 엄격하게 적용된 그들의 믿음은 종종 극단의 편협을 가져 왔으며 위에서 말했듯이 일상생활의 지극히 단순한 일을 결정하기 위해서도 닥치는 대로 성경을 자주 펴 보게 하였다. 그로 인해 질병과 사고와 전염병을 신의 죄 많은 자식들에 대한 징벌로 보는 청교도의 경향 때문에 의학은 매우 더디게 발전하였다.
모든 인간의 수명은 그들의 창조주의 손안에 놓여 있기 때문에 죽음이란 사실을 우리에게는 거의 냉담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체념하고 받아들였던 것이다.
(2) 청교 주의 사회적 윤리
청교도들은 구교도의 의복과 예식들이 영국 교회를 타락시키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영국 교회의 청결을 주장하면서 Puritans라는 이름이 생성되었던 것이다. 상업 발달의 가속과 방랑 거지들 그리고 계속적인 물가 상승은 청교도 운동에 많은 일반인도 참여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리하여 많은 영국인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사회 전반에 대한 개혁을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청교도들의 이러한 사회윤리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소명(Calling)설과 계약·예정(Contract)설이다.
먼저 소명 설은, 하나님으로부터 그들 모두는 소명을 받아 하나님의 일을 지상에서 수행하게끔 되었다고 믿는 것이었다. 이 직업 윤리(Work Ethic)는 그 시대에 팽배하고 있던 게으름과 나태함을 배척하는데 일익을 담당하였다. 더 나아가서 그들의 개인적인 구원에 급급치 않고 다른 사람의 이익은 물론 이교도에 대한 사회적·종교적 책임까지도 그들 자신이 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사회적·종교적 개혁은 일치한다고 생각했다.
두 번째로 계약·예정설은, 인간은 자발적으로 하나님과 언약 또는 계약을 맺었으며 자신들이 맺은 언약을 충실히 이행함으로써 구원을 성취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이 계약 이론은 교회와 사회의 민주적인 제도 형성에 큰 역할을 했지만 하나님이 부여한 인간의 소명을 그들이 교회와 맺은 계약에 따라 충실히 이행해야 한다는 의식 속에, 타락하기 쉬운 자신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강력한 중앙 통제 정부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데 쓰이기도 하였다. 인간은 누구나 원죄를 지었기 때문에 타락할 수밖에 없다는 원죄설 역시 중앙집권적인 통제 정부의 필요성을 부추겼다.
(3) 계약신앙
미국의 청교도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교리는 '계약 신학'(Covenant Theology)이란 형태로 나타났다. 청교도들은 자기들은 하나님과 불가분의 관계가 맺어졌다고 믿었다. 이 관계는 마치 벗어날 수 없도록 연결된 사슬과 같았다 이 사슬의 한 쪽은 그들 개인에게 다른 쪽은 하나님에게 끊을 수 없도록 매어져 있었다. 그들은 이것을 신학적인 말로 '계약'이라고 불렀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행위의 계약을 맺었었다. 그리하여 그가 타락하기 전 인류의 대표로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며 살게 하셨던 것이다. 그 대가는 축복을 받아 영원히 사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계약은 이행되지 않았다. 그리하여 새로이 그리스도 안에서 주신 것이 곧 은혜의 계약이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도움으로 지켜져 나가는 특별한 형태의 계약이었다.
계약을 맺은 당사자는 계약의 내용대로 해야 할 의무를 가진다. 청교도들은 이처럼 하나님과 사슬로 연결되었다고 믿었다. 세상에서도 더 좋은 조건이 있어도 계약 맺은 상대와 관계를 하게 되었듯이 하나님도 계약의 내용대로 지켜야만 했던 것이다.
청교도들은 그들의 의무가 성경의 내용대로 순수한 신앙을 지키며 이것을 세상에 전파하는 것이요 그 대가로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특별한 대우를 받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그들은 순수한 신앙이 가정과 교회뿐 아니라 사회 전체에서 실현되어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기를 그렇게 원하고 싸웠던 것이다.
계약 신학의 출발은 청교도 지도자 윌리엄 퍼킨스로부터였다. 1612년 발간된 그의 책 제목이 바로 「금 사슬」이었다. 여기 금사슬로 표현된 하나님과의 계약은 '하나님의 선택에 섭리가 수행되는 외적인 수단'이었다. 이것은 은혜의 새 계약으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와 그의 모든 축복을 약속하여 인간이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접하고 자기의 죄를 회개토록 요구하시는" 방편이었다. 이 새 계약은 인간의 영혼에 신앙을 일으킴으로 맺어진다. 이를 위해서 복음의 설교가 그 통로로 사용된다. 그리고 성례는 그리스도의 구원하는 은혜가 눈에 보이도록 나타나 신자들의 마음에 확신의 인봉을 하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선택은 네 단계로 즉, 설교와 전도를 통한 부르심, 그리고 칭의, 성화, 영화로 진행된다. 영화의 시작은 죽음의 순간부터이며 심판 날 이후에 완성된다.
당시 청교도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그의 신학은 캘빈의 가르침을 그대로 전수 받은 것이었다. 여기에다 신앙의 실천을 강화했을 뿐이다. 그는 성경의 말씀을 그대로 실천하기를 원했다. 그로부터 말하는 법이나 글쓰는 법, 그리고 '지혜롭게 경건하게' 조용히 있는 법을 찾아냈다. 주일을 불필요한 여행이나 장사하는 것, 노동, 운동, 잔치 같은 일들을 위해 사용해서는 안 되었다.
또한 그는 경건한 삶과 기도, 금식, 찬양, 성례, 병자 방문, 자비, 절제, 자유 등에 관해서도 가르쳤다. 이 덕목들은 청교도들이 열심히 실천했던 것들이다.
이 모두는 성경의 법대로 해야 하며 성령에 의지해서 신자의 완전한 목표로 조금씩 자신을 훈련시켜야 했다. 신자들은 순결한 삶과 영원한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으로부터 금 사슬에 매인 이들이었다.
리처드 로저스는 진실한 신자들을 위해서 '매일 할 일'의 목록을 요약해서 다음과 같이 가르쳤다.
매일 우리는 하나님의 계명에 비추어 자신의 삶을 살펴보고 죄를 회개할 것,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약속하신 사죄의 소망을 확신할 것, 매일 우리의 마음이 주 만을 찾을 것, 매일 자신을 악에 대해 무장하고 그것으로 인해 하나님께 반항할 것을 두려워할 것, 매일 주를 두려워하고 사랑하며 다른 무엇보다도 주를 즐거워하고 그를 기쁘게 하기 위해 살며 그의 재림을 대망할 것, 더 많은 은혜를 사모할 것, 이 모든 것을 끝까지 유지하기 위해 경건히 하고 기도할 것, 매일 하나님과 화목하는 속에 일어나고 누울 것 등, 이 계약 신앙은 청교도들에게 하나 외에는 아무것도 원치 않는 신앙을 가져다주었다. 그리고 이 생활을 기뻐했다.
(4) 계약의 실천
뉴잉글랜드는 청교도들의 땅이었다. 이들은 성경 그대로의 나라를 건설해 보겠다는 뜨거운 의욕을 표현하였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새로운 땅을 종교개혁의 시대까지 감추어 두셨다가 하나님의 도성을 세우도록 사명을 주셔서 보내셨던 것으로 확신하였다. 그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여호수아와 그의 백성들로서 '구세주의 나라'(The Redeemer Nation)를 건설하게 되어 있었다.
이외에도 몇 가지의 신앙적인 확신들이 계약 신학으로부터 흘러나왔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명시된 운명'(manifest destiny)이 주어졌다고 믿었다. 그것은 신대륙에 '산 위의 마을'을 건설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이 지배하는 의로운 나라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 일을 위해서 청교도들은 하나님의 '심부름하는 아이들'로 보내어졌다. 이러한 주제들이 계약의 핵심이었다. 이일을 위해서 총독은 진실한 신자로서 성직자 못지않은 신앙과 학문 그리고 인격을 가졌다. 또한 목사들도 총독 못지않은 권력을 가졌다. 목사들은 모든 면에서 사람들의 지도자였다.
만약 주일 성수 하지 않고 못된 짓 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대로에서 벌을 세우기 위해서 묶어놓을 수도 있었고 채찍을 가하도록 시킬 수도 있었다. 그야말로 신정 정치가 진행되는 중이었다.
청교도들은 신앙고백의 내용을 믿을 뿐 아니라 깨닫기도 해야 한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여기에 덧붙여 그 내용들을 행동에 옮겨 눈에 보이도록 선행이 나타나야 했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되는 것을 인간의 선행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의가 인간에 전가된 것이라 믿어야 가능했다. 이렇게 의롭게 된 다음에야 하나님은 힘을 공급해 선행을 하도록 도우신다. 하나님에게 복종하여 그분의 도움으로 선한 일을 하게 되는 것이 성화의 표현이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신앙이 좋은지 안 좋은지 알 수 없었다. 또한 선행으로 얼마든지 자신을 선한 사람으로 속일 수도 있지 않은가. 그러므로 가장 선한 행동은 그리스도를 믿는 일이요. 그로부터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게 된다.
청교도들은 진실로 중생 하지 못한 사람을 밝혀내는 일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중생한 사람만이 택하여진 백성이요 하나님의 계약 속에 들어 있는 이들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심은 교회에 온 사람들을 정식 교인으로 받아들이는 데 분명히 나타난다. 어떤 사람이 교인이 되고 싶으면 다른 교인들이 받아 주어야만 가능했다. 예배에 참석한다고 다 정식 교인으로 치는 것은 아니다. 청교도들은 절대로 아무나 교인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우선 교회를 세울 때에도 최소한 일곱 명의 발기인들이 서로의 신앙과 인격에 대해 만족하고 있어야 했다. 교인이 될 수 있는 기준은 중생의 체험과 기초적 교리에 관한 지식이었다. 일곱 이상의 발기인들은 이웃 교회의 목사와 지역 행정관들을 모셔 와서 자신들의 자격을 심사받아야 했다. 안 그러면 교인이 될 수 없었다. 어떤 사람이 교인이 되고자 할 때는 장로들 앞에 나와서 자신의 신앙적 지식과 체험을 시험받아야 했다. 신앙 지식이 빈약한 자, 중생하지 못한 자, 또는 문제아는 여기에서 일단 걸러졌다. 만약 시험에 통과되었다면 전체 교인들 앞에 소개된다. 그때 그 사람에 관한 문제점들을 교인들이 말하였고 지적당한 명백한 잘못은 공중 앞에서 회개하는 과정이 있었다. 여기까지 무사히 통과하면 몇 사람이 교회 앞에 이 사람을 교인으로 받아 줄 것을 요청하는데 약15분간 어떻게 믿게 되었는지를 간증한다. 그러면 여러 질문들이 따라 나온다. 그런 연후에 교인들이 좋게 생각하면 자신의 신앙을 대중 앞에 고백하고 교인들은 투표로써 그의 영입 여부를 결정한다. 통과되면 교회로부터 교인 됨을 공식적으로 통고 받았다.
어렵게 교인이 된 만큼 이들은 택해진 백성으로서의 분명한 긍지가 있었다. 이들은 주일 성수하고 십일조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마을을 떠나야 했다. 예배에 참석하기 위해서 가장은 가족 전체를 마차에 태우고 수 십리 길을 달려갔다. 설교는 보통 서너 시간씩 계속되는 성경을 강연하였다. 아이들도 어른들과 함께 설교를 들었다. 예배 후에는 돌아가는 길에 가장은 가족에게 목사의 설교를 정리해 주었다.
(5) 청교도들의 생활과 의식
Puritans는 교육자 양성을 위해 1636년 하버드 대학을 설립하였다. 근본적인 그들의 교육 목적은 일반 신도들의 교리 이해와 종교적 원리, 그리고 사회적인 규율간의 적절한 조화였으며 이는 미국 교육의 기초가 되었고, 1642년에는 세금으로 운영되는 교육을 최초로 실시하였다. 청교도 사회에서는 이상적인 공동체 건설에 방해되는 일들은 엄격히 금지되었으며 각 가정에서 책임지는 사람은 아버지로서, 부권 위주의 가부장적 사회였다.
청교도들의 공공 생활 중심부는 읍민회(Town meeting)였으며 이 읍민회는 교육과 정치적인 활동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었다. 어린아이들의 교육은 물론, 정치적인 결정을 내리는 사람의 임명까지도 읍민회가 담당하였던 것이다.
청교도 사회에서의 목사의 위치는 가히 절대적이었다. 청교도 사회는 성서가 지배했고 성경의 설교 다음으로 설득력 있는 권위는 바로 목사의 설교였던 것이다. 정치적인 대표자 역시 종교적으로 거듭난 경험이 있는 사람들에게만 국한되었으며 교회와의 계약에 충실해야 했다. 즉 제정일치의 사회였으며 전체 공동체의 이익과 이상을 우선으로 삼았고 개인의 야망과 성취에 앞서 이웃의 불행을 걱정하였다. 이는 미국의 다른 식민지의 지배적 성향인 개인주의적 미덕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었다.
6. 청교도들의 사회활동
(1) 사회 참여는 그리스도인의 소명이다.
청교도들은 자연스럽게 사회에 참여했다. 그들은 사회를 이 땅에서 일구어야 할 삶을 위해 하나님이 허락하신 질서의 한 부분이라고 여겼다. 소명 사상은 청교도들에게 너무도 중요하고 중심이 되는 사상이므로 정치 또한 소명에서 예외가 되지 않는다.
청교도들은 기독교 사회에 대한 이상을 가지고 모든 문화 영역에 참여했다. 이런 목적에 동원되는 수단은 청교도들마다 조금씩 달라질 수 있었으나 목적 그 자체는 결코 흔들리지 않았다.
초기 영국 청교도인 토머스 카트라이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국가를 교회처럼 세워야 한다. 즉, 기독교적 원리 위에 세워야 하는 것이다 … 교회가 세상의 기초이므로 이 기초 위에 세운 국가는 교회를 세우는 원리에 따라 구성됨이 마땅하다”
미국인 존 바나드(John Barnnrd)는 “정부의 궁극적이고 지고한 목적은 모든 인생들이 지닌 최후의 목적, 또한 모든 행위가 산출하고자 하는 목적과 동일하다. 그것은 만사에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2) 공동선을 추구함
청교도들은 사회의 결집력이 정부 구조에 달려있다고 보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정부의 행정력이야 어떻든지 공동체의 기풍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보았다. 그들은 공동체 기풍을 형성하는 본질적인 구성 요소로 이기심과 공동 관심사를 꼽았다.
윌리엄 틴데일은 이렇게 말했다. “이웃이라는 말은 사랑이라는 말과 똑같은 말이다. 이 말은 도움이 필요할 때면 언제나 민첩하게 손을 내밀어 준다는 뜻도 된다” 리처드 시브즈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이상 우리는 우리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산다.”라고 말했다. 바람직한 사회는 각자가 서로에게 아주 가깝게 밀착된 나머지 강할 때나 약할 때 또 즐거울 때나 고통스러울 때 서로서로 짐을 져주는 사회이다.
존 윈스롭은 “자선의 한 모형”(A Model of Christian Charity)이라는 설교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모든 개인은 공공의 안녕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공공이 무너지고 쇠락한 연후에는 어떤 개인도 보전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마치 한 사람인 양 이 일을 중심으로 뭉쳐야 합니다. 우리는 끈끈한 형제애로 서로를 즐겁게 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온유하고 자상하며, 참을 성 있고 화기애애한 가운데 친밀한 공동체 정신을 유지해 나가야 합니다. 우리는 서로를 용인하고 남의 처지를 내 처지로 생각해야 합니다. 서로 즐거워하고 서로 슬픔을 나누며, 함께 일하고 함께 고생해야 합니다. 우리 눈앞에는 언제나 우리가 완수해야 할 사명과 활력 있는 공동체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공동체는 한 몸 한 지체이므로 화평의 연대로써 정신적 통일을 유지해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께서는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고 우리와 기쁘게 함께 하실 것입니다”
청교도들이 이런 사회정신을 부추길 수 있는 동기로서 순전히 개인적인 이익보다 공공 또는 공동선을 더 의식하는 자세를 손꼽았다. 윌리어 퍼킨즈는 “공동선이 아니라 사욕(私慾)과 사리(私利) 만을 따르는 사람은 누구든 자기의 소명을 소홀히 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나만 위해야 한다 하면서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신다 하는 사람은 그야말로 사악한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리차드 백스터는 “신성한 국가는 공동선과 하나님의 영광과 기쁨을 위해 만사가 처리되는 곳”이라고 했다.
존 코든은 자립하기 위하여 떠나는 개척자를 향하여 “가시오, 모두 가시오. 공동 정신을 가지고 가시오. 자기 것만 보지 말고 다른 사람의 것도 보시오”라고 권면했다. 이런 공동체 정신의 개념은 매우 도덕적이며 서로를 돌아보라는 신약 서신서들의 권면과 성도들을 한 몸으로 비유하는 바울의 은유뿐 아니라, 구약 율법과 선지자들의 글에 뿌리를 두고 있음이 분명하다.
윌리엄 퍼킨즈는 “우리는 가정을 유지하기 위해서 일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떻든 인생의 진정한 목적은 사람을 섬김으로써 하나님을 섬기는데 있다”라고 말했다.
(3) 청교도들이 벌인 사회 활동
당시 모든 시민 활동, 정치적인 실력 행사, 또는 어떤 소명을 이루려는 집합적인 노력 등은 가난한 사람을 위하는데 큰 목적을 두고 있다.
실제로 청교도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돕기 위하여 무슨 일을 했는가? 성공회 사제인 랜슬롯 앤드류스(Lancelot Andrewes)는 “1588년 런던에 있는 칼빈교도 망명자 교회들이 선행에 지극히 힘을 씀으로 교인 중 길거리에 나와 구걸하는 가난한 신도가 하나도 없을 정도였다. 그들은 감독관청인 런던시조차도 이런 일을 흉내 낼 수 없다”고 했다.
조르단(W.K.Jordan)은 “1480~1660년 사이 영국은 인간의 영적 필요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민감한 반면 가난, 비참, 그리고 무지에 대해서는 선심 몇몇 개인이 재물을 희사했을 뿐 인색하고 대단히 비생산적인 관심만을 보인 증세를 보였다고 했다. 그는 ”기부자의 대다수는 청교도들이었다. 그리고 자발적인 자선이 증가한 배후에 자리 잡은 추인(推引)의 하나는 청교도 윤리의 출현이었다.“라고 말했다.
사무엘 워드는 “체덜톤(Chadderton)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저렇듯 가식 아닌 진실한 동정을 베푸는 사람”이라고 평가했으며, 존 폭스(John Foxe)는 존 후퍼의 집에 방문한 소감을 “성찬이 마련되어 있고, 거지와 가난한 사람들이 바글거리는 식탁”이라고 술회했는데, 나중에 보니 후퍼는 정기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불러 배불리 먹이는 일을 하였다고 했다. 리차드 그린햄은 가난한 사람들이 어려운 때 싼 곡물을 살 수 있게 하기 위하여 교구민들이 집단으로 구매하는 계획을 추진하기도 했다.
청교도들은 실업자들에게도 동일한 관심을 보였다. 청교도 이상 사회주의자인 사무엘 하틀립(Samuel Hartlib)은 구제불능의 게으름과 피치 못할 실업과는 정확하게 구분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소외당한 가난한 사람들은 가뭄에 지친 농토가 단비를 기다리듯 개혁을 기다리고 있다…의회는 사람들을 가난에서 구제하기 위한 수단과 방법을 시급히 강구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청교도들은 사회 부조리 척결을 위한 시민 행동을 장려했다. 그들은 터무니없는 가격에 대하여 행동을 취하였다. 1673년 뉴잉글랜드의 청교도 유리언 오크츠(Urian Oakes)는 “가난한 자들의 얼굴을 쥐어뜯고 비틀며 문지르는” 부자들의 비리를 과감하게 지적했다.
영국에서는 리차드 백스터가 사회 전반에서 자행되는 경제적 학대에 대하여 우려를 나타내었다. 그는 그리스도인들이 해서는 안 될 사업 관행에는 과다 가격, 과대 포장, 결함 은폐, 바가지요금, 다른 사람들의 시급한 필요를 이용한 야비한 장사 등이 있다고 했다.
(4) 사회 활동의 도덕적, 신학적 기초
청교도들의 사회 활동은 기독교 도덕의식에 뿌리박은 것이었다.
백스터는 “진정한 도덕성, 또는 기독교 윤리야말로 그리스도의 영이 불러 일으켜 주시는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다. 이런 사랑은 믿음을 통하여 경건하고 공의로우며 선량하고 인내하는 모양으로 드러나고 나타난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지고 있는 빚, 곧 보편 애를 잃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말했다.
청교도들이 사회 참여를 주장한 배경에는 신학적인 이유도 있다. 구원을 확고하게 보장받는 수단으로서 선행을 생각한 카톨릭과는 달리 청교도들은 중생으로 말미암아 사회적인 관심을 갖게 된다고 보았다. 진정한 경건은 선행을 낳는데, 이는 감사의 표현이지 결코 공적이 아니었다.
(5) 제도화한 사회 활동보다는 개인적인 사회 활동을 선호함
청교도를 현대 집체적 체제와 비교하면 단연 개인주의가 돋보인다. 16세기 사상가들은 국가에 그런 기대를 걸지 않았다. 올바른 체제만 가지고는 아무도 구원할 수 없다. 물론 올바른 체제가 있어야 하지만, 개인의 협조와 개인의 책임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청교도들은 무차별적인 자선을 반대하고, 정말 도와야 할 필요가 있는 사람에게만 도움이 주어져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윌리엄 퍼킨즈는 거지와 부랑자들에 대하여 “그들이야말로 저주받은 세대요, 교회와 국가에 병폐이며 독소이다. 일할 수 있는 사람의 구걸을 막는 법은 하나님의 법에 일치하는 좋은 법이다.”라고 말했다.
크리스토퍼 힐은 “무차별적인 자선은 사회적인 해악일 뿐이다. 이렇게 하면 가난한 사람들이 자신의 책임을 절감하지 못하고 절박하게 일자리를 찾지 않는다.” 그래서 많은 청교도들은 교회가 가난한 교구민들을 돌보는 방법을 선호했다. 교구에서라면 정말 도움을 입어야 할 사람과 눈속임으로 어려운 체하는 사람을 잘 구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청교도들이 대안으로 택한 구제 방법은 사람들에게 일을 독려하고 그들이 사회의 생산적인 성원이 되도록 고무하는 것이었다.
청교도들은 몸담고 사는 사회의 질을 진심으로 염려했다. 인크리스매더는 성경의 목적은 우리에게 어떻게 하나님을 섬기고, 우리가 사는 세대를 섬겨야 할지를 보여주는데 있다고 하는 말로 청교도들의 관점을 요약했다. ‘자기가 사는 세대를 섬긴다.’는 이 구호는 이 세상을 믿음으로 살아가려는 그리스도인들이 언제나 붙드는 구호이다.
(6) 사람 위에 사람 없다 : 평등주의적 경향
청교도의 개인주의의 신학 근거는 모든 신자가 제사장이라는 교리이다. 모든 사람을 하나님 앞에서 동등하게 대접하고 모든 개인의 중요함을 보호하려는 청교도들의 균형을 이루는 노력에서도 이러한 개인주의가 발견된다.
“그리스도인은 아무리 비천한 사람이라도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왕국에서는 왕의 형제인 양, 왕의 혈족인 양 대우받아야 한다. 그러므로 아무리 왕이라도 그렇게 비천한 사람을 섬기기에는 자신이 너무 고결하다고 생각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 William Tyndale
“그리스도 안에서는 아무리 지체가 낮은 농부라 하더라도 지체높은 귀족과 다를 바 없다” - Hugh Latimer
"누구든 명문 세도가(勢道家) 출신임을 자랑해서는 안 된다. 오로지 어두움의 왕국에서 옮긴 사실을 감격하는 마음만이 있을 뿐이다. - William Perkins
"통치자를 위해 인민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인민을 위해 통치자가 있다“ - Samuel Willard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닮은 제사장으로 세움을 입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 사이에는 성직자니 평신도니 하는 구분이 있을 수 없다. 오직 목회자는 그리스도인들이 선출한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 교회의 동의 없이는 목회자들에게는 이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할 권리도 권한도 없다“ - William Dell
존 벤브리그(John Benbrigge)에 따르면 진정한 회심의 표지는 “그리스도 안에서 부요한, 가난한 사람들을 대접하는 것이다” 그리고 가난한 그리스도인들 앞에서 세상의 부를 자랑하는 사람들을 꾸짖었다.
청교도들은 외형적인 문제보다 영적인 데 우선권을 둠으로써 단지 혈통 또는 지위에 근거를 둔 특권을 경시하는 풍조를 열었다. 이런 태도에는 만인 제사장설이 뒷받침되었다.
7. 청교도들의 가정과 교육
청교도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으로 다스림을 받는 가정을 만들기 위해서는 가정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우선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가정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최초의 창조질서로 보았다. 가정제도는 교회가 존재하기 전에 있었고, 국가제도가 생기기전에 있었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가정의 개혁은 그 어떤 창조의 질서의 개혁보다 우선한다고 보았다.
청교도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이 다스리는 가정을 만들기 위하여 가정의 시초가 되는 부부관계의 정립이 우선적으로 요청된다고 보았다. 그러면 청교도들의 의중에 있던 가정이란 무엇인지 대표적인 청교도요 케임브리지 대학의 교수였던 윌리엄 퍼킨즈(William Perkins)를 중심으로 몇 가지 살펴보자.
(1) 가정의 기원
윌리엄 퍼킨즈는 [기독교인의 가정](Christian Oeconomy)이라는 책에서 가정은 죄와 상관없이 시작되었다고 주장하였다. 가정이 죄와 상관없이 시작되었다는 말은 결혼제도는 어떠한 제도보다도 신성하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청교도들은 모든 사람은 결혼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로마 천주교회는 경건을 핑계로 성직자의 결혼을 금하고 있다. 그들은 주장하기를 부부생활은 성직자들이 추구해야 할 금욕을 깨는 것이며, 금욕을 깨는 것은 바로 죄라고 한다. 이와 같은 성직자의 독신사상은 성경의 교훈을 오해한데서 비롯된 것이다.
성경은 가정의 기원이 인간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나왔다고 선언한다(창 2:18). 곧 아담이 여자를 그리워하여 가정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아담을 위하여 가정을 세운 것이다. 하나님은 에덴동산에서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신 후 그의 갈빗대로부터 하와를 만드신 후 두 사람의 결혼을 주례하셨다.
주례사로 하나님은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창 1:28)라고 말씀하셨고, {생육하며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창 1:28)고 축복하셨다.
그러므로 청교도들은 성직자의 독신을 강조함은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는] [양심이 화인 맞은 자들]의 외식(딤전 4:1-2)일 뿐이라고 주장하면서, 모든 사람은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에 순응하기 위하여 가정을 이루어야 한다고 하였다. 왜냐하면 [임박한 환란을 인하여](고전 7:26) 홀로 지낼 수는 있으나 독신주의는 성경적 교훈이 아니기 때문이다.
(2) 가정생활의 원리
청교도들은 에덴동산에서의 첫 번째 가정은 모든 인간의 모범이 된다고 주장하였다.
에덴에서의 가정은 아가페적인 사랑에 기초하였다. 왜냐하면 아담이 하와를 보고,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내 살 중의 살}이라고 고백하고 있기 때문이다(창 2:23). [뼈 중의 뼈 살 중의 살]이라는 말은 최상급의 사랑고백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최초의 가정은 지고한 사랑고백 위에 세워졌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성경 교리에 근거하여 청교도들은 가정의 기초는 바로 사랑이어야 한다고 하였다.
이와 같은 사랑을 유지하는 방편으로 하나님은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라는 가정생활의 원리를 주셨다(창2:24). 이 말씀은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는 남자가 부모를 떠나는 것이요, 둘째는 아내와 연합하는 것이요, 세째는 한 몸을 이루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 [부모를 떠난다]는 것은 남자가 부모로부터 공간적으로 떠나 분가하여 살라는 말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경제적으로 독립할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연합하라]는 말은 의견의 일치를 보라는 말이다. 20년 또는 30년 간 각기 다른 환경에서 자라온 사람들이 어떻게 의견의 일치를 볼 수 있나? 그것은 반 푼이 됨으로 가능하다. 자신의 의견을 50%만을 내세우고 상대방의 의견을 받아들이는데서 하나가 될 수 있다.
그리고 [한 몸을 이루라]는 말은 육체적으로 하나가 될 것을 시사한다.
(3) 결혼의 목적
이와 같이 청교도들은 가정의 기원, 가정생활의 원리를 제시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이 다스리는 행복한 가정은 바로 가정을 세우신 목적을 아는데서 시작된다고 보았다.
하나님이 가정을 세우신 1차 적인 목적은 종족의 보존에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인류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명령하고 있기 때문이다(창 1:28). 결혼의 원칙적인 목적은 거룩한 자녀를 두기 위함에 있다(말 2:15). 그러면 자녀를 두지 못하는 결혼은 잘못된 결혼인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자녀들은 결혼으로 반드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이다(시 127:3). 그러므로 결혼의 궁극적인 목적을 단지 자녀의 생산에 두는 로마 천주교도들의 주장은 잘못된 것이다.
성경에서 제시하는 결혼의 다른 목적은 음란을 방지하는데 있다. 성경은 인간들에게 음란을 방지하기 위하여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고 하였다(고전 7:1-2).
그러나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결혼제도를 세우신 궁극적인 목적은 서로 [돕는 배필]이 되는데 있다(창 2:18). 하와를 지으신 목적은 [돕는 배필]이 되게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퍼킨즈는 남편과 아내는 서로 도와 하나님이 각자에게 주신 소명을 이루어 나아가야 한다고 하였다. 하나님이 주신 소명을 이루어 가는 그 때에 하나님의 나라, 곧 말씀과 성령이 다스리는 가정이 이루어지며 가정의 개혁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4) 청교도의 자녀교육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이 넘치는 행복한 가정은 부부의 관계만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부모와 자녀가 함께 하나님을 섬기는 가운데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청교도들은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는 자녀를 말씀에 근거하여 양육할 것을 주장하였다. 자녀를 양육하는데 있어서의 부모의 역할은 자녀의 양육에 필요한 물질을 공급해 주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청교도들은 물질적인 것 이상으로 영적인 양식을 공급하는 것이야말로 부모의 의무라고 주장하였다.
1) 교육의 궁극적 목표
청교도들은 인간을 죄악 덩어리라고 믿었다. 왜냐하면 모든 인간은 죄악 가운데 태어나며, 죄악 가운데 생활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목사 또는 장로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나지 않고는 천국의 보화를 상속할 수 없다. 이와 같이 어떤 아이가 목사의 자녀 또는 믿는 집안에서 태어나 은혜 계약 아래 있다고 하더라도 영적인 교육을 받지 않고는 지옥의 고통을 벗어날 수 없다. 자녀들을 지옥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서 청교도들은 현세적인 교육보다는 영적인 교육을 우선 시 하였다.
청교도들에게 교육의 목적은 하나님과 성경을 아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들은 교육의 과제를 이 세상에서 출세하는 것보다는 성경을 가르치는 일을 우선적인 과제로 생각하였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뉴잉글랜드 보스톤의 목회자 존 놀튼(John Norton)은 말하기를 {부모가 자녀들의 영적인 성장과 축복을 누리는데 관심을 가지는 것보다도 세상적인 성공만을 바라는 것은 신발에만 관심을 갖고 발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 것과 같다}고 지적하였다. 사실상 우리가 우리의 자녀를 세상적인 일에 출세하는 것을 교육할 때 그 부분에서는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이 교육의 전부는 아니다.
이점에서 하바드 대학이 좌경화 할 때에 예일 대학교(Yale College)를 세운바 있는 코튼 매더(Cotton Mather)의 지적은 옳다고 할 수 있다. 매더는 지적하기를 {만일 당신 자녀에 대한 당신의 관심이 단지 현세적인 부귀와 영화라면 당신은 이 세상만을 위하여 사는 자녀를 만들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의 자녀를 이 세상만을 위하여 살아가게 한다면 당신과 당신 자녀의 몫은 이 세상 밖에 기대할 것이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청교도들이 이와 같이 영적인 교육을 강조한 것은 인간은 누구나 성경과 구원에 대해 무지하게 태어나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성경적인 교육을 받지 않고는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그리고 그가 행하신 일이 무엇인지, 성령께서는 무엇을 행하시는지를 전혀 알지 못하는 가운데 살아간다. 따라서 그들은 영적인 무지 가운데 살 수 밖에 없으며 천국과 지옥이 무엇인지 모르는 채 짐승과 같이 본능을 따라 살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영적인 교육 없이는 비록 목사의 자녀라 하더라도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죄 성을 따라 살아가는 인간에게는 하나님의 진노가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2) 세상 지식과 하나님의 나라
그러면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나? 영적인 변화를 받아야한다. 곧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는 체험을 통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있다. 거듭남의 체험은 어떻게 가능한가? 거듭남의 체험은 인간의 수행이나 세상적인 많은 지식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접함으로 가능하다. 왜냐하면 거듭남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이루어지며,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은 들음에서 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코튼 매더는 말하기를 {세상적인 지식이 없어도 하늘나라에 갈 수 있으나 기독교에 대한 지식이 없이는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청교도들은 그들의 자녀를 먼저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하고자 하였다.
뉴잉글랜드의 대표적인 청교도 설교자였던 존 코튼(John Cotton)은 맹목적으로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라}하지 않고,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글을 가르치라}고 하였다. 다른 말로 한다면 자녀를 교육하는 목적은 성경을 읽게 하는데 있다는 것이다.
또한 벤쟈민 워드워스(Benjamin Wordwrth)는 {만일 귀하의 자녀가 글을 읽을 수 없다면 글을 가르치시요. 그러나 글을 읽을 수 있다면 성경을 읽지 않고 하루가 지나가지 않게 하시요}라고 하였다. 이와 같이 청교도들은 자녀 교육의 궁극적인 목적을 신앙교육에 두었다.
청교도들에게 자녀들을 영적으로 교육하는 것은 부모의 가장 큰 의무였다. 만일 자녀를 영적으로 교육하지 않을 때 언제인가 그들의 자녀는 그들을 저주할 날이 오게 될 것이라는 것이 청교도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코튼 매더의 조부인 리차드 매더(Richard Mather)는 다음과 같이 설교하였다. “언제인가 우리가 우리의 자녀를 신앙으로 양육하는 것을 우선시하지 않고 차선으로 할 때 자녀들이 지옥에서 부르짖기를 {내가 받는 지옥의 고통은 모두 부모님 때문입니다. 당신들은 내게 기독교에 대한 진리를 알려주어야만 하였습니다. 그러나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당신들은 나를 죄와 악으로부터 멀리 하여야만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당신들의 죄와 죄 값이 내게 전가되어 왔지만 당신들은 그것들로부터 나를 구원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죄 가운데 살아가는 나를 보고도 당신들이 침묵하였기 때문에 나는 죄 가운데 살았고, 그 죄로 인하여 지옥의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화로다 나여! 세상 적이고 생각이 모자란 부모를 두었던 나여! ”
3) 정기적인 교육과 수시 교육
자녀들을 영적으로 교육하기 위하여 청교도들은 자녀들을 수시로 또는 정기적으로 교육하였다. 청교도들은 앉았을 때나 서 있을 때, 길을 걸을 때, 옷을 입을 때나 벗을 때, 아침이나 저녁을 막론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그들의 자녀들을 수시로 교육하였다. 또한 그들은 정기적으로 자녀들에게 말씀을 교육하였는데, 주로 가장의 책임 아래 이루어졌다. 청교도들은 아침과 저녁으로 가정 예배를 드리면서 가장은 가정예배를 통하여 그의 자녀들에게 정기적인 신앙교육을 실시하였다. 또한 매주일에 한 번씩 모든 식구를 불러 모아 요리문답서를 교육하는 것도 등한시하지 않았다. 기독교 교리의 핵심을 다루고 있는 요리문답 교육은 루터와 칼빈 이후 기독교교육으로 크게 활용되었는데, 대부분의 영국과 뉴잉글랜드의 청교도 목사들은 요리문답서를 작성하여 자신의 교회에서 사용하곤 하였다.
또한 피터 벌클리(Peter Bulkely)가 {어린아이는 입이 좁은 병과 같아서 조금씩 하나님의 말씀을 불어넣으면 그리스도의 충만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자랄 수 있다}고 말한 것처럼, 청교도들은 시간이 허용하는 대로 자녀에게 조금씩 말씀을 주입하므로 그리스도의 신실한 백성으로 양육코자 하였다.
4) 자녀 교육과 매
자녀가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날 때 매를 사용하는 것이 옳은가 아니면 그릇된 것인가 하는 문제는 현대교육에서 다루어지는 주제 가운데 하나이다. 인문주의적 교육의 영향을 받은 현대인들은 자녀에게 매를 대는 것은 비교육적이며 비인간적이라고 주장한다. 이와 같은 이론에 근거하여 요즈음 미국에서는 부모가 자녀에게 매를 대는 것을 가혹 행위로 정죄하며, 매를 댈 경우에 자녀 양육권을 몰수당하는 경우까지 있다. 그러면 성경은 매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성경은 자녀에게 매를 댈 것을 주장한다. 잠언 22:15절에 {아이의 마음에는 미련한 것이 얽혔으나 징계하는 채찍이 이를 멀리하느니라}고 하였고, 잠언 23:13-14절에는 {아이를 훈계하지 아니치 말라 채찍으로 때릴지라도 죽지 아니하리라 그를 채찍으로 때리면 그 영혼을 음부에서 구원하리라}고 하였다. 이와 같은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청교도들은 자녀교육을 위하여 매를 사용하였다. 청교도들에 의하면 매는 말씀의 교육효과를 높여준다고 하였다.
코튼 매더는 {아이들로 저주 아래 있게 하는 것보다는 매를 대라}고 하였고, [인디안의 사도] 존 엘리어트(John Eliot)는 말하기를 {매는 아이의 부패한 심령을 고친다}고 하였다.
물론 청교도들이 매를 사용할 것을 제안한 것은 인격적인 설득과 사랑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청교도들이 매를 사용하는 데는 교양과 훈계(엡 6:4)와 사랑(히 12:8-10)을 전제로 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사랑의 동기가 아닌 징계, 곧 과격한 체벌은 엄격히 규제되었다. 왜냐하면 매는 아이의 감정이나 육체를 상하게 하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영혼을 죄에서 구원하는데 있기 때문이다.
(5) 청교도와 학교교육
청교도들에게 학교교육의 주된 목적 역시 그들의 자녀들을 기독교인으로 만드는데 있었다. 뉴잉글랜드 청교도들의 학교 제도는 초등학교(Resding School), 중등학교(Grammar School), 그리고 대학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와 같은 학교체제에서 교육내용은 바로 기독교에 관한 것 뿐 이었다.
예를 들면 뉴잉글랜드의 청교도 자녀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영어를 배우게 되는데, 그때 교재로 사용하던 책이 바로 뉴잉글랜드 프라이머(New England Primer)이다. 이 책을 통하여 청교도 자녀들은 영어 알파벳의 A자를 배우면서 아담의 타락을 배웠다.
곧 {아담의 타락 안에서 우리는 모두 죄를 범하였다}(In Adams fall, we sinned all)는 교리를 배웠다. 그리고 초등학교를 졸업한 자는 중등학교에 진학하는데, 중등학교 과정을 통하여 그들은 성경적인 주제와 함께 기독교의 고전을 연구함으로 기독교인으로 세상을 어떻게 살 것인가를 배웠다. 그리고 대학에 들어가면 기독교 지도자로서 필요한 자질을 성경적 관점에서 배웠다.
(6) 청교도와 주일학교 교육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자녀의 신앙교육을 교회에 주로 의존한다. 그러나 청교도들은 자녀의 신앙교육에서 교회교육이나 학교교육보다는 가정에서 신앙 교육을 우선으로 여겼다. 곧 청교도들은 가정교육과 학교교육을 근거로 하여 교회에서의 신앙교육을 실시하였다.
자녀의 영혼을 타인에게 맡기는 것보다는 부모 스스로가 우선적으로 책임지겠다는 것이 바로 청교도들의 생각이었다. 따라서 청교도들은 자녀들이 어렸을 때부터 가정에서 신앙으로 교육하였고 목사의 설교를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 장년 예배에 참석케 하여 설교를 듣게 하였다.
설교말씀을 듣는 것보다 더 나은 신앙교육방법은 없었다. 따라서 부모들은 설교시간에 아이들이 설교를 이해하도록 도와주었고, 설교 말씀을 통하여 신앙적인 격려를 행하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예배가 끝나면 집에 돌아와, 가장은 자녀에게 설교시간에 무엇을 들었으며 얼마나 이해했는지 어려운 말씀은 없었나를 살핀 다음, 그들에게 들은 말씀을 설명하고 생활 가운데 실천하도록 하였다. 이와 같이 청교도들은 가정, 주일학교교육을 통하여 하나의 신실한 성도를 생산함으로 경건한 가정, 경건한 교회, 경건한 사회를 건설하고자 하였다.
(7) 청교도와 가정예배
청교도들의 신앙생활에서 특기할만한 것은 바로 가정예배의 실천이다. 영국 청교도들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한 바 있는 윌리엄 퍼킨즈(William Perkins)는 가정의 영적인 건강을 유지하기 위하여 하루 2번 이상의 가정예배를 드릴 것을 제안하였다. 퍼킨즈의 교훈을 따라 청교도들은 아침과 저녁으로 매일 2회 이상의 가정예배를 드리면서 경건을 실천하였다.
아침과 저녁에 온 식구가 모여 가정예배를 드리면서 청교도들은 아침예배 때에는 하루 동안 있게 될 일들을 위하여 기도하였고 저녁예배 때에는 하루 동안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는 기도를 드렸다. 즉 아침 기도시간에 가장은 가족의 모든 죄를 고백하면서 죄의 용서를 구하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하는 예배를 드리면서 하루 동안 있게 될 일을 위하여 기도하였다. 아침 기도회가 끝나고 식사시간이 되면 두 번이나 기도하였다. 식사를 앞두고 음식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릴뿐만 아니라 식사를 마치고 감사기도를 드렸다.
청교도들에게 음식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음식이 필요하다는 것은 바로 인간이 음식 없이는 살 수 없고 하나님의 은혜를 떠나 살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었다. 식사시간에 청교도들은 육적인 양식만이 아니라 영적인 양식도 주셔서 굶주리지 않기를 기도하였다. 식사 후 드리는 기도는 하나의 축도 형태로 {가족들이 식탁에서 떠나 세상으로 돌아감}으로 그들이 서 있는 곳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실현하도록 기도하였다.
저녁에 드리는 가정예배에서 청교도들은 인생의 모든 여정을 마치고 임종을 맞는 사람처럼 깊은 잠을 자기 전에 하루의 일과를 돌아봄으로 자기 성찰을 하는 시간으로 삼았다. 따라서 청교도들에게 저녁예배는 아침예배보다도 진지하였고, 늘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칭송이 있었다. 이와 같이 가정예배를 통하여 청교도들은 가정의 경건을 유지하였다.
청교도들에게 무엇보다도 중요한 과제는 하나님의 나라의 실현이었다. 그들은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고 하신 우리 주님의 말씀에 따라 이 세상에서의 성공보다는 그리스도의 나라에서 상 받기를 바라고 분투하였다.
그 결과로 청교도들은 영적으로나 육적으로도 엄청난 축복을 받았다. 비록 이 세상에서 행복을 누리는 것보다도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한 축복을 누리는 것을 우선시 하였지만, 그들은 세상적인 축복도 넘치도록 받았다.
먼저 미국 10대 명문 대학 가운데 하나인 듀크대학의 교수 죠지 마스덴(George Marsden)의 연구보고에 의하면 제1차 세계대전 이전 미국의 정치, 문화, 경제계를 이끌어왔던 인물 가운데 8명 중 2명은 미국에 이민하여 온 다양한 인종들로서 그들은 바로 청교도의 후손이거나 청교도적인 신앙교육을 받은 사람들이었다.
또한 미국의 복음주의적인 목사 팀 라헤이의 글을 주의하여 보자. 라헤이는 {성령 충만한 가정의 비결}이라는 책에서 같은 시대 같은 장소에서 살았던 두 가정, 막스 쥬크스(Max Jukes)라는 사람의 가정과 죠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e)의 가정을 비교하고 있다.
쥬크스는 불신자로 불신자와 결혼하여 수많은 자녀를 두었다. 그의 자손 1천 26명을 연구한 결과 3백 명이 일찍 죽었고, 1백 명이 13년에 한 번 정도 교도소에 갔으며, 1백 90명은 창녀였고, 1백 명은 알콜 중독자였다. 결과적으로 쥬크스의 자손 가운데는 한 사람도 미국 사회에 공헌한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뉴잉글랜드의 청교도였던 죠나단 에드워즈는 신실한 그리스도인으로 기독교도와 결혼하였다. 그의 자손 7백 29명을 연구한 결과 3백여 명의 복음 전도자가 나왔고, 65명의 교수, 13명의 대학장, 60명의 작가와 3명의 국회의원, 그리고 1명의 부통령이 나왔다.
[출처] 제5편 청교도의 신앙, 사상, 삶 (아리엘 개혁교회) |작성자 Gr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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