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천 년이 도덕적으로 부패했고 기독교가 타락했다는 것은 누구든 인정하는 바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타락과 부패로 인해 종교개혁이 일어났다고 착각한다. 결코 그렇지 않다. 교회가 타락하는 때는 늘 있었다. 타락하지 않은 때를 찾아보지 못할 정도다. 부패로 인해 타락했다면 종교개혁이 일어날 것이라는 것은 허상이고 어리석은 발상이다. 알아야 하는 것은 부패와 타락을 근절하려고 종교개혁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종교개혁이 부패와 타락과 관련 있다고 해서 그것이 주요한 원인이라고 말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종교개혁의 주요한 원인은 진리의 재발견이었다. 타락과 부패로 찌든 사회를 청결케 하기 위해 종교개혁자들이 죽음을 내어놓지 않았다. 죽음을 내어놓을 정도로 중요한 진리를 발견했기에 종교개혁자들은 힘써 우리들에게 알리려고 글들을 썼고 가르쳤다. 진리 중 진리는 우리의 구원에 관한 것이다. 구원에 관한 것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칭의에 관한 것이다. 구원을 받는 것에 반드시 알고 깨달아야 하는 것은 칭의의 개념이다. 그것을 알리려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은 아니다. 다른 지면에서 설명코자 하기로 약속하고 진리를 재발견하는 것이 종교개혁의 목적임을 알자.
종교개혁이 필요하다고 여길 정도의 교회의 타락에 대해 생각해보도록 하자. 부패와 타락은 우리의 타락한 본성에서 비롯되는 당연한 일이다. 인정한다. 하지만 그것에만 원인을 돌리는 것은 교조적인 답변에 불과하다. 식상한 답변이라 말이다. 그런데 타락성을 지닌 성직자들이라 하더라도 그들은 적어도 소명을 받은 자들인데 왜 타락하게 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하자.
성직에 대해 생각하기 전에 공직에 대해 먼저 생각해보도록 하자. 공직(public office)은 그것에 따른 권력을 갖고 있다. 그래서 공직을 누구든 갖고 싶어 한다. 특히 요즘은 공무원에 되고자 한다. 그 이유는 불안한 사회에서 안정된 생활을 원하기 때문이다. 공직이란 그 직책에 알맞은 권리와 권한이 주어진다. 권력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것은 국가가 주는 권한이다. 물론 국민이 주는 것이지만 국가가 주는 것으로 착각할 수 있다. 그런데 공직자들에게 가장 타락한 현상이 많이 나타난다. 왜 그럴까?
안정된 직책도 주어지고 권력이나 물질도 주어지는데 왜 타락성이 일어날까? 그것이 자신이 노력해서 가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공부만 해서 머리가 좋아서 얻어진 공직이다. 그러면 권력과 재물이 얻어진다. 생계에 필요한 것을 제공하지만 사람은 그렇지 않다. 그 이상을 원한다. 게다가 권력도 동시에 주어지기 때문에 그 권력을 악용하여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이점을 갖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이상의 것을 가지고자 하는 욕심을 갖는다.
그런데 공직을 맡는 자들에게 생계에 필요한 재정과 안정된 삶을 주고 적절한 권력을 주는 이유는 공부만을 잘해서가 아니라 그것을 통해 그만큼 현명하게 국만들에게 봉사할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또 그것을 준 국민들을 위해 헌신하라는 것이다. 그 목적과 취지를 망각하고 행동하면 욕심이 생기고 타락하고 만다. 주어진 혜택들은 국민에게 돌려야 한다. 국민 봉사에 대한 대가로 혜택을 받는 것이다.
성직에 대한 주제로 돌아오자. 성직자들은 또는 소명자들은 그래도 존경받는 자들이다. 대규모의 교회나 소규모의 교회든 교역자들의 생계를 책임진다. 그렇지 못한 교회들이 많더라도 대체적으로 책임지려고 할 것이다. 미자립 교회들은 정말 힘들 것이다. 배고픈 자들은 타락이란 말에 익숙하지 않다. 그저 힘들다는 말 외에는. 그러니 타락이란 주제에 해당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말할 때 성직자, 교역자, 또는 목회자들은 그것에 따른 혜택을 공직자들처럼 받고 있다. 아니 주어진 것이다. 그래서 대규모 교회를 얻고자 한다. 그래서 그 이상의 것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대규모가 될수록 그것에 따른 혜택을 누릴 수 있다. 여기에 문제가 있다.
자신은 그저 소명으로 직분을 맡았는데 그것에 따른 혜택이 주어진다. 무료로 주어진 것이다. 그것도 무상으로 . . . 주어진 것이다. 그 이유는 신자들을 더 잘 보살피고 그들을 더욱 더 바른 길로 인도하라는 이유에서이다. 하지만 돌보기커녕 개인적 욕망을 채우려고 노력한다면 타락하게 된다. 이것이 교회가 타락하는 이유이다. 우리 직분자들은 주어진 직분에 따른 권력을 겸손하게 또는 규정대로 사용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타락하게 된다.
또 무상으로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이기에 그 은혜를 쉽게 잊어버리고 자유를 방종할 수 있다. 전적으로 수동적으로 주어졌기 때문에 일어나는 우리의 어리석음을 간과하지 말자. 그래서 말씀 연구를 통해 늘 그분의 은혜를 기억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수동적인 은혜를 긍정적으로 얻으려고 노력하고 만다. 이탈된 진리의 깨달음은 결국 그릇된 결과를 낳고 말 것이다. 그래서 바로 진리를 배우면서 자신의 위치와 삶을 늘 겸손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목적을 잊어버리고 타락하고 만다.
494주년 맞이한 종교개혁은 결국 진리의 재발견으로 돌아가자. 날마다 말씀을 통해 깨닫도록 하자. 늘, 항상, 언제든, 어디든지, 또는 변함없이 말씀을 통해 배우지 않으면 우리도 목적을 잊어버리고 타락하고 만다. 이것이 종교개혁의 중요한 정신이고 사실이다. 우리는 그분 안에서 존재가치를 찾게 된다. 그분의 말씀 안에서만 우리를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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