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이나 추석이 되면 새 옷을 선물 받는 날이다. 겨울옷을 선물 받았지만 날씨가 예상보다 따뜻해질 때 괴로웠다. 그 이유는 멋있는 새 옷을 밖에 나가 뽐내지 못했다는 아쉬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억지로 입고 뻐기다가 땀만 흠뻑 젖었던 기억이 새롬 난다. 뿐만 아니라 용돈 받는 날이다. 그 돈으로 사고 싶은 물건들을 구입하거나 먹기 위해 가까운 구멍가게로 계속해서 찾아간다. 따뜻한 국물이 일어난 어묵꼬치를 먹기도 하고 맛있는 사탕을 사먹기도 했다. 어떤 때는 덤으로 주는 것이 좋아 애교를 부릴 때도 있었지만 주인아저씨는 매정하게 정가로 줄 때는 마음이 상하기도 했다. 요즘은 이런 낭만을 가질 수 없을 것 같다. 대형마트가 일어나면서 그야말로 슈퍼마켓이다. 모든 것이 다 있다. 음식코너부터 시작하여 자동차 구입까지 행할 수 있는 형편이 되나보니 옛 시절의 재래시장이 그리워지는 때가 있다. 재래시장이 사라지고 나면 낭만이나 인간미도 함께 사라질 것이다. 물론 편리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삭막해지는 인간미를 결코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대형교회들이 대형버스부터 소형버스에 이르기까지 동원하여 신자들을 실어 나른다. 이유는 나름대로 다 있다. 멀리 있는 신자들의 편리와 배려를 위한 것이라 한다. 더욱이 갈만한 교회들을 주위에서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요청에 따라 버스들을 동원해야 한다고 변명을 틀어 놓는다. 그 이유에만 머문다면 누구든 비평하지 않을 것이다. 세력을 키우기 위한 방편이 되거나 더 큰 일을 하기 위한 세력을 넓히는 것이라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만 할 것이다. 하나님은 아신다. 그분을 속일 수 없을 것이다. 순전하다는 미명 하에 또는 지금 당장 벌을 내리시지 않는다는 오만 속에 자행한다면 대가를 치를 것이다. 소형교회나 개척교회 치고 갈만하거나 바른 교회들이 없는 것은 이론적으로 인정한다. 하지만 그들을 위해 그 지역들의 사역자들을 위해 대형교회가 계획을 세워 협력하거나 일할 수는 없는지 묻고 싶은 마음이다. 함께 하나님의 사역을 수행하는 동역자들로 여겨야지 경쟁자들로 여겨서는 안된다. 대형교회는 대형마트처럼 작은 마트들을 만들어 이제는 지점들을 설치한다. 싹쓸이 하겠다는 심산이다. 무슨 성전이니 아니면 지성전이거나 또 아니면 무슨 지역 교회라고 하며 자신들의 이름들을 낸다. 가관인 것은 이단들처럼 외국에까지 같은 이름으로 교회당을 세워 하나님의 이름을 세우려고 하는 것이 자신의 교회의 이름을 자랑하려고 한다. 이것은 정말이지 미친 짓이 아니고 무엇인가? 교회가 아니라 사회단체일 뿐이다. 그리스도의 이름을 가장한 사회단체일 뿐이다. 자신의 교회의 신자들은 자신의 교회들에 참여해야 한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신앙의 자세보다 자신의 소유라는 개념에 사로잡혀 있으니 불쌍하지 않을 수 없다. 크게 보지 못하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큰 나무들 밑에는 작은 식물들이 살지 못한다. 마른 땅만 있을 뿐이다. 대형교회들이 작은 교회들을 싹쓸이하게 되면 풀은 죽고 숲만 남을 것이다. 그러면 공허해지고 아름다움은 사라질 것이다. 바라기는 한국교회들이 세속적 마케팅 전력으로 전도에 임하지 말고 한 영혼을 진정으로 또 진심으로 사랑하고 책임 있는 자세로 임하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하나님 앞에 우리는 반드시 설 것인데 세속적 방법을 동원하여 세력을 키웠다고 고백할 수 없을 것이다. 그분의 방법과 그분의 길에 따라야 한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는 것은 세상에서 통하는 것이지 하나님의 거룩한 교회들에서는 해당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