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섭게 추운 겨울 지속적으로 며칠 동안 눈보라가 몰아쳐도 우리는 모든 것으로부터 매여 꼼짝 못하고 갇혀있게 됩니다. 무더운 여름 조금만 지속적으로 비가 내려도 홍수가 나서 물난리가 납니다. 아무리 문명이 발달했다 하더라도 자연의 힘에 어쩌지 못하고 굴복하고 맙니다. 자연의 무서운 힘을 인식했던 사람들은 고대부터 지금까지 산신(山神)과 천신(天神)을 비롯한 해신(海神)에게까지 존경을 발하는 의식들을 행하곤 합니다. 아마 두려움 때문일 것입니다. 자연의 신들이 노하지 않고 한 해에도 잘 지켜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자신들의 안녕을 위한 의식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위대성과 위엄성은 자연에 분명하게 나타나 새겨져 있습니다. 이것을 가리켜 그분의 영광이 드러나 있다고 합니다. 자연의 힘을 통해 하나님의 권능을 매우 조금이나마 경험하곤 합니다. 아무리 강하다 하더라도 눈에 보이지 않는 세균에 의해 질병에 걸려 쉽게 무너지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마치 허세를 부리는 것처럼 내일 일들을 예상하지 못하는 베짱이와 같은 자들이 있습니다. 과단성 있게 자연을 정복하려 하다가 고결한 죽음을 맞이하는 등산가들과 탐험가들을 보면 자연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간접적으로나 실감하게 됩니다.
기독교 신자가 자연을 통해 하나님을 경외하게 이른다고 하여 신앙을 가졌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기는 아직 이르다는 뜻이죠. 그분에 대한 신앙 또는 그분을 믿는다는 것은 그분이 삼라만상을 지으시고 운행하신다는 것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지으신 피조물들을 보호하시고 인도하신다는 것을 깨달아야 함을 의미합니다. 그것들에 속한 나 하나에게까지도 한결 같은 사랑으로 보호하시고 지키시고 인도하신다는 것을 깨달을 때 비로소 신앙을 가졌다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이러한 깨달음은 이성적 판단에서 이뤄지기 전에 성령의 조명하심이 있어야 합니다. 그분의 위대하심만 아니라 섭리까지도 깨닫게 됩니다. 예를 들면, 로마로 압송되던 폭풍우 속에서의 바울의 고백처럼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사도행전 27:25)는 신앙이 바른 신앙관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신앙을 여기서 엿볼 수 있습니다. 창조주만 아니라 섭리하시는 분이심을 깨닫는 삶이 우리의 인생 전체를 통해 일어날 것이고 그 깨닫는 삶에서 받는 확신과 평강을 통해 우리의 삶은 윤택해지거나 보람되게 이릅니다.
머리털까지 세신 바 되시는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비록 우리가 아직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가시적인 제현상들을 통해 우리의 삶에 역사하시는 그분을 알아가길 바랍니다. 더욱이 중요한 것은 역사를 통해 간접적으로 그분의 섭리를 깨닫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그분에 대해 직접적으로 깨닫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