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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앞에서

라은성목사(서울)

by 김경호 진실 2014. 9. 13.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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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고신대학교를 다녔는데 학교의 배지와 깃발에 새겨진 라틴어는 ‘코람데오’(coram deo)였습니다. 그것의 뜻은 ‘신전에서’, 즉 ‘하나님 앞에서’였습니다. 영어로는 before God 또는 in the sight of God였습니다. 나는 신학공부를 하면서 이 단어만큼 귀중한 단어가 있을까 하며 생각했고 지금 이 시간 글을 쓰는 시각에도 이 단어 의미를 생각합니다. 왜 이 단어를 선배들은 택했는지 생각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창세기 39장을 읽어보면, 야곱의 아들 요셉이 형들의 모함을 받아 이집트로 노예 생활을 하게 됩니다. 부모와 형제들을 등진채로 세월을 보낸 그는 노예 생활을 했지만 성실한 그의 삶이 인정을 받아 집사장까지 승진하게 됩니다. 이렇게 승진하게 된 이유를 가리켜 ‘여호와께서 함께 하셨다’고 4차례나 표현합니다. 그리고 주인 보디발 아내의 유혹에 대처하는 요셉의 행동은 정말이지 귀감이었습니다. “하나님께 득죄 하리이까?”라는 표현은 그의 신앙적 표현인 동시에 삶을 나타내는 것이었습니다. 이 일로 인해 모함을 받아 감옥살이를 하기에 이릅니다.
하나님께 득죄하지 않았던 그의 신앙은 결국 그분이 함께 하셨음이 있었다는 것이고 이 신앙은 우리가 다루고자 하는 ‘코람데오’의 신앙임을 엿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신앙은 그분께 득죄하지 않도록 이끌었을 뿐만 아니라 그분이 그와 함께 함을 이웃들로 또 주위 사람들로 하여금 알도록 했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요셉은 자신에게 일어난 모든 일들은 하나님의 섭리로 돌리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45장에 이르면 “당신 보다 앞서”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우리의 모든 삶은 그분의 섭리 하에 있음을 분명하게 밝히는 고백입니다. 코람데오의 삶은 그분의 섭리를 믿는 삶으로까지 나아갑니다. 이러한 신앙은 결국 진실한 기독교인의 삶을 이끄는 원동력으로서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경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과 사상 속에 ‘하나님 앞에서’라는 어구를 생각하면 살아간다면 무엇이든지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을 수 있겠습니다. 이런 관점으로 신앙서적들을 읽다보면 신앙의 훌륭한 선배들은 한결 같이 하나님 앞에서 살아갔다고 믿어집니다. 누구의 유혹 앞에서도 또 누구의 위협 앞에서도 조금도 굴하지 않고 담대하게 살아갈 수 있었던 원천은 항상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살아갔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세상 끝날 까지 함께 하신다면, 그분이 늘 곁에 계신다면, 그분 앞에서 우리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면, 우리의 삶은 기독교적 삶일 것입니다. 그분 앞에서 살아간다는 것을 망각하는 순간 우리는 범죄의 자리에 빠지거나 죄인의 길로 걷게 될 것입니다. 이 글을 읽는 이 순간에도 그분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분 앞에서 오늘도 내일도 살아가길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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