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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

라은성목사(서울)

by 김경호 진실 2014. 9. 15.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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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어리거나 경험이 부족한 사람들은 오늘과 내일을 얘기하곤 합니다. 그들의 주제는 시사적(trend)이고 유행에 관한 것입니다. 킬힐(kill hill)이라 불리는 높은 굽의 구두를 신지만 허리에 무리가 간다는 사실을 외면합니다. 피가 끓기 때문에 자신의 몸을 드러내려고 하고 조금의 좋은 점이 있으면 자랑하려고 뽐냅니다. 미래를 위해 오늘을 사는 것이 아니라 오늘을 위해 미래를 언제든 포기하기도 합니다. 매우 위험한 생각이기도 하고 유의해야할 선택임에도 불구하고 내일을 고려하지 않고 오늘만을 위해 내일을 포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긍정적인 측면에서 오늘을 위해 내일을 포기하는 것은 바람직합니다. 예를 들면, 마태복음 6장에서 내일을 근심하며 오늘의 어떤 일도 망설이는 사람들에 관해 예수님은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걱정하며 어떤 일도 흔쾌히 행하지 않는 사람들에 관해 하늘에 보물을 쌓아두며 미래를 하나님께 맡기라고 합니다. 내일에 대한 긍정적인 준비는 바람직 하지만 부정적인 내일에 대한 걱정은 행치 말라고 강력하게 권합니다.
구약성경에 사르밧 과부를 보면 내일에 어떤 희망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내일을 포기하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오늘 먹고 죽으려고 했습니다. 그 내일마저도 사르밧 과부는 포기하고 내일도 없이 죽으려고 했습니다. 이것은 신앙적 결단이기도 합니다. 긍정적인 측면에서 내일을 위해 오늘을 포기하는 삶이죠. 젊은이들은 오늘을 위해 내일을 포기하는데 신앙적인 측면에서는 이런 부정적인 측면이 오히려 고무적인 삶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미래를 위해 오늘을 포기해야만 하고 다른 경우에는 오늘을 위해 미래를 포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자신이 직면하는 상황이 이 두 경우들 중 어느 경우에 해당되는지 알아내는 것이 중요하리라 여깁니다. 하지만 판별하기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기독교 신자들은 반드시 이 두 경우를 지혜롭게 선별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리석은 자가 되거나 미련한 자가 됩니다. 이 선별의 지혜는 곧 하나님의 뜻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찾는다는 것은 곧 지혜로운 삶을 사는 것을 말하고 지혜로운 삶은 그분을 두려워하며 그분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에 초점을 맞추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곧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는 잠언의 말씀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그분의 뜻을 찾으려는 삶은 그분을 경건한 두려움에서 나온다는 것이죠. 그분을 두려워하는 것이 곧 지혜로운 기독교 신자들의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남을 위해 희생한다는 것은 그를 위해 자신의 미래를 포기한다는 것이죠. 남을 사랑한다는 것도 미래를 사랑의 상대방과 함께 한다는 것이죠. 대체적으로 미래를 위해 오늘을 희생하는 경우를 긍정적으로 보죠. 하지만 늘 옳은 것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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