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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계보에서 배우는 교훈

겸손

by 김경호 진실 2014. 10. 29.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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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계보에서 배우는 교훈
김기찬  (한사랑교회 목사)

 

다윗의 계보에서 배우는 교훈

김기찬


1. 역대기의 선지자는 족보를 통하여 거룩한 안목을 제시함

역대기는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교회에게 베푸신 계시의 말씀입니다. 아마 하나님의 은혜로 성전을 재건하고 예루살렘을 중건한 직후에 이 성경이 기록되었을 것입니다. 역대기의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던 때에 언약 백성의 현실은 사람의 관점에서 보면 초라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은 포로에서 돌아왔으나 여전히 페르시아의 속국에 불과하였고, 하나님의 은혜로 겨우 성전을 재건하고 성을 중건하였으나 다윗과 솔로몬의 황금시대에 비할 바가 되지 못했습니다(참조. 학 2:3-4; 스 9:8-9). 이처럼 절망스러운 형편에 있는 당대 교회를 굳게 붙들어 주고 거룩한 사명을 행하도록 격려하기 위하여, 선지자는 긴 족보(대상 1:1-9:34)에서 과거의 역사를 조망하면서 당면한 현실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 교훈합니다.


2. 다윗의 계보에서 관찰할 수 있는 몇 가지 사실들

   역대기 선지자의 교훈을 잘 배우기 위하여, 우리는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찬란한 시대를 열어던 영웅 다윗 왕의 계보를 살펴보려 합니다. 다윗의 계보는 역대상 3:1-9에 나오는데, 이 계보는 유다 지파의 족보에 속하고, 유다 지파의 족보(대상 2:3-4:23)는 역대기 족보의 본론이라 할 수 있는 이스라엘 12지파의 족보(대상 2:1-9:1)에 속합니다.1) 우리가 이 족보를 면밀하게 살피면 다윗 왕을 배출한 유다 지파가 아니라 레위 지파와 레위 찬양대의 계보가 이스라엘 12지파의 전체 족보에서 중심을 차지하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윗의 계보도 유다 지파의 족보에서 중심부가 아니라 주변부에 기록되어 있습니다.2) 역대기의 말씀을 받던 언약 백성들이 여전히 페르시아의 속국으로 실로 열악한 형편 가운데 있을 때에 그 마음에 가장 바라던 것아마 다윗 같은 영웅의 출현일 텐데, 거룩한 선지자는 오히려 다윗을 철저히 주변부에 두다윗에게 관심쏠리지 않게 만듭니다.

   전체 족보에서 다윗은 헤스론의 둘째 아들인 람의 후손의 족보(대상 2:10-17)에 언급되어 있고, 또한 람의 후손의 족보를 보충하는 단락(대상 3:1-24)에 다윗의 계보가 독립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대상 3:1-9).

   람의 후손의 족보에서 우리는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을 발견합니다. 첫째로 보아스가 오벳을 낳았다는 기록에서 우리의 당연한 예상을 깨고서 룻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점이며, 둘째로 이새가 일곱 아들을 낳았고 일곱째 아들이 다윗이라는 내용이고, 마지막으로 다윗의 두 누이의 아들들이 특별히 언급되어 있는 사실입니다. 룻기의 내용은 다윗 왕에게 관심과 기대를 갖게 만드는데, 역대기는 룻을 전혀 언급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선지자는 다윗이 이새의 마지막 아들이라는 것을 강조하는데, 이는 다윗이 법적으로 자기 가문을 대표하기도 힘든 인물이었음을 보여 줍니다. 마지막으로 다윗의 두 누이의 아들들은 다윗을 도운 장군들(아비새, 요압, 아사헬, 아마사)이었습니다. 이런 점들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다윗을 상승왕(常勝王) 되게 하신 사실을 부각시키고 한낱 사람 다윗을 주목하거나 높이지 못하게 합니다. * 마케도니아의 필립 2세는 BC 4세기에 특출한 기병전술로 전쟁에서 늘 승리를 거두고 상승왕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이런 관점은 다윗의 계보(대상 3:1-9)에서 인상적으로 표출됩니다. 이 계보는 크게 다윗이 헤브론에서 낳은 후손들에 관한 내용과 예루살렘에서 낳은 후손들에 관한 내용으로 되어 있고, 두 내용은 다윗의 치세에 관한 간단한 요약에 의하여 연결됩니다.3) 우선 첫째로 헤브론에서 태어난 아들들은 어머니가 다 다릅니다. 다윗정략결혼을 통하여 아내를 많이 두었고, 아내들에게서 아들이 많이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이 아들들 가운데 다윗의 생애를 어둡게 만들고 다윗의 왕국을 위태롭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압논(암논)은 이복 누이 다말을 연모했는데 하나님의 법을 거슬러 다말을 욕보였고, 그 일로 말미암아 압살롬이 악한 꾀를 내어 암논을 죽입니다. 이 일로 다윗이 날마다 압살롬을 인하여 슬퍼하게 됩니다(삼하 13:37). 압살롬이 자기 외할아버지 그술 왕 달매에게 도망한 후에 다시 다윗에게로 돌아왔습니다만, 자기 아버지 다윗을 몽진 떠나게 만들고 아버지의 여인들을 백성들 앞에서 욕보였습니다. 압살롬의 반역과 패역으로 말미암아 다윗의 가문과 다윗의 왕국이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습니다. 그 후에도 아도니야가 솔로몬에게 왕위를 넘겨주려는 아버지 다윗의 뜻을 거슬러서 자기가 왕위를 차지하려던 일이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낳은 아들들에 관한 단락에도 다윗의 어두운 면이 숨김없이 드러납니다. 우선 ‘솔로몬’이 여러 아들들 가운데 하나로 언급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솔로몬이 태어나는 장면(삼하 12:24-25)이나 솔로몬이 다윗을 이어 이스라엘의 황금기를 전개해 나갔던 역사에 비추어 보면, 선지자는 우리의 예상을 뒤집는 방식으로 계보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역대기의 저자는 솔로몬의 어머니 밧세바의 이름을 굳이 ‘밧수아’라고 바꾸어 표현하고, 계보 마지막에 다윗의 아들들의 누이가 ‘다말’이라고 굳이 언급함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회중의 마음을 유다 지파의 족보 처음으로 향하게 만듭니다(대상 2:3-4). 족보 처음에 유다가 언약의 울타리를 벗어나서 가나안 사람 수아의 딸(밧수아)혼인해서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여 죽임 당한 에르를 낳았을 뿐만 아니라, 아내와 맏아들과 둘째 아들을 잃고도 세상 쾌락에서 벗어나지 못해 급기야는 에르의 아내 곧 며느리 다말과 관계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까? 유다 족보의 처음에서 우리는 우리 인생이 심히 타락한 사실과 이런 인생을 향하여 하나님께서 한없이 은혜로우심을 생생하게 배웁니다. 유다 지파가 이스라엘에서 가장 유력할지라도,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유다는 실로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처럼 역대기의 저자는 이 계보를 통해 다윗의 가문이 아무리 찬란한 역사를 펼쳐 나갔을지라도,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웅변하는 듯합니다.

   마지막으로 역대기의 선지자는 다윗의 계보에서 그의 위대한 치세를 한 절도 못되게 간단하게 요약합니다. 페르시아 속국으로 어렵게 사는 백성들이 그 마음에 다윗 같은 인물이 다시 나와서 위대한 황금시대를 열어주었으면 하는 기대가 얼마나 가득하였겠습니까마는 역대기의 거룩한 사가는 그의 통치를 짧게 언급할 뿐만 아니라, 그것도 그가 어디서 얼마 동안 왕 노릇 했다는 사실만 간단히 언급하고 넘어갑니다. 이는 역대상 4장에 나오는 야베스에 관한 내용과 비교해 보면 생각할 점을 많이 던져 줍니다. 야베스는 유다 지파에서도 그야말로 이름 없는 가문에서 태어났을 뿐만 아니라, 그가 태어났을 때에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저주 아래 있어서 그 부모가 아들을 낳아도 아무 소망을 품을 수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때에 야베스는 하나님이 받으시는 기도를 드렸고 하나님이 그의 기도를 받으셔서 그를 존귀한 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다윗의 치세는 간단히 언급반면에, 이름 없는 야베스의 기도를 자세하고 특별히 언급한 이유는 분명합니다. 역대기의 백성들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영웅 같은 인물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는 그것이기 때문입니다.


3. 다윗의 계보에서 배우는 교훈

   다윗의 계보에서 관찰할 수 있는 이런 사실들은 다윗이 한낱 연약한 사람에 불과한 것을 여실히 보여 줍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다윗과 언약을 맺어 주시면서 친히 다윗의 집과 다윗의 나라를 붙들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대로 다윗에게 구원과 복을 내려 주시지 않았으면, 다윗은 눈물로 남은 세월을 보내 큰 낙담 가운데 세상을 떠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위대했던 다윗도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아무 힘없는 피조물이었고, 오직 여호와께서 그의 힘이셨습니다. 그가 스스로는 저절로 넘어지는 담벼락같이 연약한 인생이었고, 오직 여호와께서 그의 반석, 그의 요새, 그의 구원자, 그의 하나님, 그의 피할 바위, 그의 방패, 그의 구원의 뿔, 그의 산성이셨습니다(참조 삼하 22:1-4). 다윗에게는 여호와가 전부이셨습니다. 다윗은 여호와를 떠나서 자기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고백하며 살았습니다.  바로 여기서 다윗의 위대함이 나옵니다. 다윗이 이처럼 겸손한 태도로 오직 여호와를 전부로 알고 살았기 때문에, 하나님 백성의 역사에서 위대한 시대를 열어갈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실로 어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만,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아무것도 아닌 것을 인정하고 겸손한 태도로 하나님을 전심으로 의지하고 나간다면 그리스도께서는 틀림없이 우리를 통하여 주님의 영광을 이 세상에 나타내실 것입니다. 다윗의 계보는 우리 인생이 하나님 앞에서 어떤 존재인가를 분명히 보여 줍니다. 실로 인생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전부이십니다. 모든 어두움은 우리의 죄에서 나오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서 영광이 나타납니다. 이는 우리가 언제든지 하나님 앞에서 철저히 겸손해야 할 것을 교훈합니다. 우리가 철저히 겸손해야 그리스도의 영광이 온전히 나타납니다. 바꾸어 말하면 조금이라도 사람을 의지하고 자랑하면 그리스도의 영광이 우리에게서 나타날 수가 없습니다. 만일 우리의 전통을 내세우고, 우리의 선행을 자랑하면 그것은 감히 그리스도의 영광을 가리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처럼 사사로운 일에 매여 시시비비를 가리고 자기를 높이느라 하나님이 주신 힘을 낭비한 까닭에 이 시대의 도전을 이기는 데에 꼭 필요한 그 힘이 조금이라도 모자라게 된다면, 그처럼 통탄스러운 일이 없을 것입니다. 어느 때나 신자는 사람을 의지하거나 자랑하지 말아야 합니다만 지금은 특별히 그래야 합니다. 지금이야말로 참된 믿음으로 거룩한 사랑 가운데 하나 되는 데에 힘써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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