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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한 왕들

김명순목사(서울)

by 김경호 진실 2014. 11. 13.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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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한 왕들
김명순  (성약교회 목사)

대하 27:1-9
 

세 왕의 공통점

남쪽 유다왕국의 임금들인 아마샤, 웃시야, 요담 왕은 다윗으로부터 10대, 11대, 12대 왕이었습니다. 이 왕들에게는 부왕(父王)이 아직 살아 있는 동안 왕이 되어 나라를 다스렸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세 왕들은 모두 다 부친의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습니다. 시대적 공통점으로는 이들이 자기 나라를 다스릴 때, 형제 나라인 북이스라엘에는 예후의 현손인 여로보암 II세라는 걸출한 인물이 나왔으나 북 이스라엘은 오히려 그때로부터 망국을 향해 가고 있었습니다.

한 나라가 일어나고 스러지는 일이라는 것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닙니다. 특히 망하는 때는 망할 조짐이 여기저기서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북 이스라엘은 남 유다처럼 한 왕조에 의해 다스려지지 않았습니다. 처음 임금 여로보암 이래 나라가 멸망할 때까지 2백여 년간 여덟 차례 역성혁명이 발생했고 모두 9왕조가 나라 꼴을 유지해 왔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앗수르의 침공으로 나라가 망했습니다.  앗수르 침공이 근인(根因)이지만 앗수르라는 한 세력에 의해 이스라엘이 갑작스레 멸망에 이르렀다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북국이 생겨나기 전, 이미 여호와께서 그 나라를 세우신 뜻을 여로보암에게 일러주셨지만(왕상 11:29-39), 그는 그 뜻을 거슬러 행했고, 계속 이어지는 왕조들도 여로보암의 길을 따라 나갔습니다. 열방 중에 있는 나라와 같이, 왕 된 자는 제 왕권을 유지하고, 또 신장하는 데에 마음을 썼을 뿐만 아니라, 그런 욕심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것이라도 유용(流用)하였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여로보암이 그 백성들로 짓게 한 소위 ‘여로보암의 죄’입니다. 곧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 우상을 세우고 ‘이것이 너희 조상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신이라’ 선포하고, 왕 자신이 그 앞에 제사하고 분향한 것입니다. 이 같은 죄가 답습되었습니다.



유다 12대 요담 왕

역대기 기자는 역대하 27장에서 요담 왕의 사적(史蹟)을 말합니다. 9절로 이루어진 비교적 짧은 장인데, 왕으로 그가 한 일과 일의 결과를 간략히 기술(記述)했습니다. 기술 방식은 사가들의 전형적인 형식을 따랐습니다. 1절에는 몇 세에 왕이 되고 몇 년 동안 치리했다는 것과 그 모친의 이름과 누구의 딸이라 하였고, 다음 절에서는 그가 여호와 앞에서 행한 일들과 그 결과가 어떠했더라는 내용입니다. 1절과 2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요담이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이십오 세라 예루살렘에서 십육 년을 치리하니라 그 모친의 이름은 여루사라 사독의 딸이더라(1절)


요담이 그 부친 웃시야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여호와의 전에는 들어가지 아니하였고 백성은 오히려 사악을 행하였더라(2절)

 

  2절에서 요담 왕이 여호와의 전에 들아 가지 않은 것을 두고, 잘했다고 하는 것인지 아닌지를 얼른 알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사가는 백성이 사악을 행한 것이 왕이 성전에 들어가지 않은 것과 관계가 있는 듯 말하고, 그래서 백성이 사악을 행한 것이 마치 왕의 책임인 것처럼 말합니다.

그렇지만 3절부터는 요담 왕의 치적을 기록하다가, 이어 6절에는 “그가 여호와 앞에서 정도를 행하여 점점 강하여졌다”고 하여, 왕으로서 요담의 생애가 여호와 보시기에 원만했던 것처럼 그렸습니다. 역대하의 기록은 독자의 판단을 그런 쪽으로 인도합니다. 그러나 열왕기하 15장 32절 이하를 보면, 요담의 생애를 부정적으로 그렸습니다. 열왕기 사가는 우선 백성이 어떻게 사악을 행했는가를 밝히는데, 요담 왕도 그 부친이나 조부처럼 산당을 제하지 않아서 그 백성들이 산당에서 제사하고 분향하였다고 합니다. 왕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한 것을 지적하였습니다. 그리고 왕하 15:37에서는 “그 때에 여호와께서 비로소 아람 왕 르신과 르말랴의 아들 베가를 보내어 유다를 치게 하셨더라”고 하여 남국 유다도 쌓아 온 죄업을 치르게 되었음을 밝힙니다.



산당을 제하지 않음

요담 왕에 대한 기록이 열왕기나 역대기 모두 다 많지 않으므로 그의 생애를 정확히 알기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글의 처음에 밝힌 대로 요담의 행위는 선왕 웃시야와 조부인 아마샤의 행위와 맞닿아 있습니다. 조부 아마샤가 25세 때 왕이 되어 어떻게 행하였던가가 왕하 14:2 이하에 나옵니다. 그리고 부친 아사랴(웃시야)가 16세 때부터 어떻게 왕 노릇을 시작하였는지도 왕상 15:2 이하에 기록되었습니다.

아마샤, 웃시, 요담에게 있어 기록상 뚜렷한 공통점이 있다면 그들이 여호와 앞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산당을 제거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백성들이 산당에서 제사드리며 분향하는 일이 계속되었다고 전합니다. 역대하 26:16-21에 보면, 웃시야가 어찌해서 문둥이가 되었는지를 말하지만, 열왕기하에는 그 같은 설명이 없습니다. 그러나 왕하 15:4과 5절을 붙여 읽으면, 마치 웃시야가 산당을 없애지 않고 백성들로 거기서 제사하며 분향하게 한 연고로 결국 문둥이가 된 것처럼 말합니다. 솔로몬 왕 때 세워진 산당을 그 다음 대의 왕들이 완전히 제거하지 않은 까닭에 그 백성들이 거기서 제사하고 분향했습니다. 이런 일은 마치 북이스라엘에서 금송아지에게 제사한 ‘여로보암의 죄’와 같이 대를 이어가면서 계속되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 따른 소요리문답 제14문에는 “죄가 무엇입니까?” 하고 묻습니다. “죄는 하나님의 율법을 조금이라도 부족하게 지키거나, 그 법을 어기는 것입니다” 하고 답합니다. 세 왕이 왕으로서, 여호와의 법을 지키고 정직히 행한 것은 잘 한 일이지, 그릇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법을 지킨다 할 때, 그 법을 온전히 지켜야 하지 부족하게 지켜서는 안 됩니다.

아담의 후손으로 난 사람으로 여호와의 법을 온전히 지킬 사람은 없습니다. 법은 조문 그대로 행한다고 온전히 지키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압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얼마나 명확하게 율법의 참 뜻을 일러주셨는지 우리는 복음서에서 배웁니다. 그러면 법조문은 도외시하면서 법을 제정하신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행할 수 있습니까? 조문대로 행함이 없이 법의 정신을 체(體) 받을 수 있습니까? 



다윗처럼 전심으로 ···

하나님의 백성이요 자녀로 산다는 것은 우선 주어진 법을 조문대로 지키는 데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법을 지키는 가운데 그 법의 정신이 무엇인지, 왜 이런 법을 제정하여 주셨는지를 차례차례 깨닫게 될 것입니다. 즉 하나님을 의지해서 법을 지키고 살면서 그 법이 요구하는 합당한 위치로 올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아마샤나 웃시야, 그리고 요담은 법조문을 따라 그 행위로 여호와를 만족케 하였지만 단지 그 조문을 지키는 데 그쳤을 뿐입니다. 저들은 그 법의 정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만큼 그 법을 제정하여 주신 분이 요구하는 그 자리에까지는 이르지 못했습니다. 이를 두고 열왕기 사가는 왕하 14:3에서 “아마샤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그 조상 다윗과는 같지 아니하였으며”라고 하였습니다. 곧 부족하게 지킨 것입니다. 부족한 것이 쌓이면 그 부족으로 인해서 경책하실 때 징계를 받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다는 것이 잘 못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정직히 행하되 다윗처럼 전심으로 여호와의 명령과 율례를 행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왕상 11:38 14:8; 왕하 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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