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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시작하는 지역 교회가 가야 할 길

송영찬목사(서울)

by 김경호 진실 2015. 7. 16.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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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시작하는 지역 교회가 가야 할 길

우리 시대의 교회가 가야 할 길을 알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먼저 점검해야 한다.

1) 역사의 진행을 직시할 줄 알아야

지금까지 역사는 어떻게 흘러왔는가, 앞으로의 역사는 어떻게 될 것인가, 하나님 나라의 경륜이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 하는 역사의 대원칙, 단지 세상의 연대기적인 역사(history)가 아닌 하나님의 경륜의 역사가 어떻게 흘러가는가를 충분히 볼 수 있어야 한다.

사실 우리가 복음을 접촉함에 있어서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는데 있어서 효과적인 방도는 설교이다. 하나님께서 ‘설교’를 교회 예배에 있어서 중요한 자리에 세워주신 것은 설교가 하나님의 은혜의 방도로써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그의 백성을 가르치시고 기르시고 장성하도록 함으로써 한 교회를 이루고 나아가 교회의 사명을 수행하도록 하는 효과적인 방도가 설교이다.

성경 공부는 어떤 주제를 가지고 계시를 접촉할 수 있는 자질을 향상시키기 위하여 일정한 기간 공부하는 것이다. 따라서 성경 공부를 통하여 교회가 바로 서 가고 시대적인 사명을 수행할 수 있는 자질을 개발하는 것이지 그 능력을 얻는 것은 아니다. 반면에 설교는 일반적인 성경 공부와는 전혀 다른 독특한 의미가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음성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그 교회에 적절한 말씀을 메시지를 통해서 선포하신다. 그러므로 설교의 메시지는 신적 기원을 가지고 있다. 이런 면에서 설교는 그의 백성에게 구속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설교가 그 시대의 국부적인 문제밖에 보지 못한다면 그것은 큰 일이다. 역사적인 하나님의 경륜에 대해서 무시하거나 그것을 보지 못하고 설교자가 메시지를 증거했을 때는 그것을 복음이라 할 수 없다. 그럴 경우 설교는 하나의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강연에 불과하다.

하나님께서 진행시켜 나가시는 역사의 흐름에 대해서 무관심했을 때는 “잘 살아라, 착하게 살아라,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라”는 정도의 규범적인 말밖에는 할 수 없다. 그리고 “기도해라, 십일조 헌금하라, 교회 건축하자, 교회 시설하자”는 식의 다분히 즉물적인 발언만 할 뿐이다. 그러한 설교는 복음이 아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증거한다고 예배시간에 설파를 하기는 하는데 거기에는 뭔가가 항상 빠져 있음을 볼 수 있다. 설교자가 전 역사의 흐름에 대해서 전혀 보지 못하고 자기 나름대로 TV나 신문에서 다루어지는 관심 있는 부분이나 아니면 최근에 발생한 몇 가지 사건을 중심으로 대충 몇 마디하고 끝나는 것을 볼 수 있다.

또 그 교회 상황에 좀 어려움이 있다면 그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서, 장로가 문제가 있다면 그 장로를 타매하기 위하여, 교인이 문제가 있다면 교인을 타매하려는 의도로 설교가 진행되고 마는 경우가 많다. 그런 식의 메시지에는 복음이 없다. 즉 사람을 장성시키지 못한다는 말이다.

설교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그 교회의 구성원들도 역사의 진행을 볼 줄 알아야 한다. 역사를 지켜보되 전 역사의 흐름에 대하여 명확하게 볼 수 있어야 한다. 초대교회에서부터 시작하여 이 시대의 교회까지 흘러온 발자취뿐만 아니다. 장차 이 시대가 어떻게 흘러갈 것이고, 그러한 시대를 통하여서 하나님은 그 교회를 어떻게 따로 세우실 것이며 그 거룩한 경륜의 나라를 어떻게 운영해 나가실 것인가를 모두가 정신을 차려서 보고 있지 않으면 교회로서 의식을 찾기 어렵다.

그러한 교회는 이 시대에 존재할 이유나 의미가 없다. 만일 그런 교회가 있다면 그들은 훌륭한 종교 단체를 만드는 것뿐이다. 그 이상은 아니다. 그들은 서로 사랑하고, 은혜를 베풀고, 뜨겁게 정을 나누면서 자기들의 종교심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교회를 유지해 나가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여긴다.

그러나 이것을 교회라고 할 수 없다. 오늘날 많은 교회가 빨리 부패하고, 갈 길을 알지 못하고 방황하는 이유는 역사의 흐름에 대하여 너무나 무관심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우리가 가는 길이 좀 힘들고 어려움이 많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경영하시는 역사의 흐름을 바로 볼 수 있을 때 우리는 앞길을 향해 힘차게 나갈 수 있다.

 

 

2) 교회는 보편의 교회로서 성장해야

 

‘연예인 교회’라 해서 연예인들만 모이고, ‘체육인 교회’라 해서 체육인들만 모이고, ‘장애자 교회’라 해서 장애자들만 모이고, 심지어 ‘어린이 교회’라고 해서 어린이들만 모아 놓고 교회라고 하는 것은 이미 교회로서 특성을 무시했다. 특히 교회의 보편성을 무시했다.

보편의 교회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일을 이룰 수 있는 만수로서 일꾼이 요구된다. 교회는 하나의 생명을 가진 유기적 조직체이다. 따라서 각각의 지체들이 고루 모여 한 몸을 이루어야 한다. 어떤 특수한 사람들이 모여 특수한 기능만을 가지는 교회는 결코 정상적인 활동을 할 수 없다. 이것은 한갓 인간적인 관심사에서 비롯된 것에 불과하다.

물론 교회의 특성은 그 교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냐에 따라서 달라지기 마련이다. 교회에 모인 사람들이 역사를 어떻게 해석하고 그 가운데서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각 교회의 특성이 나타난다. 그렇다고 어떤 목적을 위하여 특수한 계층의 사람들을 모아서 교회를 세우는 것은 옳지 않은 생각이다.

교회가 어떤 회원을 맞이할 때는 우리가 보편의 교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해서 “아무라도 좋소” 하며 아무라도 데려다 놓을 수는 없다. 그것은 교회가 빨리 망하는 지름길이다. 성도를 아무나 쉽게 받아들이지 말고 잘 구분해서 받아들이되 교회는 어떤 만수(만수라고 해서 꼭 100명이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열 명이거나 스무 명이거나 시대적인 사명을 행할 수 있을 만큼의 일꾼들을(일꾼이 꼭 목사나 전도사인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주실 것을 기다려야 한다. 그런 사람들이 확인되었을 때는 마음을 열고 우리 지체의 한 부분, 우리 교회라는 몸의 한 부분으로서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3) 사도로부터 내려온 개혁 신앙을 계승해야

그리고 이러한 복음을 배웠으면 항상 우리 안에서 그리스도의 품성을 발견해야 한다. 바로 그것이 하나님 나라의 현시이다. 하나님 나라의 특성, 품성은 우리의 삶을 통해서 드러나게 된다. 그러므로 모두에게서 그리스도의 품성을 누릴만한 복음이 우리 안에 있어야 한다.

 

4) 교회로서 독특한 시대적 사명 각성해야

그러기 위하여 똑같은 그리스도의 품성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야 한다. 이 사람 저 사람 잡다하게 모아 놓고 우리 교회가 어떤 사명을 수행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적어도 그리스도의 품성을 소유한 사람들이 모여지면 그것을 바탕으로 우리만의 고유한 특성을 이루게 된다.

예를 들면 나무에 어떤 과일이 주렁주렁 열려 있는데 거기에 사과가 달려 있다면 사과나무이고 배가 달려 있다면 배나무라고 알게 된다. 이처럼 우리 교회에 모여 있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냐에 따라서 우리 교회의 특성이 생기는 것이고 시대적인 사명도 발생한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성령께서 친히 우리 교회를 인도해 가고 있는가?’를 보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 우리가 인위적으로 우리 마음에 드는 사람들을 데려다 놓아서는 안 된다.

성령께서 우리 교회에 앞으로 어떤 사람들을 데려다 주시는가를 가만히 본다면 우리 교회가 앞으로 어떤 특성을 이룰 것인가를 짐작 할 수 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장성해 나갈 때 마침내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게 되는 역할을 감당할 만한 그런 교회가 된다. 그럴 때 비로소 우리의 모든 삶에 의미가 있게 된다. 그리고 우리 교회가 나가야 될 진정한 길을 비로소 진행시켜 나갈 수 있다.

 

마치는 말

이상의 내용들을 가만히 놓고 볼 때 아직 우리의 처지란 씨앗과 같은 그런 상태에 놓여 있다. 아직 싹도 나지 않았고, 줄기도 없고, 잎도 없다. 그러나 앞으로 점차 떡잎이 날 것이고 줄기도 생길 것이고 잎이 달리게 된다. 지금 우리는 배아(胚芽) 상태이다.

그렇다고 해서 생명이 없느냐 하면 그것은 아니고 이럴 때부터 차근차근 잘 다지는 것이 필요하다. 아무나 데려다 놓고 “교인 숫자부터 늘리고 건축부터 해야 되겠다” 하지 말고 이것이 1년이 걸리든지 2년이 걸리든 처음부터 역사 의식을 갖고 단단히 세워나가야 한다.

뿐만 아니라 지금은 씨앗 상태에 있지만 우리가 맺을 열매가 무엇인가까지도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교회가 하나 생겼는데 왜 생겼는지도 모르고 무엇을 위해 사는지도 몰라서 올망졸망 살다 가지 말고 우리는 역사 위에 살아 있는 교회를 이루어야 한다.

교회는 수명이 있다고 한다. 한 교회가 세워지면 그 교회가 100년, 200년 동안 능력 있게 이어지는 것이 아니다. 20년이면 20년, 30년이면 30년 교회의 수명이 있다.

우리 교회가 이런 역사적인 사명을 행할 만한 능력을 갖추기 위해서라도 먼저 우리 자신이 충분히 준비되어야 할 것이고, 그 다음에 우리 교회가 앞으로 어떻게 장성해 나갈 것인가 하는 것을 생각하고 성령께 전적으로 의지하여 우리의 갈 길을 한 걸음씩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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