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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개혁 신학 내에서 일치된 은혜언약 교리 / 배현주 목사

언약신학

by 김경호 진실 2015. 7. 30.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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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개혁 신학 내에서 일치된 은혜언약 교리 / 배현주 목사

 

 

17세기 개혁 신학에서 일치되게 논의되었던 은혜언약의 교리는 항상 예정론으로부터 주어졌다. 성삼위일체 하나님의 영원한 예정은 그의 영광이 목적이다. 그의 영광을 위해서 그 백성을 선택하셨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 나라로 완성이 된다.

 

1. 은혜언약과 그 실체이신 성자

하나님께서 그의 영광을 위해서 택자를 선택하셨을때, 그 예정의 내용으로서 하나님께서 신자들에게 베푸신 것이 은혜언약이다. 은혜언약은 그의 택자들에게 은혜를 베푸시고자 허락하신 언약이다.

그 언약은 신구약 전체가 통일적이다. 그 언약의 내용은 임마누엘이다. 하나님께서 그 백성의 하나님이 되시고 우리는 그의 백성이 되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 백성과 함께 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나는 너의 방패요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창 15:1)고 하셨을 때 그러한 계시의 내용 안에 은혜언약의 실체가 담겨 있다. 그러니까 여호와 하나님 자신이 신자들의 최고의 상급이시다.

그것이 은혜언약의 실체이다. 그 실체가 구약에서는 그림자로 옛 조상들에게 선지자들을 통하여서 계시되었고, 신약에서는 그 실체가 오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은혜언약의 중보자도 되시지만, 은혜언약의 실체이시다. 하나님께서 그 백성에게 주시고자 하셨던 그 은혜언약의 복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런데 하나님의 영원한 예정 가운데 그 백성을 선택하셨을 때에 그 택자들의 구원의 방식이 은혜언약 안에 담겨 있다. 가장 먼저 은혜언약은 신구약 전체에 통일적이라는 것과 그 대상은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자들이다. 그리고 그 언약의 중보자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 언약을 베푸시는 분은 성삼위일체 하나님이시다.

그러니까 은혜언약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택자들과 맺으신 언약이다. 여기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공로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은혜언약의 효력의 배경이 되기 때문이다.

 

2. 창세전 구원 협약으로서 구속언약

창세전 성삼위일체 하나님과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맺으신 언약이 구속언약(Redemption Covenant)이다. 이 구속언약은 은혜언약을 성취하는 언약이다. 중보자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공로로 은혜언약의 모든 효력을 얻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구속언약은 예수 그리스도에게는 행위언약과 같다. 왜냐하면 그가 흠없이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죄에 대한 심판을 담당하셔야 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대속의 십자가이다.

구주 예수 그리스도는 아버지 하나님의 독생자가 인성을 취하시고 성육신하신 분이시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시면서 동시에 인간이시다. 신인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전 사역은 십자가와 부활에서 극명하게 그 성격이 드러났다.

십자가에 죽으심으로써 우리 죄를 대신하여서 죽으셨고 다시 살아나심으로서 우리의 의가 되셨다. 그래서 신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에 대하여서 죽고 의에 대하여서 살았다. 그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의 위격적 결합은 그의 중보 사역에서 빛을 발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세의 의식법을 따라서 그 백성의 죄를 담당하실 희생 제물로 오셨다. 그것은 우리와 동일한 인성을 가지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셔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첫 사람 아담의 범죄 이후에 아담 자손 중에 그 백성의 속죄의 유일한 방편으로 마지막 아담으로서 아담과 동일한 인성을 가지신 중보자가 희생 제물이 되셔야 했기 때문이다.

 

3. 택자들에게 임하는 십자가의 공효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인성을 따라서 십자가에서 수난을 당하셨다. 그리고 돌아가셨다. 이는 무흠하신 어린양의 보혈의 공로이다. 대속의 죽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적 완전성을 드러내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구약 모세의 규례를 따라서 희생제물로서 십자가를 짊어지신 것 자체가 그의 완전한 흠없는 인성을 드러낸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사흘 만에 그의 신성적 능력으로 부활하심으로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의 신성적 권능을 드러낸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신성적 능력으로 모든 사망을 이기시고 다시 살아나셨다.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의 완전한 위격적 결합은 택자들의 죄를 위해서 죽으시고 부활하실 수 있는 완전한 중보자이심을 드러내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신성을 따라서는 아버지와 동등하신 하나님이시다. 인성을 따라서는 다윗의 혈통으로 오신 죄없으신 완전한 인간이시다. 이러한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의 위격적 결합에 대한 교리는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 안에 예정된 택자들의 구원의 중요한 상태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신성적 능력과 인성적 상태를 따라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써 이제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서 모든 택자들은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 결국 은혜언약은 성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공로를 따라서 그의 모든 택자들을 믿음으로 구원하여 주시는 그 언약이다.

 

4. 선택과 언약의 일체성

은혜언약은 신구약 전체가 본질적으로 바뀌거나 전환되는 것은 없다. 다만 은혜언약은 믿음으로 받는 것이기에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 안에서 선택된 택자들 만이 받는다.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서 그리스도 안에서 택자들이 받는 언약이기에 은혜언약은 영원하다.

은혜언약은 영원성과 일체성과 불변성이 있다. 다만 신구약 언약의 경륜의 차이 때문에 몇 가지 외적 방식(modus)의 차이가 있다. 구약은 예표와 그림자였기에 모세의 의식법을 따라서 늘 드리는 제사장의 제사 제도 안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신약은 실체이기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온전하게 이루신 그 공로를 따라서 믿음으로 그 은혜를 누린다.

그래서 경륜의 차이로 인하여서 옛 언약에서 시행되었던 할례와 유월절 만찬은 폐지되었다. 그리고 세례와 성찬으로 대치되었다. 그리고 옛 언약의 모든 의식법은 새 언약에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었기에 폐지되었다.

의식법으로는 원래부터 구원을 받을 수 없었으나 구약 시대에는 그러한 방식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셨고 그 방식 안에서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은혜언약의 혜택을 누렸다.

그러니까 은혜언약은 경륜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신구약 전체가 하나의 불변하는 언약으로서 주어졌다. 그 은혜언약의 혜택은 참된 신자들 뿐이다. 그리고 거절할 수 없다. 그래서 선택과 언약은 나눌 수 없다.

물론 은혜언약의 외적 표징들은 가시적 교회 안에 모든 신자들이 누리기는 한다. 그러나 가시적 교회 안에 거짓 신자들은 단지 외적 표징을 누릴 뿐이다. 그들은 은혜언약의 대상은 아니다. 곧 선택과 언약은 하나이다.

 

5. 선택과 은혜언약의 대상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 가운데 선택받은 택자들이 지상에서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누리게될 복이 은혜언약의 내용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심이다. 그리고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육신하심으로써 성취되었다. 이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그리스도는 신자들의 마음 안에서 믿음을 통하여서 거하신다.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그의 참된 백성들을 선택하신 목적이 바로 은혜언약 안에 담겨 있다. 우리의 구원의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서 거룩하게 흠이 없게 살게 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에베소서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엡 1:4-6).

이것이 예정의 목적이다.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엡 1:6).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원한 신적 작정이 그의 백성들의 예정으로 드러났고 그것이 선택이다. 그리고 그 선택의 대상은 은혜언약 아래에서 택자들이다. 그러니까 선택과 언약을 나누는 것은 17세기 개혁주의 신학에 있어서 은혜언약론이 아니다.

17세기 개혁주의 신학에 대한 표준 문서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대소요리 문답서가 될 것이다. 그러나 그 이전에 고백되었던 벨직 신앙고백서와 프랑스 신앙고백서와 도르트 신조 등도 동일하게 어느 정도 기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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