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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9-13, 이 모든 것(2)

복음

by 김경호 진실 2015. 10. 5.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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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9-13, 이 모든 것(2)

오성환 목사(이야기가 있는 교회, 세움성경신학연구원 원장)

 

 

1. 하나님을 믿고 구원 받았다는 말은 불편한 상태에 있던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로 편안하고 안전한 삶의 상태로 삶의 상황이 변한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은혜로 그의 백성들을 부르시고, 그의 백성들의 삶의 문제를 해결해주신다. 그래서 구원받은 사람들은 삶은 자기의 문제에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와 의를 먼저 찾는 일에 매달리게 된다. 그리고 사람들이 갖는 문제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첫째가 삶의 근원, 즉 삶을 유지하는 문제로 쉽게 말해 누구를 의지해서 먹고 사는가의 문제이다. 성경은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통해 중심의 삶의 원리가 얼마나 헛된 것인가를 말하고 있다. 따라서 일용할 양식을 하나님께 구한다는 말은 우리의 생명의 근원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이 땅에서 살면서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만을 의지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을 얻어 살 수 있게 해달라는 청원이고 기도인 것이다. , 하나님의 백성된 자들이 나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 이것이 첫 번째의 이 모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리고 우리들에게 가장 먼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시기를, 즉 먼저 하나님 나라와 의가 이루어지기를 기도할 것을 가르치시고 난 이후에 이 모든 것으로 일용할 양식을 가장 먼저 구할 것을 말씀하시고, 그 다음에 용서의 문제를 이야기하신다.

이 모든 것의 두 번째 것은 용서함과 용서받음의 문제이다. 주기도문에서 이 모든 것가운데 두 번째 것이 바로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마태복음6:12)라는 기도가 된다.

 

 

2.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드러내는 나라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산상 수훈에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바탕으로 세상 사람들처럼 기도할 때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서나 혹은 중언부언하지 말 것을 말씀하신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는 맘몬적인 세상의 삶의 방식을 따라가지 않고, 하나님의 방식을 따라 가는 나라이다. 그래서 세상은 이에는 이 눈에는 눈으로 갚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예수님께서는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마태복음5:39-42)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더 나아가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태복음5:44)고 까지 말씀하신다. 이런 가르침을 바탕으로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마태복음6:12)라는 기도가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이 두 번째 청원을 잘 설명해주시는 예수님의 비유가 있다. 이 비유는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마태복음18:21)라는 질문에 답하시면서 예수님께서 이야기하신 것으로 주기도문의 두 번째 청원에 대한 예수님의 해석이라고 이야기한다. , 우리의 죄를 사함 받기 위해서 나는 누구의 죄를 얼마나 그리고 어떻게 용서해야 하는가의 문제에 대한 예수님의 답이 이 비유라는 의미이다.

 

 

3. 예수님은 일만 달란트를 빚진 자를 이야기하심으로 비유를 말씀하신다. 일만 달란트는 어떤 면에서는 사람이 도저히 질 수 없는 빚을 이야기한다. 예수님 당시의 헤롯이 일 년 동안 유대 땅에서 걷어 들인 세금이 몇 백 달란트인데, 여기서는 일만 달란트를 빚진 자의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반면에 일만 달란트를 빚진 자에게 빚을 진 자는 백 데나리온의 빚을 지고 있다. 백 데나리온은 일용직 노동자가 백일 동안 받는 품삯을 말한다. 일만 달란트에 비교하면 터무니 없이 작은 액수의 빚이지만, 일만 달란트를 탕감 받은 종은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자에게 빚을 내놓을 것을 독촉하면서 법에 호소한다. 그러자 일만 달란트를 탕감해준 사람은 일만 달란트를 탕감받았던 종을 붙잡아 그 빚을 다 갚도록 옥졸에게 넘긴다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은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마테복음18:35)라고 말씀하신다. 여기서 주기도문의 두 번째 청원이 있어야 하는 이유가 드러난다. , 우리는 모두 일만 달란트 빚진 자들이었고, 그것을 탕감 받은 사람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자들을 도리어 압박하며 살고 있다.

 

 

4. 그래서 주님은 주기도의 두 번째 청원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용서를 받는 전제 조건으로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라는 말을 집어넣은 것이다. 더욱이 이 문제는 아주 중요한 문제인 것이 예수님은 주기도문을 가르쳐주시면서 그 마지막에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마태복음6:14-15)라고 말씀하신다. 마태가 복음서를 쓸 당시 상황이 박해가 이루어지는 상황이었고, 기독교인들에 대한 박해로 인해 기독교인들이 겪는 삶의 문제들 가운데 가장 큰 것이 자신들을 박해한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을 것인가? 그들을 용서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갈등이었다면, 그런 고난의 상황에서 마태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용서함에 대한 이야기를 그의 제자들에게 전함으로 참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무엇인가를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었겠는가? 를 생각하게 한다. 그리스도인의 힘은 십자가에 달리면서 까지도 원수를 용서하신 예수님을 따라감으로 나타난다.

기사제공 : 크리스찬타임스

 

 

 

 

http://ctimes.or.kr/news/view.asp?idx=1102&msection=2&ssection=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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