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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주차(말5). 언약의 사자가 오신다

최더함목사(서울)

by 김경호 진실 2015. 11. 25.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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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주차(5). 언약의 사자가 오신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준비할 것이요 또 구하는 바 주가 갑자기 그의 성전에 임하리니 곧 너희가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가 임하실 것이라. 그가 임하시는 날을 누가 능히 당하며 그가 나타나는 때에 누가 능히 서리요 그는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과 같을 것이라. 그가 은을 연단하여 깨끗하게 하는 자 같이 앉아서 레위 자손을 깨끗하게 하되 금, 은 같이 그들을 연단하리니 그들이 공의로운 제물을 나 여호와께 바칠 것이라. 그때에 유다와 예루살렘의 봉헌물이 옛날과 소대와 같이 나 여호와께 기쁨이 되려니와, 내가 심판하러 너희에게 임할 것이라 점치는 자에게와 간음하는 자에게와 거짓 맹세하는 자에게와 품꾼의 삯에 대하여 억울하게 하며 과부와 고아를 압제하며 나그네를 억울하게 하며 나를 경외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속히 증언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나 여호와는 변지 아니하리니 그러므로 야곱의 자손들아 너희가 소멸되지 아니하느니라”(3:1~6)


 

 

1. 불평하는 백성들


 

 

오늘 본문 61절은 말라기서의 예언의 절정을 이루는 부분입니다. 70년 포로 생활을 끝내고 고국으로 돌아온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세우신 학사 에스라를 통해 율법을 복원하고 학개와 스가랴 선지자와 함께 성전을 다시 짓고 느헤미야 총독의 지휘 아래 성벽을 재건하는 등 신앙생활에 열심을 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유다 백성을 위해 특별히 은혜를 베풀거나 삶이 나아진 것도 없었습니다. 그러자 신앙이 시들해졌습니다. 하나님이 자기들에게 무엇을 해 주었냐며 투덜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죄인은 자기 잘못을 돌아보기보다 늘 남 탓을 하는 존재입니다. 늘 잘해 주다가도 어쩌다 한 번 소홀하게 대하면 단 번에 섭섭해 하고 투덜거립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불성실하고,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며, 거짓말에 익숙한 사람들의 경우, 교회와 목사와 하나님에게 수없이 잘못을 범하고 실수하고 제 맘대로 행동해 놓고선 잘못에 대해 꾸중을 하면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며 등을 돌리기 일쑤입니다. 살다보면 어쩔 수 없이 손해 보는 일도 생깁니다. 신앙이 깊은 사람은 이해하고 넘어가지만 거듭나지 못한 사람은 자신에게 닥친 불이익이나, 불공정한 일에 벌컥 화를 내고 대적합니다. 그들의 사고의 중심에는 늘 자기가 서 있습니다. 모든 일을 자기중심으로 해석하고 판단합니다.


 

 

행동심리학적 이론에서 이기적인 인간의 3가지 판단과 선택의 기준이 있는데

첫째, 내게 이로운 일인가

둘째, 내가 좋아하는 일인가

셋째, 나에게 필요한 일인가입니다.


 

 

정리하면, 타락한 인간은 나에게 도움이 안 되는 일에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방관적인 태도를 취합니다. 교회에 다니고 주일날 예배에 참석하지만 늘 자기를 위해 기도합니다. 자기 문제부터 기도합니다. 하나님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기도는 뒷전입니다. 내가 먼저 먹고 살아야 한다고 떼를 씁니다. 특히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사람의 특징은 결과만을 중시한다는 것입니다. 동기나 과정보다 결과적으로 나에게 좋으냐 나쁘냐로 판단합니다. 좋은 결과를 낳으면 당연한 듯이 입을 닫습니다. 그러나 나쁜 결과가 나타나면 애꿎은 사람에게 모든 책임을 뒤집어씌웁니다. 비용이라도 들어갈라 치면 슬쩍 뒤로 빠집니다. 이런 사람하고 일을 같이 한다는 것은 풀 섶을 지고 불속으로 뛰어드는 것과 같다며 조심하라고 충고합니다.

 

 

성경은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자들을 하나님의 백성이라 말합니다.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할 때 하나님의 나라가 건설됩니다. 신앙의 핵심은 하나님중심입니다. 모든 생각과 마음과 행동이 하나님중심이 될 때, 하나님의 섭리가 보이고 믿어지고 섭리대로 순종하며 기쁨과 감사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앞의 세 가지 이론을 바꾸어 봅시다.

첫째, 하나님에게 이로운가,

둘째, 하나님이 좋아하시는가,

셋째 하나님과 하나님나라에 필요한 일인가!


 

 

아무튼 무려 15년에 걸쳐 열심히 성전을 짓고 제사를 드렸는데 하나님은 아무 것도 해준 게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성전에 대한 희망이나 애착이 굉장히 소멸되었습니다. 그런데 말라기 선지자는 오늘 주가 홀연히 그 전에 임하리니하고 예언을 합니다. 이것은 신성을 지닌 하나님이 육신으로 친히 이 성전을 방문하실 것을 말합니다.


 

 

2. 두 사자


 

 

여기서 두 사자가 소개됩니다. 하나는 주의 길을 예비하는 사자요, 하나는 언약의 사자입니다. 앞의 사자는 세례 요한이요 뒤의 사자는 주님을 나타냅니다.


 

 

세례 요한은 입을 열 때마다 자신의 뒤에 오시는 분의 능력이 더 크다고 말했습니다. 세례를 줄 때에도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거니와 그는 성령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시리라”(1:8)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말라기는 이 세례 요한을 나의 사자라 부릅니다. 이 말은 내가 참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사자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하나님이 아주 아끼시는 종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을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라고 소개했습니다. 그의 이런 소리는 이미 이사야 선지자에 의해 예고된 바 있습니다.

 

 

외치는 자의 소리여,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작은 산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않은 곳이 평탄케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40:3-4)


 

 

세례 요한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사역에서 중요한 특징을 발견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예비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역사상에서 단 한 번도 예고 없이 불쑥 무슨 일을 하시지 않습니다. 이것을 달리 말하자면 하나님은 절대로 임기응변의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절대로 즉흥적으로, 무계획적으로 기분대로 일을 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옛날에 왕이 행차할 때에는 군인들이 미리 가서 길을 닦아 놓습니다. 높은 언덕이 있으면 평평하게 만들고 골짜기는 흙으로 메웁니다. 요즘도 대통령이 지나가기 전에 경호실 요원들이 미리 가서 길을 준비하고 안전을 점검합니다. 세례 요한은 바로 주님이 오실 길을 닦는 사람입니다.


 

 

이전에도 하나님은 세상에 사자들을 보내서 메시지를 전하게 했습니다. 천사들을 직접 보내기도 했지만 인간 선지자들을 더 많이 보내셨습니다. 그런데 인간 선지자들은 대개 예루살렘 성전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선 성전을 방문하거나 다른 사람을 보내어 성전에 대기토록 하고 대신 들어야 했습니다. 이스라엘이 강대국이었을 때에는 주변국들의 사자들이 예루살렘 성전에 파견 나와 있었습니다. 혹시 선지자들을 통해 미래의 일을 들을 수 있을까 하여 그렇게 한 것입니다. 마치 담임선생님이 학급에 전달하는 중요한 사항을 반장의 입을 통해 전하는 것과 같습니다.


 

 

교회의 역할이 마로 이런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에 일어날 일들을 가장 먼저 들을 수 있는 곳으로 교회를 택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교회의 예배를 통해 세상에 대한 자신의 뜻과 계획을 알리십니다. 교회를 통해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은 사실 그리스도인 뿐 아니라 세상 사람들에게도 절대적으로 필요한 말씀입니다. 특히 나라의 지도자들은 교회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세상 사람들은 교회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교회를 손가락질 하며 조롱하기 일쑤입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우리의 교회들이 교회답지 못한 행사가 무엇인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물론 악의적이고 무지함으로 교회를 판단하고 함부로 말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나 저들을 용서하고 저들의 회심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맡기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용서보다 더 큰 사랑은 없습니다. 오직 사랑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야 합니다.

 

 

다음으로 하나님은 두 번째 사자로 너희의 구하는 바 주이자 언약의 사자를 보내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언약의 사자라 함은 하나님이 이미 오래 전에 약속하신 주님을 가리킵니다. 주님은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성자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말라기 선지자는 초림의 예수님을 말씀하시다가 갑자기 심판을 이야기합니다. 주님이 오시는 것은 세상을 구원하기 위함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구세주이십니다.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구세주, 즉 메시아를 학수고대했습니다. 어느 날 성전에 메시아가 홀연히 나타나 핍박받는 유다를 구원하실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런데 말라기는 오늘 본문에서는 구세주보다는 심판주로서의 주님을 묘사합니다. 이것은 다른 말이 아닙니다. 주님은 구세주이시면서 동시에 심판주이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죄와 악에서 구원하는 일과 마귀의 자녀들의 죄악을 심판하는 일은 같은 차원의 일입니다. 믿는 자들의 구원은 믿지 않는 자들의 심판입니다.


 

 

심판은 무서운 일입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주님은 악인들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때에 주님이 심판주로 임하실 때에 아무도 주님의 권세를 당할 자가 없고, 악인들은 금을 녹이는 불처럼, 표백하는 잿물 같은 주님을 목격할 것입니다. 그런데 2절과는 달리 3절에는 좀 다른 메시지가 전해집니다. 2절만 읽으면 굉장히 아찔합니다. 그러나 3절에는 깨끗하게 한다고 합니다. 2절의 심판은 악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고, 3절의 심판은 택한 백성에 대한 것입니다. 그러다가 4절과 5절에서는 심판의 순서가 바뀝니다. 4절에서는 의로운 제물을 하나님께 드려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일이 언급되는 반면에 5절에서는 심판을 당하는 죄인들의 종류를 열거합니다.


그 죄인들은 대략 6가지로 정리됩니다.

 

 

1) 복술자(sorcerers)입니다. 이는 귀신의 힘을 이용하는 자들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하는 자들이먀 하나님나라에 반역자들입니다.

2) 간음자(adulterers)들로서 이방인과 결혼을 하여 언약을 어긴 자들입니다. 결국 이들은 우상숭배의 죄를 범했습니다.

3) 위증자(perjurers)들로 거짓말하는 자들입니다. 거짓 증언으로 이웃을 해하는 자들입니다.

4) 임금수탈자(those who defraud laborers of their wages)입니다. 정당한 임금을 지불하지 않거나 고의적으로 체불하여 가난한 자들을 눈물짓게 한 자들입니다.

5) 과부, 고아, 이방인 등 약자를 괴롭히는 자(oppress the widows, fatherless, aliiens)들입니다. 주님은 언제나 약자들 편이십니다. 이 땅에 가난한 자들을 남기신 것은 부유한 자들로 하여금 선을 베풀라는 하나님의 뜻이 있는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도움을 받음으로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부유한 사람들은 적선을 베품으로서 하나님의 상급을 받는 것입니다.

6)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자(do'nt fear me)들이 언급됩니다. 이것은 앞의 것들을 총망라하여 한 마디로 불경죄를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가벼이 여기고 경솔하게 행동하는 자들에 대해 하나님은 심판하실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아무튼, 두 사자를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은 주님의 성육신을 미리 약속하시고, 그 약속을 성취시키기 위해 앞선 사자를 보내시어 백성들에게 주님의 오심을 미리 알리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절대로 바뀌어 지지 않습니다. 말라기는 6절에서 바로 이런 하나님의 불변하시는 약속의 이행을 선포합니다. 나아가 야곱의 자손들은 어떤 경우에도 소멸되지 않는다고 선포하십니다. 이것이 심판에 대해 택자들과 버림받은 자들의 다른 운명인 것입니다.


 

 

3. 교훈


 

 

악한 마귀가 저지른 짓 중에 가장 치명적인 것은 사람들의 마음을 죄로 오염시키어서 진짜를 분별하지 못하도록 무지와 완악함을 심어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예수님이 나를 구원하실 구세주이시고, 나를 심판하실 심판주이신데 알아보지 못하고 주님을 배척하고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춘향전이 재미있는 것은 암행어사가 갑자기 출두해서 못된 사또들을 들을 혼을 내 주기 때문입니다. 주니의 일을 하면 사도가 되고, 마귀의 일을 하면 사또가 됩니다. 그런데 영화 속에서 사또들은 하나같이 암행어사를 알아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행색이 초라하고 겉보기에 시골 촌뜨기 같아 보이기 때문입니다. 속을 보지 못하고 겉을 보기 때문입니다. 욕심에 사로집힌 탐관오리의 눈에는 암행어사의 본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어쨌든 암행어사가 출두하는 날은 고통받는 백성들에게는 해방의 날이지만, 탐관오리에게는 심판의 날이 됩니다. 바로 직전까지 높은 마루위에 올라앉아서 춘향이더러 수청을 들라 어쩌구 하던 사또가 출두 한 마디에 혼비백산하고 포승줄에 묶여 마당에 꿇어앉아서 한 번만 봐 달라고 애원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하나님이 계획하신 대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대로 실행될 것입니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는 구세주이면서 동시에 심판주로서 이 땅에 오시었습니다. 주님의 오심에 대해 사탄과 그 추종자들은 허를 찔린 것입니다. 암행어사 출두처럼 주님은 오시어서 사탄의 권세를 꺾으시고 그를 포승줄로 결박하여 무저갱에 가두었습니다. 이것은 심판의 시작이었습니다. 먼저 하나님을 대적한 영적인 존재들에 대한 심판을 단행하심으로 거대한 심판의 역사를 시작하신 것입니다. 이제 남은 심판은 재림의 때에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때에는 모든 사람들이 심판대 앞에 설 것입니다. 악인들은 영벌의 심판을 받고 이미 예수님의 오심으로 구원을 받은 의인들은 상급의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그 누구도 이 심판을 비켜가지 못할 것입니다.


 

 

엄중한 심판에 대한 성경의 말씀들을 몇 가지만 살펴보겠습니다.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1:6)

이는 뭇 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하지 않은 자가 경건하지 않게 행한 모든 경건하지 않은 일과 또 경건하지 않은 죄인들이 주를 거슬러 한 모든 완악한 말로 말미암아 그들을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1:15)

또 내가 보니 족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리라”(20:12-15


 

 

마지막으로, 심판은 하나님의 법입니다. 이 세상의 법으로는 겉으로 드러난 불법 행위만 심판할 수 있습니다. 남들 몰래 지은 죄나 마음으로 지은 죄는 심판할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사자가 오시면 사람의 마음 깊은 곳을 살펴서 거룩과 불결을 가려낼 것입니다. 마음속에 금과 은이 있는 사람은 연단하여 없어지지 않을 영원한 상급으로 만들 것이지만, 정련할 금과 은이 전혀 없는 사람들은 불로 심판 할 것입니다. 금과 은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한 모든 것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산 사람들은 마음에 금과 은이 많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주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그것은 사랑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남을 미워하는 사람은 미워한 만큼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주님은 마음으로 미워하는 것이 살인이라고 정죄했습니다.


 

 

진정으로 현명한 사람은 눈에 보이는 재물이나 명예나 권력을 탐하지 않습니다. 마음의 연단을 받아서 보이지 않는 금과 은을 수북이 쌓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마음을 심판하십니다. 사람은 마음을 보지 못하기에 겉으로 드러난 것만 판단하지만 하나님은 마음속의 모든 것을 다 알고 심판하십니다. 더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인은 나중에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가 아니라 지금 심판을 받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죄를 지을 때에 양심을 책망하십니다. 양심의 심판을 통해 우리를 연단시키십니다. 물론 양심의 심판도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심한 경우엔 세상 앞에서 부끄러움을 당하도록 만듭니다. 그러나 이런 연단을 통해 양심이 깨끗해지도록 하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흠 없고 깨끗한 모습이 되도록 살아 있는 동안에 훈련을 시키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살아있는 그리스도인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심판을 생각하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되셔야 합니다. 시험을 치면 반드시 채점이 있듯이 우리 신앙과 인생에도 반드시 채점이 있을 것입니다. 백점짜리가 되도록 노력하시기릅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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